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이에르바하 인문 예술 총서 21
한스 마르틴 자스 / 문학과지성사 / 198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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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Ludwig Andreas Feurbach(1804-1872)는 내게 맑스의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그 유명한 11번! "지금까지 철학자는 세계를 해석만 해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로 더 많이 익숙하다. 그의 [미래철학의 근본 원칙]을 몇 년 전인가 읽었지만, 무슨 내용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포이에르바하의 이 책보다는 [기독교의 본질](das Wesen das Christentums)이 더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은 포이에르바하의 생과 사상에 대한 다이제스트다. 문고판이지만 작은 글씨로 인쇄된 책이라 내용이 부실하지도 않다. 그러나 지금은 절판된 책. 1841년 [기독교의 본질]이 출판됨과 동시에 시작되는 포이에르바하의 아카데미 밖에서의 활동들을 눈여겨 보면 그가 굉장한 의지와 자신감을 가지고 혁명기에서의 지식인의 위치를 자리매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자리는 강연장이었고, 스크럼과 총성이 가득한 길거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규정은 어떤 식의 비판이 가능할 것이다. 결국 포이에르바하는 혁명가는 아니었고, 다만 혁명의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이집트 학자거나, '미네르바의 부엉이'(Hegel)였을 것이라는 그런 평가 말이다. 맑스에 의하면 포이에르바하는 헤겔의 철학을 '두 다리'로 서게 했지만, 결코 그 자신의 한계 밖으로 즉, 인간주의 또는 '사랑의 종교' 밖으로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1871년은 빠리 꼬뮌의 해였지만, 그의 노쇠한 정신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변역에서 비문이 몇몇 보이고, 가독력이 좀 떨어진다는 것이 이 책의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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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철학사:고대편
노사광 / 탐구당 / 199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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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번역된지 꽤 오래된 책임에도 그 가치가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중국철학사에 관한 책으로는 고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호적, 이택후, 곽말약의 중국철학사가 있고, 또한 풍우란의 그것이 있다. 중국철학의 성격상 이들 학자들에게 철학사 자체가 곧 자신의 철학적 관점이 담긴 철학사상서가 된다. 

노사광 선생의 관점은 자신의 선철인 호적과 풍우란을 비판적으로 흡수하는 것이다. 이 책의 서문격인 글에서 그는 호적이 '철학사'라는 이름에 값하는 철학사를 쓰지 못하고 문헌사 위주의 전적을 마련한 반면, 풍우란은 '철학'은 맞지만 그 시각이 서양 고대철학과 플라톤의 그것에 갇혀버렸다는 것이다. 자신은 방법론과 관점에 있어서 더 확고하고 넓은 기반을 가지고 출발한다고 말한다. 

책을 계속 읽다 보면 노사광 선생의 관점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이를테면 송유 이래 논의된 이른바 '도통'의 직계를 ('공맹육왕'(孔孟陸王)을 거부하고) '공맹정주'(孔孟程朱)로 놓는다든지, 순자를 극구 공자의 후계로 인정하지 않고, 그의 사상을 말단으로 취급한다든지 하는 측면들이다. 이에 따라 한비자나 노자, 장자는 더 이상 크게 취급되지 않는다. 하여간 선생의 중심은 '공맹'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를 정통의 관점이라면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또 사실이 그렇기도 하다. 진고응이 [노장신론]을 쓰면서 매우 성마르게 비판한 것은 학자들의 이런 '정통'에의 집착이었을 것이다. 

관점 여하를 불문하고, 이 책은 일독으로 그쳐서는 안되는 책이다. 모든 '사적' 문헌들이 그렇지만 중요한 저서는 정리하고, 두 세번 읽으면서 완전히 '관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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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6-03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벼리님 철학책 열심히 읽으시네요. 저는 자꾸 주변에서만 맴돌고 있습니다. 어서 안으로 문열고 들어가야할텐데. 이 책 네 권짜리도 집에 모셔놨죠. 제대로 본 적이 없습니다. 맨날 보기 편한 풍우란 것만 참고했었죠.

nomadia 2007-06-04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풍우란 책이 정리가 더 잘 된 것이지요. 저는 예전에 한 번 훑어 보고 지금 다시 보고 있습니다. 아프락사스님도 여러 방면의 책들을 많이 읽으시는 것 같습니다.
 
니체 그의 삶과 철학
레지날드 J. 홀링데일 지음, 김기복 외 옮김 / 이제이북스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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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개인적으로 프로이트가 내 공부의 시작이었다면, 니체는 그 공부의 안전핀을 완전히 제거해 버린 철학자다. 덕분에 모든 학교 공부가 부질없어졌으며, 학교를 그만 두었고, 당시 청하판 니체 전집을 거의 한 달도 안되는 기간 동안 맹렬하게 읽었었다(민음에서 나왔던 [디오니소스 송가]도 사서 읽었다). 누구든 삶에서 한 번 정도 '미친 시기'가 있을 것이다. 내게는 니체를 읽고 노트에 내 생각과 니체의 생각을 마구 섞어 정리하던 17살의 그 시기가 '미친 시기'였다.

청하판 전집을 읽는 중간에 난 그때 요약판으로 번역된 이보 프렌첼의 니체 평전도 보았었다. 지금 기억에 그 평전은 그리 세세하지도 않았고, 평전이라기 보다는 전기에 가까웠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보 프렌첼의 책이 완역되었어도 좀체 손길이 가지 않았다. 번역판인데다가 다른 공부하기도 바빴으므로.

홀링데일의 이 니체 평전은 훌륭하다. 1844에서 1900에 이르는 니체의 정신사를 거의 완전할 정도로 복원한다. 그리고 평전의 이름에도 걸맞게 니체를 절대 우상화하지도 않는다. 홀로 사유한 철학자들이 흔히 겪게 마련인 통속적인 신비화와 자의적인 해석을 피하면서, 매우 조심스럽게 이런저런 의혹들에 대한 평가를 제출한다. 이를테면, 니체의 병원에 대한 구구한 설(매독), 엘리자베트와 루 살로메, 니체 간의 갈등, 니체가 정신을 놓은 1889년 1월 3일 이후 엘리자베트 니체의 전횡 등등. 책의 말미에는 니체 전집 간행과 유고에 대한 평가도 곁들인다. 연구자 입장에서 니체 유고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는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평전을 쓰면서 흔히 놓치기 쉬운 사상에 대한 해석도 각 장의 말미에 주요 저작을 중심으로 제시해 놓았다. 이 부분에서도 홀링데일은 무리하게 저작을 해석하거나 피상적으로 지나치지 않고, 적절한 수준에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번역상 어색한 부분도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참에 이런 말도 하고 싶다. 요즘 알라딘이나 네이버 등에서 자주 출몰하는 소위 '오역 사냥꾼들'이란 얼마나 유치한가.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외국어에 대한 특권을 쥐고 있는 듯이 행동하면서, 그와 함께 '고급 독자'인 양 허세를 부리는 '지적 마적단'에 불과하다. 더 혐오스러운 것은 그들은 한 번도 자신들이 '번역 작업'을 할 엄두조차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번역'이라는 수고로운 작업 영역에 '사전'이라는 성스러운 책(?)으로 무장한 채, 그곳이 자신의 관할인 양 행세하는 이들은 네티즌과 독자들이 거기에 더 반응할수록 더욱 더 자신의 알몸을 보여주면서 쾌감을 느끼는 노출증 환자와 같다. 정작 그들의 육체란 빈약하기 그지 없는 영양 결핍의 상태인데도 말이다. - Noma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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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5-27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니체의 문체가 왜 이리 와닿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몇번 시도를 해봤으나 다른 철학자들의 문체와 너무도 다른지라 적응하기 힘듭니다. 제가 인내심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요.

nomadia 2007-05-28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체가 의식적으로 전통적인 형이상학 개념을 쓰지 않고, 자신의 개념을 창조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니체의 책을 문학 작품처럼 읽기 시작하면 쉽게 읽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하이데거가 경고했듯이) 그건 니체철학에 대한 문학적 곡해를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저는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와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 개념이 어떤 식으로 착종되는지 이해하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2019-11-07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 - 생애와 사상
허남결 / 서광사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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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제임스 밀의 영향이 명백히 과장되었다는 것을 이 책의 저자는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하긴 벤담류의 공리주의가 가지는 끔찍한 결과들에 반응한다는 것이 존 밀에게는 상당한 용기를 요하는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 이러한 경향은 벤담이나 제이스 밀이 결여했던 일종의 '공화주의적 심성'이 존 밀에게는 있었다는 증거다. 그러나 그 심성이란 매우 유약한 의지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코 프롤레타리아트의 '자유'의 심장부까지 걸어 내려가지는 못했다. 그 자유는 피로 이루어졌으며, 존 밀이 생존하고 있던 당시에는 이미 지옥에 가까운 자유였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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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주자
미우라 쿠니오 지음,김영식·이승연 옮김 / 창비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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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에서 철학자는 곧 성인이다. 주자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이 책은 처음부터 이런 시각을 거부하고 출발한다. 주자의 욕망과 비틀어진 이기심, 복수심, 그리고 학문에 대한 편집증적인 집착에 이르기까지 미우라 쿠니오는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주자의 학문적 이력에 흠결이 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구체성을 얻고 한 걸음 더 텍스트 밖으로 나오며, 읽는 사람에게 직접 말을 건다.

일독에서 그치지 않고 정리가 필요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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