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다른 일을 하다가 문득 이 주제가 떠올랐다. 엮어보면 재미있겠다 싶어 찾아봤더니 사진을 보고 그 단상을 올린 책을 몇 권 읽었더군. 그래서 그 책들을 소개 해본다.
미셸 투르니에의 『뒷모습』, 이 책이 발단이 되어 이런 엮음을 생각했는데 사실, 미셸 투르니에의 글에 홀릭을 하지 못한 상황이라 사진은 좋은데 글은 별로라고 페이퍼를 작성하기도 했다. 미셸 투르니에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내가 아직 미셸 투르니에의 제대로 된 책을 안 읽어서 그렇다고들 했다. 그래서 친구가 추천하는 책을 구입하기도 했는데 아직 읽어보진 못했다.
이 책에는 에두아르 부바 라는 사진 작가가 찍은 흑백사진이 실려 있다. 사진을 처음 보면 묘한 느낌을 받는다. 사진이라 하면 보통 "앞"을 찍는 경우가 많은데 에두아르 부바는 "뒷모습"을 담았기 때문이다. 왜 뒷모습을 담을 생각을 했을까? 본문에 이런 글이 나온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얼굴로 표정을 짓고 손짓을 하고 발걸음을 자신을 표현한다. 모든 것이 다 정면에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그 이면은? 뒤쪽은? 등 뒤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단다. 멋진 말이다. 이 책을 보고 나도 친구들의 뒷모습을 찍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하지만 실천에 옮겨보진 못했다. 카메라를 들고서 사람의 뒷모습을 찍기란 쉽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책에 나오는 뒷모습을 담은 사진들은 너무나 아름답다. 어깨동무하고 걸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은 너무나 사랑스럽고, 키스하는 연인들의 뒷모습은 질투가 날 만큼 아름답다. 또 홀로 벤치에 앉아 고독을 씹고(!) 있는 중절모를 쓴 남자의 모습에선 왠지 삶에 지친 이 세상의 많은 남자들을 생각하게 하고, 젓가슴이 살짝 보이며 뒷 목을 훤히 드러낸 짧은 머리 모양의 여인은 자극적이라기보다는 매혹적이다.
미셸 투르니에도 그랬겠지만 나도 사진을 보니 내 감상이 저절로 나온다. 사진이 주는 상상력은 정말 무궁무진하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사진을 찍은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을까? 왠지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어쨌든 나도 앞으론 친구의 뒷모습을 찍어봐야겠다나.
소피 칼의 『진실된 이야기』는 우연히 동생의 책꽂이에서 발견한 책이다. 리뷰에도 썼지만 그 당시에 사진 찍기에 재미를 붙인 내가 '어떤 이미지를 찍고 그 이미지와 함께 얽힌 이야기를 길지 않게 풀어내면 재미있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는 순간 앗! 나도 이런 글을 써고 싶었어! 하는 당치도 않는 생각을 하게 했던 책이었다. 그래서 책을 보자마자 단숨에 읽어버렸는데, 정말 독특한 책이었다. 그때의 느낌은 이랬다.
"블록질을 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었다. 전문가적인 사진은 아니지만 소품 정도의 사진은 제법 예쁘게 찍을 줄 아는 솜씨가 있기에(순전히 내 생각이다) 어떤 이미지를 찍고 그 이미지와 함께 얽힌 이야기를 길지 않게 풀어내면 재미있겠다. 근데 이 책이 바로 그런 나의 생각을 도둑질이나 한 것처럼 나의 의도와 일치한다.
물론 작가는 나차럼 블로그에 올릴려고 쓴 글이나 이미지가 아니다. 그는 알려진 사진 작가이며 설치 미술가, 개념 미술가에 '사진-소설'의 형식으로 새로운 형식의 이야기를를 들려주는 작가이다. 소피 칼, 저자 사진으로 보는 그녀의 모습은 영화배우처럼 매혹적이며 아름답다. 아무 생각없이 책을 펼쳤을 때 느껴지는 것은 글을 먼저 써 놓고 그에 맞는 이미지를 찍었나보다. 했는데(난 그럴 생각이었으므로) 아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진실일 수도 허구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 그럼 소설인가?
"소피 칼은 이 책에서 자신의 삶을 사진으로 증명해 보여주며, 지극히 자전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우리는 그것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꾸며낸 것인지 알 수 없다.(…)" 옮긴이의 말을 읽고서야 아하! 했다.
사진 한 장 한 장 그다지 중요해보이지 않는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이다. 그 사진들 속에서 소피 칼은 진실을, 혹은 거짓을 능청스레 이야기하고 독자는 사소한 일상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실제인듯한 소피 칼의 이야기에 혹! 하고 넘어가 그녀와 함께 진실 혹은 거짓이라는 게임에 동참하게 된다. 독특하고 흥미로우며 도발적인 여성 작가 소피 칼, 그녀의 매력을 흠뻑 느끼게 만든 책."
이 책을 읽고 소설은 아닐지라도 나도 사진을 올려놓고 나의 단상을 올려봐야겠다고 다시 마음 먹기도 했다.(역시 실천하지 못한! 하지만 시도를 언젠가는 해 볼거임!)
신경숙 『자거라, 네 슬픔아』, 미셸 투르니에가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을 보고 사진에 관한 상상력을 표현했다면 신경숙은 구본창의 사진을 보며 자신의 추억을 끄집어냈다. 막연한 상상력보다 훨씬 잘 읽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감성적인 신경숙의 글은 사진과 묘하게 어울려 아름다운 조화를 이뤄낸다. 연꽃 사진을 보며 엄마를 생각하고, 사원에 누워 있는 한 남자를 보며 오래 전 그녀의 사원(!)이었을 한 친구의 방을 기억한다. 또 구겨진 이불의 사진을 보고 제주 바닷가에서 목놓아 울던 처녀를 생각하기도 한다. 아래는 내 리뷰의 한토막
"신경숙 작가는 사진 작가의 사진을 두고 작가다운 글들로 독자로 하여금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별 것 없는 듯하면서도 그 속엔 신경숙 작가의 어린 시절이, 학창 시절이 그리고 평상시의 생활이 담겨 있다. 그 생활을 엿보는 것이 재미있다."
정확하게 언제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에세이가 무척 재미있을 때가 있다. 아마도 대부분 내가 관심을 가지는 작가의 에세이일 경우가 그럴 것이다. 누구나 사람은 관심을 가진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니까. 그런 까닭에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 절친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귀 기울렸던 것도 같다. 이 책을 읽을 즈음에 난 신경숙에게 빠져 있었으니까.
그 외 읽지는 못했지만 관심을 두고 있었던 책 존 버거 『글로 쓴 사진』, 존 버거의 소설 『결혼을 향하여』를 매우 감동적으로 읽고 존 버거에게 홀릭을 했더랬다. 그의 다른 책을 고르다가 조금 얇고, 내 관심 분야인 듯도 하여 고른 책이 바로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이었다. 하지만 난 몇 페이지 넘기지 못했다. 앞서 본 책들처럼 '사진'을 보고 존 버거가 '글'을 풀어낸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제목처럼 그냥 관찰자 입장에서 '글로 쓴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조금 허탈하기도 했었다. 내공이 약했는지 이 책을 읽을 즈음에 머릿속이 복잡했는지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덮었기 때문이다. 그렇더래도 사진처럼 글을 써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대단한 관찰이 아니면 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고로 나중에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 시간은 오래 전에 읽었던 시답잖았던, 혹은 이해불능이었던 책들을 다시 읽었을 때 때론 놀라운 감동을 주기도 하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