소설 보다 : 가을 2020 소설 보다
서장원.신종원.우다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신춘문예의 계절이라는 걸 알고 있다. 소설을 쓰는 이들에게 이 계절은 힘겹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어떤 기대와 설렘과 동시에 절망도 맛보는 순간이 이어질 테니까. 올해 초에 나는 분명히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그러니까 신춘문예 당선작이었다. 이름도 기억했다. 그리고 그 소설이 좋아서 이 작가의 다른 소설도 읽고 싶다고 여겼다. 그런데 내 기억은 오래가지 않았다. 『소설 보다 : 가을 2020』을 두고 나는 서장원이란 작가의 이름을 처음 마주한 것 같았다. 그러다 소설을 읽으면서 뭔가 닮은 분위기가 생각났다. 검색을 하니 역시나 올 초에 인상 깊게 읽은 소설의 작가였다.


가족에 대해, 관계에 대해, 아니 상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어쩌면 그 안에서 관습처럼 행해진 차별에 대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들과 딸, 부모에게 그들은 어떻게 다른가. 물론 소설 속에서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들이 아팠고, 우선적으로 돌봄과 정성은 아들에게 기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니까.


노영의 오빠가 3년의 투병 끝에 사망하자 노영의 어머니는 절에 발길을 끊었다. 노영의 아버지는 그전에, 병원에서 더 이상의 치료는 의미가 없다고 한 시점에 염주며 휴대용 반야심경 따위를 내다 버렸다. 두 사람은 아들이 아프기 전부터 아들만을 위해 기도했으므로 다른 자식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 인용 게임」


노영과 함께 노영의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에 가는 길, 화자인 ‘나’는 과거 노영과 사귄 사이였다. 둘은 호주에서 만났다. 이미 헤어진 연인과 친구처럼 만나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에 남은 건 무엇일까. 그러니 이 소설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처음에는 조금 묘했다. 연인에 대한 이야기인가. 깊은 상처와 속내는 천천히 다가온다. 노영에게 오빠가 있었다는 것, 병에 걸려 투병을 했지만 죽었다는 사실, 아픈 오빠 때문에 부모에게 노영은 언제나 관심 밖이었다. 오빠가 아프니까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빠가 떠난 후에도 어머니는 노영을 바라보지 않았다. 어머니의 모든 감각은 아들만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나는 눈이 오는 풍경을 보고 싶다고 했다. 호주에서는 흰 눈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노영은 그러면 언젠가 함께 눈을 보자고 내게 말했다. 그건 고백에 가까운 말이었는데, 나는 물론 받아들였다. 언젠가 함께 흰 눈이 덮인 풍경을 보자고, 어느 여름날에 우리는 그런 약속을 했었다. 「이 인용 게임」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상대가 아닌 멀리 누군가에게 전하는 듯하다. 서장원의 스타일일까. 아직은 모르겠다. 그래도 기대가 된다. 그녀의 소설을 더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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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0-12-07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낌이 비슷해서 보니, 역시 서장원 작가의 글이었다는 말씀이시네요^^ 이런 경험, 뭔지 상상이 됩니다. 마치 저도 겪어본 것처럼. 다음에 소설 고를 때는 기억했다가 서장원 작가님을

자목련 2020-12-08 11:33   좋아요 0 | URL
네, 다음에는 이름으로도 바로 기억하려고요. ㅎ
얄랴 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blanca 2020-12-07 1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반가우셨겠어요. 저도 신춘문예 작품 중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란 작품이 있어요. 2020년 경향신문 당선작 <빨간열매>라고 정말 놀라울 정도로 좋더라고요. 자목련님도 한번 읽어보시면 좋아하시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다음에 작품집을 냈나 찾아볼 정도로 좋았어요. 아직 나이도 젊어 좋은 작가가 될 자질이 보인다 생각했어요.

자목련 2020-12-08 11:32   좋아요 0 | URL
아, 말씀하신 작품 검색해서 읽었어요. 정말 좋으네요. 이유리 작가 기억하겠습니다. 이제 며칠 후면 또 새로운 작가의 소설을 만나니 1년이라는 시간이 참 빠르다 싶어요.
블랑카 님, 따뜻하고 다정한 12월 보내세요^^

희선 2020-12-08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라고 모든 자식을 다 사랑하지는 않는 듯해요 모든 자식한테 마음 쓰는 부모가 더 많다고 믿고 싶지만... 아픈 손가락에 더 마음이 간다고 하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 것도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그게 나을지도 모르죠


희선

자목련 2020-12-08 11:30   좋아요 1 | URL
그쵸? 아픈 손가락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래도 편애는 아니었으면 싶어요.
희선 님, 이 겨울 건강하게 잘 보내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