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자리는 정리할 게 많았다. 현관문을 열자 한가득의 쓰레기부터 식탁 위에 가득한 물건들. 도대체 왜 식탁의 기능을 망각하고 물건을 쌓아두는가. 침대 위에는 도착한 나를 기다리는 택배 상자. 모두 책이다. 떠나기 전에 받은 책, 내가 없는 사이 도착한 책, 도착할 날짜에 맞춰 주문한 책들. 잠깐 다녀오는 일정이 꽤 길어졌다. 거의 두 달 가까이 다른 곳에서 보냈다. 코로나 19의 여파가 가장 컸다. 아무튼 나는 돌아왔고 돌아왔다는 문자를 보냈다. 청소기를 돌리고 대충 걸레질을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재활용품 분리수거를 했다. 내가 없는 사이 자주 사용하는 냄비의 뚜껑이 사라졌다. 언제 사라졌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라면을 끓이는 용도이니 남은 가족이 알 텐데. 아무도 모른단다. 아무튼 대충 정리를 끝냈다.

이곳엔 아직 여름의 흔적이 많다. 침대 이불도 얇고 가벼운 이불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곳은 조금 덥다는 것. 신기하다. 정말 좁은 나라인데 몇 시간 이동 거리로 기온이 다르다니. 9월 말까지는 이대로 갈 것 같기도 하다. 급하게 내려온 것도 아닌데 그곳의 정리는 조카 몫이다. 함께 지내보니 크게 걱정할 일은 없어 보인다. 목욕탕 샤워기를 바꾸는 일, 장식장을 거실로 옮기는 일, 쓰레기를 버리는 일도 모두 만족스러웠다.


 함께 지내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다음에 만나면 더 잘 지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한다. 조카는 식탁에서 노트북으로, 나는 컴퓨터로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각자의 일을 했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일을 마치고 늦은 귀가를 하던 목요일에는 지금쯤 집에 왔겠구나 혼자 생각했다.









이곳으로 오던 날엔 비가 왔다. 문단속을 하면서 창밖으로 내다본 배롱나무는 분홍 기운을 품고 있었다. 꽃으로 피어날까. 나에게 올해의 배롱나무는 이런 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다. ‘안녕, 나의 배롱나무. 잘 지내고 있어야 해’. 나의 인사를 들었을까. 너무 작아서 못 들었더라도 그 마음은 닿았을 거다. 


나를 기다린 책을 살펴보고, 읽고 있던 책을 마저 읽는다. 그 사이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소식도 반갑고 궁금했던 책을 먼저 읽은 이웃의 글을 읽는 일도 즐겁다. 한 권의 책으로 가는 길은 다양하고, 그 길에서 만나는 풍경은 언제나 아름답다. 먼저 읽은 이가 보여준 풍경, 읽는 중인 이가 들려주는 이야기까지. 책은 그렇게 나를 누군가와 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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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9-18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 님의 글도 반갑네요.
:)

자목련 2020-09-19 15:37   좋아요 0 | URL
다락방 님의 댓글이 더 반갑지요.
맑은 날씨처럼 신나는 주말 보내세요^^

scott 2020-09-18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과책사이를 이어주는것도 결국엔 사람이네요 자목련님빈자리를 지켜준 가족들 모습이 따뜻하네요

자목련 2020-09-19 15:38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모든 중심에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이곳 알라딘도 마찬가지고요.

희선 2020-09-19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른 데서 지내는 거 잘 못하는데, 두달이나 다른 데서 지내다 오셨군요 조카분하고 사이가 좋고 편한 사이인가 보네요 집에 오니 여러 가지가 반겨주었겠습니다 다른 데서 편하게 지내도 집이 가장 편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이건 저만 그럴지도... 자목련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자목련 2020-09-19 15:39   좋아요 1 | URL
다른 곳이라고는 하지만 큰언니가 지내던 집이라 낯설지는 않아요.
종종 다녀오는데 최장 기간 지내다 온 것 같아요. 희선 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