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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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흔한 현실 안에서

다양하게 뻗어나가는 사랑의 빛깔,

그 안에서의 배움과 성장의 이야기



연애소설이지만 등장인물들의 연애 성사 여부에만 천착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지는 않았다. 이들은 사랑이라는 흔하고도 특별한 감정을 통과하며 자신을 확장해가고 세상을 향해 손을 내민다. 그것이 내가 그리고 싶던 사랑의 본질과 효과이기도 했다.(266쪽, 작가의 말)


타인과의 진정한 연대, 더 나아가 세상을 향한 애정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해 주었던 『아몬드』에 이어 두 번째로 작가 손원평의 『프리즘』을 만나게 되었다. 『아몬드』를 쓴 작가,라는 수식어 하나만으로도 독자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작가 손원평의 『프리즘』은 네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들의 사랑은 프리즘을 통과해 다양한 자기 확장의 빛깔로 뻗어나가면서 만남과 이별의 진정한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도원', '예진', '재인' 그리고 '호계'로 이어지는 사랑의 서사 안에는 고독이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그들은 하릴없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관계를 맺으면서도 늘 알 수 없는 텁텁함을 느끼며 인생을 살아간다. '변화'에 대한 갈망과 필요성을 절감하던 그들에게 서로와의 만남은 이를테면 지각변동의 시작이다. 여름부터 또 다른 여름으로 돌아오는 동안 만나고 사랑하고 또 이별을 겪으면서 그들은 상대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부터 삶의 공허함을 메꿀 방법을 찾아낸다. 그들은 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자기 내면으로부터 뻗어 나오는 다양한 행복의 빛깔을 만끽한다. 사랑은 성장의 수단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프리즘』은 연애소설이 아닌 성장소설에 가깝다.


자신 안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살아갈 이유를 얻게 되기 전까지 그들은 반복되는 만남과 이별 안에서 거의 바닥까지 내려가야만 했다. 연인, 혹은 부모 등과의 관계로부터 얻어진 나쁜 기억들은 그들을 궁지로 내몰았고 또 다른 사람에게서 마음에 난 구멍을 메꿀 방법을 찾도록 부추겼다. 영원할 줄 알았지만 한철에 불과했던 사랑 속에서 '도원', '예진', '재인', 그리고 '호계'는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내면으로의 집중이 두려워 외부로만 공전하는 어리석음(175쪽)"을 반복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제 호계는 사람 사이에 맺는 관계라는 건 자기 자신이 확장되는 것임을 깨닫는 중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연결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단 하나, 언제고 끊어질 수 있는 관계를 수없이 맺으며 살아가게 될 거라는 점이다.(210쪽)


네 사람은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출구 없는 혼란한 세상으로 뛰어들 용기를 내지 못했다. 꼭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면서 세상에 존재해야만 밖으로 나갈 준비가 되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런 식의 관계 맺기로 인해 그들은 도리어 마음속의 무언가를 자꾸 잃어야만 했다. 사랑에 대한 미련을 떨치고 혼자서 성장을 시작하고 나서야 그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자기 확장의 기회를 얻는다. 이제 관계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할 준비가 된 네 사람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로 자신의 화폭을 채워나갈 것이다. 수많은 관계 맺음을 앞에 두고도 이제 그들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다양한 황홀한 빛깔로 애착을 품었던 프리즘으로 인해 도리어 흉터가 남을 만큼 깊게 팬 상처를 얻던 악몽은 끝이 났다. 그들은 세상에 홀로, 하지만 가득 차오른 내면의 빛깔로 이전과 같은 고독은 느낄 틈새 없이 오롯이 서 있기 때문이다. 관계가 주는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진 그들의 표정은 이전보다 훨씬 가볍고, 찬란해 보인다. 프리즘을 통과해 뿜어져 나온 그들의 다양한 삶의 빛깔이 누군가와 또다시 만나게 되는 날을 기다린다. 만남과 이별의 끊임없는 사이클 속에서 누군가와 사랑을 하면서 점점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착실히 성장해 나갈 수 있기를 바라고 싶다.

"지금은 지금일 뿐이야."
끝은 올 것이다. 그러나 느낄 수 있는 것은 현재뿐이다. 도원은 현재의 끝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멀리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 P143

전에는 연애나 사랑이 의미 없이 흔해 빠진 거라 생각했다. 허나 이제 호계는 사람 사이에 맺는 관계라는 건 자기 자신이 확장되는 것임을 깨닫는 중이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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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9-11 1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릴리 2021-09-11 21:4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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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시티미아, 즉 감정 표현 불능증. 의사들이 '윤재'에게 내린 진단은 그거였다. 감정을 배제한 채로 덤덤하게 인생을 살아나가는 일은 언뜻 아주 유용한 가능성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윤재'를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엔 걱정이 가득하다. 두려움, 공포, 슬픔 등은 부정적인 감정이지만 살면서 꼭 필요한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달려 오는 자동차를 보면 몸을 피하고, 세상을 향한 억울함을 온몸에 짊어진 채로 칼을 휘두르는 사람을 보면 재빨리 도망쳐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윤재'는 앞의 상황들에서 감정이라는 색이 완전히 빠져나간 흑백 같은 '사실'만을 본다. 자기 눈앞으로 달려오는 자동차와 칼을 휘두르는 어떤 사람. 그러므로 '윤재'의 엄마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딱 두 가지다: '윤재'에게 '아몬드'를 먹이는 것과 '희로애락애오욕'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가르치는 것.


삶에서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바퀴 하나를 빼먹은 채로 성급하게 태어난 이 아이는 그러나 불행하지 않다. '윤재'에게는 엄마와 할멈이 있고, 감정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윤재' 또한 그들의 온기가 자신이 살아가는 데 큰 보탬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 손원평은 어릴 때 가족들로부터 사랑을 아주 많이 받고 자랐다고 썼다. 그랬기 때문에 글을 쓸 자격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윤재'는 어느 면에서는 작가와 닮아 있다. '윤재'와 작가 '손원평'은 어릴 때 받은 무조건적인 지지가 살아가는 동안 든든한 뒷받침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똑똑히 보여준다. 세상에게 '윤재'는 "정상에서 벗어난 반응(75쪽)"이지만, 적어도 엄마와 할멈에게는 목숨걸고 지키고 싶은 유일한 정답이다. 하지만 세상은 '윤재'를 호락호락 넘어가도록 두지 않기 때문에 엄마는 여전히 아들을 붙잡고 '정상적인 반응'이 무엇인지를 일일이 읊어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245쪽)


엄마가 하나씩 가르쳐준들 성장할수록 복잡해져만 가는 세상은 '윤재'에게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윤재'는 감정없이 살아가는 스스로보다도 공감능력을 가진 보통의 사람들을 도무지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를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사람들은 상대의 감정을 공유하면서도 자기 자신의 일인 것처럼 느끼는 데까지 나아가진 못했다. 그들은 감정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아픔을 뒤로 한 채로 해맑게 웃을 수 있었다.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척 하는 사람들.(244쪽)"은 '윤재'에게 있어 절대로 풀리지 않을 의문이었다.

'윤재'의 질문에 쉽게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든 일이 우리 자신의 것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위험에 빠진 인간 모두를 구할 수 있다면, 세상에서 벌어지는 위험 전체에 우리가 개입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더러는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때가 온다. 구하기를 그만 둔 사람들을 탓할 수만은 없을 거라고 말한다면 '윤재'에게 너무 잔인한 일이 될까. 그 사람들도 가볼 수 있는 데까지 가보고 싶었을 거라고 말한다면 너무 비겁한 변명이 될까.



그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가 될지는 나도 모른다. 말했듯이,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딱 나누는 것따윈 애초에 불가능한 건지도 모른다. 삶은 여러 맛을 지닌 채 그저 흘러간다.(259쪽)

'윤재'의 이야기에 확실한 끝맺음은 없다. '윤재'의 결말을 닫지 않음으로써 작가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암시했다고 생각한다. '윤재'의 말처럼 '윤재'와 '곤이'의 삶이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누구도 재단할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 그들의 삶이 비극일지 희극일지도 아무도 말할 수 없다. '윤재'와 '곤이'라면 비극과 희극으로 양분된 세계의 경계를 마구 휘저어놓고 온갖 색으로 자신들의 세계를 덧칠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앞으로의 삶에서 어떤 맛의 인생을 살게 되든 '윤재'와 '곤이'에게 나보다도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작가의 말처럼 '윤재'와 '곤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향으로 열려 있는 아이들의 삶에 새롭고, 기분 좋게 알 수 없는 봄바람이 맘껏 불어주기를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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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생물 콘서트 - 바다 깊은 곳에서 펄떡이는 생명의 노래를 듣다
프라우케 바구쉐 지음, 배진아 옮김, 김종성 감수 / 흐름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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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의 삶이 바다에 달려 있다는 마음으로 바다를 존중하고 성심성의껏 보살펴야 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바다가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350쪽)


내 안의 바다, 일상에 치일 때마다 내 안에 숨겨진 바다가 나를 부른다. 사이렌 여신 같은 바다의 목소리를 듣고, 손짓을 느끼는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쉴 틈 없이 이어지는 하루하루에 친구들과 습관처럼 여행에 대한 갈망을 부르짖다 보면, 이야기의 목적지는 언제나 바다였다. 반도의 어느 쪽에 붙어있든 관계없이 우리가 원하는 건 그저 푸르고 탁 트인 풍경, 그리고 파도가 철썩거리는 소리였다. 이처럼 사는 동안 힘이 들 때마다 바다를 도피처로 삼아왔던 점을 미루어 보아 아무래도 우리 안에는 바다가 흐르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로 야외 활동이 어려워진 지금에도 우리는 우리 안의 바다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우리 밖의 바다가 만나는 순간을 고대한다. 바다 애호가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럼없이 내보이면서도 정작 그 안에서 살아가는 바다 생물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것이 사실이다. 여름방학이면 항상 찾아가던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충족시킬 수 없는 지금, 이참에 나는 바다 생물에 관한 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저자 '프라우케 바구쉐'의 바다 탐사는 플랑크톤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TV 만화 <스펀지밥>에서의 적색 눈과 작은 몸뚱이로 기억되는 플랑크톤 말이다. <스펀지밥>을 비롯해 각종 만화,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보고 배운 바다 생물은 초현실적인 모습을 띠고 내게 다가와 귀여운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자신의 실체를 드러낸다. 흰동가리, 펭귄 등 익숙하게 접해 온 생물부터 심해 생물까지 어딘가 기분 좋은 각성이 이어진다. 『바다 생물 콘서트』가 단순히 대중들을 위한 교양서적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시작점부터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된다. '프라우케 바구쉐'는 각종 바다 생물에 대한 지식들을 아주 상세하게 기술해 놓아 그야말로 바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해하고 배울 수 있도록 구성해 놓았다. 1968년 세계자연보전연맹의 총회 연설에서 환경운동가 '바바 디오움'은 "우리 인간들은 오직 우리가 사랑하는 것만을 보호합니다. 우리는 오직 우리 자신이 이해하는 것만을 사랑하며, 우리가 배운 것만을 이해합니다.(15쪽)"라고 말했다. '프라우케 바구쉐'의 바다 탐사에 동행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바다에 대해 배우고, 이해하며, 사랑할 수 있는 상태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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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인간이 오롯이 쉴 수 있는 공간과 풍부한 해양 자원을 아낌없이 제공함으로써 우리가 의존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놀라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인간들의 도 넘은 호기심과 욕심에 대한 경계는 『바다 생물 콘서트』가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내용이다. 저자는 독자들의 해양 생태계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현재의 폭력적인 행위를 저지하고, 적극적인 해양 보호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남획, 과다한 플라스틱 사용, 기후변화, 양식업 등으로 인해 망가져 가는 해양 생태계의 현실은 지치지도 않고 인간의 죄책감을 들쑤신다.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을 쓴 '마이클 셸런버거'가 지적하듯이 생태계에 대한 죄책감과 그에 따른 반성이 '생태계 종말'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져서는 안되겠지만, 우리에게 분명한 책임이 있고 따라서 능동적인 환경 보호 실천이 절실하게 필요해 보인다. 바다에 대한 배움을 통한 이해, 또 그로부터 비롯된 애정과 함께 바닷속을 자유롭게 누비는 날이 하루빨리 올 수 있기를, 더 나아가 내가 누린 것들을 미래 세대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라고 싶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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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아말 엘-모흐타르.맥스 글래드스턴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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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전 세계 SF상을 휩쓸며 가장 주목받은 소설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생태학적인 조직 '가든'과 적대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는 기계적인 조직 '에이전시'가 벌이는 시간 전쟁의 최전선에 두 집단의 최정예 요원인 '블루'와 '레드'가 있다. '시간 가닥'을 통해 자유롭게 시간대를 넘나드는 '레드'와 '블루'의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그들이 주고받는 편지에 있다. 시간 여행이나 시간 전쟁이라는 SF적인 요소와 편지라는 아날로그적인 요소가 섞이고, 그 위에 문학작품이나 팝송 가사 등의 문화적인 요소가 셰프의 킥처럼 얹어진다. 게다가 '레드'와 '블루'의 편지는 우리가 아는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쓰이고 읽힌다. 그들은 아주 오랜 시간 공을 들여 폭발하는 용암 위나 벌의 춤추는 몸짓 등에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새겨 넣는다. 어렵사리 상대에게 도착해 비밀스럽게 전달되는 서로의 마음은 '시간'이라는 관념을 더 애틋하고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광활한 우주로 뒤바꾸어 놓는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책을 통해 기꺼이 뛰어들고자 하는 시간 전쟁은 지금까지 우리가 흔하게 봐왔던 영화나 드라마 속의 그것과는 다르다. 우리 안에 흐르는 바다를 느끼는 것처럼 더 거대한 무언가와 연결되려는 몸짓에 가깝다.


나는 너에게 하나의 맥락이 되고 싶어. 너도 나한테 그런 존재가 돼 주면 좋겠어.(181쪽)


SF라는 공통분모를 기반으로 손편지를 주고받으며 친목을 쌓던 '아말 엘모흐타르'와 '맥스 글래드스턴'은 이를 소설에 활용하여 '레드'와 '블루'라는 두 명의 최정예 요원을 탄생시켰다. 두 작가의 시선으로부터 탄생한 '레드'와 '블루'는 서로 다른 독립된 개체성을 가지고 있다. '레드'가 날카롭게 잘 벼려진 칼날 같다면, '블루'는 그런 '레드'를 품을 수 있는 어머니 대지의 느낌을 풍긴다. 한편으로 그들은 허기, 혹은 욕망, 그리고 갈망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무언가를 공유한다. '가든'과 '에이전시'라는 조직의 방식에 따라 하나의 부품처럼 행동하는 개체들과는 다른 가능성을 '블루'와 '레드'는 마음속에 품고 있다. 분리된 몸을 가지고 있지만 단일화된 개체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그들은 조작되어 태어났고, 그렇기 때문에 '나다움'에 대한 갈구는 '블루'와 '레드'가 사는 생태계에서만큼은 흔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무리를 벗어나 독립된 개인으로서 '나다움'을 갈구하고, 서로를 통해 이런 허기를 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블루'와 '레드'에게 있어 서로는 허기라는 생소한 감각을 느끼도록 만들면서 이와 동시에 이를 채워줄 유일한 존재이다.



'레드'와 '블루'는 시간 가닥을 오고 가며 다양한 배역을 연기해 내고, 몇몇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낸다. 그들의 임무는 작은 실수에도 미래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함을 요한다. '레드'와 '블루'가 상대 집단과의, 혹은 시간 자체와의 전쟁을 벌이는 장면들을 목격하면서 '시간'이 가진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그 연약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드넓은 시간이라는 우주 속에서 '블루'와 '레드'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 작지 않은 기적처럼 여겨진다. 이처럼 광활한 시간 속에서 유일하게 나다움을 표방할 수 있는 작은 우주를 만난 '레드'와 '블루'가 숙명 같은 시간 전쟁을 어떻게 마무리하게 될지에 관해서는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를 통해 알아봐 주었으면 좋겠다.


내 생각에 외따로 존재하는 시간의 실은 단 한 가닥도 없어. (...) 가닥마다 갖가지 면모와 매력과 자극이 있고, 연결하는 방식에 따라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쓸모가 있다고 말이야.(86쪽)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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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컷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7
박하령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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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숏컷」을 포함해 총 6개의 단편이 수록된 박하령 작가의 신작을 읽는 내내 놀라웠다. 『숏컷』은 특정한 시기를 이미 한참 지나버린 후에 뒤돌아보는 글이 아니라, 그 터널을 지금 막 통과하고 있는 사람의 글처럼 현재성을 띠고 있었다. 날것의 언어는 물론이고, 그때 그 시절에 만 느낄 수 있는 감정들에 대한 묘사가 특히 그랬다.


작품 속에서 아이들은 종종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분위기에 휩쓸려 애초에 의도하지도 않았던 일들을 저지른다. '올바르지 못하다'라는 어른들의 평가에 불과하고, 아이들은 공동체 안에서 특정한 행위를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가치를 깨닫고, 안정적인 지위를 보장받는다. 이들이 지나고 있는 시기에는 무리와 떨어진 개인을 상상하기가 어렵고, 무리의 반응에 따라 움직이는 개개인은 삶의 '주체'가 아닌 '조연 배우'로서의 자신을 인식한다. 자신을 '조연 배우'로만 인식하는 그들에게는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가열찬 용기(p.17, 「폭력의 공식」)가 존재하지 않는다. 용기의 부재 속에서 부지불식간에 악행을 저지르는 아이들에게서 그럼에도 희망을 발견하는 이유는 그들이 "정말, 이렇게 끝나는 게 맞는 건가요?(p.34, 「폭력의 공식」)라고 조금이나마 의문을 표하기 때문이다.


「폭력의 공식」에서 '헌석'이 품었던 내적인 용기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이 표제작인 「숏컷」이다. '승아'의 '숏컷'이 처음부터 삶의 부조리에 대항하는 투지의 상징이었던 것은 아니다. 스스로의 편의를 위해 적당히 돌아가려던 '승아'는 '다연'에게 벌어진 일이 한 개인을 넘어서서 우리 모두의 일임을 인지하고, 잘못된 일을 감지하는 '페미'로서의 역할을 자처한다. 표제작을 통해 『숏컷』이 단순히 청소년을 위한 문학이 아님을 알 수 있었는데, '적당히 넘어가자'고 생각하는 빈도수는 어른이 될수록 높아지기 때문이다. 의견을 표명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 몫의 책임을 져야 하고. 의견 표명의 자유와 그에 따른 책임은 어른의 필수적인 덕목이지만, 청소년기라는 터널에 영영 갇히고 싶은 어른이 요즘은 특히 너무도 많다.


자존감이 바닥인 채로 더러운 기분과 함께 깜깜한 터널 속에 주저앉아 분탕질하던 우리의 얼어붙은 마음에 『숏컷』은 돌을 던져 균열을 낸다. 처음엔 실금에 불과했던 균열이 점점 벌어지면 '이제까지 뭐하고 살았나' 싶은 공허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우울한 기분에도 어른들에게 내일은 오고, 밤새 채워놓은 탱크를 출퇴근과 함께 완전히 소진해 버리는 하루가 반복된다. 그래도 새로운 하루를 힘차게 버텨내야지, 전쟁에 나가는 사람처럼 자신의 '숏컷'을 매만지는 '승아'를 보면서 생각한다.


(출판사 지원도서)

페미가 무슨 신분이야? 너네한텐 엑스맨 같은 건가? 근데 만약에 페미가 잘못된 일을 감지하는 사람이라면 난 페미가 맞을거야. 남자 여자 대결하는 게 페미가 아니라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게 균형을 맞추자는 게 페미니즘이라잖아. 그리고 자꾸 숏컷이라고 머리 스타일로 시비 거는데, 이건 페미랑 아무 상관 없는 그냥 취향의 문제야.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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