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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 2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0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진정한 ‘악’이란 이런 거야. 이유 따위는 없어. 그러므로 피해자는 자기가 왜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는지 모르는 거야. 원한, 애증, 돈, 그런 이유가 있다면 피해자도 납득할 수 있겠지. 자신을 위로하거나 범인을 미워하거나 사회를 원망할 때는 그 근거가 필요한 거야. 범인이 그 근거를 제시해주면 대처할 방법이라도 있지. 그러나 애당초 근거 같은 건 없었어. 그거야말로 완벽한 ‘악’이야."(2권 p203)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은 완벽한 ‘악’에 관한 이야기다. 범인 스스로 이야기하듯이 ‘악’에는 이유가 없다. 모든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고통을 주고, 그들이 우리가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울부짖는다면 범인은 그 재미에 더 푹 빠져버린다. 어떤 사회 문제도 여자 하나가 살해당했다는 뉴스보다 자극적인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이 마치 영웅이라도 된 듯이 행동하는 범인은 인간이길 거부한 짐승일 뿐이다.
이 책은 연속 유괴 살인 사건에 관련된 범인과 가족들의 이야기다. 집에 들어가다 유괴당해 살해당한 마리코와 그 아픔을 고스란히 짊어지게 된 할아버지 요시오, 가족이 모두 강도에게 죽임을 당하고 혼자 살아남아 자책감에 살아가는 신이치, 모자란 아이로 지목받아 늘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던 메밀국수집 아들 가즈아키, 그리고 부모에게서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은 두 명의 동창생.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심리 묘사가 긴장감을 더해준다.
이런 범죄소설을 읽다보면 늘 떠오르는 것이 가정에서의 부모와 가족들과의 관계다. 성선설이니 성악설이니 말들이 많지만 난 항상 성선설 쪽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근성이 있고, 악한 성격은 타고 난다 하더라도 자라는 환경과 아이를 키우는 어른들의 정신 상태에 따라 아이들의 인격이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에서도 가즈아키와 히로미를 비교해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가즈아키 역시 히로미의 부모처럼 가족의 관심이 없었다면 그 또한 비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와 동생까지 그를 걱정하고 이해하고 있었기에 히로미처럼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가장 가엾은 사람은 살해당한 여자들보다 부모에게 의식적으로 버림받고 피스에게 조종당하며 자신의 삶을 망쳐버린 히로미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늘 겉으로 드러난 실체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늘 미소를 간직한 채 우등생 자리마저 놓치지 않았던 아미가와 고이치의 겉모습만을 보고 예의바르고, 웃음을 잃지 않으며 늘 우등생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래서 어머니로부터 죽은 누나대신 세상에 존재하는 쓸모없는 인간 취급을 받다가 불량한 청년으로 자라 행동거지에서 불량함이 엿보이는 히로미를 더 나쁜 사람으로 보게 마련이다. 하지만 둘을 놓고 보면 히로미는 피스에 비해 좀 더 인간적이다. 왜냐하면 그는 적어도 마음이 흔들리기 때문이고 그가 받은 상처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저지른 죄가 용서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다만 그들이 부모에게서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았더라면, 부모 중 한 사람이라도 그들에게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었더라면 최소한 죄의식을 가지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미야베 미유키는 무의식적으로 일으킨 살인으로 말미암아 드러난 인간의 약한 면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특히 3부에서 보여준 혼란스런 상황의 전개는 독특한 형식으로, 영웅 심리에 빠진 악랄하지만 결국 나약한 존재일 뿐인 한 인간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이 저지른 죄가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고 오로지 ‘영웅’ 심리에 빠져있던 범인에게 요시오 할아버지는 말한다.
“인간은 말이야 그냥 재미로 사람들의 눈길을 받으면서 화려하게 살면 되는 그런 게 아냐. 네가 하고 싶은 말은 하고, 하고 싶은 짓은 저지르고 그래서 되는 게 아니라고. 그건 틀렸어. 넌 많은 사람들을 속였지만 결국 그 거짓말은 들통이 나고 말았지. 거짓말은 반드시 들통이 나. 진실이란 것은 말이지. 네 놈이 아무리 멀리까지 가서 버리고 오더라도 반드시 너한테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어” (3권 p511~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