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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컷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7
박하령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7월
평점 :

표제작 「숏컷」을 포함해 총 6개의 단편이 수록된 박하령 작가의 신작을 읽는 내내 놀라웠다. 『숏컷』은 특정한 시기를 이미 한참 지나버린 후에 뒤돌아보는 글이 아니라, 그 터널을 지금 막 통과하고 있는 사람의 글처럼 현재성을 띠고 있었다. 날것의 언어는 물론이고, 그때 그 시절에 만 느낄 수 있는 감정들에 대한 묘사가 특히 그랬다.
작품 속에서 아이들은 종종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분위기에 휩쓸려 애초에 의도하지도 않았던 일들을 저지른다. '올바르지 못하다'라는 어른들의 평가에 불과하고, 아이들은 공동체 안에서 특정한 행위를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가치를 깨닫고, 안정적인 지위를 보장받는다. 이들이 지나고 있는 시기에는 무리와 떨어진 개인을 상상하기가 어렵고, 무리의 반응에 따라 움직이는 개개인은 삶의 '주체'가 아닌 '조연 배우'로서의 자신을 인식한다. 자신을 '조연 배우'로만 인식하는 그들에게는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가열찬 용기(p.17, 「폭력의 공식」)가 존재하지 않는다. 용기의 부재 속에서 부지불식간에 악행을 저지르는 아이들에게서 그럼에도 희망을 발견하는 이유는 그들이 "정말, 이렇게 끝나는 게 맞는 건가요?(p.34, 「폭력의 공식」)라고 조금이나마 의문을 표하기 때문이다.
「폭력의 공식」에서 '헌석'이 품었던 내적인 용기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이 표제작인 「숏컷」이다. '승아'의 '숏컷'이 처음부터 삶의 부조리에 대항하는 투지의 상징이었던 것은 아니다. 스스로의 편의를 위해 적당히 돌아가려던 '승아'는 '다연'에게 벌어진 일이 한 개인을 넘어서서 우리 모두의 일임을 인지하고, 잘못된 일을 감지하는 '페미'로서의 역할을 자처한다. 표제작을 통해 『숏컷』이 단순히 청소년을 위한 문학이 아님을 알 수 있었는데, '적당히 넘어가자'고 생각하는 빈도수는 어른이 될수록 높아지기 때문이다. 의견을 표명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 몫의 책임을 져야 하고. 의견 표명의 자유와 그에 따른 책임은 어른의 필수적인 덕목이지만, 청소년기라는 터널에 영영 갇히고 싶은 어른이 요즘은 특히 너무도 많다.
자존감이 바닥인 채로 더러운 기분과 함께 깜깜한 터널 속에 주저앉아 분탕질하던 우리의 얼어붙은 마음에 『숏컷』은 돌을 던져 균열을 낸다. 처음엔 실금에 불과했던 균열이 점점 벌어지면 '이제까지 뭐하고 살았나' 싶은 공허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우울한 기분에도 어른들에게 내일은 오고, 밤새 채워놓은 탱크를 출퇴근과 함께 완전히 소진해 버리는 하루가 반복된다. 그래도 새로운 하루를 힘차게 버텨내야지, 전쟁에 나가는 사람처럼 자신의 '숏컷'을 매만지는 '승아'를 보면서 생각한다.
(출판사 지원도서)
페미가 무슨 신분이야? 너네한텐 엑스맨 같은 건가? 근데 만약에 페미가 잘못된 일을 감지하는 사람이라면 난 페미가 맞을거야. 남자 여자 대결하는 게 페미가 아니라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게 균형을 맞추자는 게 페미니즘이라잖아. 그리고 자꾸 숏컷이라고 머리 스타일로 시비 거는데, 이건 페미랑 아무 상관 없는 그냥 취향의 문제야.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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