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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렘 셔플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0월
평점 :
『할렘 셔플』을 읽게 된 건 순전히 작가 콜슨 화이트헤드의 전작 『니클의 소년들』 때문이었다. 플로리다 주 소년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니클의 소년들』은 사회적 고발을 시도함과 동시에 뛰어난 몰입감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소년원의 아이들에게서 1960년대의 할렘 가로 작가의 시선은 옮겨간다. 콜슨 화이트헤드의 두 작품은 흑인의 사회적 위치를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닮았지만, 할렘의 흑인들은 고립된 공간 안에서 자신들만의 질서를 구축하고, 또 이제까지의 보편적인 질서를 전복시키려고 분투한다는 점에서 다르기도 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콜슨 화이트헤드가 끊임없이 시도하는 이야기들이 과거로부터 왔지만, 현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차별과 배제, 억압의 역사는 흑인에게서 그치지 않고, 점점 더 많은 인류 사이를 갈라놓는 핵심적인 언어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니까 『할렘 셔플』은 할렘의 가구상 '카니'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다른 모든 책들처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가 매일 보는 장소들, 그의 문 앞에 있는 가게들, 그가 어릴 때부터 지나쳤던 곳들이 가면이었음을 알려주었다. 입구는 다른 도시들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아니, 하나의 커다란 비밀 도시로 들어가는 여러 개의 문들이었다. 늘 가까이, 그가 아는 모든 것들에 인접해서, 바로 아래에 있는 도시. 어디를 봐야 할 지만 안다면 금방 찾을 수 있는 곳.(370쪽)
할렘에서 사람들은 "세상이 무심하고 잔인한 곳이라는 걸 믿는" 단계에서 더 나아가 "위험한 산비탈, 굶주린 골짜기와 협곡, 수많은 정글의 위험 속에서 매일 그 증거를 마주(114쪽)"한다. 최악의 우범지대로 손꼽히는 할렘의 질서는 강도, 폭력, 마약 등의 행위로 구축 혹은 유지된다. 모두가 범죄를 일삼는 지역 안에서 자신만 순결하다고 주장하기엔 무리가 있는 법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범죄 세계의 일부가 되어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가구상 '카니' 또한 마찬가지의 경우다. 폭력적인 범죄자 아버지 밑에서 자란 '카니'는 자신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보다 어디로 갈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 결과물이 바로 '카니'의 가구 판매점이고, 평범한 행복을 일깨워 주는 그의 가족들이다. 하지만 스트라이버(노력가)와 범죄자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할렘에서 '카니'는 아주 손쉽게 할렘의 법칙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부패할 대로 부패한 공간 안에서 자신의 태생을 이겨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카니'의 순진한 믿음과는 다르게.
다 함께 협력하면 우린 그들의 사악한 체제를 전복시킬 수 있어요. 이것은 백인 세계 안의 흑인 국가 지도이자 더 큰 것의 일부이지만,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나름의 구조를 갖고 있어요. 우리가 서로를 돕지 않으면 우리는 저 바깥에서 패배하게 될 거예요.(414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렘 셔플』은 계속해서 할렘의 흐름을 바꾸기 위한 시도를 한다. '카니'의 개인적인 원한에서 비롯된 복수들은 결국 할렘을 더 좋은 곳으로 바꿔놓고 싶은 할렘 가 모든 이들의 열망이자 시위로 해석된다.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범죄자들이 '카니'의 새로운 앙상블의 일원이 된다는 점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언제든 자신들을 찌부러뜨릴 수도 있는 존재들의 밑바닥을 뒤집어 세상에 드러낸다. 자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그들의 평범한 일상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개별적인 '조그만 존재'들은 결집을 통해 세상을 바꿀 목소리를 낸다. 그들의 저항은 애초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페퍼'의 말처럼 "소박하게 시작해서 점점 위로 올라가는 것도 괜찮(453쪽)"을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할렘은 분노한 시민들의 시위로 완전히 전복되었다. 할렘 시민들의 참아왔던 분노와 희망은 길거리 위에 처참한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그리고 새롭게 무언가가 피어오를 수도 있었을 땅 위에 2020년 또 다른 불행이 탄생했고,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시위는 몇몇 지역에서 굉장히 폭력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더 나아가 2021년 코로나19 사태로 인종 간의 배척 상태는 더욱 심화되었다. 1964년으로부터 별다른 진전도 없이 2021년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역시 개탄스럽다. 전 세계적 위기를 함께 겪은 뉴노멀 시대에 우리는 또 다른 할렘을, 미국을, 아니 세계적인 양상을 목격할 수 있을까. 『할렘 셔플』이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과거만의 공포처럼 여겨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출판사 지원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