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1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땅이란 땅은 모두, 전후좌우 할 것 없이 모두 정복했지! …… 그런데 오늘은 우리가 박살 날 거라니! 왜? 어떻게? 별안간 세상이 뒤집혔나?(29쪽)


'모리스'가 들끓는 애국심으로 합류한 부대는 그의 기대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부대는 정말이지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힘들다는 이유로 이동 중에 식량과 군장을 내팽개치고, 병사들은 지휘관들에게 거리낌 없이 반항심을 내보인다. 게다가 적의 위치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리더십의 부재가 더해져 병사들은 싸움의 목적을 상실한다. 자신들이 그저 아무 의미 없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에 불과하다고 여기기 시작한다. 과거 '나폴레옹'이 누리게 해주었던 영광을 잊지 못하고, 당연히 프랑스가 우세할 것이라고 믿던 프랑스인의 뿌리 깊은 자만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있다. 전쟁이나 군대에 관해서는 무지한 내가 봐도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그들의 앞날이 무척 우려스럽다. 전장에 관해서라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귀한 현재가 무자비하게 낭비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난한 사람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선영 옮김 / 새움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저 쓰기 위해 쓰고 있어요, 그저 당신에게 더 많이 쓰기 위해…. 내 비둘기, 내 친근한 사람, 내 아기씨!(245쪽)


가난보다도 '마카르'나 '바르바라'에게 연이어 불어닥치는 불행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물론 누군가의 은혜로 인생이 상승곡선을 그리는 날도 있긴 하다. 하지만 기쁨을 만끽할 새도 없이 신은 그들에게서 웃음을 앗아간다. 인생은 본래 불공평하고 이에 관해서라면 놀라움을 느낄 일도 없지만, '마카르'와 '바르바라'는 어째서 끝까지 행복할 수 없는 것일까. 이야기의 끝에서 '마카르'와 '바르바라'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자신이 지금 여기에 살아있음을 입증하고 싶었던 이들이 소설 너머에서라도 그럴 만한 기회를 찾을 수 있었기를 바랄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난한 사람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선영 옮김 / 새움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게 운명인가 봐요. 그리고 당신도 알다시피 운명을 벗어날 순 없지요.(141쪽)


가난한 사람들의 이타적인 행동은 결국 상대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선한 의지는 더 극심한 불행만을 초래할 뿐이다. '돈 버는 능력'으로 사람의 가치가 정해지는 세상에서 '마카르'와 '바르바라'는 자기 자신의 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를테면 그들은 가난으로 인해 아주 조그만 원 안에 갇혀 있는 것이다. 테두리 밖으로 조금만 벗어나려고 해도 모든 일은 '사치'로 인식되어 사람들의 비난을 사기 쉽상이다. 돈이 없으면 자기 자신의 존재를 떳떳이 내세울 수 없는 물질 만능주의적인 현실이 '마카르'와 '바르바라'를 비참하고 외롭게 만든다. 직업의 자부심과 함께 지속되는 한 개인의 성실함은 가난한 자들을 구할 수 없다. 그건 어쩌면 몇몇 이들이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평생을 짊어지고 나아가야 할 형벌인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난한 사람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선영 옮김 / 새움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행복한 날들은 너무도 짧았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불행, 언제 끝날지는 하느님만 아시는 새카만 불행이었다.(79쪽)

'마카르'와 '바르바라'는 서신을 주고받는 행위를 통해 일상을 나눈다. 극히 제한된 방식의 교류임에도 불구하고, 그 편지는 외롭고 비참한 삶 속에 놓인 그들에게 적지 않은 위안을 제공한다.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수단만이 환영받는 시대에서 '마카르'와 '바르바라'의 교류는 생소하고, 그렇기 때문에 어쩐지 애틋함마저 감각된다.

서간체 형식의 글이어서 그런지 아주 술술 읽히는 책이다. 그들이 극적으로 처절한 가난을 겪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은 않았는데, 편지에서 '마카르'와 '바르바라'가 서로를 위하고, 서로를 위해서 자꾸만 살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 밀라논나 이야기
장명숙 지음 / 김영사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터넷 유저로 살아가면서 유튜버이자 패션 디자이너인 '밀라논나'를 모르기란 쉽지 않다. 특유의 담백하면서도 화려한 당당함은 어느 곳에서든 눈길을 사로잡는다. 늙음과 추함이 동일선상에 있지 않다는 것을 절감하게 해주는 '밀라노 할머니'가 영상에 다 담지 못한 말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한 권의 책을 통해 만난 논나는 내가 이제까지 알던 여성 어른의 모습과 달라도 한참 다르다. 내 주변의 여성 어른들은 같은 여성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잔인했고, 아래 세대의 여성에게 그녀 자신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강요했다. 윗세대의 여성은 최대한 느린 걸음으로 도달하고 싶은 미래였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선량한 사랑의 서사를 이어가고 싶다."라고 말하는 논나로부터 미래에 관한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한다. 진심으로 젊은 세대와 공명하며, 또박또박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는 그녀 앞에서 어떻게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다'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을까. 앞선 발걸음을 무작정 따라 걷고 싶다. 그것이 정녕 내리막길이라고 해도 나는 여전히 '축제'의 기운을 생생하게 느낄 것이다.


"Live and let live."


모든 문장마다 밀라논나가 삶의 단독자로서 살아가고 있음을 또렷이 느낀다. 자신의 삶을 살뜰히 돌보면서도 더 좋은 세상을 위해 힘껏 나서는 그녀의 열정과 의지는 번번이 독자를 놀랍게 한다. 온갖 경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과 세상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논나는 삶에 대해 불평하는 일이 거의 없다. 세상이 자신을 실망시킬수록 그녀는 반듯이 허리를 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을 찾아 나선다. 연이은 악재로 무기력함과 열패감에 휩싸인 젊은 세대에게 논나가 가진 삶의 태도는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내 능력 밖의 일들에 안절부절하지 않고, "그래, 산이라면 넘고 강이라면 건너자. 언젠가 끝이 보이겠지." 하는 초연한 자세로 삶을 대하는 힘이 길러진다. 실제로 이 책을 읽던 며칠 동안 회사에서 일이 어긋날 때마다 논나를 떠올렸다. 논나의 얼굴을 떠올리고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 아니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면서 최선을 다해 삶을 쌓아나가자 싶어졌다.


"웬만한 일간지 독자 수보다 많은 거예요. 더구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댓글을 올리잖아요."


논나는 선량한 사랑의 서사를 글로 기록함으로써 '죽을 때까지 도전하며 살고 싶다'라는 자신의 의지를 다시 한번 확고하게 입증해 보였다. 논나뿐만 아니라, 요즘 즐겨보는 예능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여성 댄서들까지…각자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 두 손 두 발 다 들고 냅다 응원하고 싶어진다. 이토록 마음을 술렁이게 하는 사랑과 정열의 서사가 아주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