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날다 - 우리가 몰랐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참혹한 실상
은미희 지음 / 집사재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진실 규명을 통해 세상에 의를 묻고 선을 구현하다

아프지만 우리가 마주해야 할 그날의 이야기




나를 위로하지도 말며, 슬퍼하지도 말라. 다만 우리가, 내가, 너와 나를 지키지 못했음을 아파하라. 그리고 분노하라.(13쪽)


전쟁에 관해 이야기할 때 여성은 종종 배제된다. 『나비, 날다』는 전쟁의 역사 속에서 여성의 지위를 본래의 자리로 회복시키는 작업이다. 인권을 유린당한 여성의 시선에서 바라본 전쟁은 더없이 참혹하다. 일본군 위안부 여성, 징용된 한국인 군인, 그리고 일본인 군인까지 전쟁은 모든 이들을 벼랑 끝까지 몰아세운다. 하지만 전쟁의 비참함 가운데서도 계급은 존재하는 것이어서 식민지의 여성으로 태어나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징집된 이들의 삶은 문장 위를 구를 때마다 독자의 몸과 마음 곳곳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나비, 날다』에서는 '김순분'을 중심으로 '금옥이', '봉녀' 등의 삶을 끌어들이면서 위안부 여성으로서의 삶을 증언한다. 꽃다운 나이에 무참하게 꺾여 버린 그들 앞에서 나는 한없이 숙연해졌다. 강제징집되던 당시, 지금의 나보다도 어렸던 아이들은 그 모든 시간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으려고, 자꾸만 살아남으려고 서로를 위로했고, 어차피 질 것을 알면서도 일본군의 야만에 대항했다. 피해자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전쟁의 악몽을 견뎌내는 일본군의 눈물을 닦아줄 줄 알았던 '김순분'을 비롯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300여 페이지에 담아낸 이 책을 시작으로, 나는 기억하고 또 기억하면서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을 덜어내려고 한다.


갑작스럽게 징집당하기 이전 '김순분'은 아주 작고 평범한 꿈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면서 사는 것이었다. 그나마도 남자의 그늘 아래로 제한되는 삶이지만, 언니와 어머니가 겪었던 '여자 팔자'만이 '순분'이 삶에 대해 기대하는 유일한 낙이었다. 얼마 못 가 군인들의 눈에 띄어 트럭에 실려 고향으로부터 저 멀리로 끌려가면서 '순분'은 사소한 즐거움을 누릴 기회마저 세상에 빼앗겨 버린다. 아내나 어머니로서의 삶을 기대하면서도, '나비'처럼 더 자유롭고 낭만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삶을 꿈꿀 줄 알던 어린 소녀의 삶은 삽시간에 전락해 생존만을 바라게 되고, 끝내는 차라리 죽음만을 바라는 지경에 이른다. 일본군에게 짓밟히는 상황만 아니었다면, '순분'과 아이들에게 그건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할 기회이기도 했다. 좁디좁은 일상적인 바운더리를 넘어서자 고작 그토록 처참한 광경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여기에서라면 그들이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무수한 가능성들이 뇌리를 스친다. 여성으로서, 또 평화로운 시기에 태어난 하나의 인간으로서 나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순분'은 같은 처지에 놓인 아이들의 존재 덕분에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고개를 가로저을 수 있었다. 스스로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서로에 대한 연민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체념하지 않도록 서로를 부추겼고, 자신이 아니어도 좋으니 누군가는 살아서 위안소를 떠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선하고 순진한 아이들은 믿을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동안 번번이 죽고자 하는 결심을 세웠고, 더 나아가 이 땅에 자신이 존재했다는 흔적조차 남기고 싶어 하지 않게 되었다. 일본군에 의해 한낱 물건처럼 다루어진 자신의 몸뚱이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어떤 애욕도 품지 않고, 누구에게도 발각되지 않도록 숨을 수 있기를 바랐으며, 할 수만 있다면 영영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를 원했던 것이다. '순분'은 자신의 삶에 어떤 슬픔도 느끼지 말고, 위로도 건넬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불쌍한 인생. 어쩌다 식민지 딸로 태어나 그렇듯 삶을 허망하게 마감했을까.(235쪽)" 역사책 속에서 수도 없이 나라를 잃었지만, 전쟁이라는 것이, 식민지 국가의 일원이 된다는 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똑똑히 깨달을 수 있었다.


과거는 종결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손을 뻗어도 10대의 어린 '순분'을 나는 구해낼 수 없지만, 앞으로의 시간 속에서 더 이상 '순분'과 같은 인물이 탄생하지 않도록 막아서는 데에는 사소한 몫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오롯이 그날의 기억을 떠안고 살아가는 현재의 '순분'을 위해 분노하고, 또 분노하는 일만큼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출판사 지원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담 보바리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0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지만 그녀는 마음속 깊이 어떤 사건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난당한 뱃사람처럼, 삶의 고독 위로 절망적인 눈길을 던지면서 저 멀리 수평선의 안갯속에서 하얀 돛을 단 배가 다가오지 않는지 살폈다.(93쪽)



쪼개 읽기(~p.101)


1부에서는 시골 의사 '샤를 보바리'와 결혼한 '에마'가 자신의 평범한 삶에 느끼는 권태로움을 공들여 묘사한다. 그녀의 불만은 시끌벅적한 파티를 경험한 후에 한층 격해진다. 사실 '에마'의 삶에는 부족하다고 할 만한 부분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까이에 놓인 것들을 외면하고 기꺼이 사치스러운 고민들을 떠안는다. 결국엔 그녀가 바라던 온갖 격정과 극도의 쾌락을 손에 넣게 되겠지만, 그 후에 그녀는 완전히 행복해질 수 있을까. 모든 것을 쟁취한 이후에는 자신의 삶에 만족할 수 있을까. 그 점이 역시 걱정스러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기 연민의 늪에 빠진 인간은

얼마나 위협적인가


생생한 서사로부터 느껴지는

숨 막히는 두려움과 공포

인간은 자신의 믿음에 따른 우주를 가진다. 결함도 결핍도 없는 완전성이 아내의 우주였다.(115쪽)

『7년의 밤』, 『28』, 그리고 『종의 기원』 등의 작품을 통해 튼튼한 마니아층을 구축해 온 작가 정유정의 최근작 『완전한 행복』은 여전히 놀라운 흡인력과 압도적인 생생함을 자랑한다. 실제로 벌어졌던 한 사건이 『완전한 행복』 위에 겹쳐지면서 독자들은 '우혜리'라는 소설적 공간 안으로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간다. 께름칙한 되강오리의 울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오는 그곳에서 '신유나'라는 이름의 여성이 등장한다. '신유나'는 사람들을 곧잘 매혹시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마치 신처럼 군림한다. 그녀가 만들고자 하는 세상은 "'행복'이라는 신화를 이룬 한 가족의 불가침 왕국(235쪽)"이다. 자신이 원하는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 그녀는 주저 없이 불행의 싹을 제거한다. 그녀는 오로지 자신의 시선으로부터 불행과 행복을 구분한다. '완전한 행복'을 향한 강박을 가진 '신유나'는 종종 타인에게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신유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행복을 위해 최선으로 여겨지는 선택을 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신유나'의 시선에서 '불가침의 왕국'으로 가는 길은 딱 하나뿐이고, 이를 알고 있는 이는 물론 그녀 하나뿐이다. 자기애와 자기 연민의 늪에 빠져 앞뒤를 분간할 수 없는 '신유나'를 도대체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그녀의 기준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개개인에게 주어진 선택의 기회가 모조리 '불행의 가능성'으로 전락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아니, 애초에 그녀가 원하는 '완전한 행복'은 우리 삶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만 할까. 막중한 책임을 떠안고 낱낱이 설명을 한 후에 그녀를 늪으로부터 구원하려면, '신유나'라는 인물이 '구제'될 가능성을 지닌 인물이어야만 한다. 인간은 본래 선하게 태어난다는 믿음 아래 그녀를 향해 손을 뻗어야만 한다.





『완전한 행복』을 읽던 어느 날 한 아이가 아버지의 손에 질질 끌려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완강한 손에 의해 끌려 내려오는 아이의 모습은 무척 위태로워 보였다. 역시나 아이는 마지막 계단에서 미끄러져 주저앉아 울었다.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울고 있는 아이를 보호하겠다며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들 흘끔 쳐다보고는 그 장면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가던 길을 마저 갔다. 돌아오는 길에 왜 갑자기 '지유'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지유'는 '신유나'에 의해 끝없이 조종을 당하고, 엄마의 숨 막히는 온갖 지시에서 이탈한 경우 마땅히 처벌을 받을 각오를 한다. 어릴 때부터 줄곧 그렇게 자라온 아이는 자신이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다. 지나치게 어른스럽고 얌전한 아이에게서 아무도 '신유나'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타인의 불행에 선뜻 개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우리가 잃어버린 얼굴들을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유'가 '신유나'의 울타리 안에 자신을 가둘 때마다 죄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런 아이를 구원하는 건 자신 안에 있는 '요망한 생쥐'뿐이다. 아이는 "또 나쁜 꿈 꾸면 힘껏 이모를 불러.(171쪽)"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준 '재인 이모'를 위해 아이는 자신을 이겨내고 그렇게 어른이 된다. 어쩌면 '지유'가 소설 속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인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필요한 때에 무의식적인 복종의 사슬을 끊고 유일한 세상과 맞서 싸운 아이의 용기가 소설 안에서 환하게 빛난다.


'지유'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역시 '신유나'의 내면 속 어린아이를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신유나'는 어린 자신이 겪어야만 했던 불행에 지나치게 골몰해 있다. 저마다 불운의 시간들을 겪고 어른이 되는 법이지만, 나르시시스트인 '신유나'에게는 자신의 불행만이 존재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 갇혀 '신유나'는 끝내 완전한 어른이 되지 못했다. 어릴 때 무언가에 크게 시달렸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건 '신유나'의 언니 '신재인'도 마찬가지였다. '신유나'는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이미 버려졌다는 낭패감에, '신재인'은 동생을 향한 죄책감과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자신을 가뒀다. 하지만 잘못된 점을 깨닫고 이를 바로잡으려 한다는 점에서 '신재인'과 '신유나'는 크게 다르다. '신재인'이 어두웠던 과거의 기억을 적극적으로 떨쳐내면서 새롭게 보호자로서의 지위를 획득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건 '신재인'이 만들어낸 왕국은 '신유나'가 신앙처럼 여기던 '완전성'과는 거리가 먼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이뤄낼 이후의 삶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며 삶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다만 늘 기억해야 한다. 우리에겐 행복할 권리와 타인의 행복에 대한 책임이 함께 있다는 것을.(522쪽, 작가의 말)


『완전한 행복』은 자신의 삶만을 애착하던 유아 시절로부터 벗어나 타인의 삶과 섞이는 사회화 과정을 거쳐 타인의 행복에 긍정적인 방식으로 관여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진리를 깨닫는 인류의 보편적인 서사처럼 읽히기도 한다. 타인의 행복에 있어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번번이 잊는다. '신유나'의 말과 달리 '완전한 행복'은 뺄셈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그건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와 타인의 권리를 향한 배려로부터 온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자기 자신의 특별함과 행복에만 강박적인 관심을 가지는 태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자신의 평범한 고유성을 타인의 그것에 얹어 지속적인 덧셈을 해나가는 것, 그렇게 더해도 불완전한 왕국만이 남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게 이 책이 알려주는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건축에 대한 애정과 존경으로 빚어낸

'마쓰이에 마사시'의 놀라운 데뷔작!


졸업 후 첫 선택의 기로에 놓인 건축학도 '사카니시 도오루'는 보통의 동기들과 조금 다른 행보를 보인다. 건축이 한낱 공산품으로 제작되고 소비되는 시대 속에서 그는 대학원에 가거나 박봉을 감수하면서 수련을 하는 등의 현실적인 선택지를 마다한다. 그 대신 '무라이 슌스케'의 설계사무소에 들어가려는 궁리를 하고 있다. 고도경제성장의 흐름에서 벗어나 건축가로서 장인 정신을 발휘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과시하지 않고 이용자의 편리 또한 세심하게 배려할 줄 아는 '무라이 슌스케'의 모습은 '사카니시 도오루'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는다. 고즈넉한 전통과 현대의 모던함을 조화롭게 이용할 줄 아는 '무라이 슌스케'는 커리어적인 면이나 정신적인 면 모두에서 스승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무라이 설계사무소'는 선망의 대상이 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지만, 단 한 가지 문제는 그런 곳에는 늘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의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잃을 게 아무것도 없었던 '사카니시 도오루'의 도전은 '무라이 설계사무소' 입사라는 기적을 만들어 낸다.


'사카니시 도오루'까지 합류한 '무라이 설계사무소'는 사실 큰 경합을 앞두고 있었다. 공공건축 경합에는 좀처럼 참여하지 않던 '무라이 슌스케'가 국립현대도서관 경합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다들 의외라고 여겼지만, 그건 '무라이 슌스케'가 건축가로서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번 도서관은 권위의 압박은 배제한 채로 철저하게 이용자들과 건축 사이의 공명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모처럼의 경합 참가로 분주해진 '무라이 설계사무소' 식구들이 함께 가루이자와의 여름 별장으로 떠나면서 이야기는 점점 고조된다.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시선을 따라 마주한 여름 별장의 풍경은 작은 소리 하나까지 더없이 생생하고, 독자들은 1980년대 아오쿠리 마을로 자연스럽게 소환된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막힘없는 필체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우리는 '무라이 설계사무소'의 일원으로서 실재한다. 또한, 끝까지 자신의 건축에 책임을 지고, 거기에 거주하게 될 고객들의 마음에 오래 남을 건축을 설계하는 '무라이 슌스케'의 디테일들을 '마쓰이에 마사시'의 문장을 거쳐 직접 손끝으로 감각하고 있는 기분이 된다. 사소하고 넉넉한 '마쓰이에 마사시'와 '무라이 슌스케'의 마법을 어떻게 외면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무라이 설계사무소'에서 차츰 성장해 나가는 '사카니시 도오루'를 지켜보는 것도 무척 즐겁다. 확실한 외유내강형의 '사카니시 도오루'는 누구라도 부러워할 법한 조직의 일원으로서 망망한 바다를 헤치며 어설프게 나아갔다. '무라이 슌스케'를 따라 건축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키워가는 '사카니시 도오루'는 설계도면을 수집하며 건축에 대한 관심을 키웠던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현신처럼 보이기도, 오늘도 어디에선가 신입 막내의 탈을 벗기 위해 노력하는 앳된 사원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은 사무소 안에는 없고, 여러분의 손안에 있습니다.(401쪽)

언제까지나 '무라이 설계사무소'의 막내로 존재할 것 같았던 '사카니시 도오루'가 자기 사무소를 운영할 만큼 성장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이제 그는 눈으로 바쁘게 '무라이 슌스케'의 움직임을 좇던 20대에서 벗어나 "어떻게 끝내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417쪽)"라며, 자신의 끝과 그 이후로 고민하는 어른이 되었다. 한 사람의 처음과 끝자락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작가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와 닮았다. 그러나 거기에 '건축'이라는 낭만과 현실이 끼어드는 순간 '마쓰이에 마사시'의 글은 좀 더 다양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건축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해 투과된 각기 다른 인생과 풍경을 한번에 흡수한 기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체할 것 같은 답답함이 일지도 않았는데, 거기에 가루이자와에 위치한 여름별장의 부드러움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은 이 책이 좋았다,고 한 줄로 적었으면 될 일을 이만큼 질질 끌게 되었다. 

집 안에서만 계속 살 수 있을 만큼 인간의 내면은 튼튼하지 못해. 마음을 좌우하는 걸 자기 내부에서가 아니라 바깥에서 찾고 싶다, 내맡기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 P3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귤의 맛 문학동네 청소년 48
조남주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함께였기에 가능했던 눈부신 시간들

천천히 답을 찾아가는 청소년의 성장서사





초록색일 때 수확해서 혼자 익은 귤, 그리고 나무와 햇볕에서 끝까지 영양분을 받은 귤. 이미 가지를 잘린 후 제한된 양분만 가지고 덩치를 키우고 맛을 채우며 자라는 열매들이 있다. 나는, 그리고 너희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161쪽)

작가 '조남주'의 청소년 소설 『귤의 맛』은 '다윤', '소란', '해인' 그리고 '은지' 개개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무리로부터 떨어진 아이들 하나하나가 세상을 견디기엔 너무 벅차 보인다. 진학, 친구관계 등을 둘러싼 개인-개인, 혹은 개인-사회 간의 충돌은 한국에서 청소년기를 지낸 이들에게는 몹시 익숙한 풍경이다. 한국 사회-학교-부모-또래집단으로 이어지는 사회구조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아이들은 세상이 가리킨 방향으로 목숨을 걸고 뛴다. 더 나은 단계를 위한 필수적인 절차로 여겨지는 곳이 소설 속에서는 바로 '다난동'이다. 아무도 오려고 하지 않는 '신영진'에서 벗어나려는 열망을 품지 않은 아이들은 열패감과 좌절감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다난동'으로 가기만 하면 '신영진'에서와는 전혀 다른 단계로의 진입이 가능한 듯 보였지만, 막상 별천지에 가서도 아이들은 자신과 남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자라고 있는 건 분명해 보였지만, "자연스러운 방향과 속도로 변하고 있는 걸까?(61쪽)" 아이들은 확신할 수 없었다.


고립된 개체에 불과했던 아이들은 '영화부'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를 알게 되고 '우리'라는 이름 아래에서 하나로 거듭난다. 친구들과 함께 '우리'가 되기 이전에 아이들은 가정 내에서 종종 배제당하는 위치에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 직접 결정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할 겨를도 없이 어른들만의 리그는 시작되었고, 피보호자로서의 아이들은 주체성 상실과 함께 자신감을 잃었다. 그러나 친구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을 때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타인과의 절차에 참여하면서 무언가를 잃거나 또 얻는다. 부모의 보호,라는 껍질을 벗겨 놓고 보니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어른스러웠다. 자신이 얻을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순간들에 대한 소중함을 알았고, 스스로에게 가장 최선인 선택들을 하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했다.




청소년 문학을 읽을 때마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귤의 맛』은 특히 성인이 된 이후의 삶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건 역시 어른이 되어서도 자연스러운 방향과 속도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묻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에는 계획이 없어도 천천히 답을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무 살이 넘어가면, 어딘가에 취업하면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던 인생의 답은 어디에도 없고,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만을 나이가 들수록 뼈저리게 깨달을 뿐이다. 나만 답을 모르는 상황 속에서 청소년기와는 전혀 다른 생존에 대한 위협을 느낀다. 이제는 답 같은 걸 찾으려는 낭만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라고, 이미 모든 게 늦어버렸다고 스스로를 재촉할 때마다 나보다 한발 앞서 나간 인생의 선배들은 "천천히 답을 찾아가면 된다.(205쪽)"고 여전히 말한다. 그러니까 『귤의 맛』은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유효한 소설이다. 결국엔 지긋지긋한 인간관계 속에서 삶의 놀라움이나 기쁨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 또한 마찬가지다.


작가 '조남주'는 부모님의 이혼 후 엄마와 할머니의 손에 자란 '은지'나 바쁜 엄마를 대신해 집안 남성들의 끼니를 챙겨 온 '해인' 등을 통해 여성으로서의 삶을 묘사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사실 『귤의 맛』에서 그 점이 제일 좋았다,고 덧붙이고 싶다.

알고 있는 청소년이 한 명도 없어서 서러울 지경이다. 좀 더 어린 내가 눈앞에 서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귤의 맛』은 내가 내린 모든 선택이 결국에는 전부 옳았다고 말해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과거와의 화해는 좀 더 단단한 여성이 되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다독인다.

당연하지. 멀쩡한 두 손 갖고 자기 밥도 못 차려 먹는 인간들은 다 등신 새끼야. 너도 계속 등신 새끼로 살고 싶지 않으면 나와서 상 펴고 반찬 꺼내. - P7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