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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했던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개인적, 경제적, 사회적인 모든 상황들을 떠올려 볼 때, 역시 '지난하다'는 표현 외엔 딱히 떠오르지가 않아요. 특히 올해는 유명을 달리한 유명인들이 많아 전반적인 분위기가 더욱 암울했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마이클 잭슨의 죽음은 전 세계인들에게 추모의 대상이었고, 많은 이들이 그의 장례식을 생중계로 지켜 보며 눈물을 흘렸지요. 누구나의 죽음이 그렇듯이 시간이 흘러 잊어가던 중에 영화 속에서 그를 다시 만났습니다. 고인이 마지막으로 등장한 영상물이고, 공연의 총감독이 감독이 된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을 통해서죠. 이미 막을 내린 영화지만 그 감동이 고스란히 마음에 남아 기록해 봅니다.   



영화는 당초 7월부터 50일간 월드 투어 공연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던 '디스 이즈 잇'의 리허설 장면들을 보여 줍니다. 언뜻 특정 줄거리가 없어 지루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어떤 이야기보다 더한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들어봤을 그의 주옥같은 곡들이 흘러 추억을 상기시킬 뿐 아니라, 실제로 공연 되었더라면 적어도 근년 내 가장 인상적인 공연으로 남겨졌을 것이란 확신이 들 정도로 퍼포먼스가 훌륭했기 때문에.   

세포 하나 하나, 뼈마디 한 조각까지 음악을 위해 태어난 것 같은 그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든 생각은 열정과 인생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분명 리허설인데도 본 공연만큼이나 열정적인 그를 보면서 절로 감탄사가 나왔음은 물론입니다. (업무적으론 '이래서 리허설이 필요하다'는 말이 어찌나 와닿던지.) 흔히 '인생을 한 편의 공연같다'고 비유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편의 성공적인 본 공연을 위해 무미건조한 일상을 견뎌내고 있잖아요. 언젠가는 성공한 사업가, 부자가 되길 바라며 '고작 일상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살아갑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 그런데 '고작' 리허설만으로도 감동을 만들어 낼 줄 아는 그를 통해 잃어버린 열정을 상기하게 됩니다. 온갖 추문들이 있다 해도 결국 마이클 잭슨의 음악 인생은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DVD로 나온다면 단숨에 구입해 하루 종일 돌려 보거나 많은 이들에게 선물하고 싶네요. 그럼 조금씩은 힘을 얻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본업으로 돌아와, 지금 조금 더 열정을 얻고 싶다면 <다시 가슴이 뜨거져워라>의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아나운서보다 여행작가로 더 이름을 알리고 있는 손미나 씨의 아르헨티나 여행기입니다. 책의 성격은 일본 여행기인 <태양의 여행자>보다는 처녀작인 <스페인, 너는 자유다>에 더 가깝습니다. 그녀의 스페인어권 문화에 대한 기본 소양과 관심이 글 속에서 자연스레 배어 나옵니다. 특히 두려움 없이 스스로의 호기심에 호응하고 도전하는 '손미나'이기에 가능한 일화들이 무척 재미있게 읽히고, 우연히 만난 탱고 춤을 추는 한국인 남자의 사연은 굉장히 기억에 남습니다. 옮겨 보면 이렇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 과연 저를 이해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말씀드리죠. 저는 전라도 광주에서 살고 있던 평범한 회사원이었습니다. 어느 날, 어디론가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언젠가 꼭 와보고 싶던 남미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한 달 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와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와서 지내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정말 볼 것도 많고 재미난 곳인데 제 눈에는 단 한 가지밖에 들어오지를 않았습니다. 그건 모두 탱고에 관한 것들이었죠. 무엇보다 탱고 음악에 완전히 매료된 채 한 달 동안 거의 매일, 다른 구경은 하지도 않고 탱고 연주를 들으러 다녔습니다. 그리고는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는데......"     

또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그는 뚫어지게 커피 잔을 바라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제 인생은 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일도 할 수가 없었고 친구들도 만나기가 싫었고 오로지 탱고에 관한 생각밖에는 없었어요. 그 어떤 말로도 당시 저의 마음을 표현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아무리 잘 설명한다 해도 이해할 사람이 없을 거구요. 그래서 한동안 고민을 하다가 결국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하게 되었죠. 이상한 얘기 같지만 여행 전의 제 삶은 모두 의미를 잃었습니다. 진짜 제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대신 살다 비로소 저의 인생을 찾은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어요. 그래서 부모님께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며 말씀드렸습니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인 그는 결국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가 '카를로스'라는 이름으로 탱고에 바치는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결정적인 무언가를 만난 것 자체가 드라마 같은 이야기지만, 그러한 것을 놓치지 않고 선택해 일상을 열심히 살아내는 모습에 더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행복을 의미하는 파랑새는 우리 주변에 있다고 하죠.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떠났던 날이 바로 오늘,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라고 하네요. 너무 멀리 가지 마시고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훈훈하게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내년에는 일상이 보다 풍요로워지길 역시 바라며 저도 파랑새를 쫓아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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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제주도는 처음이었다. 돌아보면 몇 차례쯤 여행할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히 취소되는 바람에 인연이 없구나 여겼었다. 그러다가 지난 8월의 어느날 훌쩍 제주 땅을 밟게 됐다. 급조한 여름 휴가를 위해 준비한 왕복 티켓 한 장 손에 들고 제주공항에 내려선 것이다. 공항 출구를 빠져나온 순간부터 미아가 된 기분이었지만 야자수 이파리 위로 보이는 높고 푸른 하늘만 봐도 걱정은 금새 사라져 버렸다. 렌트할 차가 있네 없네 실랑이 끝에 찾아낸 무려 98년식 렌터카에 몸을 싣고 나니 스슬 배까지 고파질 지경이었다.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지도와 가이드북을 펼쳐 놓고 가고 싶은 곳을 손에 꼽아 봤다. 큰 욕심 부리지 말자는 애초 각오와 달리 금릉 해수욕장, 테디 베어 박물관, 제주올레, 만장굴, 한라산 등 아름다운 관광지가 줄줄이 눈에 들어왔다. 예정된 2박 3일의 짧은 일정으론 결코 소화할 수 없는 코스였기에 눈물을 머금고 꼭 가고 싶은 곳만 엄선해 돌아 보았다. 때문에 돌아오는 길에 느낀 아쉬움이 컸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취향 탓인지 기억에 남는 곳들은 대부분 아래와 같이 유명 관광지가 아닌 곳들이라 한편 안도하는 마음도 든다.    



- 4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듯 앤티크한 매력이 물씬 풍기는 한림공원



-끝없이 펼쳐지는 차밭과 차를 음미하며 즐길 수 있는 오설록 녹차 박물관 



 -이중섭 거주지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이중섭이 살았던 옛 집. 화가 이중섭은 평남 평원 출생이나 생활고와 함께 평생 각지를 유랑하며 살았다. 제주도에 보존돼 있는 '이중섭 거주지' 역시 떠도는 삶 중 1951년 한 해 가량 세들어 살았던 집터이다. 이 곳이 애틋하게 와닿는 까닭은 그 다음해 그의 아내가 두 아이와 함께 도일(渡日)하기 전 마지막 행복을 누렸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기껏 두 명이 누워도 부대낄 것 같은 좁은 방을 파라다이스처럼 여겼던 그의 처지와 이 후 그에게 닥친 불운을 생각해 보면 가슴 한 켠이 절로 먹먹해 질 수밖에 없다. 김춘수 시인은 '이중섭'을 주제로 연작시를 여러 개 짓기도 했는데 내가 가장 잘 기억하는 시는 '내가 만난 이중섭'이다.  

광복동에서 만난 이중섭은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
동경에서 아내가 온다고
바다보다도 진한 빛깔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눈을 씻고 보아도
길 위에
발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뒤에 나는 또
남포동 어느 찻집에서
이중섭을 보았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그는 한뼘한뼘 지우고 있었다.
동경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고.    -김춘수, '내가 만난 이중섭' 전문 

 여러모로 넉넉한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이라 부족함에 고생도 많았다. 그래도 각종 싱싱한 회를 끼니 때마다 챙겨 먹고 맑은 하늘과 바다에 눈을 씻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진작 가보지 못했던 것이 후회스러울 정도로 떠나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비록 올레길을 타박타박 걸어보지 못하고 한라산 정상에 올라서지도 못했지만 조만간(?) 있을 다음 여행을 기약해 본다. '마을 어귀까지의 작은 골목길'을 뜻하는 올레처럼 아기자기한 경치가 골목마다 가득한 제주도를 떠올리면 상상만으로도 벌써 가슴이 설레여 온다.    

 

Part. 2 

제주도 여행에 고마운 도움을 받았던 책들을 소개합니다. 
대략적인 코스를 정하고 주요 관광지 정보를 얻는데 요긴했던 책은 <제주도 비밀코스여행>입니다. 서울에서 잡지 기자로 일하다 제주도에 내려가 2년간 생활한 지은이가 들려주는 정보가 풍부한데다 감수성까지 엿볼 수 있어 더없이 좋았습니다. <낭만 제주>의 경우 여행에세이의 성격이 강해 가이드로 삼기 보단 여행지별 분위기를 참고하는데 도움이 됐습니다. 간혹 찾고 싶은 음식점 정보도 있었는데 제주도 여행이 처음이라 찾기가 쉽지는 않았네요. 아마 저같은 분들보단 제주도 여행에 익숙한 분들이 보기 좋을 것 같습니다. 반면 <스타일 제주>는 여행을 다녀와서 만나게 된 책인데 스파, 갤러리 등 독특하고 세련된 장소 소개가 많아 눈길이 갑니다. 특히 챕터 말미마다 실린 여행의 팁은 여자분들에게 유용하게 쓰이겠네요.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실전에 활용해 보진 못했지만 제주 올레 길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걷기여행>입니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다시 제주도로 돌아가고만 싶어집니다. 제주도는 가을 여행의 매력도 크다고 하니, 아직 여행 전이신 분들은 제주도를 방문해 보세요! 후회 없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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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눈을 뜬다. 벽지도, 커튼도, 가구도, 방 모양도 처음 보는 것들이다. 내 방이 아니다. 모두 처음 보는 것들이다. 멀리서 들려오는, 오가는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서울에서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리고 심지어는, 공기마저 다르게 느껴진다. 김승옥 단편소설의 한 장면과 같이, 눈을 떠 보니 내 코는 방 벽에 바싹 닿아 있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살펴보니 과연 낯선 곳이었다. 잠결에서 깨어 '아, 난 여행을 떠나왔지 집에서 아주 먼 곳으로' 하고 깨닫는 순간까지 몇 초가 더 흐른다. 짧지만 막연한 시간이다 

...... 

낯선 여행지에서 낮에 잠들었다가 눈을 뜬다는 것. 그건 어떤 여행지의 특별한 곳을 찾아가 보고, 감동하는 것만큼 독특한 설렘이 있는 일이다. 그냥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것일 뿐이지만, 그렇게 눈을 뜨면 다시 처음으로 여행을 시작하는 기분이 든다.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이 처음부터 다시 솟는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긴다. 그리고 내가 깨어난 그 곳, 그 나라를 사랑하게 된다. 나만의 시간을 사랑하게 된다. 그동안의 나쁜 기억, 힘든 기억은 모두 잊고 머리속은 텅 비워진다. 그 안에 뭔가 더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을 채울 수 있을 것만 같다.  

                                                                                           -「낮잠」중에서

휴일의 공원에서 책을 펴놓고 앉아 몇 번이나 '맞아, 맞아'하고 감탄사를 연발했는지 모릅니다. 패키지 여행이라면 어림도 없을 낯선 여행지에서의 낮잠은 물론이고 여행을 일상으로 만드는 작은 카페, 공원, 헌책방, 동물원 가기도 그렇고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추억을 나눌 수 있는 폴라로이드 카메라 챙기기까지...개인적으로 꿈꾸는 여행과 가까워 즐겁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획일적이지 않고 보통의 여행과 달리 느릿 느릿한 여행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더욱 돋보였습니다.   

수 년간의 여행 경험을 글과 그림으로 엮어낸 이우일씨의 <좋은 여행>. 단편으로 이뤄진 여행기를 따라가다 보면 에피소드 속에 드러나는 그만의 여행방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여행자의 특권을 남발하지 않고, 비록 실수로 벌어진 일이긴 하나 아홉 시간의 낡은 기차 여행을 불만없이 받아들인 그의 가족을 보며 여행자가 지녀야할 낙천적인 자세의 미덕을 배워 봅니다.  

키득키득 웃다보면 캄보디아 여행기에 이르게 되는데 제3세계 국가를 여행하며 겪는 고민까지 드러납니다. 캄보디아의 소수민족이 문명의 이기에 전통을 내어주고 빈민처럼 사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삶은 내게 무언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그. 그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나도 우리도 행복해져야겠다고 말하는 그에게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 새로운 여행 방식을 찾는 날 역시 머지않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모두가 행복하기 위한 여행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공정여행 가이드북'이라는 타이틀을 부제로 달고 있는 책, <희망을 여행하라>를 통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비교적 생소한 개념인 '공정여행'은 '여행에서 만나는 이들의 삶과 문화를 존중하고, 내가 여행에서 쓴 돈이 그들의 삶에 보탬이 되고, 그곳의 자연을 지켜주는 여행'이라고 합니다. 

만약 세계가 100명의 마을이라면 
여전히 세상을 여행할 수 있는 사람은 단 14명뿐이다. 그중 8명은 유럽인이고, 2.8명은 아시아와 호주사람이고 나머지 2.2명은 북미(미국, 캐나다)인이며 마지막 남은 1명이 아프리카와 남아케리카, 그리고 중동이라는 거대한 세 지역을 모두 합한 한 사람이다.  
만약 한 대륙의 인구가 100명이라면 서유럽인 69명이 여행하는 동안 아프리카 사람은 1~2명이 여행하고 있는 셈이다. 여전히 지구촌을 살아가는 나머지 86명의 사람에게 여행이란 평생을 두고 갈망하는 이룰 수 없는 소원 같은 것이었다.  
...... 
만약 우리가 쓰는 돈이 100만원이라면
그 중 40만 원은 비행기에, 그 중 20만 원은 여행사에 나머지 20만 원은 우리가 머무는 호텔에서 먹고 마시고 쓰는 수입품을 들여오기 위해 다시 1세계로 흘러가고 있었다. 만약 우리가 머무는 숙소가 다국적 호텔이나 리조트라면 우리의 여행이 떠나기 전 모든 비용을 여행사에 지불한 패키지여행이라면 현지에 남는 돈은 더욱 작고 미미해지는 것이다.  
투어리즘 컨선은 우리가 아시아나 아프리카, 남미를 여행할 때 여행에서 쓰는 돈 중 70~85%는 외국인 소유 호텔이나 관광 관련 회사들에 의해 해외로 빠져나가고 현지의 공동체에 돌아가는 것은 단지 1~2% 뿐이라 했다.
                                                                                                                                         -「여는 글」중에서

쉽게 풀이하자면 여행으로 얻는 혜택을 그 지역에 다시 환원하고 나보다 남을 위한 배려를 우선한다는 개념이 아닐까요. 지금도 지구상 곳곳에서는 관광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원주민의 거주지와 생업을 뺏고 리조트와 사파리 여행지로 변모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개발된 관광지는 여행자들로 붐비겠지만 정작 관광으로 인해 쏟아져 들어오는 수입은 다국적 호텔이나 여행사로 향하게 됩니다. 원주민들에게 돌아가는 역할은 일용직 노동자, 객실 청소부, 단순 노무직 또는 수공예품 생산자가 고작입니다. 실제로 히말라야에서는 빈곤한 이들이 고산병에 시달리며 하루 300루피(약 5천원)의 돈을 벌기 위해 때로 목숨을 걸고 트레킹의 포터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행지에서 사용하거나 보는 것, 얻는 것 등 많은 일들을 현지인에게 빚지고 있지만 여행자가 관광산업의 구조를 훤하게 알지 못하는 한, 현지인에게 도움을 주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 책은 그간 볼 수 없었던 관광산업의 부조리한 이면을 알려주는 한편 '인권, 경제, 환경, 정치, 문화, 배움'이라는 측면에서 여행의 새로운 면면들을 보여줌으로써 여행자가 다양한 여행 방법을 알고 선택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공정여행의 방법으로 1년에 네 차례 바다를 가르며 지구의 환경, 인권, 빈곤문제 등을 배우는 피스보트라는 일본의 NGO를 소개하고, 국경을 넘는 배움을 가르치는 제천 간디학교를 예로 들기도 합니다. 여행서이면서 인문서의 성격도 가지고 있네요.

'공정여행'이 너무 어려워 보인다구요? 부족함은 제 소개의 모자람으로 생각하시고, 책에 실린 아주 쉬운 방법들을 소개합니다.  

 *공정여행자가 되는 10가지 방법 

1. 지구를 돌보는 여행 - 비행기 이용 줄이기, 1회용품 쓰지 않기, 물을 낭비하지 않기 
2. 다른 이의 인권을 존중하는 여행 - 직원에게 적정한 근로조건을 지키는 숙소, 여행사를 선택하기
3. 성매매를 하지 않는 여행 - 아동 성매매, 섹스관광, 성매매 골프관광 등을 거부하기
4. 지역에 도움이 되는 여행 -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 음식점, 가이드, 교통시설 이용하기
5. 윤리적으로 소비하는 여행 - 과도한 쇼핑 하지 않기, 공정무역 제품 이용하기, 지나치게 깎지 않기
6. 친구가 되는 여행 - 현지 인사말을 배우고 노래와 춤 배우기, 작은 선물 준비하기
7. 다른 문화를 존중하는 여행 - 생활 방식, 종교를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기
8. 상대를 존중하고 약속을 지키는 여행 - 사진을 찍을 땐 허락을 구하고, 약속한 것을 지키는 여행
9. 기부하는 여행 - 적선이 아니라 나눔을 준비하자. 여행 경비의 1%는 현지의 단체에!
10. 행동하는 여행 - 세상을 변화시키는 여행  

출판사에서 마련한 도움의 기회도 있습니다. 이벤트를 통해 공정여행의 첫 발을 내딛어 보세요.



여전히 '좋은 여행'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확실한 답을 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휴식과 재충전' 같은 답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각에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하나 분명한 것은 '공정여행'이 보다 보편적인 여행 방식이 되고,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좋은 여행'을 찾기 위한 여정을 지속하다 보면 세계 곳곳에서 지금보다 훨씬 자주 희망을 보게 되리라는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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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0127 2009-07-06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대방이 찡그리고 있는데 내가 즐거울 수 없듯이 공정여행도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휴가마저도 바쁘고 정신없이 다녀야 한다면 그건 진짜 휴가가 아니겠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알라딘가정/여행/좋은부모MD조현정 2009-07-06 17:46   좋아요 0 | URL
네, 휴가만큼은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대하면 좋겠어요. 좋은 댓글 고맙습니다.
 

'내몸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 

 전작이 성공적인 결과를 거둔 경우, 후광 효과는 뒤편까지 이어집니다. 기존 책을 읽은 독자분들의 '이번에도' 하는 기대심리와 함께 무럭무럭 전해지는 입소문도 무시할 수 없겠죠. 궁극적으론 책을 읽다 보면 타도서에 비해 이러저러한 차별점이 분명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내몸 젊게 만들기> 역시 화제가 된 '내몸 사용설명서'와 '내몸 다이어트 설명서'에 이은 시리즈물 중 한 권인 동시에 단권 자체만의 매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노화에 초점을 맞춰 내 몸의 작동 원리와 주의할 점 등을 일러 줍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몸을 도시에 비유하기도 하고 각 장마다 '내몸 노화 테스트'를 두어 독자가 흥미를 잃지 않도록 돕습니다. 재미있는 테스트가 많은데 현재의 몸 상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도 유익합니다. 한 가지 소개해 볼까요. 

휴가를 떠나기 전날 저녁 5시, 출발 준비목록을 검사한다. 아직 여행가방과 아이들 소지품을 챙기지 못했다. 강아지를 애견보호소에 맡기고 여행 티켓도 프린트해야 한다. 또한 아이를 축구연습장에서 데려오고 처방받은 약을 약국에서 구입해야 한다. 공항까지 갈 차에 기름을 채우는 것과 떠나기 전에 배우자에게 화장실 물탱크 새는 곳을 고치겠다는 다짐을 받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축구연습장으로 가는 길에 강아지는 아직 차 안에서 헐떡대고 있는데, 자동차의 엔진점검등이 깜박이며 마지막 인내력을 시험한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A. 배고픈 아이처럼 소리를 지른다.   

B. 치즈조각으로 먼저 배를 채운다.  

C. 가까운 카센터로 가서 자동차에 다른 문제는 없는지 체계적으로 점검한다. 

D. "내일 바하마로 떠나는데, 내일이면 바하마로......'라고 중얼거린다.  

E. 자동차 회사를 욕하고 휴대전화를 차창으로 던져버린다. 강아지까지 차 밖으로 내친다. 이놈은 넉 달 전에 카펫에 오줌을 싼 적이 있어. 불결하고 귀찮은 놈 같으니!

'인내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라고 스트레스의 반응과 관련된 테스트였습니다. 읽는 것만으로도 고역이죠. 생각 같아선 E를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겠지만 C번이 역시나 건강한 스트레스 반응이라고 합니다. D번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위로해 주네요. D번을 선택한 저는 엄청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로도 테스트를 할 때마다 비슷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는...-_- 

 그나저나 모기가 나타나기 시작한 걸 보니 어느새 여름이 코앞이네요. 여름하면 팔에 남는 모기 물린 자국과 함께 불면의 밤을 쉽사리 떠올리게 됩니다. 굳이 여름이 아니라도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분들은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겠습니다. 수면 부족 역시 '내몸의 노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하루에 6시간 미만의 수면을 취하는 사람은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심장병, 중풍이 생길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50퍼센트 이상 높다'고 하네요. 숙면의 방법도 알려줍니다. '시원하고 어두운 방'을 만들고 '컴퓨터와 텔레비전을 사용하지 마라' 등 실생활에서 약간의 신경만 기울여도 개선 가능한 방법들이 대부분입니다. 

가능한 쉽게 풀이하려 했겠지만 워낙 낯선 용어와 생소한 개념으로 인해 책읽기가 수월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부분일수록 일단은 건너뛰고 일독을 권합니다.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고 다시 읽어도 좋고, 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이 생길 때마다 한 번씩 재확인해 봐도 좋겠습니다. 다이어트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내일부터'라는 마음가짐에 있을 것 같은데, 건강을 지키는 습관 역시 '바로 지금부터' 아주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는 데 의미를 두어야 겠습니다. 특히 노화는 나와는 아주 먼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미리 미리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위해서라도 꼭 찾아보셨으면 합니다. 

바를수록 독이 되는 화장품의 비밀 

 저가 화장품의 등장으로 초등학생들도 화장을 하고 다닌다는 요즘 화장품의 위험성을 고발한 책이 나왔습니다. '에이, 설마'하고 지나치지 마세요. 매일 아침 저녁은 물론 때때로 피부에 바르는 화장품이지만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 알 수 없었던 정보들이 가득합니다. 화장품 회사에 근무하다가 지금은 화장품과 관련된 공부를 하고 있는 두 명의 지은이가 알면 알수록 놀라운(?) 사실들을 밝히고 있습니다.  

 화장품 광고 모델은 왜 톱 스타들로 이뤄지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화장품의 원료 값과 맞먹는 광고비를 알면 이해하게 됩니다. 저가 브랜드의 가격 책정은 석유계 화학물로 이뤄진 성분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석면 파동으로 놀랐던 기억이 엊그제인데 속속들이 밝혀지는 그보다 놀라운 사실들이 충격적입니다. 보다 확실히 충격을 받는 법으로는 이 책의 말미에 실린 '가장 피해야 할 20가지 화장품 성분 카드'의 내용을 내 화장대 위에서 찾아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확인차 직접 찾아 보니, 자가 면역성을 저하시킨다는 '미네랄 오일'은 물론 내분비장애 물질이라는 파라벤까지 화장품마다 골고루 들어 있는 화학 첨가물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보다 뜨악했던 사실은 수십가지나 되는 화장품 성분의 발견이었습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이름들이 줄줄이 나열돼 있는 화장품 상자를 들고 망연자실할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화장품은 버려야 할까요, 대안은 없을까요? 이 책의 저자들은 무조건 많이 바를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only one을 찾아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스킨-로션-에센스-나이트 크림'이라는 공식을 잊어 버리고 자신에게 맞는 화장품 하나를 찾으라는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며 피부의 숨구멍을 열어줄 수 있다고 하네요. 그리하여 제 화장대 위의 제품들은 버려졌을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선물받아 포장마저 뜯지 않은 화장품을 제손으로 버리기엔 가슴이 아파 쓰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장식품으로 두고 있는 슬픈 현실을 알립니다. 여성들에게 어느날 갑자기 화장을 중단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일 겁니다. 특히 사회생활을 하는 분들에게는 TPO가 피부 생명만큼 중요할 때도 있는 법이니까요. 다만 실체를 알고 미리 주의하는 것 역시 중요하단 생각입니다. 백설공주도 왕비가 건넨 사과가 독사과인 줄 알았다면 아주 살짝 베어먹거나 아예 손대지 않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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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몸 사용설명서
마이클 로이젠, 메멧 오즈(지은이), 유태우(옮긴이) / 김영사
내몸 다이어트 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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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 2009-07-01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알라딘에서 화장품 구입할 때 표시성분을 확인할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어디에 건의해야 할지 몰라서 글 남깁니다. 감사합니다.

알라딘가정/여행/좋은부모MD조현정 2009-07-04 13:12   좋아요 0 | URL
네, 안녕하세요?^^ 저도 궁금했던 사항인데 기프트팀에 문의한 결과, 아래와 같이 안내 받았어요.
문의 따로 주시면 상세히 알려 주실 거에요!
'화장품 전성분표시제는 상품자체 케이스 등에 표시하는 제도로 아직 인터넷 웹상에는 일부만 표기돼 있습니다. 현재 알라딘 내 모든 화장품 제품에 전성분을 표기하는 데는 작업량이 방대해 시간이 걸릴 거 같습니다.
고객님께서 궁금하신 상품의 경우, 알라딘 고객게시판에 문의해주시면 성심성의껏 확인하여 답변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비경(秘境)을 안내한다. 

'조선후기 시조작가 안민영은 서부진화부득(書不盡畵不得)이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나라의 산하가 글로도 표현할 수 없고 그림으로도 묘사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는 뜻이다.-들어가는 글 중' 

책장을 스르륵 넘긴다. 그야말로 풍경화같은 절경을 담은 사진들이 눈에 들어와 박힌다. 봄부터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는 목차 순서대로 우리나라 각지의 사계절 풍경이 펼쳐지고, '사계절이 비교적 뚜렷한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복받은 일이구나' 새삼 감탄하게 된다. 사진뿐 아니라 여행지 소개 글에도 문학적 감수성이 묻어난다. 틈틈이 등장하는 그 지방과 연관된 문학 작품 이야기 역시  반갑다. 김동리의 <역마>에 나오는 화개천과 김승옥의 <무진기행>에 '안개나루'라고 표현된 대대포구의 안개 등을 접하다 보면 짐을 꾸려 문학 답사라도 떠나고 싶어진다. 여행지마다 뒤편에 한 장씩 실려 있는 1박 2일 추천 코스는 떠나려는 이의 등을 떠밀어 주는 격이다.  

10여 년간 관광전문기자로 일한 지은이가 펼쳐놓는 계절별 8곳, 총 32곳의 아름다운 우리나라 여행지. 가보지 못한 곳에선 새로움을, 가본 곳에선 미처 알지 못했던 의미를 다시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다. 표지 사진처럼 시원스레 바람에 흐트러지는 청보리밭 바다가 그리운 계절이다. 

 더 많이, 더 알뜰하게, 더 걸으며 알고 싶은 우리나라

 

<대한민국 여행사전>은 '아름다운 우리나라 가고 싶은 1,000곳!'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책이다. 자그마치 1,000곳이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 그토록 많은 여행지가 숨어있단 사실도 놀랍고 그 여행지를 찾아낸 노력도 가상히 여길만 하다. '이책사용설명서'를 보면 '이 책은 독자들이 여행 가고 싶을 때 목적지를 쉽게 결정할 수 있게 도움을 주려는 의도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여행지는 문화유산 기행, 체험.학습여행 등 20가지 테마에 따라 나뉘어져 있고 '지역별 찾아 보기'를 말미에 두어 독자들을 배려하고 있다. 여행지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구하기 보단 두고두고 훑어 보거나 내가 사는 고장의 여행지를 찾아 보기 좋게 되어 있다.  

<알뜰 여행지 75>는 가격대별 여행지를 추천한다. 서울에서 출발하면 왕복 버스비에 식사 가격까지 포함 단돈 1만원 이하로 여행이 가능한 종로 5가역 광장시장부터 10만원대 1박 2일 강릉 유람선관광까지 여행 경비에 맞춰 여행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현지 가격이 궁금한 이들에게도 참고로 할만한 책이다. <길 위에서 놀다>는 김화성 기자가 2년간 직접 밟아온 길들을 소개한다. 요즘 여행 트렌드는 드라이빙도 자전거 라이딩도 아닌 걷기라고 한다. 제주 올레길은 물론이요, 지리산 둘레길에 동해 해안길까지 마음껏 걸을 수 있는 길들이 가득하다. 덧붙여 얼마 전 무턱대고 걷기에 동참한 후 뼈저리게 깨달은 것은 챙 넓은 모자, 쿠션 좋은 운동화는 필수 지참해야 한단 사실이었다. (꼭 챙기세요!)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국제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는 제주도. '제주 올레' 코스가 생겨나며 다시 주목받고 있지만 그 외에도 제주도에는 볼 것, 할 것이 무궁무진함을 알려주는 두 권의 책이 나왔다. <제주도 비밀 코스 여행>은 어느날 갑자기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가 생활자가 되어 버린 지은이가 살며 여행하며 들려주는 지역 안내기이다. 거의 매페이지마다 실려있는 풍부한 사진 자료가 침을 꼴깍 삼키게 한다. 흥미로웠던 장소는 한가로운 옹포리 바닷가 마을, 녹차 박물관이 있는 서광 다원, 이중섭의 집과 박물관, 돌고래 쇼를 볼 수 있는 퍼시픽 랜드, 야밤의 러브 랜드, 섬속의 섬이라는 우도,...    

반면 '제주도의 푸른밤' 노래와 더 어울리는 책은 <낭만 제주>다. 지은이가 그만의 그녀와 함께한 제주 여행을 에세이로 풀어냈다. 여행가이드로 삼기에는 친절하지 않아 보이지만 제주의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손색 없을 듯 하다. 여행에서 맛집을 찾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차원에서 소개하는 먹을거리에 얽힌 한소절. 

   
 

화이트 비치호텔을 지나자마자 바다가 보였다. 정말 탁 트인 바다가 눈앞에 갑자기 나타났다. 낚시꾼들이 루어를 던져 놓고 앉아 맥주나 소주를 홀짝거리는 모습을 TV에서 본 일이 있어서, 나는 "우리 아까 회 뜬 거 그냥 여기서 먹고 갈래?" 하며 제안을 했다. 공공장소에서 민폐 끼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녀가 웬일인지 '오케이' 사인을 주었다. 두리번거리다가 방파제 옆 매점에서 소주 한 병을 사왔다.  

적당한 오후에 방파제에 대충 걸터앉아 회 접시를 무릎에 올려 두고 먹는 그 맛. 이제껏 우리 둘이 함께 먹은 요리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맛으로 남았다. -p. 213 중에서

 
   

 겨울의 북유럽과 예술의 도시 파리 

북유럽하면 떠올랐던 건, 눈으로 가득찬 산림과 영화 '카모메 식당'을 통해 본 핀란드의 헬싱키 같은 단편적인 이미지. <윈터홀릭>은 국내에는 생소한 북유럽을 친숙하게 여기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스칸디나비아에 속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를 비롯해 핀란드, 아이슬란드, 러시아까지 6개국의 여행담을 들려준다. 홀로 여행하는 자의 감성을 담담히 내비추는 글도 좋지만 책 디자인이 매력적이다. 종종 유아 그림책에서 만나는 귀퉁이를 각지지 않게 깎아 만든 장정이 귀여운데다 페이지수를 늘린데 기여했을 적당한 글 사이 간격도 좋다. 시원스레 읽히는 글을 따라 마지막 장까지 넘기고 나면 머릿속에는 어느새 '스칸디나비아에 꼭 가보자'는 다짐 하나가 떠오른다.   

눈 내린 핀란드의 자연은 한편의 서정시나 쇼팽의 피아노곡을 연상케 한다. 이곳은 드넓은 국토에 비해 사람이 사는 땅은 그리 많지가 않다. 그래서일까. 그저 있는 그대로 휑하니 펼쳐진 대지는 여행의 긴장감을 늦추고 편안함을 선사한다. 도중에 잠이 들고 깨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기차는 로바니에미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칠흙 같은 어둠 너머로 간간이 툰드라 숲의 실루엣이 스쳐 지나갔다. 잠시 후 기차가 곧 로바니에미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플랫폼에 내려서니 확실히 헬싱키와는 피부에 느껴지는 공기의 감촉부터 다르다. 더 차갑고 적막한 느낌, 다시 낯선 도시에 다다랐음을 느낀다. -p. 95,96 중에서

이 책의 지은이는 오스트레일리아 태생으로 이탈리아로 건너가 사진 공부를 마치고 사진작가로 일하던 여성이다. 5년간의 피렌체 생활에 만족하며 살던 그가 프랑스로 가게 된 건 남자친구의 제안 때문으로 '친구따라 강남간다'가 아닌 '남자친구따라 프랑스' 가게 된 셈이다. 그것이 프랑스만큼이나 화려한 <파리 탱고>라는 이 책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된다. 일찍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베르 두아노 등 수려한 사진으로 남긴 대가들로 인해 보다 매력적인 도시가 된 파리를 현(現) 작가의 시점에서 다시 보여준다. 물랭 루즈, 예술가의 아틀리에, 댄스 등 예술가의 시선으로 본 파리의 일면을 담은 사진과 글을 통해 독자를 파리 중심지로 초대한다. 

클레리코는 어떻게든 파산을 모면하려고 고군분투했고 그사이 물랭 루주 무용수는 관객이 듬성듬성 앉은 무대에서도 계속 춤을 추었다. 2000년에는 새로운 쇼 '페리'에 800만 유로의 투자를 유치했다. 모든 것이 다시 성공 무드를 탔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영화감독 바즈 루어만은 툴루즈 로트렉 시절의 물랭 루주에서 영감을 얻어 영화를 기획했다. 니콜 키드먼과 이완 맥그리거가 출연한 영화 <물랭 루즈>가 2001년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물랭 루주 무용수 몇몇이 이 영화 속에 등장했다. 영화는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물랭 루주라는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다. 긴 밤이 지나갔다. 이제 무용수는 유명인의 자리를 되찾았고, 홀을 가득 메운 관객 앞에서 하룻밤에 두 차례씩 공연을 하게 되었다. -p. 123,125 중에서  

 기발한 일본 여행 속으로!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기 전에는 해적판 만화를 보면서 왠지 주변의 눈치를 봐야 했고, 드라마와 영화는 접하기도 쉽지 않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세월이 흘러 일본 영화를 극장에서 마주하고 오다기리 죠니, 우에노 쥬리니 일본 배우들의 이름을 거리낌 없이 말하노라면 새삼 격세지감을 느끼곤 한다. 이런 말 자체가 너무 뻔할만큼 일본 문화가 일상적이 된 지 오래인데다 일본의 만화, 드라마, 영화에 열광적인 이들도 많은 요즘이지만.  

이번엔 그들을 위한 도쿄 여행책이 나왔다. <노플랜 사차원 유럽 여행>,<도쿄나비> 에서 유쾌한 수다를 선보였던 정박사, 아니 정숙영의 <도쿄 만담>이 그 주인공이다. 얼마전 국내에서도 제작, 방영됐던 <꽃보다 남자>의 일본 드라마에 나왔던 배경이며 <홍차왕자>, <노다메 칸타빌레>, <춤추는 대수사선> 등 책이나 영상으로 접했던 장소 21곳을 실제로 찾은 기록을 담았다.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를 순례하듯 방문하는 일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굉장한 열의가 담긴 여행담을 읽다 보면 한 번쯤 가봐도 좋겠단 생각이 들 것 같다. 좋아하는 작품의 실제 배경을 쫓는 즐거움과 함께 새로운 작품을 소개받는 기쁨까지,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개인적으로는 <사랑 후에 오는 것들>에서 최홍이 돌고 돌았던 이노카시라공원과 <죠제 ,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죠제와 츠네오가 찾았던 바다가 가고 싶어졌고, 죠제네가 찾았던 동물원은 직접 찾아서 언젠가 한 번 가보자고 마음 먹게 되었다.

일러스트, 만화, 사진으로 정리한 일본 철도 여행기가 책으로 나왔다. <드로잉 일본 철도 여행>은 JR 패스(Japan Rail Pass) 21일권을 들고 한달 여간 일본 열도를 누빈 지은이의 일정을 쫓는다. 유후인처럼 널리 알려진 온천 지역 외에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하루키의 여행법>에서 추천한 나카무라 우동이 있는 가가와현, 다자이 오사무의 생가가 있는 가나이역과 같이 일본 문화와 연관된 장소를 확인할 수 있다. 400쪽을 살짝 넘는 페이지 수가 킥킥 대며 웃다 보면 금새 넘어간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열차의 구조와 에키벤(열차 도시락), 각 지역의 명물을 아기자기한 그림으로 보여준다. (하단의 본문 이미지 참조)   

일본 철도 여행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면 <낭만의 일본 기차 여행>을 참고로 보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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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ihye333 2009-06-09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좋아하는데 이런책들이 유용할것 같네여~~

알라딘가정/여행/좋은부모MD조현정 2009-06-11 09:32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여행을 좋아하는데 자주 가지 못해서 책으로 위안을 삼아요.
여행책도 많이 보시고 저보다 여행도 많이 하시길 바랄게요. ^^

시끌북스 2009-08-13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가 있는 여행책은 참으로 흥미로와요~ 글도 글이지만 왠지 그곳에 있다는 느낌을 주는 만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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