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마



      흔들지 마, 사랑이라면 이젠 신물이 넘어오려 한다.


      내 잔가지들을 흔들지 마.


      더이상 흔들리며 부들부들 떨다 치를 떠느니,


      이젠 차라리 거꾸로 뿌리뽑혀 죽는 게 나을 것 같아.




      프라하에서 한 집시 여자가, 운명이야, 라고 말했었다.


      운명 따윈 난 싫어, 라고 나는 속으로 말했었다.


      아름다움이 빤빤하게 판치는 프라하, 그러나 그 뒤편


      숨겨진 검은 마술의 뒷골목에서 자기 몸보다 더 큰


      누렁개를 옆에 끼고 땅바닥에 앉아


      그녀는 내 손바닥을 읽었다.


      나는 더이상 읽히고 싶지 않다.


      나는 더이상 씌어진 대로 읽히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운명이라 말하지 마, 흔들지 마.


      네 바람의 수작을 잘 알아, 두 번 속진 않아.


      새해, 한겨울, 바깥바람도 내 마음만큼 차갑진 않다.


      내 차가운 내부보다 더 차가운 냉수 한 잔을


      마시며, 나는 차갑게 다시 읊조린다.




      흔들지 마, 바람 불지 마, 안 그러면


      난 빙하처럼 꽝꽝 얼어붙어버리겠어.




      창문 밖으로 사람들이 하나씩 오고 가면서


      내게 수상한 바람 소리들을 보낸다.


      그때마다 나는 접시 깨지는 소리로 대답한다.


      "접근하면 발포함" 그러나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뭔지 나는 안다. 그것은 외부를 향한 게 아닌,


      내부를 향한 내 안의 폭탄이다.



 <최승자>



땅에 닿자마자 녹아버린 잠깐의 눈.

외롭다 생각하자마자 멈춰버린 잠깐의 생각.

어쩌면

불안하고 불길할수록 좋아..

안심이나 따스함은

아주 위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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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6-01-02 0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덕분에 가끔 시를 만나네요. 음... 새해 맞이, 스스로에게 내미는 덕담으로 삼고 싶어집니다..^^

rainy 2006-01-02 0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은비님..
나도 잠이 안와서 해리포터를 보았어요.
<비밀의 방>과 <아즈카반의 죄수>를 연달아 ^^
근데 큰일이네요. 검은비님 만나면 꼭 술을 마셔야 할 것 같은데 ㅋㅋ
신데렐라처럼 아이 데리러 종치기 전에 와야하니..
낮술이라도 마셔야 할라나...쩝쩝..

나어릴때 님..
저도 제 덕분에.. 가끔 시를 만나요^^;;;
근데.. 새해맞이 덕담으로 저는 못 권합니다.. 님이 알아서 가끔만 ^^
가끔은 흔들려줘야 뭐 제자리도 알게되고 (아, 진짜 일관성 없어..)

치니 2006-01-02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두, 시 보다 밑에 적은 언니 글이 더 와닿는다.

rainy 2006-01-02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
이런 거 닿지 말지..

검은비..
^___^

2006-01-02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rainy 2006-01-03 0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마음만이니깐 비공개^^
올 한해 기쁜 일 많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