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윤성희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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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책 리뷰를 올릴 때, 책 이름 앞에 나름의 제목을 정해 적어 넣는 편이지만, 이번에 읽은 작품은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들의 모음집이기 때문에 하나로 모을만한 제목을 발견해내지 못했다. 작품마다 각 개성이 뚜렷하기 때문에 리뷰도 각각의 작품마다 따로 해야겠다. 몇몇 작품은 건너뛰기도 할 것이다. 어떤 코멘트를 달아야 할지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의 첫 스타트를 끊은 작가 ‘윤성희‘의 <어느 밤>이 이번 대상 수상작이다. 하나의 이야기에서 무언가가 탁 걸리면 그 얘기로 빠졌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곤 하는 구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샛길로 샐 때 무척 자연스럽게 넘어가서 신나게 듣고 있다 보면 또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말발이 좋은 친구가 있듯이 ‘윤성희‘ 작가는 필력이 대단한 작가임을 알 수 있었다. 대화가 거의 없다시피 한데도 글이 술술 넘어간다.
아파트 놀이터에 놓여 있던 킥보드를 훔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전에는 본 적 없던 모습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서 짜증을 느끼던 할머니가 그 훔친 킥보드를 타고 자유를 누리는 모습이 어쩐지 귀엽고 신박하다고 생각했다. 힘차게 발을 구르며 킥보드를 타는 건 어린아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한동안 신나게 ‘킥보드‘를 타고 다니던 할머니가 결국 사람이 잘 드나들지 않는 곳에서 넘어지고야 만다. 초조함을 느끼던 찰나에 집으로 돌아가기엔 눈치가 보여 주변을 뱅뱅 맴돌고 있던 취준생 청년이 나타나 그녀를 돕는다. 그녀가 방황하던 청년에게 해주던 ‘얼음땡‘ 놀이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청년도 지금 ‘얼음‘의 시기를 겪는 것이니 누군가 ‘땡‘하고 외쳐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 부분에서 순간적으로 너무 울컥해서 엉엉 울었다. 세상에서 듣도 보도 못한 위로의 말이었다.
이토록 다정한 할머니에게 ‘킥보드‘는 ‘얼음‘처럼 차가운 세상에서 유일한 위로의 수단이었다. 남편은 점점 미운 짓만 하고, 미국에 나간 딸은 집에도 잘 찾아오지 않는다. ‘얼음‘같은 세상은 청년에게도 적용된다. 청년도 사회에서 자신이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집에서도 외롭기만 하다. ‘집‘이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안정적이고 따뜻한 장소로 가기 위해서는 ‘땡‘이라고 외쳐주는 이가 나타나야 하는데, 선뜻 그렇게 해줄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 그래서 할머니와 청년이 서로에게 ‘땡‘이라는 말을 건네는 장면은 독자의 마음을 녹여 또 한 번 감성을 자극한다. ‘킥보드‘라는 우연의 산물로 인해 뜻하지 않게 이어진 ‘할머니‘와 ‘청년‘의 인연은 마치 기적처럼 느껴졌다.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다른 작품들은 몰라도 <어느 밤>은 반드시 읽었으면 좋겠다. ‘대상 수상작‘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충분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서술 방식과 그 안에 담긴 작은 위로가 특징이다.

‘권여선‘ 작가의 <하늘 높이 아름답게>에서는 ‘마리아‘라는 세례명을 가진 여성이 죽은 후에 벌어진 대화가 주 소재이다. 죽은 ‘마리아‘와 연관 있는 에피소드를 쏟아내는 성당 사람들이 왠지 꺼려지지만, 그들로 인해 독자들은 ‘마리아‘라는 인물을 눈앞에 완성해낼 수 있다. 한편 ‘마리아‘의 죽음이라는 소식을 뒤늦게 접한 ‘베르타‘가 자신이 고귀하지 않다며 배척하던 여성들의 대화에 끼어들게 된다. 그렇게 진절머리가 난다고 여기던 여성들과 별다를 바 없이 스스로도 고귀하지 않았음을 ‘베르타‘는 대화를 통해 깨닫게 된다. ‘파독 간호사‘로 독일까지 건너갔지만 정착하지 못하고 쫓겨나고, 국내에 돌아와서도 이것저것 팔아가며 생계를 유지해야만 했던 선대 여성들의 인생사가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집약되어 드러난다. 발전하는 국가의 미래만 조망하고, 조용히 묻어두려 했던 실패를 작가가 고스란히 끄집어낸다. 독일에서 아들을 낳았지만 여력이 되지 않아 입양을 보냈고, ‘마리아‘는 ‘몸‘으로 때워 갚으려고 한다. ‘파독‘ 되었을 때 그대로 독일에 정착할 수 있었다면 생겨나지 않았을 문제다. 누군가의 삶이 국가라는 거대한 힘 때문에 이용되기만 하고, 그런 그녀를 보살피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성당 여자들처럼 입방아만 찧어대고, 공허함만 남긴 채 흩어져 갔다. 우리는 이 작품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황정은‘작가의 <파묘>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묘를 더 이상 돌볼 수 없어 아예 파내기로 결정하면서 벌어지는 스토리다. 묘 하나를 위해 갖은 고생을 마다않는 ‘이순일‘ 씨를 가족들 중에 ‘한세진‘ 씨만 이해한다. 사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되어 처음에는 ‘이순일‘과 ‘한세진‘이 모녀 사이라는 점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만큼 무심하게 쓰였고, 행간 사이에 어떤 다정함도 묻어나질 않았다.
어머니 ‘이순일‘씨가 성묘를 하러 갈 때마다 다른 형제들은 따라오지도 않고, 오히려 ‘한세진‘ 씨가 효도를 하는 거라며 추켜세운다. 하지만 ‘한세진‘ 씨의 생각은 좀 달랐다. ˝할아버지한테 이제 인사하라고, 마지막으로 인사하라고 권하는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아팠을 거라고, 언제나 다만 그거였다고(174p)˝. 이렇듯 그녀는 그저 엄마가 자신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해했기 때문에 동행했던 것이다. 여기서 첫 번째 작품인 <어느 밤>에서 언급했던 ‘얼음‘처럼 차가운 세상이 보였고, ‘이순일‘ 씨에게 ‘땡‘을 외쳐주는 유일한 사람이 딸 ‘한세진‘씨라고 생각되었다.
또한 <파묘>에서 엄마 ‘이순일‘씨가 집안 살림으로 갖은 고생을 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심지어 ‘이순일‘ 씨의 남편은 처갓집 묘는 벌초도 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파묘>에서뿐만이 아니라, <어느 밤>에서도 술에 취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가 있었고, <하늘 높이 아름답게>에서 학교에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딸들이 등장한다. 이번 ‘김승옥문학상‘ 수상작들이 모두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기 때문에 이렇게 또 한 번 부당함을 겪었던 여성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어이없는 장면들을 번번이 목격하면서도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허탈함에 말을 이을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김금희‘ 작가의 작품 <마지막 이기성>도 <어느 밤> 다음으로 좋았다. 특히 곁에 종이만 있었다면 필사하고 싶은 문장들이 넘쳐났다. ‘김금희‘ 작가의 작품에는 무릎을 탁 치게 만들고, 종이에 베껴 두었다가 다시금 꺼내보고 싶은 문장들이 널려 있다. 이전에 읽었던 <오직 한 사람의 차지>에서도 똑같은 상황을 세심하면서도 위트 있게 표현해내는 능력에 놀라곤 했다.
이 작품에는 조국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느끼는 재일 한국인 ‘유키코‘와 학업을 위해 자발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이기성‘이 등장한다. <마지막 이기성>에서 ‘유키코‘와 ‘이기성‘은 한 사건을 계기로 한국인을 차별하는 일본 사회에 대항해 맞서 싸우기도 한다. ‘재일 한국인‘과 ‘일본에 잠시 머무르는 한국인‘은 다르다고 언급하면서 투쟁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유키코‘라는 캐릭터가 가장 흥미로웠다. 계속해서 일본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에 크게 싸움을 벌이기를 원하지는 않지만, 종국에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부당한 일들에 항의는 해야 한다 싶은 ‘유키코‘의 심리를 ‘이기성‘은 아니었더라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일본에 머무르는‘과 ‘한국인‘이라는 두 개의 자아로부터 오는 두 개의 이유와 그것들의 충돌.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고, 조국으로부터 ‘유실‘되었다고 느끼는 ‘유키코‘의 인생이 다른 ‘재ㅁ한국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근본으로부터 오는 불안함은 겪어본 적이 없는 종류의 것이기에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을 내뱉기가 벅차다.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면 왠지 읽어보지 않았을 법한 작품들도 있었다. 그게 ‘수상작품집‘이 가진 매력인 것 같다. 새로이 좋아하게 될 작가를 발견하고, 평소에 내가 읽었던 방향과는 조금 다른 작품들을 기꺼이 만나게 되는 일. 그것이 ‘수상작품집‘을 통해서 이뤄낼 수 있는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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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효재 - 대한민국 여성 운동의 살아 있는 역사
박정희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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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이이효재>를 만나게 된 건 8월 즈음이었다. ‘텀블벅‘이라는 사이트에서 크라우드 펀딩이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다산북스 sns를 통해 알게 되었다. 책이 출판되는 일에 일조할 수 있다는 사실도 매력적이었고, 책의 뒤표지와 정의기억연대 홈페이지에 이름이 새겨진다는 사실은 주저 없이 이 책에 투자하게 만들었다. 겉멋을 부리고 싶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보다는 여성 운동에 내 몫을 조금이나마 할 수 있다는 게 의미가 깊었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주목을 받고, 여기저기서 여성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대한민국의 여성으로서 기여하고 있는 일이 있는가,에 대해서 좀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펀딩에 참여하는 일은 내게 왠지 모를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우리는 모계 가족>이라는 이름을 가진 ‘윤석남‘ 작가의 작품이 가정 내에서 여성들이 평등한 지위를 획득할 수 있도록 애쓴 ‘이이효재‘ 선생님의 노력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이효재‘ 선생님의 사진과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 가운데 단 한 명도 이이효재에게 빚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라는 띠지 문구는 왠지 모를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펀딩이 예상보다 높은 참여율로 좋은 성과를 거두며 끝난 후 9월 초에 책이 집에 도착했다. 그때 표지의 이런 점들을 눈여겨보면서, ‘이이효재‘ 선생님이 닦아놓은 여성 운동의 길에 염치없지만, 늦게나마 참여하는 데 뿌듯함을 느꼈다.

이이효재는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 여성들이 줄기차게 자신들에게 가해진 법적 제도적 장애물들을 제거해왔음에 너무나도 뿌듯했다. 그 길의 맨 앞에 서 있을 수 있었음이 더할 수 없이 감사했다.

p275

도서 <이이효재>는 저자인 ‘박정희‘ 님이 ‘이이효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기록하거나, 참고문헌을 살펴 가면서 정리해놓은 일종의 논문 같은 느낌이었다. 주로 ‘이이효재‘ 선생님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선생님이 대한민국의 여성 운동을 앞장서서 이끌어오셨던 인물이신 만큼, 선생님의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여성 운동의 역사를 익힐 수 있다. 식민지 시대를 거쳐 한국전쟁까지 겪어야 했던 불운한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뿌리를 버리고 도망치셨을 법도 하다. 그만큼 그 시대 한국에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기어코 돌아오셔서 ‘여성학‘의 방향을 선도하고, 정신대대책협의회 결성을 이끌어 냈으며,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에도 끈을 놓지 않고 여성의 권리를 위해 힘쓰셨다. ‘이이효재‘ 선생님을 비롯해 적지 않은 인물들이 호주제를 폐지하고, 여성 공동체를 만들어내고, 가족법 개정 운동을 펼치기도 하였으며,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 평등하게 대접받을 수 있게 하는 등등, 한국의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어떻게 분투했었는가가 책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이전에 김영사에서 출판한 <이규연의 로스트 타임>을 읽었을 때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기록한 적 있다. 책 제목에는 ‘이규연‘ 국장의 이름만 새겨져 있지만, 그 뒤에 숨겨진 수많은 기자들과 제작진들, 위험을 감수하고 기꺼이 사건에 대해 증언해준 이들의 공도 컸다. <이이효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이효재‘ 선생님 같은 큰 어른이 앞서 나가주지 않았더라면 문제 자체가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일도 꽤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비는 부분을 채워주고, 서로 도우려던 여성들의 연대가 존재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성들이 사회로부터 당하고 있는 부당함뿐만 아니라, 사회 대부분의 문제들이 여러 사람들의 협력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해결될 수 없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이이효재‘ 선생님의 리더십도 존경스러웠지만, 지난한 과정 속에서도 선생님을 따르고, 각자의 부분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며, 또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제자분들의 모습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가족의 민주화, 여성의 평등을 추구해온 이이효재의 사회학과 그 이론적 성과를 배우고 실천해온 여성들이 만들어온 집단적인 흐름 혹은 물결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 여성이 과연 존재할 수 있었을까?

p185

여러 여성들이 쏟은 각고의 노력에 힘입어 현재 여성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더 지적이고, 더 스스로가 원하는 삶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받고 있는 것처럼, 여전히 유리천장에 부딪히며 무력함을 느끼고 있기는 하지만. 전 세대 중에서 가장 똑똑한 세대로 일컬어지는 현 ‘밀레니얼 세대‘가 이전 세대의 여성들 덕분에 전보다는 나은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 감사함을 잊지 않고, 지성인으로서 지역 사회에 좀 더 기여하고, 절망하며 좌절하고 있을 다른 여성들을 위해 나서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책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이이효재‘ 선생님과 적지 않은 여성학자들에게 우리의 지금 삶을 빚졌으니 후대의 다른 여성들을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갚아나가야 할 것이다.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내가 현재 누리고 있는 것들을 당연시하고, 견디고 있는 차별만 크게 부풀리며 살아갔을 테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누군가를 도울 여력이 어디 있느냐,고 변명하며 지내왔던 것 같다. 하지만 ‘라떼는 말이야‘라는 고전적인 어구로 시작되는 그들의 고생스러운 인생이 생생하게 다가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부딪히며 여성의 지위를 끌어올린 이전 세대의 여성들을 떠올리면, 불평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여성의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인류 보편적인 관점에서 여러 불평등을 재빨리 인지하고 진지하게 행동해야 함을 선생님이 일깨워주셨다.
여담이지만, 책 <이이효재>를 읽으면서 ‘사회학‘, ‘여성학‘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이렇게 매력적이고 사회를 위해 싸울 수 있는 근간이 되는 학문인 줄 알았더라면, 기회가 있을 때 공부해보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학부 생활 때는 불가능했지만, 이후에 더 공부할 여력이 생기면 ‘이이효재‘ 선생님의 길을 따라 걸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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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 - 삶의 세밀화를 그린 아메리칸 체호프 클래식 클라우드 13
고영범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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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에도 고기는 강을 향해 올라오고 있다./이봐, 나는 살 거야, 그리고 행복할거야./어떤 결정을 내리든 간에.

논쟁, 울트라마린, 111쪽

11월부터 ‘클래식 클라우드 인생 여행단‘에 참여하게 되었다. ‘클래식 클라우드(이하 클클)‘ 시리즈는 박식한 전문가들의 해설을 통해 예술계 거장들의 삶을 만나볼 수 있는 시리즈다. 현재 내가 읽은 <레이먼드 카버>를 포함하여, ‘클림트‘, ‘헤밍웨이‘, ‘푸치니‘ 등 다양한 거장들의 책이 13권까지 나온 상태다. 앞으로 또 어떤 예술가들의 삶을 엿보고, 그들의 작품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클림트‘의 작품들을 굉장히 좋아해서 이미 출간된 <클림트>는 꼭 읽어보고 싶다.

일단 만듦새부터 살펴보면, 책 표지 디자인이 무척 감각적이다. 표지 디자인 그림은 ‘레이먼드 카버‘가 직접 알코올의존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던 친구 ‘알프레도 아레구인‘이 그린 것이다. ‘카버‘의 초상화와 연어들을 그려 넣은 것인데, 생전에 낚시를 즐겼다는 저자와 잘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그림이 독자의 마음에 드는지와 상관없이, 친구를 위해 제작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애틋함이 느껴진다. 저자 소개도 적절하게 쓰여 있다. ‘레이먼드 카버‘의 삶과 인생이 요약되어 있는데, 사실 저자 소개만 읽어도 책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어쨌거나, 이번 생에서 원하던 걸/ 얻긴 했나?/ 그랬지./ 그게 뭐였지?/ 내가 사랑받은 인간이었다고 스스로를 일컫는 것, 내가/ 이 지상에서 사랑받았다고 느끼는 것.

말엽의 단편, 폭포로 가는 새로운 길, 122쪽

책 <레이먼드 카버 X 고영범>은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인생사와 작품 세계를 ‘고영범‘ 전 교수가 설명해 놓은 것이다. ‘카버‘의 작품들도 적절히 수록되어 있어 흥미를 배가 시키고,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고심하고 연구를 거듭했는지가 느껴진다. ‘레이먼드 카버‘가 살았던 지역들의 당시 상황까지 설명을 더해 ‘카버‘를 이해하는 데 더욱 도움이 된다.
‘레이먼드 카버‘의 인생은 ‘가난‘이라는 한 가지 키워드로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금주를 하고, <대성당>이라는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두기 전까지, 그는 빈곤했고, 가족들을 데리고 이사도 자주 다녀야 했다. 사실 그의 가난에는 그 스스로의 책임도 존재한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들어와도 알코올에 의존하느라 좋은 기회를 다 걷어차버리고, 고질적인 의심과 불안증 때문에 잘나가는 아내에게 ‘대학‘과 ‘가정‘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라고 강요하기도 한다. 특히 아내 ‘메리앤‘을 괴롭히는 ‘카버‘를 보면서 분노가 들끓었다. 총명한 여성에게 공부할 기회를 앗아가다니. 내가 그들의 가정사를 전부 알 수는 없지만, 제발 ‘메리앤‘이 ‘가정‘을 선택하고 주저앉지 않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르겠다. 결국엔 남편과 아이들에게 모든 걸 양보했지만.

<레이먼드 카버>에서 편집자와 작가와의 관계에 대한 논쟁도 수록되어 있어 ‘출판‘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반가웠다. ‘레이먼드 카버‘의 성공 뒤에는 편집자인 ‘고든 리시‘가 있었다. 애초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고든 리시‘가 ‘카버‘의 원고를 40%나 들어내고 몇 작품은 결말까지 아예 바꿔버렸다. 하지만 이 작품은 세상에 나온 후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이후 ‘고든 리시‘에 의해 ‘카버‘의 작품이 크게 수정되었음이 만 천하에 공개되면서, 여러 논쟁이 일어났다. 편집자가 작품에 얼마나 관여하는지와 상관없이 작품만 괜찮아서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다,라는 입장도 있었다. ‘레이먼드 카버‘도 이쪽에 서있었고, 살기 위해 글을 써야 했기 때문에 ‘고든 리시‘를 참아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론은 ‘리시‘의 행동이 과하다고 평가했다.
내가 ‘출판‘에 가지고 있는 건 작은 관심일 뿐이고, 그 업종에 종사하고 있지 않으므로 깊은 의견을 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내가 보기에도 ‘고든 리시‘라는 편집자의 행동이 지나쳤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행위도 결국 사람들의 눈에 띄어야 하는 일이고, 그를 위해 작가나 편집자 등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레이먼드 카버‘가 ‘고든 리시‘를 참아주었던 것뿐이니, 작가로서도 원치 않는 일이었고, ‘카버‘의 작품을 그대로 내보낸다고 해서 그것도 사랑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일인데, ‘리시‘가 자기의 역량만 믿고 그런 행동을 펼쳤다는 건 거만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캡틴 픽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당시에 편집자로서 뛰어난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내겐 ‘고든 리시‘의 말만 정답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책을 다 읽고 나니까, ‘레이먼드 카버‘가 안정적이던 시절에 써 내려간 <대성당>이라는 작품에 호기심이 동한다. 가까운 시일 내에 구매해서 읽어볼 작정이다. 아, 그리고 희한하게도 ‘안톤 체호프‘라는 작가에 빠져들게 되었다. ‘카버‘가 ‘체호프‘와 닮은 구석이 여러 군데 있어서 ‘체호프‘의 이름이 숱하게 등장한다. 그런데 읽는 내내 자꾸 마주치다 보니까 그의 작품 세계도 궁금해졌다. 이름만 들어보고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이 작가의 작품도 읽어볼 계기가 만들어졌다.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는 늘 생각하지만, 사실 관심을 가지고 책을 빼내들기까지가 시간이 좀 걸리지 않나. 그런데 이렇게 작가의 인생사와 작품 세계를 읽어 내려가다 보니 자연스레 작품에도 친밀감이 형성된다. ‘클래식 클라우드‘ 다음 시리즈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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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없음의 과학 - 세계적 사상가 4인의 신의 존재에 대한 탐구
리처드 도킨스 외 지음, 김명주 옮김, 장대익 해제 / 김영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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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온라인 서점들 중에서 '알라딘'을 꽤 애용하는 편인데, <신 없음의 과학>이 이번 주에 추천하는 도서 중 한 권으로 선택되었고, 실시간 클릭 3위로 랭크되기도 했다(11월 14일 19시 기준). 이렇게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번 서포터즈 미션 도서로 선택하게 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내가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다는 이유가 더 컸다. 고등학교 때 꽤 큰 교회에 다녔을 적에, 사람들이 종교에 너무 심각하게 빠져있는 모습을 보고 좀 충격을 받아서 이후로는 어떤 종교도 따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나는 <신 없음의 과학>에 등장하는 학자들처럼 사람들이 종교를 그만 믿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오히려 모두의 신과 종교들이 내세우는 가치관을 존중하고 싶다. 종교에 지나치게 빠져서 전쟁을 일으킨다거나, 이성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그래도 기독교가 내세우는 박애주의나 불교가 가르쳐주는 번뇌를 내려놓는 자세는 실제로 삶에서 꼭 가져야 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신이 자신을 구원해줄 거라는 믿음이 없으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내가 신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모두에게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4명의 저자들-리처드 도킨스, 대니얼 데닛, 샘 해리스, 크리스토퍼 히친스-은 신무신론 운동이 동틀 무렵,

종교의 봉인이 풀릴 때 나타날 기사라는 뜻에서 '네 기사(Four Horsemen)'로 불린다.

최근에 천주교 신자 증가율이 둔화되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확실히 이전에 비해 종교가 매력을 잃게 된 듯하다. 이렇게 신이 실재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한 이들과 이미 무신론자로 살아가고 있는 독자들에게 '4명의 기사들'의 담화를 기록한 <신 없음의 과학>을 추천하고자 한다. 이 책은 종교의 모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책까지 펴낸 학자들이 모여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했던 내용을 기록했다. 특정하게 정해놓은 바 없이 이들은 2007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여 자신들의 생각을 펼쳤다.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2011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더 이상 그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었던 것이다. '무신론자'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생각이 모든 부분에서 일치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 무신론이 완전한 승리를 거둬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싹 다 사라져야만 하는지, 미켈란젤로가 만약 과학박물관 천장화를 의뢰받았다면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키지 못했을 것이라고 여기는지 등등. 세세한 부분들에서 그들 사이에서도 의견 불일치가 나타난다.

-결론적으로 모든 종교는 부패하고, 허위이고, 부정직하며, 유머가 없고, 위험합니다.

-(...)비이성의 위험을 우리가 결코 예상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본인이 단언할 입장에 있지 않은 사실을 단언하는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할 때 그 책임은 무한할 수 있습니다.

p195

다만 네 명의 저자들은 종교와 대비되는 입장에 서 있는 '과학'이 스스로의 무지를 인정하기 때문에 오만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또한 종교가 확실한 이성이 아니라 '믿음'에 근간을 두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신학자들이 본인들도 제대로 증명해 보일 수 없는 교리를 들먹거리면서 저지른 악행들을 생각하면, 그 악행들로 인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사람들을 떠올리면 교회가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고 보는 '리처드 도킨스'의 말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종교'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그걸 이용해서 무지한 시민들을 선동하려던 고위직 종교인들이 나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기독교 학교에서 다니면서 성경에 대해 줄곧 배웠지만, 가끔 터무니 없는-죽은 줄로만 알았던 예수님이 다시 살아난다던가 하는-이야기들이 적혀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 가상의 존재로 인해 삶을 버텨내고, 누군가를 도와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종교에도 분명 순기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저자들은 과학이 오만하지 않다고 설명했지만, 과학자들이 가끔은 자신이 실험을 통해 증명할 수 없는 사실들을 부정하기도 하는 것. 즉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것이 난 때때로 오만하게 느껴진다. 어떻게 미지의 세계에 대해서 그토록 확신을 내비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설령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해도, 우리 종교에 위협이 되니 저 종교를 박멸하라고 한다면 따를 가치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분명히 있다. 이상적인 가치관을 설정해주지도 않는 신을 뭣 때문에 열렬히 사랑하고 존경한단 말인가. 우리가 신을 믿고 따르는 것은 그들이 우리보다 더 나은 존재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확실한 무신론자도 아니고, 어떤 일에 대해서도 이 책을 쓴 네 명의 학자들처럼 강력하게 주장할 자신이 없다. 지금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 세상 너머에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들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고 가끔은 꿈꾸기 때문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으로서 '신'이 아예 없다고 소리칠 수도 없고, 조금은 이성적인 인간으로서 종교 서적들에 적힌 말이 실제로 벌어진 일이 맞는지, 누군가가 과학적으로 혹은 고증학적으로 증명해주길 바라고 있다. 다만 책을 완독하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신'이라는 이름을 빙자해서 자신의 권력에 이용한다거나, 종교에 집착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며 살아가는 일은 멈춰 주었으면 한다. 더 나은 세상으로 사람들을 이끌고자 했던 처음의 순수한 목적 그대로 종교가 이용되었으면 한다.

나는 거의 모든 종교가 감싸고도는 비합리주의의 잔재가 유감스럽지만, 구제하고 위로하는 역할을 잘 해내는 국가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인도적 임무를 인계받을 세속의 기구를 찾을 때까지는 교회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p68

작가 유발 하라리가 쓴 <사피엔스>가 또 한 번 떠오른다. 10월에 출판사 '김영사'의 sns에서 '사피엔스 완독 마라톤'이 진행되어 그 책을 한 번 더 읽을 기회가 생겼었기 때문에 내용이 아직도 좀 생생하다. '유발 하라리'도 종교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가상의 존재임에 불과함을 강조했다. 종교를 믿는 이들에게는 불편한 말이겠지만, 취할 것은 취하되 너무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으면 한다. 또한 자신이 믿는 바만 옳고, 다른 이들은 전부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은 종교가 가진 가장 큰 모순이다. 내가 기독교를 기피하게 만든 그 교회에서도 다른 종교를 비웃으면서 '사이비'라고 지적했고, 거기에 자리해 있던 모두가 똑같이 크게 웃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에서 가장 많이 설립되어 있는 교회도 한때는 박해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특정 종교를 거론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내가 가깝게 아는 것은 기독교뿐이기 때문에 이렇게 적게 된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나는 세상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선 안에 있다면, 누가 어떤 종교를 믿든 크게 관여하고 싶지 않다. 대한민국에는 '종교의 자유'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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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밤의 양들 - 전2권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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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양들>은 소설 <뿌리 깊은 나무>와 <바람의 화원>로 잘 알려져 있는 작가 이정명의 장편소설이다. 전작들이 드라마로도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터라, 이번 작품도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역시 역사 위에 소설적인 면모를 잘 가미하는 작가답게, 이번 작품도 대성공이다. 책은 총 2권으로 이루어져 있고, 500여페이지에 달한다. 작가의 뛰어난 문체와 스토리를 이끄는 방식 덕분에 책을 읽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특히 긴장감 넘치는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분명 이 작품도 마음에 들어할 것이다.

글 제목에도 이미 언급했다시피, 예수가 죽기 전 일주일동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결말이 예측 가능하다는 점을 싫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는 복음서 내용을 제외하고 허구의 이야기가 첨가 되었기 때문에, 다 알고 있는 결말이라면서 책 읽기를 꺼릴 필요는 없다. 나도 중고등학교 때 기독교 학교에 다녔고, 그 종교를 믿진 않더라도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의 이야기는 숱하게 들었다. 어릴 때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 툭 하면 보던 영상 속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이면에 담겨진 추리극이 무척 흥미로웠다. 여기까지만 보고 자야지, 해놓고도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하나씩 밝혀지는 단서들과 증거들이, 그리고 '마티아스'와 '테오필로스'라는 주인공들의 지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 사람을 들뜨게 한다. 어릴 때도 '명탐정 코난' 같은 추리 애니메이션을 즐겨보고, 고등학교 시절에도 영국 방송국 BBC에서 상영되었던 '셜록홈즈'에 푹빠져 3회짜리 에피소드를 대사를 외울 때까지 보던 나에게 <밤의 양들>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종교의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에, 누군가의 반감을 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종교적 감정을 배제하고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이 책은 '테오필로스'라는 현인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시작된다. 과거에 예수가 예루살렘에 왔던 일주일 간의 스토리다.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온 그 기간동안, 살인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살인자를 찾아내기 위해서 '마티아스'라는 살인자와 '테오필로스'라는 현인이 협력하며 증거를 쫓는다. 그들이 살인 사건을 추적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는 것이 다르고, 나머지 예수가 헛소리꾼으로 몰리다가 십자가형을 받게 되는 것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이야기와 결이 같다.

책을 읽는 내내 굉장히 놀라웠는데, 이정명 작가가 얼마나 많은 연구를 한 끝에 이 책을 만들었을지가 분명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집필 기간이 12년이나 걸렸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 적지 않은 사람이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고 있고, 남들이 뻔하게 아는 이야기 특히 종교적인 부분을 건드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테다. 성전의 모습과 복음서의 내용들, 그리고 예루살렘에 대한 생생한 묘사 등에 감탄을 내질렀다. 한국의 역사를 다룬 것도 아니고, 먼 나라의 역사를 이토록 내 나라의 역사처럼 서술하는 작가라니, 새삼 이정명 작가가 존경스럽다. 심지어는 책을 읽다가 다른 원작이 있는 번역본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다른 이들의 책리뷰를 읽다 보면, '작가의 취재력이 한참 부족한 것 같다'는 의견들을 종종 목격하곤 한다. 작가로서도 최선을 다했겠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일들을 실제로 겪어보았다거나 혹은 그 업무에 실제로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책 속의 내용이 모자라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 얘기들을 볼 때마다 마음에 와닿지를 않았다.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밤의 양들>을 읽고 보니 작가에게 취재, 자료조사에 대한 집요한 면이 필요하고, 그 중요성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 소설은 실제로 그런 시대가 존재했던 것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이 먼 시간대에 일어난 일들을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진실에 관한 공방들은 현대에 사는 나에게도 의미가 깊다. '마티아스'와 '테오필로스'는 그들의 노력 덕에 결국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낸다. 하지만 예루살렘을 위해 큰 사건을 일으키지 않고 적절한 선에서 넘어가려는 성전수비대의 대장 '조나단'과 자신의 권력을 향한 야망을 실현시키는 데만 급급한 총독 '빌라도'가 진실이 무엇인지는 괘념치 않은 채,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동한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예수의 이야기지만, 작가는 예수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편의대로 진실을 조작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에게 묻는다.

권력에게 이용당해 시궁창 같은 삶을 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입을" 다물어야만 했던 어린 '마티아스'를 떠올리면 무력함을 느낀다. '조나단'이 '마티아스'를 자신의 편의대로 움직인 건 '마티아스'가 "부모가 없기 때문에",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나이가 어려서", "아니면 그 모든 이유 때문"이었다. 결국 보상받지도 못할 부려먹음에 질질 끌려다니는 '마티아스'가 지나치게 순진하다 싶으면서도, 하지만 그에게는 살려면 그 방법 뿐이었다는 점을 인지하면서 씁쓸함을 느낀다. 어린 시절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어린 소년에게 "밀정이 되고 싶다고? 정신 차려. 그건 사는 게 아니라 짐승이 되어 미쳐 날뛰는 거야. 그렇게 되고 싶어?" 라고 말하며 질책하면서도, 결국 그 소년에게 밀정의 일을 부분적으로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마티아스'의 모습을 보면서, 결국 어린 소년도 그 길을 걷게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일었다. 가난도, 권력에게 이용을 당하는 일도 스스로가 겪어 봤기에 다음 세대는 그 시간을 통과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그것은 끝끝내 가까운 사람들에게로, 가장 많이는 자신의 자식에게로 번져나가고야 마는 것이다.

"축축한 감옥의 냉기에 휩싸여" "사라져 버린 자신의 꿈을 생각"하던 '마티아스'는 "문득 그것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기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씁쓸하게 깨"닫는다. 더는 떠도는 아이들이 꿈을 꿀 권리를 잃지 않고, 권력에게서 착취 당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싶다.


그는 마티아스가 아는 사실, 알기 때문에 믿을 수 밖에 없는 사실을 무시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진실이 그에겐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진실이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가공되고 있다는 생각에 마티아스의 뱃속에서 무언가가 단단하게 뭉쳐졌다. 그것이 분노인지 절망인지 마티아스는 알 수 없었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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