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을 한통 보냈다.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 대부분의 메일처럼
보내놓고 언젠가 읽겠지 하는 이메일이 있는 반면
약속을 정한다거나 빨리 전달해야하는 내용일 경우에는
읽었나 안 읽었나를 체크 한다.
수신확인..
답답하지 않아도 되니 꽤 편리하다.
그런데.. 참 적나라 하다..
몇시 몇분 몇초까지..도저히 어디 숨을 곳이 없겠다..
이번 경우 나는 궁금한 것에 대한 문의를 메일로 보낸 것이라서
어떤 감정의 조절이 필요하진 않았지만..
받고 난감 할 수도 있는 내용의 메일이든가..
알고도 모른 척 하고 싶은 이야기의 메일이라든가..
그럴 경우.. 참 난감하겠다 싶은 생각이 잠시 든다..
이제 그럴 가능성이 있는 내용은 아예..
보낼 수도 없고, 보내지도 않겠구나..
그렇게 단순해져 가는 걸까.. 싶기도 하고..
오래전에 손으로 편지를 써서 편지를 부치던 때가 생각난다.
편지지를 고르고, 연필꽂이에 꽂힌 펜들 중에서 필기감이 좋은 펜을 고르고,
우표도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르고 해서..
봉투에 주소와 이름을 써넣고..
모든 준비를 끝낸 후 편지를 쓰기 시작했던..
그렇게 편지를 쓰고 곱게 편지지를 접어서 봉투에 넣은 후,
풀로 깔끔하게 입구를 봉하고...
혹시 가는 동안 비라도 내려 주소와 이름이 지워질까
봉투에 주소와 이름이 쓰여진 부분을 흰색 양초로 문지르던 기억..
그렇게 한 후에도 하루 이틀 쯤 가방 안에 넣어 다니다가
부치곤 했던 기억..
그리고 난후 편지가 제대로 도착했을까를 궁금해 하면 보내던 시간들..
그리 오래전 일은 아닌데...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도 약속은 매일매일 이루어지고
사람들은 보고 싶은 사람을 어떻게든 만나고,
십 분이 되었든 한 시간을 기다리건..
만나고자 하는 맘이 있으면 만나졌었다.
너도 나도 휴대폰을 손바닥에 붙이고 다니는 요즘도
바람을 맞거나 약속이 취소되는 일은 사라지지 않았을 거다..
예전처럼 연락할 방법이 없을 때
만나고자 한다면 기다리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을 때보다,
지금처럼 전화한통이면 어디쯤 오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요즈음
바람을 맞거나, 연락이 불통일 때는 더 미칠 것 같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예전에 한나절을 기다리고도 만나지 못하고 돌아설 때는
도대체 무슨 일일까 하는 걱정뿐이었다면,
요즘 어디쯤 오나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고,
와야 할 시간이 훨씬 지나도 오지 않는다는 상상 한번 들어가 보라.
설명과 잦은 변명의 홍수에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선하다.
그저.. 만나고 싶어서 만나고.. 내키지 않으면 만나지 않고..
그러는 편이 훨씬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한다..
물론 휴대폰이 아주 착한 구실을 할 때도 물론 있다.
느닷없이, 느닷없이 사람이 그리울 때..
그때는 정말 착하디착한 구실도 하곤 하지만..
휴대폰이 있고, 또 여기저기 전화를 걸지만 아무런 약속도 성사되지 않았을 때는
그저 누군가 심하게 그립지만.. 하는 수 없다 마음을 접고 돌아서는 것보다
훨씬 더, 몇 배는 사람을 외롭게 할 수도 있는 위험한 물건..
물론 그건 휴대폰 탓은 아니지만..
많이 다른 것 같지만.. 그렇게 다르진 않고..
그렇게 많이 다른 것 같지 않지만.. 사실 아주 많이 달라진..
겨우 십여 년 전과 오늘..
메일 한통을 보내고 수신확인을 하면서..
떠오른 여러 가지 잡생각들 속에 오락가락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