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창비시선 313
이정록 지음 / 창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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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시인의 《의자》에 반해 이번엔 가장 최근에 나온《정말》을 샀다.
마침 시집 좋아하는 친구가 놀러왔다.
둘이서 와우북 페스티벌에 가서 시집을 왕창 사오자고 약속을 했었다.

근데 거리 행사는 10월 1일부터.
헛걸음 친 친구에게 새로 산 이정록 시인의 시집을 읽어보라며 건네줬다.
능청스러운 충청도 사투리 시들을 중얼중얼 소리내며 읽던 친구.
갑자기 꺄르르~ 넘어가더니 들어보라며 읽어준다.

생각해보니 이 시를 어디에선가 들었던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때도 듣고 있던 우리는 꺄르르~ 넘어갔던 것 같다.
근데 다시 들어도 이렇게 웃기다니…

우리 둘은 '콘돔을 대신할 우리말' 이름을 하나씩 말할 때마다 웃어댔다.
눈물이 날 정도로~ 엔돌핀 와르르~~ 쏟아지고
간만의 숙취로 묵직했던 '쏙'이 이정록 시인의 〈작명의 즐거움〉덕분에 멀쩡해지고 말았다.
해서 우리 둘이만 즐거워하기 아까워 그 전문을 옮겨본다. 

'작명의 즐거움'을 제대로 즐겨보려면 혼자 읽지 말고 친구랑 같이 있을 때,
하나씩, 말로, 내뱉으며, 읽어보시길. 즐거움이 두 배!^^ 

 

작명의 즐거움 

콘돔을 대신할
우리말 공모에 애필(愛必)이 뽑혔지만
애필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결사적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중 한글의 우수성을 맘껏 뽐낸 것들을 모아 놓고 보니
삼가 존경심마저 든다

똘이옷 고추주머니 거시기장화 밤꽃봉투 남성용고무장갑 정관수술사촌 올챙이그물 정충검문소 방망이투명망토 물안새 그거 고래옷 육봉두루마기 성인용풍선 똘똘이하이바 동굴탐사복 꼬치카바 꿀방망이장갑 정자지우개 버섯덮개 거시기골무 여따찍사 버섯랩 올챙이수용소 쭈쭈바껍데기 솟아난열정내가막는다 가운뎃다리작업복 즐싸 고무자꾸 무골장군수영복 액가두리 정자감옥 응응응장화 찍하고나온놈이대갈박고기절해

아, 시쓰는 사람도 작명의 즐거움으로 견디는바
나는 한 없이 거시기가 위축되는 것이었다

봄 가뭄에 졸아붙은 올챙이 눈, 그 작고 깊은 끈적임을
천배쯤 키워놓으면 바로 콘돔이거니, 달리 요약 함축할 길 없어
개뻘 진창에 허벅지까지 빠지던 먹먹함만 떠올려보는 것이었다
애보기글렀네 짱뚱어우비 개불장화를 나란히 써놓고 머리속 뻘구녕만 들락거려보는 것이었다


변사에 소질 많으시다는 이정록 시인, 나도 한번 들어본 적이 있어 그런지
~것이었다, 라는 말에 음성지원이 되는 듯하다. 
"그는 갔어도 그의 노래는 남아 있다,
고(故) 남인수 선생의 애타는 목소리를 다시 한 번 들어본다."
라는 말과 함께 노래까지 덤으로 들림^^   
그나저나 정말아, "정말" 재밌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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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1-09-29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작명의 '쎈스'가 장난 아니군요!
정말 '쏙'이 멀쩡해지도록 웃을만 하네요! ^^

readersu 2011-09-30 10:20   좋아요 0 | URL
정말, 매력적인 시인이에요.
시가 꽤 다양하다는^^

프레이야 2011-09-29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보여요. 담아갑니다^^

readersu 2011-09-30 10:21   좋아요 0 | URL
얼른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시를 이렇게도 쓸 수 있다는 것, 멋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