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기필코 사둔 책만 읽으리라, 새해 들어 다짐을 했지만 신간을 보면 그 유혹을 뿌리치질 못한다. 그래도 잘 참고 있는데, 김경주의 산문집에 관해 알라딘에서 올려놓은 밑줄에 그만, 휙~ 넘어가버렸다. 이런 글,

 

이를테면 내 귓불을 자주 만져주는 사람에게 가서 어려운 사랑을 고백한 적도 있다. 사람은 상대가 좋아지지 않으면 절대로 그 사람의 귀를 만지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오랫동안 실험한 영역이다. 가만히 귀를 만져주는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좋은 냄새가 날 것이라고. 조용히 타인의 귓불을 만져주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머지않아 서로의 귀에서 나는 연한 냄새를 알아보는 미물의 관계가 되어갈 공산이 크다. 서로의 작은 귓불에 동감의 본질을 표현하게 된다. 서로 귓불을 만지는 사이는 금방 연인을 넘어선다.

(…)
누군가 내 귓불을 처음으로 따뜻하게 만져주었을 때, 나는 딸꾹질을 했다. 이제 그만 (그 사람을 위해서) 울음을 멈추고 싶었기 때문이다. _〈귓불〉

 

제목이 《밀어》이고 몸에 관한 시인의 사유라고, 책 나오기 며칠 전에 어느 자리에선가 무심코 들었기에(또 아내인 사진 작가의 멋진 사진들에 관한 것도) 은근히 기다리기는 했으나 아쉽게도 김경주의 시집을 읽은 게 없어서(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난해한 시라는 이유다) 모른 척하고 있었는데, 막상 표지를 보고 나니 궁금해지고 책소개를 보다가 저 밑줄에 넘어간 것. 이유? 귓불 만지는 것, 좋아하거든^^;;

 

 

 

그러고 보니 개정판으로 다시 나온 배수아의 몸 이야기가 있다.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워낙 오래된 책이니 한번쯤 훑어보긴 했을 텐데 기억이 나지 않는 걸보니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책이란 시간이 흐르고 다시 읽어보면 흥미가 당길 수도 있는 법. 책 소개를 보니 진짜, 궁금해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두 권의 책을 같이 읽어보면 훨씬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초기의 배수아는 좀 덜 난해(지금도 나쁘진 않지만 좀 잘 안 읽힌단 말이지. 평론가도 말하지 않던가 '한국 문단에서 가장 독보적인' 글쓰기를 하는 작가라고)했을 테니. 암튼, 이런 글 흥미롭다.

 

몸이란 굉장히 고독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성적인 것을 의미하고 현대의 온갖 섹스 어필한 광고의 이미지를 상징하고 보편적인 미의 기준을 제시하고 때로는 에너지가 넘치고 온갖 보여지는 것들만으로 과장된 오르가슴을 강요하고 있는 이 시대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자기 자신만의 몸을 안아 보았을 때, 그때 어느 순간 불현듯 연민을 느끼게 된다. 몸이란 절대로 공유할 수 없는 극단으로, 개인적인 모든 감각의 절정인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죽는 날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을 하나 지닌 채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 바로 그런 느낌이다.

 

개인적인 모든 감각의 절정! 배수아는 좀 독특하고 뭔가 모르게 신비스러운 면이 없잖아 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좀 그렇다. 그래서 그녀가 몸에 관한 글을 썼다면 꽤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십여 년 전엔 몰랐을, 그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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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12-01-13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더수님도 잘 쓰실거 같아용;;ㅎ

readersu 2012-01-16 09:47   좋아요 0 | URL
훔..리뷰를? 몸에 관한 글을? 흐흐

차트랑 2012-01-14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기필코 사둔 책만 읽으리라,
새해 들어 다짐을 했지만 신간을 보면 그 유혹을 뿌리치질 못한다."

이 말씀 완전 공감 ㅠ.ㅠ

readersu 2012-01-16 09:48   좋아요 0 | URL
이미 작심삼일이 되었답니다.
또 한 권 들어온 책 땜에 어쩌나..고민하고 있어요.
이러다가 진짜..책땜에 파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