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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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초, 작가 윤이형은 절필을 선언했다. 이상문학상의 저작권 계약 등을 문제 삼으면서 자신이 받은 상을 내놓겠다는 말까지 했다. 김금희, 최은영 등의 작가들은 이에 동참해 수상을 거부했고, 애독자들은 sns로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입장 표명글을 퍼다 나르기 시작했다. 2020년은 문학계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시기였지만, 작가 윤이형의 행보만큼 생생히 기억나는 순간도 없을 듯하다. 작가가 충격적인 선언을 했던 그 시기에 가장 많이 언급되었던 작품이 바로 『붕대 감기』이다. 물론 직전에 발표된 최근작이었던 탓도 있었지만, 거기엔 어떤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이 자꾸만 났다. 그리고 오늘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직감이 하나의 확신으로 변했다. 페미니즘과 문학으로 그 대상은 다르지만, 동지들에 대한 애정, 그리고 그들과 연대하고자 하는 마음이 작가 윤이형의 작품과 실제적 행위를 연결한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말은 나이가 들수록 쉽게 꺼내기가 힘들다. 하지만 『붕대 감기』를 읽고 보니 작가의 과거 행보가 크게 놀랍지 않았다.


『붕대 감기』에는 '진경'과 '세연'을 중심으로 다양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여성이라는 것 이외에 서로 닮은 점을 찾기가 어렵다. 나이와 직업적인 면에서의 차이 외에도 그녀들의 사고방식은 천차만별이다. 작품은 여러 방향에서 흘러들어온 생각들이 중첩되면서 '페미니즘'의 미래를 재설정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종종 어긋나면서도 대화를 통해 '자매애'로 나아가는 『붕대 감기』 속 여성들은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을 묻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일의 뭉클함을 전달한다. 이 책은 단순히 '페미니즘'에 관한 소설이 아니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사이의 경계를 지우고, 유일무이한 다정한 공동체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꿈 그 자체에 가깝다. 무력하지만, 우리에게는 더없이 소중하고 희망찬 꿈 말이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넘어서서 가부장제의 억압하에 있는 사람들을 해방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여성만을 위한 운동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만큼 페미니즘은 일견 모든 여성의 지지를 받을 듯 보이지만, 실은 정반대다. 이에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고, 페미니스트라고 해도 수단과 방법에 있어서 개개인마다 큰 견해 차이를 보인다. 이런 차이를 좁히지 못해 서로 반목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페미니즘은 내부에서의 분열이 치명타를 가할 수도 있다. 이미 외부로부터 받고 있는 자극이 무시할 정도의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서로를 미워하지 않고, '동지'로서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것임을 『붕대 감기』는 피력하고 있다. 


엄마는 네가 약한 여자를, 너만큼 당당하지 못한 여자를, 외로움을 자주 느끼는 여자를, 겁이 많고 감정이 풍부해서 자주 우는 여자를,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를, 결점이 많고 가끔씩 잘못된 선택을 하는 여자를, 그저 평범한 여자를, 그런 이유들로 인해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68쪽)

또한, 『붕대 감기』는 여성주의라는 거대한 흐름에 편입되지 않은 사람들을 압박하는 일도 경계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이에 관해서는 김 모 아나운서의 일화가 떠오른다. 해당 아나운서는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면서 '여성으로서의 권력'을 강조했다. 그녀의 발언에 엄청난 논란이 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아나운서로서도,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여성들로서도 모든 일에는 여러 사고방식이 존재하고, 분명하게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듯했다. '여성다움'과 '여성으로서의 권력'에는 하나의 완벽한 기준이 존재할 수 없다. 게다가 더 평등한 삶으로의 도약을 위해 시작된 페미니즘이 극심한 차별과 배제의 온상이 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닌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서와 마찬가지로, 페미니즘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도 여러 기준점이 필요하며, 더 많은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딘가에 속하기 위해서 일부러 악의를 품으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어.(44쪽)

최근 들어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고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 자주 생각을 한다. 내가 하는 노력들과는 별개로 불공평한 세상이라는 점을 깨달을 만한 나이이기 훨씬 이전부터 너무 많은 사람들을 불필요하게 미워하면서 살아왔다. 잔인하게도 악의는 불평등을 조장한 사람들이 아니라, 동일한 선상에 서있는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길을 잃은 악의는 불신과 분열만을 초래했고, 나는 동지들을 더러 잃어야만 했다. 앞으로의 페미니즘, 또 삶에 있어서는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 그로 인해 치유되는 장면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치 붕대를 감아올리는 일처럼 말이다.

'진경'이 운전대를 넘겨준 젊은 사람들의 축에 속해 있는 운전수로서 나는 승객 하나하나를 신경 써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 그녀가 운전수들에게 기대하는 일은 세대를 뛰어넘은 '자매애'이다. 내가 몰고 있는 이 버스가 여성뿐만이 아니라 가부장제하에서 억압받고 있는 모든 인권을 보호하고, 구제해내겠다는 본래의 목적지를 향해 올바르게 나아가기를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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