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명 앗아가주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
앙헬레스 마스트레타 지음, 강성식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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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의 소설을 읽고 감명(!) 받았던 책은 아마도 이사벨 아옌데의 소설『영혼의 집』이 아닐까 싶다. 영화가 먼저였는지 책이 먼저였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둘다 너무 감동적이었던 것만은 기억이 난다. 그 뒤 언제나 그랬듯이 이사벨 아옌데의 다른 책을 찾았는데 그 당시엔 번역되어 나온 책이 없어서 읽지를 못했다가 시간이 지난 후 출간된 책을 찾아 읽었다. 하지만 『영혼의 집』과 같은 감명을 받진 못했다. 그리고 이 책 『내 생명 앗아가주오』의 책소개를 보면서 단지 라틴아메리카 소설이라는 이유만으로 『영혼의 집』을 떠올렸다. 한데 읽다 보니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럼에도 어쩐지 닮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건 아마도 칠레와 멕시코의 정치적인 상황과 여성의 삶이 투영되어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줄거리는 이렇다. 15세의 소녀가 권모술수와 야심으로 가득찬, 어느 나라에나 한두 명은 있을 법한 그런 남자와 결혼을 한다. 무려 스무 살이라는 나이 차이가 나는 남자다. 이 남자의 정치적 야심은 우리가 그동안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아온 인물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특히 정치·사회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은 나라, 온갖 병폐로 썩을 때로 썩어 있는 시대에서 자신의 출세와 야심을 위해 그 인물이 저지르는 행위는 살인이든 비리든, 혹은 과거를 날조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영위와 출세를 위해 나아갈 뿐이다. 그런 남자의 아내로 살면서 겉으로 보여지는 그녀가 겪은 여자로서의 삶은 오래 전 우리나라에서도 익히 많이 보아온 순종적인 여성들의 삶과 닮아 있다.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사는 한 여성의 굴곡많은 삶. 한데 이 책이 그것뿐이었다면, '세계문학전집'이라는 타이틀을 달지도 못했겠지.   

작가는 『내 생명 앗아가주오』의 배경을 화자인 카탈리나가 태어난 1915년부터 남편이 죽는 1948년 전후의 멕시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카탈리나가 태어나던 해는 멕시코 혁명이 한창이던 시기이고 남편이 죽은 1948년의 상황은 2차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이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살아가는 삶이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온갖 술수로 기회를 얻을 것이고 누군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 남자의 아내로, 그것도 야심에 찬 정치꾼의 아내로 살아간다는 것은 남편을 철저히 믿거나,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작가는 카탈리나에게 그녀만의 삶을 부여한다. 겉으로는 순종적인 아내로서의 삶일지 몰라도 카탈리나 자신에게는 여자가 아닌 '인간'으로, 억압적인 남자에게 대항하며 관습과 순종에서 벗어나 여성이지만 당당한, 남자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여자가 아닌 스스로 깨닫고 행동으로 옮기는 여성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또한 당시의 상황으로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카탈리나의 자유롭고 다중적인 사랑은 당대의 여성들도 자기 욕망을 드러내고 열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 했던 것은 통속적인 면 뒤에 숨은 멕시코의 역사 정치적 상황들일 것이다.

책에서 카탈리나는 남편 안드레스의 온갖 나쁜 짓을 알면서도 혼자 마음을 다스리며 삭힌다. 나름 남편의 권력을 조정해서 호의를 베풀기도 한다. 하지만 애인이었던 비베스의 죽음에 안드레스가 관여한 것을 알면서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한다. 다만 철저히 남편을 환멸하며 남편의 죽음에 동참(!)할 뿐이다.  

책을 읽는 내내 몰입을 했다. 허나 몰입만큼 쉽게 나가는 진도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책은 내게 무한한 흥미와 재미를 던져주었다. 원래 한 여자의 삶에 관한 책을 좋아하는 면이 있긴 했지만 그래서 더욱 이 책이 끌리긴 했지만 통속적인 이야기 속에 스며든 멕시코의 역사와 정치 문화적인 이야깃거리는 그 재미를 더해주었다. 여자라면 한번 읽어볼 일이다. 시대와 나라는 다르지만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는 한 여자의 삶.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매우 궁금해진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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