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먼드 카버 - 삶의 세밀화를 그린 아메리칸 체호프 클래식 클라우드 13
고영범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머릿속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에도 고기는 강을 향해 올라오고 있다./이봐, 나는 살 거야, 그리고 행복할거야./어떤 결정을 내리든 간에.

논쟁, 울트라마린, 111쪽

11월부터 ‘클래식 클라우드 인생 여행단‘에 참여하게 되었다. ‘클래식 클라우드(이하 클클)‘ 시리즈는 박식한 전문가들의 해설을 통해 예술계 거장들의 삶을 만나볼 수 있는 시리즈다. 현재 내가 읽은 <레이먼드 카버>를 포함하여, ‘클림트‘, ‘헤밍웨이‘, ‘푸치니‘ 등 다양한 거장들의 책이 13권까지 나온 상태다. 앞으로 또 어떤 예술가들의 삶을 엿보고, 그들의 작품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클림트‘의 작품들을 굉장히 좋아해서 이미 출간된 <클림트>는 꼭 읽어보고 싶다.

일단 만듦새부터 살펴보면, 책 표지 디자인이 무척 감각적이다. 표지 디자인 그림은 ‘레이먼드 카버‘가 직접 알코올의존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던 친구 ‘알프레도 아레구인‘이 그린 것이다. ‘카버‘의 초상화와 연어들을 그려 넣은 것인데, 생전에 낚시를 즐겼다는 저자와 잘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그림이 독자의 마음에 드는지와 상관없이, 친구를 위해 제작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애틋함이 느껴진다. 저자 소개도 적절하게 쓰여 있다. ‘레이먼드 카버‘의 삶과 인생이 요약되어 있는데, 사실 저자 소개만 읽어도 책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어쨌거나, 이번 생에서 원하던 걸/ 얻긴 했나?/ 그랬지./ 그게 뭐였지?/ 내가 사랑받은 인간이었다고 스스로를 일컫는 것, 내가/ 이 지상에서 사랑받았다고 느끼는 것.

말엽의 단편, 폭포로 가는 새로운 길, 122쪽

책 <레이먼드 카버 X 고영범>은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인생사와 작품 세계를 ‘고영범‘ 전 교수가 설명해 놓은 것이다. ‘카버‘의 작품들도 적절히 수록되어 있어 흥미를 배가 시키고,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고심하고 연구를 거듭했는지가 느껴진다. ‘레이먼드 카버‘가 살았던 지역들의 당시 상황까지 설명을 더해 ‘카버‘를 이해하는 데 더욱 도움이 된다.
‘레이먼드 카버‘의 인생은 ‘가난‘이라는 한 가지 키워드로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금주를 하고, <대성당>이라는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두기 전까지, 그는 빈곤했고, 가족들을 데리고 이사도 자주 다녀야 했다. 사실 그의 가난에는 그 스스로의 책임도 존재한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들어와도 알코올에 의존하느라 좋은 기회를 다 걷어차버리고, 고질적인 의심과 불안증 때문에 잘나가는 아내에게 ‘대학‘과 ‘가정‘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라고 강요하기도 한다. 특히 아내 ‘메리앤‘을 괴롭히는 ‘카버‘를 보면서 분노가 들끓었다. 총명한 여성에게 공부할 기회를 앗아가다니. 내가 그들의 가정사를 전부 알 수는 없지만, 제발 ‘메리앤‘이 ‘가정‘을 선택하고 주저앉지 않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르겠다. 결국엔 남편과 아이들에게 모든 걸 양보했지만.

<레이먼드 카버>에서 편집자와 작가와의 관계에 대한 논쟁도 수록되어 있어 ‘출판‘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반가웠다. ‘레이먼드 카버‘의 성공 뒤에는 편집자인 ‘고든 리시‘가 있었다. 애초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고든 리시‘가 ‘카버‘의 원고를 40%나 들어내고 몇 작품은 결말까지 아예 바꿔버렸다. 하지만 이 작품은 세상에 나온 후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이후 ‘고든 리시‘에 의해 ‘카버‘의 작품이 크게 수정되었음이 만 천하에 공개되면서, 여러 논쟁이 일어났다. 편집자가 작품에 얼마나 관여하는지와 상관없이 작품만 괜찮아서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다,라는 입장도 있었다. ‘레이먼드 카버‘도 이쪽에 서있었고, 살기 위해 글을 써야 했기 때문에 ‘고든 리시‘를 참아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론은 ‘리시‘의 행동이 과하다고 평가했다.
내가 ‘출판‘에 가지고 있는 건 작은 관심일 뿐이고, 그 업종에 종사하고 있지 않으므로 깊은 의견을 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내가 보기에도 ‘고든 리시‘라는 편집자의 행동이 지나쳤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행위도 결국 사람들의 눈에 띄어야 하는 일이고, 그를 위해 작가나 편집자 등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레이먼드 카버‘가 ‘고든 리시‘를 참아주었던 것뿐이니, 작가로서도 원치 않는 일이었고, ‘카버‘의 작품을 그대로 내보낸다고 해서 그것도 사랑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일인데, ‘리시‘가 자기의 역량만 믿고 그런 행동을 펼쳤다는 건 거만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캡틴 픽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당시에 편집자로서 뛰어난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내겐 ‘고든 리시‘의 말만 정답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책을 다 읽고 나니까, ‘레이먼드 카버‘가 안정적이던 시절에 써 내려간 <대성당>이라는 작품에 호기심이 동한다. 가까운 시일 내에 구매해서 읽어볼 작정이다. 아, 그리고 희한하게도 ‘안톤 체호프‘라는 작가에 빠져들게 되었다. ‘카버‘가 ‘체호프‘와 닮은 구석이 여러 군데 있어서 ‘체호프‘의 이름이 숱하게 등장한다. 그런데 읽는 내내 자꾸 마주치다 보니까 그의 작품 세계도 궁금해졌다. 이름만 들어보고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이 작가의 작품도 읽어볼 계기가 만들어졌다.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는 늘 생각하지만, 사실 관심을 가지고 책을 빼내들기까지가 시간이 좀 걸리지 않나. 그런데 이렇게 작가의 인생사와 작품 세계를 읽어 내려가다 보니 자연스레 작품에도 친밀감이 형성된다. ‘클래식 클라우드‘ 다음 시리즈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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