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경칩(驚蟄). 고로쇠나무의 수난이 시작됐다.
몸에 좋다하여 너도나도 즙을 뽑아 마신다.
위장병 신경통 관절염에 두루두루 좋다나.
'골리수(骨利樹)'란 한자어의 유래도 그렇다.
그렇다고는 하나, 맨살에 드릴이 꽂혀 울컥울컥,
수액을 토해내는 고로쇠를 생각하니,
과연 그 '피눈물'이 약(藥)이 될지 독(毒)이 될지….
어찌 아프고 상처받는 게 ‘말하는 짐승’뿐이랴.
여북하면 북미쪽에서 잡히는 연어들이 이제는,
나이를 먹어도 일정한 키 이상으로는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들이 키가 큰 놈만 잡아가는 걸 알아차려서 그렇다는데,
그 마음씀이 아리다. .
[98년 동아일보. 이기우기자의 글 중에서]
올해의 경칩은 3월 6일이었다.
우수도 지나고 경칩도 지났는데.. 철없는(!) 추위에 발이 시리다.
북미의 연어들을 생각한다.
여기서 더 자라면 사람들에게 잡혀가니까 자람을 멈춰야한다고
똑부러지게 마음 먹은 연어들에 대해 생각한다.
나도 연어의 결심을 닮고 싶다.
여기서 더 키우면 안되니까 멈추고..
여기서 더 끌면 위험하니까 멈추고.
나도 연어처럼 그럴 수 있으면.. 깔끔하고 똑부러지게..
결심이 굳건해 져서 나 자체가 변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난 연어만도 못하다.
하긴 내가 연어보다 나을 거란 생각 자체가 오만이고 편견이다.
참 그러고 보니 [오만과 편견]을 보고 싶은데..
놓친 영화, 놓친 전시에 포기가 빨라지는 것처럼
놓친 사람들, 놓친 관계에 대해서도 휘리릭 페이지가 빨리 넘어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