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윤성희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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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책 리뷰를 올릴 때, 책 이름 앞에 나름의 제목을 정해 적어 넣는 편이지만, 이번에 읽은 작품은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들의 모음집이기 때문에 하나로 모을만한 제목을 발견해내지 못했다. 작품마다 각 개성이 뚜렷하기 때문에 리뷰도 각각의 작품마다 따로 해야겠다. 몇몇 작품은 건너뛰기도 할 것이다. 어떤 코멘트를 달아야 할지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의 첫 스타트를 끊은 작가 ‘윤성희‘의 <어느 밤>이 이번 대상 수상작이다. 하나의 이야기에서 무언가가 탁 걸리면 그 얘기로 빠졌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곤 하는 구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샛길로 샐 때 무척 자연스럽게 넘어가서 신나게 듣고 있다 보면 또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말발이 좋은 친구가 있듯이 ‘윤성희‘ 작가는 필력이 대단한 작가임을 알 수 있었다. 대화가 거의 없다시피 한데도 글이 술술 넘어간다.
아파트 놀이터에 놓여 있던 킥보드를 훔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전에는 본 적 없던 모습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서 짜증을 느끼던 할머니가 그 훔친 킥보드를 타고 자유를 누리는 모습이 어쩐지 귀엽고 신박하다고 생각했다. 힘차게 발을 구르며 킥보드를 타는 건 어린아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한동안 신나게 ‘킥보드‘를 타고 다니던 할머니가 결국 사람이 잘 드나들지 않는 곳에서 넘어지고야 만다. 초조함을 느끼던 찰나에 집으로 돌아가기엔 눈치가 보여 주변을 뱅뱅 맴돌고 있던 취준생 청년이 나타나 그녀를 돕는다. 그녀가 방황하던 청년에게 해주던 ‘얼음땡‘ 놀이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청년도 지금 ‘얼음‘의 시기를 겪는 것이니 누군가 ‘땡‘하고 외쳐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 부분에서 순간적으로 너무 울컥해서 엉엉 울었다. 세상에서 듣도 보도 못한 위로의 말이었다.
이토록 다정한 할머니에게 ‘킥보드‘는 ‘얼음‘처럼 차가운 세상에서 유일한 위로의 수단이었다. 남편은 점점 미운 짓만 하고, 미국에 나간 딸은 집에도 잘 찾아오지 않는다. ‘얼음‘같은 세상은 청년에게도 적용된다. 청년도 사회에서 자신이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집에서도 외롭기만 하다. ‘집‘이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안정적이고 따뜻한 장소로 가기 위해서는 ‘땡‘이라고 외쳐주는 이가 나타나야 하는데, 선뜻 그렇게 해줄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 그래서 할머니와 청년이 서로에게 ‘땡‘이라는 말을 건네는 장면은 독자의 마음을 녹여 또 한 번 감성을 자극한다. ‘킥보드‘라는 우연의 산물로 인해 뜻하지 않게 이어진 ‘할머니‘와 ‘청년‘의 인연은 마치 기적처럼 느껴졌다.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다른 작품들은 몰라도 <어느 밤>은 반드시 읽었으면 좋겠다. ‘대상 수상작‘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충분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서술 방식과 그 안에 담긴 작은 위로가 특징이다.

‘권여선‘ 작가의 <하늘 높이 아름답게>에서는 ‘마리아‘라는 세례명을 가진 여성이 죽은 후에 벌어진 대화가 주 소재이다. 죽은 ‘마리아‘와 연관 있는 에피소드를 쏟아내는 성당 사람들이 왠지 꺼려지지만, 그들로 인해 독자들은 ‘마리아‘라는 인물을 눈앞에 완성해낼 수 있다. 한편 ‘마리아‘의 죽음이라는 소식을 뒤늦게 접한 ‘베르타‘가 자신이 고귀하지 않다며 배척하던 여성들의 대화에 끼어들게 된다. 그렇게 진절머리가 난다고 여기던 여성들과 별다를 바 없이 스스로도 고귀하지 않았음을 ‘베르타‘는 대화를 통해 깨닫게 된다. ‘파독 간호사‘로 독일까지 건너갔지만 정착하지 못하고 쫓겨나고, 국내에 돌아와서도 이것저것 팔아가며 생계를 유지해야만 했던 선대 여성들의 인생사가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집약되어 드러난다. 발전하는 국가의 미래만 조망하고, 조용히 묻어두려 했던 실패를 작가가 고스란히 끄집어낸다. 독일에서 아들을 낳았지만 여력이 되지 않아 입양을 보냈고, ‘마리아‘는 ‘몸‘으로 때워 갚으려고 한다. ‘파독‘ 되었을 때 그대로 독일에 정착할 수 있었다면 생겨나지 않았을 문제다. 누군가의 삶이 국가라는 거대한 힘 때문에 이용되기만 하고, 그런 그녀를 보살피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성당 여자들처럼 입방아만 찧어대고, 공허함만 남긴 채 흩어져 갔다. 우리는 이 작품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황정은‘작가의 <파묘>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묘를 더 이상 돌볼 수 없어 아예 파내기로 결정하면서 벌어지는 스토리다. 묘 하나를 위해 갖은 고생을 마다않는 ‘이순일‘ 씨를 가족들 중에 ‘한세진‘ 씨만 이해한다. 사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되어 처음에는 ‘이순일‘과 ‘한세진‘이 모녀 사이라는 점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만큼 무심하게 쓰였고, 행간 사이에 어떤 다정함도 묻어나질 않았다.
어머니 ‘이순일‘씨가 성묘를 하러 갈 때마다 다른 형제들은 따라오지도 않고, 오히려 ‘한세진‘ 씨가 효도를 하는 거라며 추켜세운다. 하지만 ‘한세진‘ 씨의 생각은 좀 달랐다. ˝할아버지한테 이제 인사하라고, 마지막으로 인사하라고 권하는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아팠을 거라고, 언제나 다만 그거였다고(174p)˝. 이렇듯 그녀는 그저 엄마가 자신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해했기 때문에 동행했던 것이다. 여기서 첫 번째 작품인 <어느 밤>에서 언급했던 ‘얼음‘처럼 차가운 세상이 보였고, ‘이순일‘ 씨에게 ‘땡‘을 외쳐주는 유일한 사람이 딸 ‘한세진‘씨라고 생각되었다.
또한 <파묘>에서 엄마 ‘이순일‘씨가 집안 살림으로 갖은 고생을 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심지어 ‘이순일‘ 씨의 남편은 처갓집 묘는 벌초도 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파묘>에서뿐만이 아니라, <어느 밤>에서도 술에 취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가 있었고, <하늘 높이 아름답게>에서 학교에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딸들이 등장한다. 이번 ‘김승옥문학상‘ 수상작들이 모두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기 때문에 이렇게 또 한 번 부당함을 겪었던 여성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어이없는 장면들을 번번이 목격하면서도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허탈함에 말을 이을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김금희‘ 작가의 작품 <마지막 이기성>도 <어느 밤> 다음으로 좋았다. 특히 곁에 종이만 있었다면 필사하고 싶은 문장들이 넘쳐났다. ‘김금희‘ 작가의 작품에는 무릎을 탁 치게 만들고, 종이에 베껴 두었다가 다시금 꺼내보고 싶은 문장들이 널려 있다. 이전에 읽었던 <오직 한 사람의 차지>에서도 똑같은 상황을 세심하면서도 위트 있게 표현해내는 능력에 놀라곤 했다.
이 작품에는 조국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느끼는 재일 한국인 ‘유키코‘와 학업을 위해 자발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이기성‘이 등장한다. <마지막 이기성>에서 ‘유키코‘와 ‘이기성‘은 한 사건을 계기로 한국인을 차별하는 일본 사회에 대항해 맞서 싸우기도 한다. ‘재일 한국인‘과 ‘일본에 잠시 머무르는 한국인‘은 다르다고 언급하면서 투쟁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유키코‘라는 캐릭터가 가장 흥미로웠다. 계속해서 일본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에 크게 싸움을 벌이기를 원하지는 않지만, 종국에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부당한 일들에 항의는 해야 한다 싶은 ‘유키코‘의 심리를 ‘이기성‘은 아니었더라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일본에 머무르는‘과 ‘한국인‘이라는 두 개의 자아로부터 오는 두 개의 이유와 그것들의 충돌.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고, 조국으로부터 ‘유실‘되었다고 느끼는 ‘유키코‘의 인생이 다른 ‘재ㅁ한국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근본으로부터 오는 불안함은 겪어본 적이 없는 종류의 것이기에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을 내뱉기가 벅차다.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면 왠지 읽어보지 않았을 법한 작품들도 있었다. 그게 ‘수상작품집‘이 가진 매력인 것 같다. 새로이 좋아하게 될 작가를 발견하고, 평소에 내가 읽었던 방향과는 조금 다른 작품들을 기꺼이 만나게 되는 일. 그것이 ‘수상작품집‘을 통해서 이뤄낼 수 있는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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