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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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연민의 늪에 빠진 인간은

얼마나 위협적인가


생생한 서사로부터 느껴지는

숨 막히는 두려움과 공포

인간은 자신의 믿음에 따른 우주를 가진다. 결함도 결핍도 없는 완전성이 아내의 우주였다.(115쪽)

『7년의 밤』, 『28』, 그리고 『종의 기원』 등의 작품을 통해 튼튼한 마니아층을 구축해 온 작가 정유정의 최근작 『완전한 행복』은 여전히 놀라운 흡인력과 압도적인 생생함을 자랑한다. 실제로 벌어졌던 한 사건이 『완전한 행복』 위에 겹쳐지면서 독자들은 '우혜리'라는 소설적 공간 안으로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간다. 께름칙한 되강오리의 울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오는 그곳에서 '신유나'라는 이름의 여성이 등장한다. '신유나'는 사람들을 곧잘 매혹시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마치 신처럼 군림한다. 그녀가 만들고자 하는 세상은 "'행복'이라는 신화를 이룬 한 가족의 불가침 왕국(235쪽)"이다. 자신이 원하는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 그녀는 주저 없이 불행의 싹을 제거한다. 그녀는 오로지 자신의 시선으로부터 불행과 행복을 구분한다. '완전한 행복'을 향한 강박을 가진 '신유나'는 종종 타인에게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신유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행복을 위해 최선으로 여겨지는 선택을 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신유나'의 시선에서 '불가침의 왕국'으로 가는 길은 딱 하나뿐이고, 이를 알고 있는 이는 물론 그녀 하나뿐이다. 자기애와 자기 연민의 늪에 빠져 앞뒤를 분간할 수 없는 '신유나'를 도대체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그녀의 기준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개개인에게 주어진 선택의 기회가 모조리 '불행의 가능성'으로 전락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아니, 애초에 그녀가 원하는 '완전한 행복'은 우리 삶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만 할까. 막중한 책임을 떠안고 낱낱이 설명을 한 후에 그녀를 늪으로부터 구원하려면, '신유나'라는 인물이 '구제'될 가능성을 지닌 인물이어야만 한다. 인간은 본래 선하게 태어난다는 믿음 아래 그녀를 향해 손을 뻗어야만 한다.





『완전한 행복』을 읽던 어느 날 한 아이가 아버지의 손에 질질 끌려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완강한 손에 의해 끌려 내려오는 아이의 모습은 무척 위태로워 보였다. 역시나 아이는 마지막 계단에서 미끄러져 주저앉아 울었다.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울고 있는 아이를 보호하겠다며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들 흘끔 쳐다보고는 그 장면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가던 길을 마저 갔다. 돌아오는 길에 왜 갑자기 '지유'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지유'는 '신유나'에 의해 끝없이 조종을 당하고, 엄마의 숨 막히는 온갖 지시에서 이탈한 경우 마땅히 처벌을 받을 각오를 한다. 어릴 때부터 줄곧 그렇게 자라온 아이는 자신이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다. 지나치게 어른스럽고 얌전한 아이에게서 아무도 '신유나'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타인의 불행에 선뜻 개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우리가 잃어버린 얼굴들을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유'가 '신유나'의 울타리 안에 자신을 가둘 때마다 죄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런 아이를 구원하는 건 자신 안에 있는 '요망한 생쥐'뿐이다. 아이는 "또 나쁜 꿈 꾸면 힘껏 이모를 불러.(171쪽)"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준 '재인 이모'를 위해 아이는 자신을 이겨내고 그렇게 어른이 된다. 어쩌면 '지유'가 소설 속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인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필요한 때에 무의식적인 복종의 사슬을 끊고 유일한 세상과 맞서 싸운 아이의 용기가 소설 안에서 환하게 빛난다.


'지유'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역시 '신유나'의 내면 속 어린아이를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신유나'는 어린 자신이 겪어야만 했던 불행에 지나치게 골몰해 있다. 저마다 불운의 시간들을 겪고 어른이 되는 법이지만, 나르시시스트인 '신유나'에게는 자신의 불행만이 존재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 갇혀 '신유나'는 끝내 완전한 어른이 되지 못했다. 어릴 때 무언가에 크게 시달렸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건 '신유나'의 언니 '신재인'도 마찬가지였다. '신유나'는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이미 버려졌다는 낭패감에, '신재인'은 동생을 향한 죄책감과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자신을 가뒀다. 하지만 잘못된 점을 깨닫고 이를 바로잡으려 한다는 점에서 '신재인'과 '신유나'는 크게 다르다. '신재인'이 어두웠던 과거의 기억을 적극적으로 떨쳐내면서 새롭게 보호자로서의 지위를 획득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건 '신재인'이 만들어낸 왕국은 '신유나'가 신앙처럼 여기던 '완전성'과는 거리가 먼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이뤄낼 이후의 삶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며 삶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다만 늘 기억해야 한다. 우리에겐 행복할 권리와 타인의 행복에 대한 책임이 함께 있다는 것을.(522쪽, 작가의 말)


『완전한 행복』은 자신의 삶만을 애착하던 유아 시절로부터 벗어나 타인의 삶과 섞이는 사회화 과정을 거쳐 타인의 행복에 긍정적인 방식으로 관여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진리를 깨닫는 인류의 보편적인 서사처럼 읽히기도 한다. 타인의 행복에 있어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번번이 잊는다. '신유나'의 말과 달리 '완전한 행복'은 뺄셈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그건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와 타인의 권리를 향한 배려로부터 온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자기 자신의 특별함과 행복에만 강박적인 관심을 가지는 태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자신의 평범한 고유성을 타인의 그것에 얹어 지속적인 덧셈을 해나가는 것, 그렇게 더해도 불완전한 왕국만이 남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게 이 책이 알려주는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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