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정치는 왜 퇴보하는가 - 청년세대의 정치무관심, 그리고 기성세대의 정치과잉
안성민 지음 / 디벨롭어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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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메일로 <청년정치는 왜 퇴보하는가>라는 책에 대한 서평을 제안받았다. 메일로 온 제안은 처음이었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수락했다. 내가 한국에서 사는 '청년'이고, 마침 우리 세대를 대변해줄 정치인이 없다는 데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표지에 외로운 청년 하나가 그려져 있다. 책에서도 자신의 권력을 내려놓지 않으려는 기득권으로 인해 정치판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지 못하고 멀어져 가는 청년 세대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에, 책을 잘 나타내는 표지 디자인이라고 평할 수 있겠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제목에서 '퇴보'라는 단어도 '청년정치'와 마찬가지로 주목받았으면 좋았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저자 소개가 마음에 걸린다. 작가의 개인적 인생사보다 저자가 어떤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고, 왜 우리가 이 책을 집어 들어야만 하는지 알려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인터넷 검색창의 도움을 받으려고도 해봤는데, '안성민' 작가에 대한 정보를 아예 얻을 수가 없었다.

요즘 2030세대를 분석하고 특징을 잡아내는 책들이 많아졌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지고 자신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행태를 보이는 젊은 세대를 기성세대가 끊임없이 연구한다. 다른 책들을 다 집어던지고, 이 책에 당장 뛰어들어야만 하는 이유를 솔직히 나는 찾지 못했다. 청년 세대의 삶이 얼마나 불평등을 겪고 있고, 나아지려고 해도 나아지지를 못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은 이젠 질릴 때가 되었다. 더 이상 청년 세대를 연구하는 책은 그만 나와줬으면 좋겠다. 내가 이 책에 바라던 건 뚜렷한 대안이고, 그래서 우리가 정치판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우리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지를 알고 싶었다. 내가 계급 간의 이동에 실패하고, '흙수저'로 남게 되리라는 예언은 듣고 싶지 않다. 청년 세대가 앞으로 설정해야 할 방향에 대해 더 비중을 두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 사회에 문제가 있는 것은 자명한 일이고, 어른들로서도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을 테니, 좀 더 움직임이 자유로운 우리가 '국정 농단' 사태 때처럼 세상을 바꿔볼 수 있도록 방법을 제시해주면 좋겠다. 사회에 대한 불만만 터뜨리지 말고, 세상과 싸울 수 있도록 자극제가 되어주면 좋겠다. 어른들이 사회가 어떻다 말해주지 않아도, 이미 온몸으로 불평등함을 느낀다.

또한 청년 세대가 정치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는 정치에 관심을 가질 시간이 없다는 것도 알아주었으면 한다. 우리가 '연예'부분에만 관심을 쏟는 건 잠깐의 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치'에 머리를 쓰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줄어만 가는 취업률 속에서 우리는 할애할 시간이, 뇌 속 공간이 남아있지 않다. 투표가 가진 힘 이외에도, 청년 세대가 세상을 변화시킬 만한 대책을 배우게 된다면, 자연스레 똘똘 뭉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개인주의'를 지향하지만, 계기만 마련되면 신념을 위해 함께 싸울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이 책의 좋은 점을 떠올려 보자면, 몇몇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그래도 저자가 '청년'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주려고 했다. 뒤로 갈수록 격정적으로 기성세대를 비판하고, 청년 세대를 옹호했다. 청년 세대에 속하는 나로서도 기성세대가 이 책을 본다면 불편함을 느낄 것 같았다.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기 때문이다. 다음에 이런 종류의 책이 나올 거라면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를 두루 이해하고 아우르는 글을 적을 만한 사람이면 좋겠다. 기성세대가 분명 권력에 지나치게 집착할 때도 있지만, 몇몇 분야에서는 확실히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아예 정치에서 물러나라고 소리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가 가진 모든 장점들을 조합해 훌륭한 대안을 내놓는 다음 저자를 기대해 본다. 그래야만 한 뉴스에서 평한 것처럼 진정 "'청년'과 '기성세대'가 모두 읽을만한 필독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기성세대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청년 세대는 어른들의 자리를 뺏기 위해 노력하는 애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들이 아주 행복한 시절을 보내길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신념으로 삶을 버텨낼 수 있도록, 어른들이 안락한 노년을 보내는 모습을 우리로서도 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단지 두 발을 디딜 만한 자리, 딱 그것뿐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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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 - 삶의 세밀화를 그린 아메리칸 체호프 클래식 클라우드 13
고영범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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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에도 고기는 강을 향해 올라오고 있다./이봐, 나는 살 거야, 그리고 행복할거야./어떤 결정을 내리든 간에.

논쟁, 울트라마린, 111쪽

11월부터 ‘클래식 클라우드 인생 여행단‘에 참여하게 되었다. ‘클래식 클라우드(이하 클클)‘ 시리즈는 박식한 전문가들의 해설을 통해 예술계 거장들의 삶을 만나볼 수 있는 시리즈다. 현재 내가 읽은 <레이먼드 카버>를 포함하여, ‘클림트‘, ‘헤밍웨이‘, ‘푸치니‘ 등 다양한 거장들의 책이 13권까지 나온 상태다. 앞으로 또 어떤 예술가들의 삶을 엿보고, 그들의 작품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클림트‘의 작품들을 굉장히 좋아해서 이미 출간된 <클림트>는 꼭 읽어보고 싶다.

일단 만듦새부터 살펴보면, 책 표지 디자인이 무척 감각적이다. 표지 디자인 그림은 ‘레이먼드 카버‘가 직접 알코올의존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던 친구 ‘알프레도 아레구인‘이 그린 것이다. ‘카버‘의 초상화와 연어들을 그려 넣은 것인데, 생전에 낚시를 즐겼다는 저자와 잘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그림이 독자의 마음에 드는지와 상관없이, 친구를 위해 제작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애틋함이 느껴진다. 저자 소개도 적절하게 쓰여 있다. ‘레이먼드 카버‘의 삶과 인생이 요약되어 있는데, 사실 저자 소개만 읽어도 책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어쨌거나, 이번 생에서 원하던 걸/ 얻긴 했나?/ 그랬지./ 그게 뭐였지?/ 내가 사랑받은 인간이었다고 스스로를 일컫는 것, 내가/ 이 지상에서 사랑받았다고 느끼는 것.

말엽의 단편, 폭포로 가는 새로운 길, 122쪽

책 <레이먼드 카버 X 고영범>은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인생사와 작품 세계를 ‘고영범‘ 전 교수가 설명해 놓은 것이다. ‘카버‘의 작품들도 적절히 수록되어 있어 흥미를 배가 시키고,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고심하고 연구를 거듭했는지가 느껴진다. ‘레이먼드 카버‘가 살았던 지역들의 당시 상황까지 설명을 더해 ‘카버‘를 이해하는 데 더욱 도움이 된다.
‘레이먼드 카버‘의 인생은 ‘가난‘이라는 한 가지 키워드로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금주를 하고, <대성당>이라는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두기 전까지, 그는 빈곤했고, 가족들을 데리고 이사도 자주 다녀야 했다. 사실 그의 가난에는 그 스스로의 책임도 존재한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들어와도 알코올에 의존하느라 좋은 기회를 다 걷어차버리고, 고질적인 의심과 불안증 때문에 잘나가는 아내에게 ‘대학‘과 ‘가정‘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라고 강요하기도 한다. 특히 아내 ‘메리앤‘을 괴롭히는 ‘카버‘를 보면서 분노가 들끓었다. 총명한 여성에게 공부할 기회를 앗아가다니. 내가 그들의 가정사를 전부 알 수는 없지만, 제발 ‘메리앤‘이 ‘가정‘을 선택하고 주저앉지 않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르겠다. 결국엔 남편과 아이들에게 모든 걸 양보했지만.

<레이먼드 카버>에서 편집자와 작가와의 관계에 대한 논쟁도 수록되어 있어 ‘출판‘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반가웠다. ‘레이먼드 카버‘의 성공 뒤에는 편집자인 ‘고든 리시‘가 있었다. 애초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고든 리시‘가 ‘카버‘의 원고를 40%나 들어내고 몇 작품은 결말까지 아예 바꿔버렸다. 하지만 이 작품은 세상에 나온 후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이후 ‘고든 리시‘에 의해 ‘카버‘의 작품이 크게 수정되었음이 만 천하에 공개되면서, 여러 논쟁이 일어났다. 편집자가 작품에 얼마나 관여하는지와 상관없이 작품만 괜찮아서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다,라는 입장도 있었다. ‘레이먼드 카버‘도 이쪽에 서있었고, 살기 위해 글을 써야 했기 때문에 ‘고든 리시‘를 참아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론은 ‘리시‘의 행동이 과하다고 평가했다.
내가 ‘출판‘에 가지고 있는 건 작은 관심일 뿐이고, 그 업종에 종사하고 있지 않으므로 깊은 의견을 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내가 보기에도 ‘고든 리시‘라는 편집자의 행동이 지나쳤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행위도 결국 사람들의 눈에 띄어야 하는 일이고, 그를 위해 작가나 편집자 등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레이먼드 카버‘가 ‘고든 리시‘를 참아주었던 것뿐이니, 작가로서도 원치 않는 일이었고, ‘카버‘의 작품을 그대로 내보낸다고 해서 그것도 사랑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일인데, ‘리시‘가 자기의 역량만 믿고 그런 행동을 펼쳤다는 건 거만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캡틴 픽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당시에 편집자로서 뛰어난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내겐 ‘고든 리시‘의 말만 정답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책을 다 읽고 나니까, ‘레이먼드 카버‘가 안정적이던 시절에 써 내려간 <대성당>이라는 작품에 호기심이 동한다. 가까운 시일 내에 구매해서 읽어볼 작정이다. 아, 그리고 희한하게도 ‘안톤 체호프‘라는 작가에 빠져들게 되었다. ‘카버‘가 ‘체호프‘와 닮은 구석이 여러 군데 있어서 ‘체호프‘의 이름이 숱하게 등장한다. 그런데 읽는 내내 자꾸 마주치다 보니까 그의 작품 세계도 궁금해졌다. 이름만 들어보고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이 작가의 작품도 읽어볼 계기가 만들어졌다.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는 늘 생각하지만, 사실 관심을 가지고 책을 빼내들기까지가 시간이 좀 걸리지 않나. 그런데 이렇게 작가의 인생사와 작품 세계를 읽어 내려가다 보니 자연스레 작품에도 친밀감이 형성된다. ‘클래식 클라우드‘ 다음 시리즈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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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없음의 과학 - 세계적 사상가 4인의 신의 존재에 대한 탐구
리처드 도킨스 외 지음, 김명주 옮김, 장대익 해제 / 김영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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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온라인 서점들 중에서 '알라딘'을 꽤 애용하는 편인데, <신 없음의 과학>이 이번 주에 추천하는 도서 중 한 권으로 선택되었고, 실시간 클릭 3위로 랭크되기도 했다(11월 14일 19시 기준). 이렇게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번 서포터즈 미션 도서로 선택하게 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내가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다는 이유가 더 컸다. 고등학교 때 꽤 큰 교회에 다녔을 적에, 사람들이 종교에 너무 심각하게 빠져있는 모습을 보고 좀 충격을 받아서 이후로는 어떤 종교도 따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나는 <신 없음의 과학>에 등장하는 학자들처럼 사람들이 종교를 그만 믿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오히려 모두의 신과 종교들이 내세우는 가치관을 존중하고 싶다. 종교에 지나치게 빠져서 전쟁을 일으킨다거나, 이성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그래도 기독교가 내세우는 박애주의나 불교가 가르쳐주는 번뇌를 내려놓는 자세는 실제로 삶에서 꼭 가져야 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신이 자신을 구원해줄 거라는 믿음이 없으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내가 신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모두에게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4명의 저자들-리처드 도킨스, 대니얼 데닛, 샘 해리스, 크리스토퍼 히친스-은 신무신론 운동이 동틀 무렵,

종교의 봉인이 풀릴 때 나타날 기사라는 뜻에서 '네 기사(Four Horsemen)'로 불린다.

최근에 천주교 신자 증가율이 둔화되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확실히 이전에 비해 종교가 매력을 잃게 된 듯하다. 이렇게 신이 실재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한 이들과 이미 무신론자로 살아가고 있는 독자들에게 '4명의 기사들'의 담화를 기록한 <신 없음의 과학>을 추천하고자 한다. 이 책은 종교의 모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책까지 펴낸 학자들이 모여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했던 내용을 기록했다. 특정하게 정해놓은 바 없이 이들은 2007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여 자신들의 생각을 펼쳤다.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2011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더 이상 그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었던 것이다. '무신론자'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생각이 모든 부분에서 일치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 무신론이 완전한 승리를 거둬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싹 다 사라져야만 하는지, 미켈란젤로가 만약 과학박물관 천장화를 의뢰받았다면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키지 못했을 것이라고 여기는지 등등. 세세한 부분들에서 그들 사이에서도 의견 불일치가 나타난다.

-결론적으로 모든 종교는 부패하고, 허위이고, 부정직하며, 유머가 없고, 위험합니다.

-(...)비이성의 위험을 우리가 결코 예상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본인이 단언할 입장에 있지 않은 사실을 단언하는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할 때 그 책임은 무한할 수 있습니다.

p195

다만 네 명의 저자들은 종교와 대비되는 입장에 서 있는 '과학'이 스스로의 무지를 인정하기 때문에 오만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또한 종교가 확실한 이성이 아니라 '믿음'에 근간을 두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신학자들이 본인들도 제대로 증명해 보일 수 없는 교리를 들먹거리면서 저지른 악행들을 생각하면, 그 악행들로 인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사람들을 떠올리면 교회가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고 보는 '리처드 도킨스'의 말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종교'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그걸 이용해서 무지한 시민들을 선동하려던 고위직 종교인들이 나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기독교 학교에서 다니면서 성경에 대해 줄곧 배웠지만, 가끔 터무니 없는-죽은 줄로만 알았던 예수님이 다시 살아난다던가 하는-이야기들이 적혀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 가상의 존재로 인해 삶을 버텨내고, 누군가를 도와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종교에도 분명 순기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저자들은 과학이 오만하지 않다고 설명했지만, 과학자들이 가끔은 자신이 실험을 통해 증명할 수 없는 사실들을 부정하기도 하는 것. 즉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것이 난 때때로 오만하게 느껴진다. 어떻게 미지의 세계에 대해서 그토록 확신을 내비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설령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해도, 우리 종교에 위협이 되니 저 종교를 박멸하라고 한다면 따를 가치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분명히 있다. 이상적인 가치관을 설정해주지도 않는 신을 뭣 때문에 열렬히 사랑하고 존경한단 말인가. 우리가 신을 믿고 따르는 것은 그들이 우리보다 더 나은 존재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확실한 무신론자도 아니고, 어떤 일에 대해서도 이 책을 쓴 네 명의 학자들처럼 강력하게 주장할 자신이 없다. 지금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 세상 너머에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들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고 가끔은 꿈꾸기 때문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으로서 '신'이 아예 없다고 소리칠 수도 없고, 조금은 이성적인 인간으로서 종교 서적들에 적힌 말이 실제로 벌어진 일이 맞는지, 누군가가 과학적으로 혹은 고증학적으로 증명해주길 바라고 있다. 다만 책을 완독하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신'이라는 이름을 빙자해서 자신의 권력에 이용한다거나, 종교에 집착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며 살아가는 일은 멈춰 주었으면 한다. 더 나은 세상으로 사람들을 이끌고자 했던 처음의 순수한 목적 그대로 종교가 이용되었으면 한다.

나는 거의 모든 종교가 감싸고도는 비합리주의의 잔재가 유감스럽지만, 구제하고 위로하는 역할을 잘 해내는 국가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인도적 임무를 인계받을 세속의 기구를 찾을 때까지는 교회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p68

작가 유발 하라리가 쓴 <사피엔스>가 또 한 번 떠오른다. 10월에 출판사 '김영사'의 sns에서 '사피엔스 완독 마라톤'이 진행되어 그 책을 한 번 더 읽을 기회가 생겼었기 때문에 내용이 아직도 좀 생생하다. '유발 하라리'도 종교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가상의 존재임에 불과함을 강조했다. 종교를 믿는 이들에게는 불편한 말이겠지만, 취할 것은 취하되 너무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으면 한다. 또한 자신이 믿는 바만 옳고, 다른 이들은 전부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은 종교가 가진 가장 큰 모순이다. 내가 기독교를 기피하게 만든 그 교회에서도 다른 종교를 비웃으면서 '사이비'라고 지적했고, 거기에 자리해 있던 모두가 똑같이 크게 웃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에서 가장 많이 설립되어 있는 교회도 한때는 박해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특정 종교를 거론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내가 가깝게 아는 것은 기독교뿐이기 때문에 이렇게 적게 된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나는 세상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선 안에 있다면, 누가 어떤 종교를 믿든 크게 관여하고 싶지 않다. 대한민국에는 '종교의 자유'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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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 골짜기의 모험 1 무민 골짜기의 모험 1
토베 얀손 지음, 천미나 옮김 / 온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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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상품으로만 보던 '무민'을 동화책으로 만나보니 좀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평면으로만 만나다가 입체적인 '무민'을 보고, 나름대로의 인생사(?)를 읊는 캐릭터와 맞닥뜨리니 친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급작스럽게 막 쏟아놓는 인생사를 듣는 것처럼 당황스럽다. 솔직히 난 '무민'에 대해서 진짜 아는게 하나도 없다. 이 캐릭터를 애초에 알게 된 계기 자체가 연신 귀엽다며 열광하던 동생때문이었다. '뭐, 곰돌이같고 귀엽긴 하네.'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무심하게 지나가던 캐릭터가, 이야기가 존재하는 동화책마저 가지고 있다니! 이건 꼭 읽어봐야겠다 싶었다. 난 새로운 걸 마주하는 데 무척 열성적인 사람이니까. 그런데 가볍게 읽고 넘기려던 동화책이 생각보다 깊이 있고, 의미 있는 말들을 많이 건네서 흠칫 하는 마음이 들었다. 책을 덮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동화책에서든 애니메이션에서든 어릴 때는 깔깔거리고 지나가던 장면들이었는데, 어른이 되고 나니까 참 그렇네, 하고 공감가는 대사들이 가득해서 놀란 적이 종종 있었다. 영화관에서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그런 대사들이 등장하면 주변에 앉은 어린 아이들의 반응을 살피느라 주위를 휘휘 둘러보곤 했었다. 물론 역시나 세상 즐거운 표정들 뿐이었다. 그걸 다 이해한다면, 어린아이라는 말이 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때로는 나이에 맞게 지내는 게 좋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요즘은 피규어를 모으고, 영화관에서 애니메이션을 관람하는 어른들의 행보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키덜트', 즉 아이와 어른의 합성어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다 큰 애가 왜 이래?"라는 꾸중을 듣던 때가 있었다. 나도 20살이 넘어서 디즈니나 픽사 애니메이션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엄마에게 혼난 적이 있다. 그 때 엄마의 대사도 비슷했다. "아니, 20살이 넘은 애가 뭐 이런 걸 보고 있어?". 그 때는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우물쭈물 거렸지만,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내 행동의 답을 찾아냈다. 어린 아이들이 보는 컨텐츠 속에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진리들이 담겨 있기에, 배울만한 가치가 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 책과 영화의 기본적인 기능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책이나 영화에 주 타겟층이란 것이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무엇을 보든 무언가를 깨우칠 수 있고 이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한 거라는 게 나의 지론이다.

<무민 골짜기의 모험 1>에도 내가 어릴 때였다면, 충분히 와닿지 못했을 내용들이 적지 않았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한 줄 한 줄 속에 작가의 의도를, 작가가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려고 했던 바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글귀들이다. "사실은 진짜 무시무시한 녀석은 아닐 수도 있어. 우리 마음 속 두려움이 그대로 비친 건지도 모르지. 분명... 우리가 녀석을 오해했을 거야." 라던가,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은 법이죠. 하지만 세상 모든 게 딱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대로 있을 필요는 없잖아요?" 라는 부분들. 두려움이라는 게 뭔지도 잘 몰랐고, 익숙한 방식을 만들어내는 과정 속에 있었던 어린 나는 무민의 귀여움에만 집중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림 옆에 적힌 글들을 읽으면서 작가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떤 것들에 대해 듣는다.

책을 읽는 내내 딱 이 책을 즐겨 읽을 나이의 나였다면, 무슨 마음으로 '무민'의 이야기들을 받아들였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몰입이 되질 않는다. 무턱대고 '무민' 가족의 집으로 들이 닥치는 '밈스' 가족들을 보면서, '가택침입'이니 신고해야 한다는 이야기만 맴돈다.

결론적으로, 어린이 동화라는 선을 긋지않고 가끔은 폭 넓은 독서를 할 필요도 있다는 의견을 어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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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하다
선현경 지음, 이우일 그림 / 비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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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도 스치듯이 언급되었던 <하와이 파이브 오>라는 드라마로 고등학생 때 하와이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미주 지역으로 여행을 가기에 넉넉한 형편이 아니어서 포기해 버렸지만, '하와이'라는 지역은 오래전부터 내게 항상 도피하고 싶은 장소였다. 맘껏 서핑을 하고(할 줄도 모르면서), 신비롭게만 느껴지는 하와이 원주민 언어도 배우면서 시간을 보내보고 싶었다. <아쿠아맨>으로 한국에 잘 알려져 있는 배우 '제이슨 모모아'를 굉장히 좋아해서 '하와이'의 뉴스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자신의 부족을 상징하는 그의 팔 문신은 나를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니 <하와이하다>라는 몇 번이고 읽고 싶은 책이, 그것도 매력 있는 그림들로 가득한 책이 눈에 띄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선현경 이우일 부부가 그리고 쓴 이 하와이 일기에는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가득하다. 하와이의 풍경과 자신들의 모습을 그려 넣었는데, 하나하나 오려서 책을 구멍 내고 싶을 지경이었다. 짧은 글들과 유쾌한 그림들 덕분에 책장은 술술 넘어간다. 글이 일기 형식으로 적혀 있어서 부담도 없고, 상황과 그때 느낀 감정들이 세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2017년 10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조금 긴 하와이 살이"가 어땠는지 소소하게 기록되어 있다.

여행 에세이의 큰 단점을 꼽아보라면, 어딘가로 떠나는 일이 지나치게 신성화된다는 것 아닐까. 짧게나마 다른 국가에서 지내본 경험으로 말해보자면, '집 밖으로 나가면 개고생이다'라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문화와 맞닥뜨리기도 하고, 종종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사기도 한다. 억울해서 어딘가 호소하고 싶어도, 마음을 나눌 외국인 친구를 사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하와이하다>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하와이에 처음 가서 집과 차를 구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고, 이질적인 문화 속에서 겪는 불편한 점들을 세세하게 언급해주었기 때문이다. 일기 형식으로 쓴 글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단순하게 표면적으로 좋은 일들만 드러낼 수 없고, 깊은 감정들까지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하와이 생활의 낭만이 크게 그려진다. 아무래도 아예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이기 때문에 돌아오고 나면 좋은 추억들만 남고야 만다.

이 글의 저자인 선현경 이우일 부부는 미국 포틀랜드에서 2년 동안 지내다가 별다른 준비 없이 하와이로 떠난다. 처음에 정착하는 일에 힘도 빠지고, 하와이식 느긋한 일 처리 방식에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던 부부가 '보디보드'에 빠지면서 삶이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방 안에서 낙서하는 일만 즐기던 이우일 만화가는 하루도 빠짐없이 바다로 나가서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다. 선현경 작가는 남편과 함께 파도를 타고, 훌라댄스와 요가 수업까지 받아 가며 하와이안의 삶에 동화된다. 서울에 사는 가족들과 한국말로 말하는 기쁨을 그리워하던 이들이 파도를 두고, 친구들을 두고 하와이를 떠나고 싶지 않아 귀국 날짜를 미루는 상황까지 이른다.

물론 외국에 나가서 좋은 결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은 나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보드를 들고 하와이 바다로 떠나고 싶게 만드는 이 다정한 글이 위로가 되었다. 또 밖으로 나가고 나면,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다'라는 걸 깨닫게 될 것을 알면서도, 여행을 꿈꾸게 만드는 책이었다.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상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를 깨닫고, 묵혀두었던 보드를 꺼내 로컬들과 함께 파도를 종횡무진하고, 서로의 몰랐던 모습을 발견하는 이 따뜻한 이야기는 하와이가 아니었어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변화일 것이다. 그래도 <하와이하다>를 읽고 나면, 다른 독자들도 하와이에 대한 애정에 생각이 흐려져 꼭 이곳이어야 했다고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근심 걱정을 잊고 느긋한 하루를 보내라는 인사"인 '샤카'라는 손짓을 하고, 방대한 생활의 지혜를 가지고 그들만의 문화를 전파하며 다른 이들을 돕는 어른들이 있고, '파도'를 통해 기다림의 미학을 일깨우는 '하와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의 다정함에 책을 덮고 나서 괜히 몇 번이고 책을 쓰다듬었다.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간접적인 기억이다.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여건이 충분하지 않아서 '여행 가고 싶다'라는 말을 몇 번이고 하는 나 같은 이들이 분명 많을 것이다. 그럴 땐 주저 없이 <하와이하다>를 들고 '알로하 스피릿'을 맘껏 만끽하기를!

저마다 코드가 있고 성격이 있듯이 인생에도 코드가 있는 거다. 액션, 모험, 코미디, 범죄, 다큐멘터리, 드라마, 공포, 뮤지컬, 미스터리 뭐 그런거. - P257

우리가 하와이로 온 이유는 이거였다. 앞으로 우린 다른 삶을 살게 되겠구나. 멋도 모르고 이 섬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 P241

어쩌면 기회는 파도처럼 매일매일 찾아오는지도 모른다. 기회를 놓쳤다면 다시 맘을 가다듬고 기다리는 거다. 기다리면 다시 온다. 파도처럼.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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