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알렉시티미아, 즉 감정 표현 불능증. 의사들이 '윤재'에게 내린 진단은 그거였다. 감정을 배제한 채로 덤덤하게 인생을 살아나가는 일은 언뜻 아주 유용한 가능성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윤재'를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엔 걱정이 가득하다. 두려움, 공포, 슬픔 등은 부정적인 감정이지만 살면서 꼭 필요한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달려 오는 자동차를 보면 몸을 피하고, 세상을 향한 억울함을 온몸에 짊어진 채로 칼을 휘두르는 사람을 보면 재빨리 도망쳐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윤재'는 앞의 상황들에서 감정이라는 색이 완전히 빠져나간 흑백 같은 '사실'만을 본다. 자기 눈앞으로 달려오는 자동차와 칼을 휘두르는 어떤 사람. 그러므로 '윤재'의 엄마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딱 두 가지다: '윤재'에게 '아몬드'를 먹이는 것과 '희로애락애오욕'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가르치는 것.


삶에서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바퀴 하나를 빼먹은 채로 성급하게 태어난 이 아이는 그러나 불행하지 않다. '윤재'에게는 엄마와 할멈이 있고, 감정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윤재' 또한 그들의 온기가 자신이 살아가는 데 큰 보탬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 손원평은 어릴 때 가족들로부터 사랑을 아주 많이 받고 자랐다고 썼다. 그랬기 때문에 글을 쓸 자격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윤재'는 어느 면에서는 작가와 닮아 있다. '윤재'와 작가 '손원평'은 어릴 때 받은 무조건적인 지지가 살아가는 동안 든든한 뒷받침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똑똑히 보여준다. 세상에게 '윤재'는 "정상에서 벗어난 반응(75쪽)"이지만, 적어도 엄마와 할멈에게는 목숨걸고 지키고 싶은 유일한 정답이다. 하지만 세상은 '윤재'를 호락호락 넘어가도록 두지 않기 때문에 엄마는 여전히 아들을 붙잡고 '정상적인 반응'이 무엇인지를 일일이 읊어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245쪽)


엄마가 하나씩 가르쳐준들 성장할수록 복잡해져만 가는 세상은 '윤재'에게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윤재'는 감정없이 살아가는 스스로보다도 공감능력을 가진 보통의 사람들을 도무지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를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사람들은 상대의 감정을 공유하면서도 자기 자신의 일인 것처럼 느끼는 데까지 나아가진 못했다. 그들은 감정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아픔을 뒤로 한 채로 해맑게 웃을 수 있었다.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척 하는 사람들.(244쪽)"은 '윤재'에게 있어 절대로 풀리지 않을 의문이었다.

'윤재'의 질문에 쉽게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든 일이 우리 자신의 것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위험에 빠진 인간 모두를 구할 수 있다면, 세상에서 벌어지는 위험 전체에 우리가 개입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더러는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때가 온다. 구하기를 그만 둔 사람들을 탓할 수만은 없을 거라고 말한다면 '윤재'에게 너무 잔인한 일이 될까. 그 사람들도 가볼 수 있는 데까지 가보고 싶었을 거라고 말한다면 너무 비겁한 변명이 될까.



그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가 될지는 나도 모른다. 말했듯이,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딱 나누는 것따윈 애초에 불가능한 건지도 모른다. 삶은 여러 맛을 지닌 채 그저 흘러간다.(259쪽)

'윤재'의 이야기에 확실한 끝맺음은 없다. '윤재'의 결말을 닫지 않음으로써 작가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암시했다고 생각한다. '윤재'의 말처럼 '윤재'와 '곤이'의 삶이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누구도 재단할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 그들의 삶이 비극일지 희극일지도 아무도 말할 수 없다. '윤재'와 '곤이'라면 비극과 희극으로 양분된 세계의 경계를 마구 휘저어놓고 온갖 색으로 자신들의 세계를 덧칠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앞으로의 삶에서 어떤 맛의 인생을 살게 되든 '윤재'와 '곤이'에게 나보다도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작가의 말처럼 '윤재'와 '곤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향으로 열려 있는 아이들의 삶에 새롭고, 기분 좋게 알 수 없는 봄바람이 맘껏 불어주기를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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