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제주도는 처음이었다. 돌아보면 몇 차례쯤 여행할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히 취소되는 바람에 인연이 없구나 여겼었다. 그러다가 지난 8월의 어느날 훌쩍 제주 땅을 밟게 됐다. 급조한 여름 휴가를 위해 준비한 왕복 티켓 한 장 손에 들고 제주공항에 내려선 것이다. 공항 출구를 빠져나온 순간부터 미아가 된 기분이었지만 야자수 이파리 위로 보이는 높고 푸른 하늘만 봐도 걱정은 금새 사라져 버렸다. 렌트할 차가 있네 없네 실랑이 끝에 찾아낸 무려 98년식 렌터카에 몸을 싣고 나니 스슬 배까지 고파질 지경이었다.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지도와 가이드북을 펼쳐 놓고 가고 싶은 곳을 손에 꼽아 봤다. 큰 욕심 부리지 말자는 애초 각오와 달리 금릉 해수욕장, 테디 베어 박물관, 제주올레, 만장굴, 한라산 등 아름다운 관광지가 줄줄이 눈에 들어왔다. 예정된 2박 3일의 짧은 일정으론 결코 소화할 수 없는 코스였기에 눈물을 머금고 꼭 가고 싶은 곳만 엄선해 돌아 보았다. 때문에 돌아오는 길에 느낀 아쉬움이 컸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취향 탓인지 기억에 남는 곳들은 대부분 아래와 같이 유명 관광지가 아닌 곳들이라 한편 안도하는 마음도 든다.    



- 4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듯 앤티크한 매력이 물씬 풍기는 한림공원



-끝없이 펼쳐지는 차밭과 차를 음미하며 즐길 수 있는 오설록 녹차 박물관 



 -이중섭 거주지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이중섭이 살았던 옛 집. 화가 이중섭은 평남 평원 출생이나 생활고와 함께 평생 각지를 유랑하며 살았다. 제주도에 보존돼 있는 '이중섭 거주지' 역시 떠도는 삶 중 1951년 한 해 가량 세들어 살았던 집터이다. 이 곳이 애틋하게 와닿는 까닭은 그 다음해 그의 아내가 두 아이와 함께 도일(渡日)하기 전 마지막 행복을 누렸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기껏 두 명이 누워도 부대낄 것 같은 좁은 방을 파라다이스처럼 여겼던 그의 처지와 이 후 그에게 닥친 불운을 생각해 보면 가슴 한 켠이 절로 먹먹해 질 수밖에 없다. 김춘수 시인은 '이중섭'을 주제로 연작시를 여러 개 짓기도 했는데 내가 가장 잘 기억하는 시는 '내가 만난 이중섭'이다.  

광복동에서 만난 이중섭은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
동경에서 아내가 온다고
바다보다도 진한 빛깔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눈을 씻고 보아도
길 위에
발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뒤에 나는 또
남포동 어느 찻집에서
이중섭을 보았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그는 한뼘한뼘 지우고 있었다.
동경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고.    -김춘수, '내가 만난 이중섭' 전문 

 여러모로 넉넉한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이라 부족함에 고생도 많았다. 그래도 각종 싱싱한 회를 끼니 때마다 챙겨 먹고 맑은 하늘과 바다에 눈을 씻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진작 가보지 못했던 것이 후회스러울 정도로 떠나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비록 올레길을 타박타박 걸어보지 못하고 한라산 정상에 올라서지도 못했지만 조만간(?) 있을 다음 여행을 기약해 본다. '마을 어귀까지의 작은 골목길'을 뜻하는 올레처럼 아기자기한 경치가 골목마다 가득한 제주도를 떠올리면 상상만으로도 벌써 가슴이 설레여 온다.    

 

Part. 2 

제주도 여행에 고마운 도움을 받았던 책들을 소개합니다. 
대략적인 코스를 정하고 주요 관광지 정보를 얻는데 요긴했던 책은 <제주도 비밀코스여행>입니다. 서울에서 잡지 기자로 일하다 제주도에 내려가 2년간 생활한 지은이가 들려주는 정보가 풍부한데다 감수성까지 엿볼 수 있어 더없이 좋았습니다. <낭만 제주>의 경우 여행에세이의 성격이 강해 가이드로 삼기 보단 여행지별 분위기를 참고하는데 도움이 됐습니다. 간혹 찾고 싶은 음식점 정보도 있었는데 제주도 여행이 처음이라 찾기가 쉽지는 않았네요. 아마 저같은 분들보단 제주도 여행에 익숙한 분들이 보기 좋을 것 같습니다. 반면 <스타일 제주>는 여행을 다녀와서 만나게 된 책인데 스파, 갤러리 등 독특하고 세련된 장소 소개가 많아 눈길이 갑니다. 특히 챕터 말미마다 실린 여행의 팁은 여자분들에게 유용하게 쓰이겠네요.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실전에 활용해 보진 못했지만 제주 올레 길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걷기여행>입니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다시 제주도로 돌아가고만 싶어집니다. 제주도는 가을 여행의 매력도 크다고 하니, 아직 여행 전이신 분들은 제주도를 방문해 보세요! 후회 없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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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인터뷰 기사를 좋아하게 됐다. 늘 사던 잡지에서 읽는 순서는 편집자의 말, 별자리 운세, 주요 기사였는데 지금은 그달의 인터뷰이를 찾는 일이 일순위가 됐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름대로 현사회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진 탓이다. 시대가 하 수상하니 나라 걱정도 걱정이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까닭모를 연민의 감정이 마구 솟아나는 것이다.

 

'긴 시간이 지나 역사에게 받게 될 평가를 위해서라도 대중이 지켜야 할 신뢰와 가차 없이 배신해야 할 의리는 반드시 구별해내야만 합니다.'

'배신'의 다양한 함의에 놀랐고 그럼에도 이제껏 한정적인 의미로만 사용했던 스스로에게 더 놀랐다. 언제나 배신을 당하는 입장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했을 수많은 배신들에 대해서도 되돌아 보게 됐다. 그리고 기왕 하려거든 의미있는 일에 신중하게 배신을 써먹어야 겠단 생각도. 시대의 논객 진중권부터 삼성특검의 주역이었던 김용철 변호사,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등을 통해 21세기 각분야에 새롭게 등장한 '배신'의 형태를 배울 수 있었던 좋은 기회가 되었다.

 

<신해철의 쾌변독설>은 화장실에서 읽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은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완독했다. 100분 토론부터 라디오 프로까지 종횡무진 활약하는 그의 지론이 어떠할 지 평소에 궁금했는데 궁금증 해소 차원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반면 <류승완의 본색>은 마음산책 출판사의 감독시리즈라는 연장선상에서 속독한 결과 유쾌했다. 찰리 채플린과 함께 무성코미디영화의 양대산맥이라는 버스터 키톤에 대한 그의 애정을 쫓아 <버스터 키톤 컬렉션>을 사보기까지 했다. (나로선 찰리 채플린이 더 좋긴 했지만.) 재능있는 감독의 재기있는 글을 보는 일은 즐겁다. 마침 '놈놈놈'의 제작기가 수록된 <김지운의 숏컷> 개정판이 나왔으니 겸사겸사 다시 보는 일 역시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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