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에겐 아주 오래전에 받아둔 처방전이 하나 있었다.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마치

상처 난 가슴에 붙여진 한 장의 대일밴드 같을 거라는.

나는 그 처방전을 잊지 않고 있었지만

이 책은 그럼에도 오랫동안 내 책꽂이를 차지하고만 있었다.

그러면서 가끔 생각했다.

언젠가 몹시 타격을 입었을 때 읽어주리라. 고

며칠 지독하다고 말하기에도 모자란 감기 몸살이 왔고

삼일은 밤낮으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들었던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명색이 야행성이라고 그 삼일 밤낮을 지내고 나자 

밤이 되어 아이가 잠들고 나면 정신이 좀 돌아오는 것이

마치 세상 사람이 다 잠들고 빛이 사라지면 관 뚜껑을 밀어내고 몸을 일으키는 흡혈귀처럼

침대에서 슬슬 기어나오고 싶어지는 때가 왔다.

그래도 약 기운에, 며칠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머리가 어질어질.

나는 이때다 싶었다.

침대에 누운 채  나는 이 책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어 내려갔다.


초반에는 흠, 이 사람 꽤나 꼼꼼하고 철두철미한 성격이겠다 싶어지게

또 자기의 말처럼 기록되지 않는 것은 기억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열심히 기록했었을 것임이 분명한 온갖 자료들이 망라되어 있었고 

소년들의 몰두와 비탄은 퍽 재미있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주인공이 공부에 몸바치기 전까지.  

후반에는 이 책은 어쩌면, [느리게 살거라] 류의 처세에 관련된 책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신이 결론 낸 인생관,

오로지 그것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주장을 하느라 너무 중언부언 한다는 느낌이랄까..  


아픈 뒤끝이어서 그랬을까. 내 심사는 바로 뒤틀려 버렸다.

(아니다. 아프고나면 사람은, 적어도 나는 좀 선량해진다.)

아이 키우면서 앓는 것조차 아이가 잠이 들고 나서야 편히 앓을 수 있고

까딱 늘어졌다가는 아이 밥 때도 못 맞추기 십상이고 

야행성 잠버릇 하나 고치지 못해 조각잠을 자야하는 이 판국에

나도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고 살고 싶다만..

내 앞으로는 치기 힘든 공이라고 당신이 피한 하필 그 공만 날아온다 느껴지는.

그런 날들이 꽤 오래인걸.. 어째..


내 입맛과는 차이가 좀 있었고, 나에겐 그리 재미도 주지 못했지만

어쩌면 이 책.. 나에게 좋은 책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왜냐면 .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는

삼미슈퍼스타즈의 [자기만의 야구]가 있었듯이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사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지 않겠냐는..

그러니 그저 살아가자는 다독임을 스스로에게 하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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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20 1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rainy 2005-12-20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결심한 삶에 색종이를 뿌려주는 것 같은 느낌을 이 책이 줄 수 있다는 것도 알 것 같아요. 시선이란 게 한끗차이 일수도 있는 것 같구요. 저도 말랑말랑할 때 이책의 느낌을 적었더라면 그래, 그렇게 살면 참 좋잖아... 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박민규가 좀 얄미웠더랬어요 ^^ 그럴 때 있죠. 세상의 법을 따라가기 힘이 든다는 주제로, 유난히 나를 버벅거리게 하는 세상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밤새 나누고 맞아 맞아 했던 친구가 다음에 보니 자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라는 것 다 요령있게 세련되게 해내는 모습을 볼 때.. 한편으론 다행이지만 한편으론 두려워지는 느낌이랄까.. (이 비유가 맞을까.. 밤새서 몽롱한데 ㅋㅋ)

2005-12-20 1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05-12-20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 박민규는 얄미워
우린 쿨하지 않은데다 도도한 척만 하는 치들이라 그런가. ㅋㅋ

waits 2005-12-20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결국엔 내 방식대로 사는 수밖에는. 그런데, 참... 쉽지가 않은 것 같아요. 낄낄거리며 신나서 읽고서는, 살짝 부럽고 얄미운 느낌도 들었던 것 같네요..^^

rainy 2005-12-21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 우리가 도도한 척일랑은 제대로 하는건지 원.. ㅋㅋ

속삭인 님, 나어릴때 님.
살짝 부럽기도 하지만.. 막상.. 그럼 그렇게 한번 해볼래 한다면.. 도리도리 할 것 같지요^^ 좀 낡았어도 내 몸에 맞는 옷이 최고란 그런 느낌이랄까..
냅둬라 생긴대로 살란다.. 그럴밖에요^^
어쩌면 결론은 같을지 몰라도, 그 결론에 도달하는 방식은 내식으로 하고프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