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밤의 양들 - 전2권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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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양들>은 소설 <뿌리 깊은 나무>와 <바람의 화원>로 잘 알려져 있는 작가 이정명의 장편소설이다. 전작들이 드라마로도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터라, 이번 작품도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역시 역사 위에 소설적인 면모를 잘 가미하는 작가답게, 이번 작품도 대성공이다. 책은 총 2권으로 이루어져 있고, 500여페이지에 달한다. 작가의 뛰어난 문체와 스토리를 이끄는 방식 덕분에 책을 읽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특히 긴장감 넘치는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분명 이 작품도 마음에 들어할 것이다.

글 제목에도 이미 언급했다시피, 예수가 죽기 전 일주일동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결말이 예측 가능하다는 점을 싫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는 복음서 내용을 제외하고 허구의 이야기가 첨가 되었기 때문에, 다 알고 있는 결말이라면서 책 읽기를 꺼릴 필요는 없다. 나도 중고등학교 때 기독교 학교에 다녔고, 그 종교를 믿진 않더라도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의 이야기는 숱하게 들었다. 어릴 때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 툭 하면 보던 영상 속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이면에 담겨진 추리극이 무척 흥미로웠다. 여기까지만 보고 자야지, 해놓고도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하나씩 밝혀지는 단서들과 증거들이, 그리고 '마티아스'와 '테오필로스'라는 주인공들의 지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 사람을 들뜨게 한다. 어릴 때도 '명탐정 코난' 같은 추리 애니메이션을 즐겨보고, 고등학교 시절에도 영국 방송국 BBC에서 상영되었던 '셜록홈즈'에 푹빠져 3회짜리 에피소드를 대사를 외울 때까지 보던 나에게 <밤의 양들>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종교의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에, 누군가의 반감을 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종교적 감정을 배제하고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이 책은 '테오필로스'라는 현인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시작된다. 과거에 예수가 예루살렘에 왔던 일주일 간의 스토리다.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온 그 기간동안, 살인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살인자를 찾아내기 위해서 '마티아스'라는 살인자와 '테오필로스'라는 현인이 협력하며 증거를 쫓는다. 그들이 살인 사건을 추적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는 것이 다르고, 나머지 예수가 헛소리꾼으로 몰리다가 십자가형을 받게 되는 것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이야기와 결이 같다.

책을 읽는 내내 굉장히 놀라웠는데, 이정명 작가가 얼마나 많은 연구를 한 끝에 이 책을 만들었을지가 분명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집필 기간이 12년이나 걸렸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 적지 않은 사람이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고 있고, 남들이 뻔하게 아는 이야기 특히 종교적인 부분을 건드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테다. 성전의 모습과 복음서의 내용들, 그리고 예루살렘에 대한 생생한 묘사 등에 감탄을 내질렀다. 한국의 역사를 다룬 것도 아니고, 먼 나라의 역사를 이토록 내 나라의 역사처럼 서술하는 작가라니, 새삼 이정명 작가가 존경스럽다. 심지어는 책을 읽다가 다른 원작이 있는 번역본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다른 이들의 책리뷰를 읽다 보면, '작가의 취재력이 한참 부족한 것 같다'는 의견들을 종종 목격하곤 한다. 작가로서도 최선을 다했겠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일들을 실제로 겪어보았다거나 혹은 그 업무에 실제로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책 속의 내용이 모자라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 얘기들을 볼 때마다 마음에 와닿지를 않았다.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밤의 양들>을 읽고 보니 작가에게 취재, 자료조사에 대한 집요한 면이 필요하고, 그 중요성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 소설은 실제로 그런 시대가 존재했던 것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이 먼 시간대에 일어난 일들을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진실에 관한 공방들은 현대에 사는 나에게도 의미가 깊다. '마티아스'와 '테오필로스'는 그들의 노력 덕에 결국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낸다. 하지만 예루살렘을 위해 큰 사건을 일으키지 않고 적절한 선에서 넘어가려는 성전수비대의 대장 '조나단'과 자신의 권력을 향한 야망을 실현시키는 데만 급급한 총독 '빌라도'가 진실이 무엇인지는 괘념치 않은 채,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동한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예수의 이야기지만, 작가는 예수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편의대로 진실을 조작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에게 묻는다.

권력에게 이용당해 시궁창 같은 삶을 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입을" 다물어야만 했던 어린 '마티아스'를 떠올리면 무력함을 느낀다. '조나단'이 '마티아스'를 자신의 편의대로 움직인 건 '마티아스'가 "부모가 없기 때문에",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나이가 어려서", "아니면 그 모든 이유 때문"이었다. 결국 보상받지도 못할 부려먹음에 질질 끌려다니는 '마티아스'가 지나치게 순진하다 싶으면서도, 하지만 그에게는 살려면 그 방법 뿐이었다는 점을 인지하면서 씁쓸함을 느낀다. 어린 시절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어린 소년에게 "밀정이 되고 싶다고? 정신 차려. 그건 사는 게 아니라 짐승이 되어 미쳐 날뛰는 거야. 그렇게 되고 싶어?" 라고 말하며 질책하면서도, 결국 그 소년에게 밀정의 일을 부분적으로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마티아스'의 모습을 보면서, 결국 어린 소년도 그 길을 걷게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일었다. 가난도, 권력에게 이용을 당하는 일도 스스로가 겪어 봤기에 다음 세대는 그 시간을 통과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그것은 끝끝내 가까운 사람들에게로, 가장 많이는 자신의 자식에게로 번져나가고야 마는 것이다.

"축축한 감옥의 냉기에 휩싸여" "사라져 버린 자신의 꿈을 생각"하던 '마티아스'는 "문득 그것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기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씁쓸하게 깨"닫는다. 더는 떠도는 아이들이 꿈을 꿀 권리를 잃지 않고, 권력에게서 착취 당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싶다.


그는 마티아스가 아는 사실, 알기 때문에 믿을 수 밖에 없는 사실을 무시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진실이 그에겐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진실이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가공되고 있다는 생각에 마티아스의 뱃속에서 무언가가 단단하게 뭉쳐졌다. 그것이 분노인지 절망인지 마티아스는 알 수 없었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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