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지나 날이 어슴프레 밝아오기 시작할 때

나를 미치고 팔짝 뛰게 하는 것이 생겼다.

바로 닭울음소리!!!

수탉이 아침을 맞으며 울어재낀다는 것은

어릴 적부터 한번도 의심없이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던 사실.

하지만 실제로 날이 밝았다고 울어재끼는 닭울음 소리는

내 평생 처음이었다.


처음 닭울음 소리를 들은 건 겨우 설핏 잠이 들었을 때였다.

요즘 산란한 꿈이 잦은 나는 내가 또 무슨 악몽이라도

아니면 가위라도 눌리는 줄 알았다.

사실 선잠 속에서 들었던 닭의 울음소리는 거의 괴성에 가까웠다.

그건 정말이지 “꼬.끼.오”는 아니었단 말이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앉은 나는 간을 졸이며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그것이 실제로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임을 알게 됨과 동시에

그 소리가 바로 닭이 날이 샜음을 알리는 소리란 걸 알게 되었다.

그날 어슴프레 밝아 오는 방에 일어나 앉아

인상을 팍팍 쓰며 가슴을 쓸어내리던 나는 잠시 후

그 소리를 들으며 울수도 웃을수도 없는 심정이 되어

대상없이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가지가지 하네~~” 라고..


그날 나는 잠은 다 잤다 싶어 골똘히 그 소리의 진원지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 집은 2층이고 우리 아래로 어린이집이 한군데 있다.

내 생각엔 그 이름도 멋들어진 [자연어린이집]에서

그 문제의 닭을 키우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름을 [자연어린이집]이라고 지어놓았으니

닭이나 토끼를 몇 마리 가져다 놓는 것으로 이름값을 하겠다?

그 어린이집의 선생님과 직원들을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엔 퇴근을 할 것이니

저 살벌하고, 괴상망측한 닭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음이 분명할 것이다.

 

그후 며칠 뒤 나는 무슨 특수임무를 띤 비밀요원이라도 된 것처럼

그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나섰다.

내 예상대로 어린이집 뒷마당쯤 되는 - 바로 우리 집 아래라고 할 수 있는 -

그 곳에 색깔도 무섭기 짝이 없고, 크기도 엄청난 그 문제의 닭이 있었다.

난 차마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더구나 문을 두드려 나의 고충을 호소하지도 못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오고 말았다.

그 닭이 실제한다는 진실에 직면하고 보니 충격이 생각보다 컸던 것이다-_-;


좀 참아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였고

일찌감치 자서 그 시간에 깊은 잠에 빠지면 되지 않을까라는 야무진 생각도 했었다.

그 소리를 들은 이후로 며칠은 날을 새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난 뒤

잠을 자곤 했었기에 크게 고통스러울 일은 없었지만

오늘 또 날을 새고 닭의 고통스런 비명같이 느껴지는 울음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닭에게 달려가 “그래 어쩌라구~~” 라며 울기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심정이다.


어쩔까.. 어쩌면 좋을까..

이제 한달 반쯤만 더 이 곳에서 살면

이사를 하게 되어 있으니 참아볼까?

아니면 당장 월요일이 밝는 대로 찾아가서 나의 고통을 호소할까?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닭은 계속 울어재낀다.

저 불규칙한 소리..

아아악... 정말 어쩌라구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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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에 대해 미운 마음을 품거나
자기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해서
꼬치꼬치 캐고 들거나 속상해하면서
세월을 보내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은 거란다.

- 샤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 중에서

 

미워하지 않을 자유
따지지 않을 자유
상종하지 않을 자유
내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자유..

내 자유의지로 미워하지 않으며,
내 자유의지로 측은지심을 약간 남겨두기로 한다..

오늘 나는 책들과 잡동사니들을 버리면서
후련했다.
어제 버리지 못했던 것들을 오늘은 버릴 수 있게 된 것이 좋았다.

사람도 그렇게 될까..
버리고 나면 개운하며, 후련하며, 잘 했다 싶어질까..?
오늘 버리지 못했지만 내일은 버릴 수 있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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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비가 내린다.

내가 못 견뎌내는 딱 그만큼의 소리를 내면서..


이런 빗소리를 들으며 밤을 보낼 때..

누군가에게 전화하지 않기란  너무 힘들다..

이런 빗소리를 들으며 밤을 보낼 때..

누군가에게 전화하는 일은 너무 힘들다..


빗소리를 들으며 생각한다.

전화를 거는 게 더 힘들까..

전화를 참는 게 더 힘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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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겨울 동안 너는 다정했었다

    눈(雪)의 흰 손이 우리의 잠을 어루만지고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따뜻한 땅 속을 떠돌 동안엔



    봄이 오고 너는 갔다.


    라일락꽃이 귀신처럼 피어나고


    먼곳에서도 너는 웃지 않았다.


    자주 너의 눈빛이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냈고


    너의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찔렀고


    그래, 나는 소리없이 오래 찔렸다.



    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기어서라도,

   

    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


    너의 따뜻한 불빛 안으로 숨어들어가


    다시 한번 최후로 찔리면서


    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



    그리고 지금, 주인 없는 헤진 신발마냥


    내가 빈 벌판을 헤맬 때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눈 덮힌 꿈 속을 떠돌던


    몇 세기 전의 겨울을.


              <최승자>

 

 

겨울동안 너는 다정했었기에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졋던 시절이 있었기에

 

절대 웃지 않는 시간을 지나

네 목소리는 쇠꼬챙이 처럼 나를 찌르고

봄은 오자 너는 결국 갔음에도

 

나는 묻고 싶은 것이다

청파동을 기억하고 있는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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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을 한통 보냈다.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 대부분의 메일처럼

보내놓고 언젠가 읽겠지 하는 이메일이 있는 반면

약속을 정한다거나 빨리 전달해야하는 내용일 경우에는

읽었나 안 읽었나를 체크 한다.

수신확인..

답답하지 않아도 되니 꽤 편리하다.


그런데.. 참 적나라 하다..

몇시 몇분 몇초까지..도저히 어디 숨을 곳이 없겠다..

이번 경우 나는 궁금한 것에 대한 문의를 메일로 보낸 것이라서

어떤 감정의 조절이 필요하진 않았지만..


받고 난감 할 수도 있는 내용의 메일이든가..

알고도 모른 척 하고 싶은 이야기의 메일이라든가..

그럴 경우.. 참 난감하겠다 싶은 생각이 잠시 든다..

이제 그럴 가능성이 있는 내용은 아예..

보낼 수도 없고, 보내지도 않겠구나..

그렇게 단순해져 가는 걸까.. 싶기도 하고..


오래전에 손으로 편지를 써서 편지를 부치던 때가 생각난다.

편지지를 고르고, 연필꽂이에 꽂힌 펜들 중에서 필기감이 좋은 펜을 고르고,

우표도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르고 해서..

봉투에 주소와 이름을 써넣고..

모든 준비를 끝낸 후 편지를 쓰기 시작했던..

그렇게 편지를 쓰고 곱게 편지지를 접어서 봉투에 넣은 후,

풀로 깔끔하게 입구를 봉하고...

혹시 가는 동안 비라도 내려 주소와 이름이 지워질까

봉투에 주소와 이름이 쓰여진 부분을 흰색 양초로 문지르던 기억..

그렇게 한 후에도 하루 이틀 쯤 가방 안에 넣어 다니다가

부치곤 했던 기억..

그리고 난후 편지가 제대로 도착했을까를 궁금해 하면 보내던 시간들..

그리 오래전 일은 아닌데...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도 약속은 매일매일 이루어지고

사람들은 보고 싶은 사람을 어떻게든 만나고,

십 분이 되었든 한 시간을 기다리건..

만나고자 하는 맘이 있으면 만나졌었다.


너도 나도 휴대폰을 손바닥에 붙이고 다니는 요즘도

바람을 맞거나 약속이 취소되는 일은 사라지지 않았을 거다..

예전처럼 연락할 방법이 없을 때

만나고자 한다면 기다리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을 때보다,

지금처럼 전화한통이면 어디쯤 오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요즈음

바람을 맞거나, 연락이 불통일 때는 더 미칠 것 같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예전에 한나절을 기다리고도 만나지 못하고 돌아설 때는

도대체 무슨 일일까 하는 걱정뿐이었다면,

요즘 어디쯤 오나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고,

와야 할 시간이 훨씬 지나도 오지 않는다는 상상 한번 들어가 보라.

설명과 잦은 변명의 홍수에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선하다.

그저.. 만나고 싶어서 만나고.. 내키지 않으면 만나지 않고..

그러는 편이 훨씬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한다..


물론 휴대폰이 아주 착한 구실을 할 때도 물론 있다.

느닷없이, 느닷없이 사람이 그리울 때..

그때는 정말 착하디착한 구실도 하곤 하지만..

휴대폰이 있고, 또 여기저기 전화를 걸지만 아무런 약속도 성사되지 않았을 때는

그저 누군가 심하게 그립지만.. 하는 수 없다 마음을 접고 돌아서는 것보다

훨씬 더, 몇 배는 사람을 외롭게 할 수도 있는 위험한 물건..

물론 그건 휴대폰 탓은 아니지만..


많이 다른 것 같지만.. 그렇게 다르진 않고..

그렇게 많이 다른 것 같지 않지만.. 사실 아주 많이 달라진..

겨우 십여 년 전과 오늘..

메일 한통을 보내고 수신확인을 하면서..

떠오른 여러 가지 잡생각들 속에 오락가락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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