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 밀라논나 이야기
장명숙 지음 / 김영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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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유저로 살아가면서 유튜버이자 패션 디자이너인 '밀라논나'를 모르기란 쉽지 않다. 특유의 담백하면서도 화려한 당당함은 어느 곳에서든 눈길을 사로잡는다. 늙음과 추함이 동일선상에 있지 않다는 것을 절감하게 해주는 '밀라노 할머니'가 영상에 다 담지 못한 말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한 권의 책을 통해 만난 논나는 내가 이제까지 알던 여성 어른의 모습과 달라도 한참 다르다. 내 주변의 여성 어른들은 같은 여성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잔인했고, 아래 세대의 여성에게 그녀 자신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강요했다. 윗세대의 여성은 최대한 느린 걸음으로 도달하고 싶은 미래였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선량한 사랑의 서사를 이어가고 싶다."라고 말하는 논나로부터 미래에 관한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한다. 진심으로 젊은 세대와 공명하며, 또박또박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는 그녀 앞에서 어떻게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다'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을까. 앞선 발걸음을 무작정 따라 걷고 싶다. 그것이 정녕 내리막길이라고 해도 나는 여전히 '축제'의 기운을 생생하게 느낄 것이다.


"Live and let live."


모든 문장마다 밀라논나가 삶의 단독자로서 살아가고 있음을 또렷이 느낀다. 자신의 삶을 살뜰히 돌보면서도 더 좋은 세상을 위해 힘껏 나서는 그녀의 열정과 의지는 번번이 독자를 놀랍게 한다. 온갖 경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과 세상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논나는 삶에 대해 불평하는 일이 거의 없다. 세상이 자신을 실망시킬수록 그녀는 반듯이 허리를 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을 찾아 나선다. 연이은 악재로 무기력함과 열패감에 휩싸인 젊은 세대에게 논나가 가진 삶의 태도는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내 능력 밖의 일들에 안절부절하지 않고, "그래, 산이라면 넘고 강이라면 건너자. 언젠가 끝이 보이겠지." 하는 초연한 자세로 삶을 대하는 힘이 길러진다. 실제로 이 책을 읽던 며칠 동안 회사에서 일이 어긋날 때마다 논나를 떠올렸다. 논나의 얼굴을 떠올리고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 아니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면서 최선을 다해 삶을 쌓아나가자 싶어졌다.


"웬만한 일간지 독자 수보다 많은 거예요. 더구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댓글을 올리잖아요."


논나는 선량한 사랑의 서사를 글로 기록함으로써 '죽을 때까지 도전하며 살고 싶다'라는 자신의 의지를 다시 한번 확고하게 입증해 보였다. 논나뿐만 아니라, 요즘 즐겨보는 예능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여성 댄서들까지…각자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 두 손 두 발 다 들고 냅다 응원하고 싶어진다. 이토록 마음을 술렁이게 하는 사랑과 정열의 서사가 아주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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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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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아니,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말할 거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300쪽)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에 관해 묻고 답하고자 했던 『클라라와 태양』을 읽고 난 후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글에 매혹되어 있던 때에 중고서점을 방문했다가 『남아 있는 나날』을 발견하게 되었다. 『클라라와 태양』과 마찬가지로, 『남아 있는 나날』 또한 흡인력 있는 문체가 돋보인다. '달링턴 홀'의 집사로 일생을 살아온 '스티븐스'가 여행길에서 자신의 과거를 반추해 보는 이 책은 자칫하면 지루해지기 쉽지만, '가즈오 이시구로'는 특유의 문체로 끝까지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독자를 이끈다.


'달링턴 경'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 온 집사 '스티븐스'는 새로운 주인인 '패러데이' 어르신의 호의로 6일간 여행을 떠나게 된다. 여행길에서 '스티븐스'는 아버지 세대부터 이어져 온 집사로서의 삶을 떠올리며, 위대한 집사란 무엇인지 위대한 집사의 근간이 되는 품위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전문가로서의 실존'을 위해 '사적인 실존'을 철저하게 포기한 '스티븐스'의 일대기를 듣고 있자면 절로 혀를 내두르게 된다. '사적인 실존'을 보호하기 위해 투쟁해 온 우리의 역사가 무의미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그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일말의 반항도 없이 오로지 주인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다. 주인을 향한 신뢰와 복종을 통해 인류에 이바지함으로써 자신의 위대함을 입증할 수 있다고 굳게 믿기 때문에 세상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이다.

'스티븐스'는 주인과 집사 간 관계가 존속될 수 있도록 떠받치는 굳건한 기둥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그는 평범한 사람에게는 '확고한 소신'을 기대할 수 없으며, 자신의 소신대로 세상만사를 논의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티븐스'나 우리 같은 이들에게는 오로지 명령에 복종하고 상위 포식자의 기대에 부응할 만큼의 '품위'만이 허락된다.


당신은 어떤가요, 스티븐스 씨? 달링턴 홀로 돌아가면 당신에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요?(290쪽)

'스티븐스'가 삶에 대해 느끼는 승리감은 주인의 선함과 위대함을 통해서만 획득이나 유지가 가능하다. 주인인 '달링턴 경'의 행보에 어떠한 이견도 없었던 '스티븐스'는 자신이 세상의 위대한 중심축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달링턴 경'의 명성이 세상의 무수한 비난에 부딪히면서 '스티븐스'는 생전 처음으로 인생의 황혼 녘에 접어든다. 나이와 관계없이 주인의 명성에 따라 '스티븐스'의 낮과 밤이 결정되어 왔던 것이다. 6일간의 자유는 '달링턴 경'이라는 찬란한 태양이 저물고 난 후 찾아온 저녁을 '스티븐스'가 천천히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스티븐스'도 과거의 영광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추억에 젖어 자신의 현재에 공허함을 느낀다. 이제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달링턴 경'에게 모두 주어버렸으니 자신에게는 품위를 포함해 그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다고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결국엔 과거를 훌훌 털고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의 삶을 긍정하면서 '스티븐스'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일과 분리된 자기 자신으로서의 삶이 가진 가능성을 발견한 '스티븐스'의 삶은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링턴 홀로 돌아간 '스티븐스'에게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삶의 허망함과 상실감을 딛고 다시 태어난 그에게 남은 모든 나날이 어떤 색채를 띠게 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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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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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연민의 늪에 빠진 인간은

얼마나 위협적인가


생생한 서사로부터 느껴지는

숨 막히는 두려움과 공포

인간은 자신의 믿음에 따른 우주를 가진다. 결함도 결핍도 없는 완전성이 아내의 우주였다.(115쪽)

『7년의 밤』, 『28』, 그리고 『종의 기원』 등의 작품을 통해 튼튼한 마니아층을 구축해 온 작가 정유정의 최근작 『완전한 행복』은 여전히 놀라운 흡인력과 압도적인 생생함을 자랑한다. 실제로 벌어졌던 한 사건이 『완전한 행복』 위에 겹쳐지면서 독자들은 '우혜리'라는 소설적 공간 안으로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간다. 께름칙한 되강오리의 울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오는 그곳에서 '신유나'라는 이름의 여성이 등장한다. '신유나'는 사람들을 곧잘 매혹시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마치 신처럼 군림한다. 그녀가 만들고자 하는 세상은 "'행복'이라는 신화를 이룬 한 가족의 불가침 왕국(235쪽)"이다. 자신이 원하는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 그녀는 주저 없이 불행의 싹을 제거한다. 그녀는 오로지 자신의 시선으로부터 불행과 행복을 구분한다. '완전한 행복'을 향한 강박을 가진 '신유나'는 종종 타인에게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신유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행복을 위해 최선으로 여겨지는 선택을 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신유나'의 시선에서 '불가침의 왕국'으로 가는 길은 딱 하나뿐이고, 이를 알고 있는 이는 물론 그녀 하나뿐이다. 자기애와 자기 연민의 늪에 빠져 앞뒤를 분간할 수 없는 '신유나'를 도대체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그녀의 기준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개개인에게 주어진 선택의 기회가 모조리 '불행의 가능성'으로 전락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아니, 애초에 그녀가 원하는 '완전한 행복'은 우리 삶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만 할까. 막중한 책임을 떠안고 낱낱이 설명을 한 후에 그녀를 늪으로부터 구원하려면, '신유나'라는 인물이 '구제'될 가능성을 지닌 인물이어야만 한다. 인간은 본래 선하게 태어난다는 믿음 아래 그녀를 향해 손을 뻗어야만 한다.





『완전한 행복』을 읽던 어느 날 한 아이가 아버지의 손에 질질 끌려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완강한 손에 의해 끌려 내려오는 아이의 모습은 무척 위태로워 보였다. 역시나 아이는 마지막 계단에서 미끄러져 주저앉아 울었다.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울고 있는 아이를 보호하겠다며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들 흘끔 쳐다보고는 그 장면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가던 길을 마저 갔다. 돌아오는 길에 왜 갑자기 '지유'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지유'는 '신유나'에 의해 끝없이 조종을 당하고, 엄마의 숨 막히는 온갖 지시에서 이탈한 경우 마땅히 처벌을 받을 각오를 한다. 어릴 때부터 줄곧 그렇게 자라온 아이는 자신이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다. 지나치게 어른스럽고 얌전한 아이에게서 아무도 '신유나'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타인의 불행에 선뜻 개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우리가 잃어버린 얼굴들을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유'가 '신유나'의 울타리 안에 자신을 가둘 때마다 죄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런 아이를 구원하는 건 자신 안에 있는 '요망한 생쥐'뿐이다. 아이는 "또 나쁜 꿈 꾸면 힘껏 이모를 불러.(171쪽)"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준 '재인 이모'를 위해 아이는 자신을 이겨내고 그렇게 어른이 된다. 어쩌면 '지유'가 소설 속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인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필요한 때에 무의식적인 복종의 사슬을 끊고 유일한 세상과 맞서 싸운 아이의 용기가 소설 안에서 환하게 빛난다.


'지유'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역시 '신유나'의 내면 속 어린아이를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신유나'는 어린 자신이 겪어야만 했던 불행에 지나치게 골몰해 있다. 저마다 불운의 시간들을 겪고 어른이 되는 법이지만, 나르시시스트인 '신유나'에게는 자신의 불행만이 존재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 갇혀 '신유나'는 끝내 완전한 어른이 되지 못했다. 어릴 때 무언가에 크게 시달렸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건 '신유나'의 언니 '신재인'도 마찬가지였다. '신유나'는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이미 버려졌다는 낭패감에, '신재인'은 동생을 향한 죄책감과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자신을 가뒀다. 하지만 잘못된 점을 깨닫고 이를 바로잡으려 한다는 점에서 '신재인'과 '신유나'는 크게 다르다. '신재인'이 어두웠던 과거의 기억을 적극적으로 떨쳐내면서 새롭게 보호자로서의 지위를 획득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건 '신재인'이 만들어낸 왕국은 '신유나'가 신앙처럼 여기던 '완전성'과는 거리가 먼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이뤄낼 이후의 삶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며 삶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다만 늘 기억해야 한다. 우리에겐 행복할 권리와 타인의 행복에 대한 책임이 함께 있다는 것을.(522쪽, 작가의 말)


『완전한 행복』은 자신의 삶만을 애착하던 유아 시절로부터 벗어나 타인의 삶과 섞이는 사회화 과정을 거쳐 타인의 행복에 긍정적인 방식으로 관여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진리를 깨닫는 인류의 보편적인 서사처럼 읽히기도 한다. 타인의 행복에 있어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번번이 잊는다. '신유나'의 말과 달리 '완전한 행복'은 뺄셈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그건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와 타인의 권리를 향한 배려로부터 온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자기 자신의 특별함과 행복에만 강박적인 관심을 가지는 태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자신의 평범한 고유성을 타인의 그것에 얹어 지속적인 덧셈을 해나가는 것, 그렇게 더해도 불완전한 왕국만이 남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게 이 책이 알려주는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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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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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건축에 대한 애정과 존경으로 빚어낸

'마쓰이에 마사시'의 놀라운 데뷔작!


졸업 후 첫 선택의 기로에 놓인 건축학도 '사카니시 도오루'는 보통의 동기들과 조금 다른 행보를 보인다. 건축이 한낱 공산품으로 제작되고 소비되는 시대 속에서 그는 대학원에 가거나 박봉을 감수하면서 수련을 하는 등의 현실적인 선택지를 마다한다. 그 대신 '무라이 슌스케'의 설계사무소에 들어가려는 궁리를 하고 있다. 고도경제성장의 흐름에서 벗어나 건축가로서 장인 정신을 발휘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과시하지 않고 이용자의 편리 또한 세심하게 배려할 줄 아는 '무라이 슌스케'의 모습은 '사카니시 도오루'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는다. 고즈넉한 전통과 현대의 모던함을 조화롭게 이용할 줄 아는 '무라이 슌스케'는 커리어적인 면이나 정신적인 면 모두에서 스승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무라이 설계사무소'는 선망의 대상이 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지만, 단 한 가지 문제는 그런 곳에는 늘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의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잃을 게 아무것도 없었던 '사카니시 도오루'의 도전은 '무라이 설계사무소' 입사라는 기적을 만들어 낸다.


'사카니시 도오루'까지 합류한 '무라이 설계사무소'는 사실 큰 경합을 앞두고 있었다. 공공건축 경합에는 좀처럼 참여하지 않던 '무라이 슌스케'가 국립현대도서관 경합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다들 의외라고 여겼지만, 그건 '무라이 슌스케'가 건축가로서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번 도서관은 권위의 압박은 배제한 채로 철저하게 이용자들과 건축 사이의 공명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모처럼의 경합 참가로 분주해진 '무라이 설계사무소' 식구들이 함께 가루이자와의 여름 별장으로 떠나면서 이야기는 점점 고조된다.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시선을 따라 마주한 여름 별장의 풍경은 작은 소리 하나까지 더없이 생생하고, 독자들은 1980년대 아오쿠리 마을로 자연스럽게 소환된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막힘없는 필체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우리는 '무라이 설계사무소'의 일원으로서 실재한다. 또한, 끝까지 자신의 건축에 책임을 지고, 거기에 거주하게 될 고객들의 마음에 오래 남을 건축을 설계하는 '무라이 슌스케'의 디테일들을 '마쓰이에 마사시'의 문장을 거쳐 직접 손끝으로 감각하고 있는 기분이 된다. 사소하고 넉넉한 '마쓰이에 마사시'와 '무라이 슌스케'의 마법을 어떻게 외면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무라이 설계사무소'에서 차츰 성장해 나가는 '사카니시 도오루'를 지켜보는 것도 무척 즐겁다. 확실한 외유내강형의 '사카니시 도오루'는 누구라도 부러워할 법한 조직의 일원으로서 망망한 바다를 헤치며 어설프게 나아갔다. '무라이 슌스케'를 따라 건축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키워가는 '사카니시 도오루'는 설계도면을 수집하며 건축에 대한 관심을 키웠던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현신처럼 보이기도, 오늘도 어디에선가 신입 막내의 탈을 벗기 위해 노력하는 앳된 사원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은 사무소 안에는 없고, 여러분의 손안에 있습니다.(401쪽)

언제까지나 '무라이 설계사무소'의 막내로 존재할 것 같았던 '사카니시 도오루'가 자기 사무소를 운영할 만큼 성장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이제 그는 눈으로 바쁘게 '무라이 슌스케'의 움직임을 좇던 20대에서 벗어나 "어떻게 끝내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417쪽)"라며, 자신의 끝과 그 이후로 고민하는 어른이 되었다. 한 사람의 처음과 끝자락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작가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와 닮았다. 그러나 거기에 '건축'이라는 낭만과 현실이 끼어드는 순간 '마쓰이에 마사시'의 글은 좀 더 다양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건축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해 투과된 각기 다른 인생과 풍경을 한번에 흡수한 기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체할 것 같은 답답함이 일지도 않았는데, 거기에 가루이자와에 위치한 여름별장의 부드러움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은 이 책이 좋았다,고 한 줄로 적었으면 될 일을 이만큼 질질 끌게 되었다. 

집 안에서만 계속 살 수 있을 만큼 인간의 내면은 튼튼하지 못해. 마음을 좌우하는 걸 자기 내부에서가 아니라 바깥에서 찾고 싶다, 내맡기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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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의 맛 문학동네 청소년 48
조남주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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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였기에 가능했던 눈부신 시간들

천천히 답을 찾아가는 청소년의 성장서사





초록색일 때 수확해서 혼자 익은 귤, 그리고 나무와 햇볕에서 끝까지 영양분을 받은 귤. 이미 가지를 잘린 후 제한된 양분만 가지고 덩치를 키우고 맛을 채우며 자라는 열매들이 있다. 나는, 그리고 너희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161쪽)

작가 '조남주'의 청소년 소설 『귤의 맛』은 '다윤', '소란', '해인' 그리고 '은지' 개개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무리로부터 떨어진 아이들 하나하나가 세상을 견디기엔 너무 벅차 보인다. 진학, 친구관계 등을 둘러싼 개인-개인, 혹은 개인-사회 간의 충돌은 한국에서 청소년기를 지낸 이들에게는 몹시 익숙한 풍경이다. 한국 사회-학교-부모-또래집단으로 이어지는 사회구조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아이들은 세상이 가리킨 방향으로 목숨을 걸고 뛴다. 더 나은 단계를 위한 필수적인 절차로 여겨지는 곳이 소설 속에서는 바로 '다난동'이다. 아무도 오려고 하지 않는 '신영진'에서 벗어나려는 열망을 품지 않은 아이들은 열패감과 좌절감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다난동'으로 가기만 하면 '신영진'에서와는 전혀 다른 단계로의 진입이 가능한 듯 보였지만, 막상 별천지에 가서도 아이들은 자신과 남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자라고 있는 건 분명해 보였지만, "자연스러운 방향과 속도로 변하고 있는 걸까?(61쪽)" 아이들은 확신할 수 없었다.


고립된 개체에 불과했던 아이들은 '영화부'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를 알게 되고 '우리'라는 이름 아래에서 하나로 거듭난다. 친구들과 함께 '우리'가 되기 이전에 아이들은 가정 내에서 종종 배제당하는 위치에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 직접 결정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할 겨를도 없이 어른들만의 리그는 시작되었고, 피보호자로서의 아이들은 주체성 상실과 함께 자신감을 잃었다. 그러나 친구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을 때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타인과의 절차에 참여하면서 무언가를 잃거나 또 얻는다. 부모의 보호,라는 껍질을 벗겨 놓고 보니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어른스러웠다. 자신이 얻을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순간들에 대한 소중함을 알았고, 스스로에게 가장 최선인 선택들을 하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했다.




청소년 문학을 읽을 때마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귤의 맛』은 특히 성인이 된 이후의 삶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건 역시 어른이 되어서도 자연스러운 방향과 속도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묻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에는 계획이 없어도 천천히 답을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무 살이 넘어가면, 어딘가에 취업하면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던 인생의 답은 어디에도 없고,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만을 나이가 들수록 뼈저리게 깨달을 뿐이다. 나만 답을 모르는 상황 속에서 청소년기와는 전혀 다른 생존에 대한 위협을 느낀다. 이제는 답 같은 걸 찾으려는 낭만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라고, 이미 모든 게 늦어버렸다고 스스로를 재촉할 때마다 나보다 한발 앞서 나간 인생의 선배들은 "천천히 답을 찾아가면 된다.(205쪽)"고 여전히 말한다. 그러니까 『귤의 맛』은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유효한 소설이다. 결국엔 지긋지긋한 인간관계 속에서 삶의 놀라움이나 기쁨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 또한 마찬가지다.


작가 '조남주'는 부모님의 이혼 후 엄마와 할머니의 손에 자란 '은지'나 바쁜 엄마를 대신해 집안 남성들의 끼니를 챙겨 온 '해인' 등을 통해 여성으로서의 삶을 묘사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사실 『귤의 맛』에서 그 점이 제일 좋았다,고 덧붙이고 싶다.

알고 있는 청소년이 한 명도 없어서 서러울 지경이다. 좀 더 어린 내가 눈앞에 서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귤의 맛』은 내가 내린 모든 선택이 결국에는 전부 옳았다고 말해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과거와의 화해는 좀 더 단단한 여성이 되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다독인다.

당연하지. 멀쩡한 두 손 갖고 자기 밥도 못 차려 먹는 인간들은 다 등신 새끼야. 너도 계속 등신 새끼로 살고 싶지 않으면 나와서 상 펴고 반찬 꺼내.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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