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했던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개인적, 경제적, 사회적인 모든 상황들을 떠올려 볼 때, 역시 '지난하다'는 표현 외엔 딱히 떠오르지가 않아요. 특히 올해는 유명을 달리한 유명인들이 많아 전반적인 분위기가 더욱 암울했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마이클 잭슨의 죽음은 전 세계인들에게 추모의 대상이었고, 많은 이들이 그의 장례식을 생중계로 지켜 보며 눈물을 흘렸지요. 누구나의 죽음이 그렇듯이 시간이 흘러 잊어가던 중에 영화 속에서 그를 다시 만났습니다. 고인이 마지막으로 등장한 영상물이고, 공연의 총감독이 감독이 된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을 통해서죠. 이미 막을 내린 영화지만 그 감동이 고스란히 마음에 남아 기록해 봅니다.   



영화는 당초 7월부터 50일간 월드 투어 공연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던 '디스 이즈 잇'의 리허설 장면들을 보여 줍니다. 언뜻 특정 줄거리가 없어 지루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어떤 이야기보다 더한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들어봤을 그의 주옥같은 곡들이 흘러 추억을 상기시킬 뿐 아니라, 실제로 공연 되었더라면 적어도 근년 내 가장 인상적인 공연으로 남겨졌을 것이란 확신이 들 정도로 퍼포먼스가 훌륭했기 때문에.   

세포 하나 하나, 뼈마디 한 조각까지 음악을 위해 태어난 것 같은 그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든 생각은 열정과 인생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분명 리허설인데도 본 공연만큼이나 열정적인 그를 보면서 절로 감탄사가 나왔음은 물론입니다. (업무적으론 '이래서 리허설이 필요하다'는 말이 어찌나 와닿던지.) 흔히 '인생을 한 편의 공연같다'고 비유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편의 성공적인 본 공연을 위해 무미건조한 일상을 견뎌내고 있잖아요. 언젠가는 성공한 사업가, 부자가 되길 바라며 '고작 일상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살아갑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 그런데 '고작' 리허설만으로도 감동을 만들어 낼 줄 아는 그를 통해 잃어버린 열정을 상기하게 됩니다. 온갖 추문들이 있다 해도 결국 마이클 잭슨의 음악 인생은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DVD로 나온다면 단숨에 구입해 하루 종일 돌려 보거나 많은 이들에게 선물하고 싶네요. 그럼 조금씩은 힘을 얻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본업으로 돌아와, 지금 조금 더 열정을 얻고 싶다면 <다시 가슴이 뜨거져워라>의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아나운서보다 여행작가로 더 이름을 알리고 있는 손미나 씨의 아르헨티나 여행기입니다. 책의 성격은 일본 여행기인 <태양의 여행자>보다는 처녀작인 <스페인, 너는 자유다>에 더 가깝습니다. 그녀의 스페인어권 문화에 대한 기본 소양과 관심이 글 속에서 자연스레 배어 나옵니다. 특히 두려움 없이 스스로의 호기심에 호응하고 도전하는 '손미나'이기에 가능한 일화들이 무척 재미있게 읽히고, 우연히 만난 탱고 춤을 추는 한국인 남자의 사연은 굉장히 기억에 남습니다. 옮겨 보면 이렇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 과연 저를 이해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말씀드리죠. 저는 전라도 광주에서 살고 있던 평범한 회사원이었습니다. 어느 날, 어디론가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언젠가 꼭 와보고 싶던 남미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한 달 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와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와서 지내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정말 볼 것도 많고 재미난 곳인데 제 눈에는 단 한 가지밖에 들어오지를 않았습니다. 그건 모두 탱고에 관한 것들이었죠. 무엇보다 탱고 음악에 완전히 매료된 채 한 달 동안 거의 매일, 다른 구경은 하지도 않고 탱고 연주를 들으러 다녔습니다. 그리고는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는데......"     

또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그는 뚫어지게 커피 잔을 바라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제 인생은 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일도 할 수가 없었고 친구들도 만나기가 싫었고 오로지 탱고에 관한 생각밖에는 없었어요. 그 어떤 말로도 당시 저의 마음을 표현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아무리 잘 설명한다 해도 이해할 사람이 없을 거구요. 그래서 한동안 고민을 하다가 결국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하게 되었죠. 이상한 얘기 같지만 여행 전의 제 삶은 모두 의미를 잃었습니다. 진짜 제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대신 살다 비로소 저의 인생을 찾은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어요. 그래서 부모님께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며 말씀드렸습니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인 그는 결국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가 '카를로스'라는 이름으로 탱고에 바치는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결정적인 무언가를 만난 것 자체가 드라마 같은 이야기지만, 그러한 것을 놓치지 않고 선택해 일상을 열심히 살아내는 모습에 더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행복을 의미하는 파랑새는 우리 주변에 있다고 하죠.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떠났던 날이 바로 오늘,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라고 하네요. 너무 멀리 가지 마시고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훈훈하게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내년에는 일상이 보다 풍요로워지길 역시 바라며 저도 파랑새를 쫓아 이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