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악천후가 계속되는 날들이었습니다 (이런 진부한).

안녕하신지요. 당신.

몸에 일어난 일단의 트러블을 해결 보아가는 동안 저는

아무것도 들으려 않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 같았습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가라앉고 있는 불순물이 다시 휘저어질 것처럼

그냥 바닥을 조용조용 기자고 생각했습니다.

말하자면 아주 간단한 삶.

한번쯤은 그렇게 지내보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나간 날 어디쯤엔가 정.영.음이란 프로그램이 있었고

그 프로그램에 지.괜.비(지나쳐버린 괜찮은 비디오)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앉아 있기 아주 힘든 며칠을 빼고는 뒤늦게 재미가 들린 어둠의 경로를 통해

그동안 놓쳐버린 영화들을 두서없이 다운받아 밤마다 보았습니다.

나와 무관했으면 하는 남의 이야기.

영화에서 취할 수 있는 장점 중에 으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어쩌면 그것이 제일 뱃속 편할 것 같다는 나름의 자구책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은 챙겨 보고 싶었던 영화들을 제쳐 두고

가볍고 조금은 시시할 것이 분명한 영화들을 클릭 했습니다.

무언가를 미뤄두고 싶은 마음. 감동에 젖고 싶지 않은 두려움.

나 자신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저항.

제가 이름붙인 <감동저항증후군> 입니다.

조금 상태가 나은 날은 오랫동안 리스트에 올려두었던 영화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닥치는 대로. 저는 그 닥치는 대로가 참 어려운 설정형 인간.

무심하게 클릭하고 무심하게 젖어들 수 있으면 참 좋았겠지만

저는 그게 어려운 사람이었고.

그래도 애써 최대한 설정 없이 마음이 가는 순서대로

그렇게 영화를 보면서 더워서 힘겹던 시간을 흘려보내고

그 어느 때보다도 반가운 가을을 맞이했습니다.  


그동안 보았던 스무편쯤의 영화들.

그래도 그 와중에 열권쯤의 책들.

조만간 해결해야 하는 하나의 숙제.

돌아보니 지금의 저는 그렇습니다.


이 곳에 가끔 들러 저의 부재를 확인했었을 당신.

당신이 저도 많이 그리웠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시간은 실제의 그 시간과는 다른.

한 이틀쯤 들여다보지 않아도 한 계절을 훌쩍 건너 뛴 것 같은 서걱함.

또 한 두 달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어도

고향땅의 늙으신 우리들 할머니처럼 그 자리에 늘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안심. 


이제 이렇게나마 저의 게으름의 변을 늘어놓았으니

당신의 소식을 찾아 나서야겠습니다.

마음이 음악용어로 <점점 빠르게> 서두릅니다 (이런 유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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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1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benie 2006-09-21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iao....

rainy 2006-09-22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여주신 님.
반가워해주셔서 기쁩니다. 그럴줄 알았다고 하면 웃으시려나^^ 말못할만큼 말하고싶은 것들. 맞아요. 이곳은 저나 님에게 그런 의미같아요. 자주 뵈어요^^

베니님.
'차오'라고 읽나? 귀국한지 한달 넘었구나. 모두들 각자의 삶이 요구하는 것이 많아서 모여서 얼굴한번 보기 힘들구나. 곧 만나지겠지..

치니 2006-09-24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써먹을테야 <감동저항증후군>이란 말을. ^-^ 누군가 그게 어디서 나오는 의학용어냐고 하면 씨익 웃어줄테고.

rainy 2006-09-25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 뭐이 좋은거라고^^
경계할 것 하나는 너무 그 증상에 오래 젖어있다가는
인생의 효율이나 재미가 영 떨어진다는것이겠지^^

2006-09-27 1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rainy 2006-09-28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동저항이든, 감동만땅이든 좀 자연스러우면 한결 좋을텐데.. 너무 힘을 주고 있지 않나 싶지요.. '네이키드'는 저도 그거다 싶게 알만한 종류도 아니면서 그냥 알 것 같았던 영화였어요..같은 일탈과 방황이라 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게 있고, 무리와 억지로 보여지는 것도 있고.. 그래요. 살아있는한. 살아가야하는 거.. 마침표가 아닌 물음표, 느낌표, 말없음표.. 그렇게 삶을 진행해가도록.. 가을엔 진행하기 한결 수월하기도 하겠죠? 삶의 여러가지 '다행'들을 좀더 가까이 느끼면서요^^

waits 2006-10-05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석보다는 연휴가 행복하지만, 그래도 '명절의 맛' 같은 게 있을까요?
rainy님, 추석 잘 보내세요. ^^

rainy 2006-10-05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어릴때님..
이렇게 서로 안부를 문득 챙기는 맛이.. 그래도 찾자면 '명절의 맛'이 아닐까요? ^^
명절의 '극과극'을 다는 아니어도 좀 안다고 생각하는데..
아직은 명절하면 단맛보다는 쓰고 떫은 맛이 더 강하네요..
님은 지금쯤 아버지(!)와 조우 하셨을라나 ^^
평소 잘 안드시고 못드시는데, 어머님이 해 주시는 음식 맛나게 먹고 돌아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