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욕망의 법칙 인간 법칙 3부작
로버트 그린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8개의 법칙과 사례들은 권력에 대한 우리의 욕망을 실현시켜 줄 완벽한 설명서다. 더 높은 곳을 향해 가지 못할 핑계가 사라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0년 초, 작가 윤이형은 절필을 선언했다. 이상문학상의 저작권 계약 등을 문제 삼으면서 자신이 받은 상을 내놓겠다는 말까지 했다. 김금희, 최은영 등의 작가들은 이에 동참해 수상을 거부했고, 애독자들은 sns로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입장 표명글을 퍼다 나르기 시작했다. 2020년은 문학계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시기였지만, 작가 윤이형의 행보만큼 생생히 기억나는 순간도 없을 듯하다. 작가가 충격적인 선언을 했던 그 시기에 가장 많이 언급되었던 작품이 바로 『붕대 감기』이다. 물론 직전에 발표된 최근작이었던 탓도 있었지만, 거기엔 어떤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이 자꾸만 났다. 그리고 오늘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직감이 하나의 확신으로 변했다. 페미니즘과 문학으로 그 대상은 다르지만, 동지들에 대한 애정, 그리고 그들과 연대하고자 하는 마음이 작가 윤이형의 작품과 실제적 행위를 연결한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말은 나이가 들수록 쉽게 꺼내기가 힘들다. 하지만 『붕대 감기』를 읽고 보니 작가의 과거 행보가 크게 놀랍지 않았다.


『붕대 감기』에는 '진경'과 '세연'을 중심으로 다양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여성이라는 것 이외에 서로 닮은 점을 찾기가 어렵다. 나이와 직업적인 면에서의 차이 외에도 그녀들의 사고방식은 천차만별이다. 작품은 여러 방향에서 흘러들어온 생각들이 중첩되면서 '페미니즘'의 미래를 재설정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종종 어긋나면서도 대화를 통해 '자매애'로 나아가는 『붕대 감기』 속 여성들은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을 묻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일의 뭉클함을 전달한다. 이 책은 단순히 '페미니즘'에 관한 소설이 아니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사이의 경계를 지우고, 유일무이한 다정한 공동체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꿈 그 자체에 가깝다. 무력하지만, 우리에게는 더없이 소중하고 희망찬 꿈 말이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넘어서서 가부장제의 억압하에 있는 사람들을 해방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여성만을 위한 운동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만큼 페미니즘은 일견 모든 여성의 지지를 받을 듯 보이지만, 실은 정반대다. 이에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고, 페미니스트라고 해도 수단과 방법에 있어서 개개인마다 큰 견해 차이를 보인다. 이런 차이를 좁히지 못해 서로 반목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페미니즘은 내부에서의 분열이 치명타를 가할 수도 있다. 이미 외부로부터 받고 있는 자극이 무시할 정도의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서로를 미워하지 않고, '동지'로서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것임을 『붕대 감기』는 피력하고 있다. 


엄마는 네가 약한 여자를, 너만큼 당당하지 못한 여자를, 외로움을 자주 느끼는 여자를, 겁이 많고 감정이 풍부해서 자주 우는 여자를,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를, 결점이 많고 가끔씩 잘못된 선택을 하는 여자를, 그저 평범한 여자를, 그런 이유들로 인해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68쪽)

또한, 『붕대 감기』는 여성주의라는 거대한 흐름에 편입되지 않은 사람들을 압박하는 일도 경계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이에 관해서는 김 모 아나운서의 일화가 떠오른다. 해당 아나운서는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면서 '여성으로서의 권력'을 강조했다. 그녀의 발언에 엄청난 논란이 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아나운서로서도,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여성들로서도 모든 일에는 여러 사고방식이 존재하고, 분명하게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듯했다. '여성다움'과 '여성으로서의 권력'에는 하나의 완벽한 기준이 존재할 수 없다. 게다가 더 평등한 삶으로의 도약을 위해 시작된 페미니즘이 극심한 차별과 배제의 온상이 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닌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서와 마찬가지로, 페미니즘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도 여러 기준점이 필요하며, 더 많은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딘가에 속하기 위해서 일부러 악의를 품으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어.(44쪽)

최근 들어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고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 자주 생각을 한다. 내가 하는 노력들과는 별개로 불공평한 세상이라는 점을 깨달을 만한 나이이기 훨씬 이전부터 너무 많은 사람들을 불필요하게 미워하면서 살아왔다. 잔인하게도 악의는 불평등을 조장한 사람들이 아니라, 동일한 선상에 서있는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길을 잃은 악의는 불신과 분열만을 초래했고, 나는 동지들을 더러 잃어야만 했다. 앞으로의 페미니즘, 또 삶에 있어서는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 그로 인해 치유되는 장면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치 붕대를 감아올리는 일처럼 말이다.

'진경'이 운전대를 넘겨준 젊은 사람들의 축에 속해 있는 운전수로서 나는 승객 하나하나를 신경 써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 그녀가 운전수들에게 기대하는 일은 세대를 뛰어넘은 '자매애'이다. 내가 몰고 있는 이 버스가 여성뿐만이 아니라 가부장제하에서 억압받고 있는 모든 인권을 보호하고, 구제해내겠다는 본래의 목적지를 향해 올바르게 나아가기를 바라고 싶다.




접힌 부분 펼치기 ▼

 

여기에 접힐 내용을 입력해주세요.

 

펼친 부분 접기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 오늘의 젊은 작가 27
은모든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쨌거나 우리 쌍둥이들한테도 그렇게 알려 줄 수는 있다는 거지? 니모부터 꽃 한 송이까지 자연에도 공생이 넘쳐 난다고. 그게 막 피부로 느껴지지는 않을지 몰라도."

"얘기해 주면서 같이 더 많이 찾아봐. 그럼 피부로도 느껴질지 모르잖아."(152쪽)

동생과 엄마가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앞질러 걸으면, 나는 언제나 뒤처져서 그들을 빤히 바라보는 쪽이었다. 그런 나에게서 사람들은 줄곧 '쓸쓸함'이나 '외로움'과 같은 단어들을 떠올렸다. 그러나 도리어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 편이 나를 훨씬 편하게 만들었다. 예민한 성격으로 인해 상대의 변화에 따라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했던 탓이다. 그랬기 때문에 소설의 화자인 '경진'에게 몰입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재미를 찾기보다는 빨리 끝내고 혼자만의 휴식을 즐기는 일에 급급했고, 상대가 주저할 때는 굳이 물어보려 하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는 과정 속에서 없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때도 있고, 괜히 상처를 입게 되는 일도 잦았으므로, 대화를 향한 나의 오래된 적대는 옳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눈다는 것, 특히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이 한 사람을, 때로는 나 자신을 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 밤에는 내게 이야기를 할듯 말듯 망설이던 얼굴들이 떠오른다. 툭 터놓고 말하고 나면 편안해질 수 있었을 누군가의 절박함을 망쳐놓지는 않았을까. 또 대화를 통해 사람들 속에 섞여드는 즐거움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것은 아닐까. 그런 후회가 두서없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경진'은 간만의 휴가에 질릴 때까지 침대에 누워있고자 하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휴가가 시작되자마자 그녀를 기다렸다는 듯이 '경진'을 향해 이야기를 쏟아 내기 시작한다. 이전의 '경진'은 상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청자'의 입장보다는 '선생님'으로서의 자아가 더 강해 보였다. 상대의 언어는 그녀가 교정하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해미' 또한 '경진'에게 가로막혀 자신의 속마음을 다 털어놓지 못한 채로 모습을 감춘다. 사실 '해미'에게 있어서 '경진'은 선생님이나 어른이기 이전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대화 상대였다. 그런 사람마저 자신에게 이야기할 틈을 주지 않으니 '해미'로서는 어지간히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만나는 사람마다 '경진'에게 내밀한 사정을 털어놓는 기묘한 상황은 때로 '해미'의 복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해미'와 끝내 마무리하지 못한 대화가 소설의 끝까지 '경진'을 놓아주지 않는다. '경진'은 '해미'와의 일로 대화에 대한 한 가지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니까 대화의 기회는 영원히 주어지는 종류의 것이 아니며, 평소처럼 흘려보낸 이야기가 누군가와의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 '해미'의 공백이 길어질수록 두려움은 증폭되고 '경진'의 머릿속에는 이제 두 번 다시 '해미'를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경진'은 서로 다른 '해미'의 이야기들로 자연스레 빨려 들어간다. 기이할 정도로 모든 사람들이 '경진'에게 갑작스레 다가와 각각의 은밀한 사정들을 털어놓고 말았던 것은 '해미'와의 일에 대한 후회가 그녀를 대화에 긍정적으로 호응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경진'이 지금처럼 대화에 거부반응을 일으키게 된 데에는 엄마의 질문도 한몫했을 것이다. "언제까지 그러고 살래(77쪽)"라는 엄마의 반복적인 물음은 '경진'을 지치게 했고, '경진'은 자연스레 대화로부터 멀어졌다. 처음에는 '엄마'뿐이었겠지만, 차츰 그 범위가 늘어났을 것이 틀림없다. '엄마'와의 대화로 인한 상처는 또 한 번의 대화로 치유된다. 시간이 흘러 다시 마주한 엄마의 이야기는 오해를 해소하고, 더 나아가 '경진'이 활발한 대화를 통해 다시 세상으로 녹아들도록 부추긴다. '경진'과 엄마의 이야기는 경청을 기반으로 한 대화가 가진 위안의 힘을 실감하게 한다. 대화 행위가 주는 숱한 상처들을 뛰어넘을 만큼의 희망참을 작가 '은모든'은 이야기하고 있다.


햇살이 드리운 거리를 느긋하게 걷고

얼굴을 마주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작가의 말')

책을 덮은 지금에도 '해미'의 울먹거리는 얼굴이 눈에 선하다. 단지 몇 마디를 나눠줄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아이가 드디어 그런 상대를 발견했을 때에 느껴지던 어떤 안도가 나를 울컥하게 만든다. '경진'과 그녀의 친구 '웅이'처럼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들을 해내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세우면서 우리는 짧은 시간의 대화가 우리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에게 주는 사소한 행복과 위로를 너무 오랫동안 등한시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더 많이 듣고 또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는 다짐은 금세 자취를 감출 것이다. 그리고 다른 모든 일처럼 아주 뒤늦게서야 응당했어야만 하는 일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도 내일 하루 정도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그 사람의 하루가 좀 더 충만해지는 데 일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세상의 그 누구도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배신감에 휩싸여 있을 어떤 이름에게.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


사람이 다 다르니까요. 결혼이든 아이든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확고하게 그 반대인 사람도 있는 거라니까요 엄마. 세상에 저나 은주 같은 사람도 있는 게 자연스러운 거라고요. - P1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쓰기에 대하여 - 작가가 된다는 것에 관한 여섯 번의 강의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박설영 옮김 / 프시케의숲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 신작의 저자는 무려 '마가렛 애트우드'이다. 그녀는 『시녀 이야기』, 『그레이스』, 『눈먼 암살자』, 그리고 『증언들』 등의 작품으로 국내에서도 꽤 사랑받고 있는 작가다. 그녀의 작품들은 소설이지만 또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지 않은 상태로 독자들의 마음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게다가 적지 않은 양에도 불구하고 가독성이 매우 좋아 술술 쉽게 읽힌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녀가 '작가'와 '글쓰기'에 관한 글을 내놓았다고 하니 어떻게 읽지 않을 수 있을까. 높은 기대치와 함께 받아든 『글쓰기에 대하여』는 어렵지 않게 독자인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예술적인 글쓰기와 작가라는 직업, 또 독자로서의 태도에 관해 좀 더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도록 돕는다. '마가렛 애트우드'의 강의는 풍부한 예시와 함께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단테의 『신곡』이나 조지 오웰의 『1984』 등의 작품과 함께 '작가', '독자', 그리고 '글쓰기'라는 주제를 가로지른다. 이는 독자들이 한층 쉽게 '마가렛 애트우드'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모험을 함께 할 수 있도록 부추긴다.

과정이나 직업으로서의 글쓰기

'마가렛 애트우드'는 『글쓰기에 대하여』에서 '글쓰기'를 환상이 아니라 현실적인 직업 가운데 하나로 대한다. 작가나 글쓰기에 관한 극단적인 신화를 배제하고 보니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작가들의 진실된 모습이 드러난다. 처음으로 마주한 작가의 민낯은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예술보다는 물질적인 가치에 좀 더 얽매여 있다. 작가 본인과는 전혀 동떨어진 자아로부터 작품들이 탄생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작품을 만들어낸 작가와는 만날 수 없다고 '마가렛 애트우드'는 주장한다. 영화나 드라마 밖에서 만난 배우들이 이전에 맡았던 역할과는 달리 굉장히 수줍음을 많이 타는 내성적인 사람일 때처럼 말이다. 작품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영영 그때 그곳의 배우나 작가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작가는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자아와 함께 어둠 속으로 파고들어 이야기를 건져 올린다. 어둠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위해서 작가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과거에 지나치게 얽매여 자아를 잃어버릴 수도 있는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은 여전히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놓지 못한다. 장애물을 넘어서려는 작가들의 투쟁이 계속되는 이유는 이 책의 서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작가들은 "그 속에 들어가서 운이 좋으면 어둠을 밝히고 빛 속으로 무엇인가를 가지고 나오리라(25쪽)"는 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이런 연유로 끊임없이 어둠을 추구하고 그곳에서 들은 이야기들을 돌에 새긴다. 결국엔 작가 자신은 모든 것을 잃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올바르고 이상적인 독자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기억해 주리라고 믿으므로 그들은 여행을 지속한다. 올바른 독자들은 어둠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들의 사회적 의미를 판단하고, 또 실질적으로 사회적 변화들을 이끌어 낼 책무를 부여받는다. '마가렛 애트우드'는 작품을 판단하는 일은 오롯이 독자에게 달려있다고 선언하는데, 나의 수동적인 태도들을 떠올려 본다면 절망스럽다.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59쪽)" 이런 질문들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인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야 할 일이 아닐까.


여성 작가들은 낭만주의 시대에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으며,

 '천재'라는 메달을 별로 걸어본 적도 없습니다. (151쪽)


작가 '마가렛 애트우드'의 글에는 언제나 여성들의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글쓰기에 대하여』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이번 작품에서도 여성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서술하는 일을 잊지 않는다. 과거 여성 작가들은 놀라운 글쓰기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칭찬을 받아본 일이 별로 없었다. 이 때문에 평판으로 인해 얻게 되는 고질적인 자기혐오와도 거리가 멀었다. 독자가 있어야만 글이 힘을 얻는다는 사실을 돌이켜 본다면 여성 작가들은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는 데만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음을 알 수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과거의 여성 작가들이 그렇게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부정당한 일 때문에 오늘날의 여성 작가들은 고전 여성 작가들의 명성에 압박을 느끼지 않고 있다고 '마가렛 애트우드'는 말한다. 그렇다면 여성 작가들이 주목을 받고 있는 현재 이후로 여성의 글쓰기 역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20세기의 '마가렛 애트우드'를 윗세대로 두고 있는 이상 글을 쓰면서 그녀의 그림자를 떨쳐 내는 일은 쉽지 않을 듯하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버려진 사랑 나쁜 사랑 3부작 2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월의 어느 날 오후, 점심 식사를 마친 남편은 나와 헤어지고 싶다고 했다.(이 책의 첫 문장)


소설에는 언제나 끝이 있다. 그리고 그런 특징이 『버려진 사랑』에서만큼 다행스럽게 느껴졌던 적은 없었다고 확신한다. 1권 『성가신 사랑』에서 딸인 '델리아'가 어머니인 '아말리아'에게 느끼는 집착적인 욕망을 그려냈던 작가 '엘레나 페란테'만의 격정적인 묘사력이 2권 『버려진 사랑』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누군가에게 버려지고 또 사랑받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한 사람이 이만큼 처절하게 부서질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화자인 '올가'가 남편 '마리오'에게서 갑작스레 이별 통보를 받고 무너져내리는 과정 속에서 '올가'를 둘러싼 세상은 다 같이 내리막길을 걷는다. 그녀의 아이들-'잔니'와 '일라리아'-는 물론이고 반려견 '오토'까지. "정신 차려, 올가." 거듭 반복되는 문장에도 불구하고 '올가'는 진정한 자아가 무엇인지를 구별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나아간다. 소설상으로 4개월 동안의 시간이 그려지는데, 내가 체감하기로는 1년도 더 넘은 시간이 흐른 것만 같다. 자기 자신을 가두는 '올가'로 인해 어찌나 애가 타던지 입안이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처음만 해도 나는 '올가'를 이해할 수 없다고 글에 적었다. 도대체 왜 '올가'가 '마리오'를 향해 밑도 끝도 없이 추락하려고만 하는지를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마리오'의 숨겨진 연인 '카를라'가 등장한다. '카를라'의 귀에서 귀걸이가 찰랑대고 있다. 그 귀걸이는 '올가'가 '마리오'의 가족에게서 선물 받은 것이다. 또 다른 장면. 이제 회복의 길로 접어든 '올가'에게 '마리오'가 찾아온다. '마리오'는 '아이들 엄마'는 '올가'이기 때문에 그녀가 양육에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한다. 나는 이제 '올가'가 느끼던 배신감과 좌절감을 함께 온몸으로 느낀다. '마리오'와 나 사이에 물리적 거리가 좁혀진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책을 덮고 나서는 '올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던 시간에 대해 미안함을 느낀다. '올가'의 상황을 남의 일로만 치부했기 때문에 나는 오롯이 공감하는 데 실패했다. 작품 속 버려진 여자들에 대해 '올가'가 과거에는 '멍청하다'라고 평가했듯이 나 또한 '올가'에 대해 '건방진 말'을 하고 말았다.


마리오의 만족감과 기쁨, 날이 갈수록 성공 가도를 달리는 그의 삶을 내 자존감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너무나도 큰 실수였다. 그중에서 가장 큰 실수는 그와 함께 있어도 내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끼지 못하게 된 지가 이미 오래인데도 그 없이 살 수 없다고 믿었던 일이다.(275쪽)

'마리오'가 떠나간 이후로 '올가'가 스스로를 갉아먹던 것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행동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올가'가 바닥으로부터 튀어 올라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자 사람들은 그녀에게 또 다른 연애를 권한다. 작품 속에서는 '레아' 한 명이었지만, '올가'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면 여기저기서 새로운 '시작'에 관한 조언들이 쏟아졌을 것이다. 굳이 남자 한 명을 '올가'에게 소개해 주는 방식으로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올가'의 진정한 치유가 아닌 듯 보인다. 모든 행동은 '선의'에서 비롯되었다는 변명을 하겠지만, 그들은 버려진 쪽의 이야기는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았다. 버리고 떠나간 사람이나 자신들의 이야기만을 전달하는 데 급급할 뿐이다.

'올가' 이전에 '불쌍한 여자'도 있었다. '불쌍한 여자'는 '올가'의 기억 속에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는 한 여성이다. '불쌍한 여자'는 과거 '올가'의 이웃집 여자였는데, 그녀의 남편 또한 그녀를 버리고 떠났다. '불쌍한 여자'는 "모든 것을 잃었다.(20쪽)" 모든 것을 잃는 과정에 '불쌍한 여자'의 '올가'의 엄마나 엄마와 같이 일하는 아줌마들이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불쌍한 여자'는 본인 스스로나 남편으로 인해 나락으로 빠져든 것이 아니다.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은 주변 여성들이었다. 여성의 삶을 같은 여성이 망쳐버리는 데 있어 어떤 회의가 느껴지기도 한다.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져 그곳을 헤매긴 했지만, 올가는 결국 살아남았다. 다시 떠오른 '올가'는 더 이상 감정적으로-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미움'이었다-세상을 대하지 않는다. 이전보다 더 넓은 포용력과 평온함을 기반으로 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그녀를 현실에 발붙이고 살아가도록 붙잡는 것은 그녀 자신의 피조물인 '잔니'와 '일라리아'이고, 과거의 꿈인 '글쓰기'이다.

다시 앞을 향해 걷고 있는 '올가'에게 또다시 일련의 사건들이 터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제까지 지켜보는 것도 턱없이 힘에 부쳤으므로 고개를 돌리고 싶은 마음도 든다. 하지만 이내 곧 '올가'를 다시 마주한다. '올가'의 일들이 '올가'의 일만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