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ADHD의 슬픔
정지음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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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가 질환명이라기보다 우리를 우리이도록 하는 암호 같아요. 열일곱 번째 MBTI 같기도 하고요. 사람들은 ADHD 아닌 이를 반기겠지만, 저는 우리들이 더 좋거든요. 서글프고 독특한 삶이잖아요. 어떤 사람이 매일매일 실수한다는 건 매일매일 세상을 배워 간다는 말과도 같죠.(185쪽)

『젊은 ADHD의 슬픔』은 성인 ADHD 환자인 작가가 어떻게 마침내 자신의 정신질환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었는지를 기록한 에세이다. 이 글을 읽어야지, 하는 확신이 들게 된 것은 '월요일의 여름방학'이라는 이름으로 기획되었던 민음사의 sns 라이브 방송 덕분이었다. 방송 내내 유쾌한 에너지가 가득했고, "너나 나나 토마토다"라고 말하는 작가 정지음만의 재치에 매료되어 책을 읽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어릴 적에 주로 정신이 산만한 친구들을 놀릴 때 ADHD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사용되었던 기억이 난다. 조금만 주의력이 결핍된 모습을 보여도 어김없이 ADHD가 등장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ADHD와는 별로 유쾌한 추억을 쌓지 못했다. 내게는 불안과 긴장의 감정으로 기억되는 ADHD에 관해 이토록 자세히 접하게 된 것은 인생 내내 거의 처음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작가 또한 프롤로그에서 "한국의 미혼 여성 ADHD(10쪽)"에 관한 글을 읽고 싶었다고 썼다. 그러므로 내가 굳이 피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그런 글을 발견하는 일이 이제까지 얼마나 수월하지 않았는지를 새삼스레 발견할 수 있다. 자신보다 먼저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을 마주하고 싶었던 작가의 열망은 글쓰기로 이어졌다. 작가는 ADHD 진단을 받은 후 병원에 다니고, ADHD 환자로서 살아가는 삶에 관해 세밀하게 기록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누구나 ADHD 환자로 의심받던 시절의 오해를 지우고, 그에 대한 이해를 바로잡을 수 있다.


주변에 ADHD 아동이나 청소년이 있다는 사람을 만나면 그 아이들이 병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자신을 깨닫고 나면, 그 애들은 스스로를 인생의 반환점으로 삼을 수 있다. 어린 시절의 마음으로 몸만 자란 내가 결국은 혼돈을 극복하고 삶으로 나아갔듯이.(54쪽)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한 미움과 분노로 자기 파괴적인 삶을 살았던 작가는 과거를 넘어서서 ADHD와 비로소 화해하게 된 작가는 너무도 다정한 목소리로 자신의 삶과 감정들을 털어놓는다. ADHD 때문에 그렇게 오랫동안 부적절한 느낌을 스스로에게 느꼈다는 사실에 후회하면서도, 자신과 같은 시간을 겪는 아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해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한다. 자신의 민감함 때문에 지속적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모두가 각자의 문제로 시끄럽고 고독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책 속에서 만난 작가는 자신이 제일 많이 가지지 않아도 좋다고 말하는 자발적인 둘째이고, 부모의 품 안에서만큼은 "영원한 특권층이자 일등 시민이었(150쪽)"던 감사한 기억을 대갚음하고자 노력하는 멋진 어른이다. 또한, ADHD라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 이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돌려주고 싶어 하는 다정한 친구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ADHD는 더 이상 부정적인 이미지와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당신이 무엇이든 어떻냐고, "하릴없이 삐걱대는 나날도 전부 춤이었다고(243쪽)" 위로받는다. 한 사람의 투쟁기를 읽으면서 이토록 마음이 덥혀지는 걸 보면, 『젊은 ADHD의 슬픔』은 결국 "한국의 미혼 여성 ADHD(10쪽)" 환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절실하게 필요했던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작가 정지음의 기록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면서도, 완전히 이타적인 위로이다.


『젊은 ADHD의 슬픔』을 읽는 동안 다른 사람이 자신의 현실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에 굉장히 무심했음을 깨달았다. 나 자신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데 급급해서 다른 삶에 시간을 할애할 심적인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만치 마음이 훈훈해지는 글쓰기라니. 독자로서 작가 정지음의 목소리를 더 많이, 오랫동안 들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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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싱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9
넬라 라슨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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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내가 당신이 깜둥이가 아닌 걸 아는 한, 다 괜찮아. 당신이 얼마든지 까매져도 상관이 없다고,, 당신이 깜둥이가 아니라는 걸 내가 아니까. 하지만 거기까지야. 우리 집안에 깜둥이는 안 돼.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절대.(55쪽)

할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작가 '넬라 라슨'의 『패싱』은 흑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백인 행세를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혼혈로 태어나는 등의 이유로 덜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흑인은 이른바 '패싱'이 가능하다. 백인과 흑인 둘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이의 시선으로 볼 때 '패싱'은 왠지 우스운 구석이 있다. 피부색 하나 때문에 온갖 시련과 전쟁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러니까 '패싱'은 평생 비주류로 취급받아 온 흑인이 백인 사회에 가하는 비웃음 섞인 반격이다.


소설에서 '아이린'과 '클레어'는 '패싱'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용한다. '클레어'는 자신의 피부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백인 행세를 하지만, 아프리카적인 것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할렘 가의 사람들과 '아이린'은 '패싱'에 대해 좀 더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패싱'이 주는 이점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려는 시도들을 경멸한다. 사실 백인으로 행세하는 것이나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패싱'을 추구하는 동안에도 자신의 정체가 발각될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선택을 내리든 간에 흑인은 소수자로서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본능적인 신의. 어째서 자신은 거기서 벗어나지 못할까? 어째서 신의의 대상에 클레어를 포함시켜야 하나?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티끌만큼도 배려하지 않는 클레어를.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분노라기보다 무딘 절망에 가까웠다. 자신의 관점을 바꿀 수 없음을, 개인을 인종에서, 자신을 클레어로부터 떼어낼 수 없음을 알고 있었으므로.(136쪽)

『패싱』은 또한 동일한 인종 간의 연대감에 주목한다. '아이린'은 자신과 같은 흑인인 '클레어'를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고발하지 못한다. '패싱'은 위험하고 인종 배반적이면서도, 흑인이라면 한 번쯤은 도전하고 싶은 열망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인종'의 끈에 묶여 있는 '아이린'과 달리 '클레어'는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를 위해서라면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아이린'은 흑인을 모욕하는 남편 앞에서도 여전히 백인 행세를 하는 '클레어'가 아니라, 거침없이 성취하고 자유롭게 활보하는 '클레어'의 모습에서 자극을 받는다. 그렇게 『패싱』은 인종 문제로부터 시작해 복잡다단한 양상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한다.


소설의 제목에 활용된 '패싱'은 이제 백인 행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세기 후반부터 이는 사회가 선호하지 않는 정체성을 숨기는 문제로까지 논의가 확대되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할 만큼 차별과 배제의 기준이 다양해지고 심화되면서 『패싱』이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경계지대에 서고, 또 누군가를 세우면서 편 가르기를 시도하고, 분리의 대상이 되어 표류한다. 이전부터 확실하다고 믿어 온 우리의 정체성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어디에나 속할 수 있게 된 지금이 오히려 전혀 다른 시대로 가는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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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렘 셔플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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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렘 셔플』을 읽게 된 건 순전히 작가 콜슨 화이트헤드의 전작 『니클의 소년들』 때문이었다. 플로리다 주 소년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니클의 소년들』은 사회적 고발을 시도함과 동시에 뛰어난 몰입감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소년원의 아이들에게서 1960년대의 할렘 가로 작가의 시선은 옮겨간다. 콜슨 화이트헤드의 두 작품은 흑인의 사회적 위치를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닮았지만, 할렘의 흑인들은 고립된 공간 안에서 자신들만의 질서를 구축하고, 또 이제까지의 보편적인 질서를 전복시키려고 분투한다는 점에서 다르기도 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콜슨 화이트헤드가 끊임없이 시도하는 이야기들이 과거로부터 왔지만, 현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차별과 배제, 억압의 역사는 흑인에게서 그치지 않고, 점점 더 많은 인류 사이를 갈라놓는 핵심적인 언어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니까 『할렘 셔플』은 할렘의 가구상 '카니'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다른 모든 책들처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가 매일 보는 장소들, 그의 문 앞에 있는 가게들, 그가 어릴 때부터 지나쳤던 곳들이 가면이었음을 알려주었다. 입구는 다른 도시들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아니, 하나의 커다란 비밀 도시로 들어가는 여러 개의 문들이었다. 늘 가까이, 그가 아는 모든 것들에 인접해서, 바로 아래에 있는 도시. 어디를 봐야 할 지만 안다면 금방 찾을 수 있는 곳.(370쪽)


할렘에서 사람들은 "세상이 무심하고 잔인한 곳이라는 걸 믿는" 단계에서 더 나아가 "위험한 산비탈, 굶주린 골짜기와 협곡, 수많은 정글의 위험 속에서 매일 그 증거를 마주(114쪽)"한다. 최악의 우범지대로 손꼽히는 할렘의 질서는 강도, 폭력, 마약 등의 행위로 구축 혹은 유지된다. 모두가 범죄를 일삼는 지역 안에서 자신만 순결하다고 주장하기엔 무리가 있는 법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범죄 세계의 일부가 되어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가구상 '카니' 또한 마찬가지의 경우다. 폭력적인 범죄자 아버지 밑에서 자란 '카니'는 자신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보다 어디로 갈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 결과물이 바로 '카니'의 가구 판매점이고, 평범한 행복을 일깨워 주는 그의 가족들이다. 하지만 스트라이버(노력가)와 범죄자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할렘에서 '카니'는 아주 손쉽게 할렘의 법칙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부패할 대로 부패한 공간 안에서 자신의 태생을 이겨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카니'의 순진한 믿음과는 다르게. 


다 함께 협력하면 우린 그들의 사악한 체제를 전복시킬 수 있어요. 이것은 백인 세계 안의 흑인 국가 지도이자 더 큰 것의 일부이지만,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나름의 구조를 갖고 있어요. 우리가 서로를 돕지 않으면 우리는 저 바깥에서 패배하게 될 거예요.(414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렘 셔플』은 계속해서 할렘의 흐름을 바꾸기 위한 시도를 한다. '카니'의 개인적인 원한에서 비롯된 복수들은 결국 할렘을 더 좋은 곳으로 바꿔놓고 싶은 할렘 가 모든 이들의 열망이자 시위로 해석된다.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범죄자들이 '카니'의 새로운 앙상블의 일원이 된다는 점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언제든 자신들을 찌부러뜨릴 수도 있는 존재들의 밑바닥을 뒤집어 세상에 드러낸다. 자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그들의 평범한 일상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개별적인 '조그만 존재'들은 결집을 통해 세상을 바꿀 목소리를 낸다. 그들의 저항은 애초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페퍼'의 말처럼 "소박하게 시작해서 점점 위로 올라가는 것도 괜찮(453쪽)"을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할렘은 분노한 시민들의 시위로 완전히 전복되었다. 할렘 시민들의 참아왔던 분노와 희망은 길거리 위에 처참한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그리고 새롭게 무언가가 피어오를 수도 있었을 땅 위에 2020년 또 다른 불행이 탄생했고,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시위는 몇몇 지역에서 굉장히 폭력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더 나아가 2021년 코로나19 사태로 인종 간의 배척 상태는 더욱 심화되었다. 1964년으로부터 별다른 진전도 없이 2021년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역시 개탄스럽다. 전 세계적 위기를 함께 겪은 뉴노멀 시대에 우리는 또 다른 할렘을, 미국을, 아니 세계적인 양상을 목격할 수 있을까. 『할렘 셔플』이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과거만의 공포처럼 여겨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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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요 네스뵈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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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책이라는 수식어를 무색하게 만드는 요 네스뵈의 필력, 이번 신간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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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마리아나 엔리케스 지음, 엄지영 옮김 / 오렌지디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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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소설은 저주받은 집과 같다. 그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연 이상, 발길을 되돌릴 수는 없다. 우리 모두 과감하게 발걸음을 내디디며 문턱을 넘어가야 한다.(346쪽)


작가 마리아나 엔리케스는 피와 유령으로 공포 소설이라는 장르에 걸맞은 분위기를 조성하면서도,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매력을 작품에 녹여내고자 했다.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적·정치적인 현실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풍습이나 민간 신앙 등이 소설의 주요한 구성 요소로 기능한다. 또한 작가는 각 소설마다 여성의 시선을 활용해 더욱 예리하게 공포와 광기의 세계를 구축하였다. 작가 본인의 표현처럼 이 책은 저주받은 집과 같다. 호기심 때문에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을 수없고, 이미 발을 들여놓은 이상 하나의 단편만 읽고 돌아서기엔 영 찝찝함이 남는다.


작가 마리아나 엔리케스는 일상적인 장면을 예고도 없이 공포스럽고 기괴한 장면으로 바꾸어 놓는 데 능숙하다. 유령은 소설 속 인물들이 이미 알고 있던 얼굴을 하고 그들 앞에 등장하고, 사소한 물건 하나가 저주처럼 들러붙기도 하며, 굳게 믿어왔던 진실들을 순식간에 거짓으로 전락시킨다.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는 원한과 악의로 가득 차 있다. 안락하던 삶이 무너지고 제모습을 드러낸 도시의 광기는 때로 자신의 자유를 위해 타인을 제물로 삼는다.


이 책은 총 12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작품은 일상적인 모습으로 나아가다 돌연 불안하고 위태로운 얼굴로 독자를 향해 돌아선다. 마리아나 엔리케스가 일으킨 지각변동은 그러나, 완전한 파멸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 12개의 세계는 독자를 빠른 속도로 두려움의 수렁으로 몰아넣은 뒤에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작품이 끝나면 이전 작을 위한 증거가 남아있기라도 할 것처럼 또 다른 작품에 빠져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리아나 엔리케스의 단편들이 유기적 구조로 결합되어 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마리아나 엔리케스는 남아메리카적인 요소와 공포 소설의 장기들을 결합하여 단편 하나하나에서 최대의 몰입감을 선보인다.


갑작스러운 유령의 등장과 반전들은 소설에 흥미를 더한다. 원한과 악의와 함께 태어난 유령들은 뿌리 깊이 썩은 도시의 광기를 상징하는 상징물로서 평생 우리의 곁을 배회하며, 우리의 잘못을 징벌할 것처럼 보인다. 이 책을 둘러싼 유령들의 악의와 원한은 우리를 끈질기게 붙잡는다. 가장 가깝고 친숙한 얼굴로 다시 태어난 유령들의 출현은 일상 속에 나타난 하나의 경고이자 계시처럼 작동한다. 이 책은 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공포를 통해 어떤 비밀을 토로하고자 했을까.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유령들의 연이은 등장은 더 거대한 비밀의 폭로를 예견하게 한다.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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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0-17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목이 독특해서 눈길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