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비경(秘境)을 안내한다. 

'조선후기 시조작가 안민영은 서부진화부득(書不盡畵不得)이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나라의 산하가 글로도 표현할 수 없고 그림으로도 묘사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는 뜻이다.-들어가는 글 중' 

책장을 스르륵 넘긴다. 그야말로 풍경화같은 절경을 담은 사진들이 눈에 들어와 박힌다. 봄부터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는 목차 순서대로 우리나라 각지의 사계절 풍경이 펼쳐지고, '사계절이 비교적 뚜렷한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복받은 일이구나' 새삼 감탄하게 된다. 사진뿐 아니라 여행지 소개 글에도 문학적 감수성이 묻어난다. 틈틈이 등장하는 그 지방과 연관된 문학 작품 이야기 역시  반갑다. 김동리의 <역마>에 나오는 화개천과 김승옥의 <무진기행>에 '안개나루'라고 표현된 대대포구의 안개 등을 접하다 보면 짐을 꾸려 문학 답사라도 떠나고 싶어진다. 여행지마다 뒤편에 한 장씩 실려 있는 1박 2일 추천 코스는 떠나려는 이의 등을 떠밀어 주는 격이다.  

10여 년간 관광전문기자로 일한 지은이가 펼쳐놓는 계절별 8곳, 총 32곳의 아름다운 우리나라 여행지. 가보지 못한 곳에선 새로움을, 가본 곳에선 미처 알지 못했던 의미를 다시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다. 표지 사진처럼 시원스레 바람에 흐트러지는 청보리밭 바다가 그리운 계절이다. 

 더 많이, 더 알뜰하게, 더 걸으며 알고 싶은 우리나라

 

<대한민국 여행사전>은 '아름다운 우리나라 가고 싶은 1,000곳!'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책이다. 자그마치 1,000곳이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 그토록 많은 여행지가 숨어있단 사실도 놀랍고 그 여행지를 찾아낸 노력도 가상히 여길만 하다. '이책사용설명서'를 보면 '이 책은 독자들이 여행 가고 싶을 때 목적지를 쉽게 결정할 수 있게 도움을 주려는 의도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여행지는 문화유산 기행, 체험.학습여행 등 20가지 테마에 따라 나뉘어져 있고 '지역별 찾아 보기'를 말미에 두어 독자들을 배려하고 있다. 여행지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구하기 보단 두고두고 훑어 보거나 내가 사는 고장의 여행지를 찾아 보기 좋게 되어 있다.  

<알뜰 여행지 75>는 가격대별 여행지를 추천한다. 서울에서 출발하면 왕복 버스비에 식사 가격까지 포함 단돈 1만원 이하로 여행이 가능한 종로 5가역 광장시장부터 10만원대 1박 2일 강릉 유람선관광까지 여행 경비에 맞춰 여행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현지 가격이 궁금한 이들에게도 참고로 할만한 책이다. <길 위에서 놀다>는 김화성 기자가 2년간 직접 밟아온 길들을 소개한다. 요즘 여행 트렌드는 드라이빙도 자전거 라이딩도 아닌 걷기라고 한다. 제주 올레길은 물론이요, 지리산 둘레길에 동해 해안길까지 마음껏 걸을 수 있는 길들이 가득하다. 덧붙여 얼마 전 무턱대고 걷기에 동참한 후 뼈저리게 깨달은 것은 챙 넓은 모자, 쿠션 좋은 운동화는 필수 지참해야 한단 사실이었다. (꼭 챙기세요!)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국제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는 제주도. '제주 올레' 코스가 생겨나며 다시 주목받고 있지만 그 외에도 제주도에는 볼 것, 할 것이 무궁무진함을 알려주는 두 권의 책이 나왔다. <제주도 비밀 코스 여행>은 어느날 갑자기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가 생활자가 되어 버린 지은이가 살며 여행하며 들려주는 지역 안내기이다. 거의 매페이지마다 실려있는 풍부한 사진 자료가 침을 꼴깍 삼키게 한다. 흥미로웠던 장소는 한가로운 옹포리 바닷가 마을, 녹차 박물관이 있는 서광 다원, 이중섭의 집과 박물관, 돌고래 쇼를 볼 수 있는 퍼시픽 랜드, 야밤의 러브 랜드, 섬속의 섬이라는 우도,...    

반면 '제주도의 푸른밤' 노래와 더 어울리는 책은 <낭만 제주>다. 지은이가 그만의 그녀와 함께한 제주 여행을 에세이로 풀어냈다. 여행가이드로 삼기에는 친절하지 않아 보이지만 제주의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손색 없을 듯 하다. 여행에서 맛집을 찾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차원에서 소개하는 먹을거리에 얽힌 한소절. 

   
 

화이트 비치호텔을 지나자마자 바다가 보였다. 정말 탁 트인 바다가 눈앞에 갑자기 나타났다. 낚시꾼들이 루어를 던져 놓고 앉아 맥주나 소주를 홀짝거리는 모습을 TV에서 본 일이 있어서, 나는 "우리 아까 회 뜬 거 그냥 여기서 먹고 갈래?" 하며 제안을 했다. 공공장소에서 민폐 끼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녀가 웬일인지 '오케이' 사인을 주었다. 두리번거리다가 방파제 옆 매점에서 소주 한 병을 사왔다.  

적당한 오후에 방파제에 대충 걸터앉아 회 접시를 무릎에 올려 두고 먹는 그 맛. 이제껏 우리 둘이 함께 먹은 요리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맛으로 남았다. -p. 213 중에서

 
   

 겨울의 북유럽과 예술의 도시 파리 

북유럽하면 떠올랐던 건, 눈으로 가득찬 산림과 영화 '카모메 식당'을 통해 본 핀란드의 헬싱키 같은 단편적인 이미지. <윈터홀릭>은 국내에는 생소한 북유럽을 친숙하게 여기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스칸디나비아에 속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를 비롯해 핀란드, 아이슬란드, 러시아까지 6개국의 여행담을 들려준다. 홀로 여행하는 자의 감성을 담담히 내비추는 글도 좋지만 책 디자인이 매력적이다. 종종 유아 그림책에서 만나는 귀퉁이를 각지지 않게 깎아 만든 장정이 귀여운데다 페이지수를 늘린데 기여했을 적당한 글 사이 간격도 좋다. 시원스레 읽히는 글을 따라 마지막 장까지 넘기고 나면 머릿속에는 어느새 '스칸디나비아에 꼭 가보자'는 다짐 하나가 떠오른다.   

눈 내린 핀란드의 자연은 한편의 서정시나 쇼팽의 피아노곡을 연상케 한다. 이곳은 드넓은 국토에 비해 사람이 사는 땅은 그리 많지가 않다. 그래서일까. 그저 있는 그대로 휑하니 펼쳐진 대지는 여행의 긴장감을 늦추고 편안함을 선사한다. 도중에 잠이 들고 깨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기차는 로바니에미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칠흙 같은 어둠 너머로 간간이 툰드라 숲의 실루엣이 스쳐 지나갔다. 잠시 후 기차가 곧 로바니에미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플랫폼에 내려서니 확실히 헬싱키와는 피부에 느껴지는 공기의 감촉부터 다르다. 더 차갑고 적막한 느낌, 다시 낯선 도시에 다다랐음을 느낀다. -p. 95,96 중에서

이 책의 지은이는 오스트레일리아 태생으로 이탈리아로 건너가 사진 공부를 마치고 사진작가로 일하던 여성이다. 5년간의 피렌체 생활에 만족하며 살던 그가 프랑스로 가게 된 건 남자친구의 제안 때문으로 '친구따라 강남간다'가 아닌 '남자친구따라 프랑스' 가게 된 셈이다. 그것이 프랑스만큼이나 화려한 <파리 탱고>라는 이 책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된다. 일찍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베르 두아노 등 수려한 사진으로 남긴 대가들로 인해 보다 매력적인 도시가 된 파리를 현(現) 작가의 시점에서 다시 보여준다. 물랭 루즈, 예술가의 아틀리에, 댄스 등 예술가의 시선으로 본 파리의 일면을 담은 사진과 글을 통해 독자를 파리 중심지로 초대한다. 

클레리코는 어떻게든 파산을 모면하려고 고군분투했고 그사이 물랭 루주 무용수는 관객이 듬성듬성 앉은 무대에서도 계속 춤을 추었다. 2000년에는 새로운 쇼 '페리'에 800만 유로의 투자를 유치했다. 모든 것이 다시 성공 무드를 탔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영화감독 바즈 루어만은 툴루즈 로트렉 시절의 물랭 루주에서 영감을 얻어 영화를 기획했다. 니콜 키드먼과 이완 맥그리거가 출연한 영화 <물랭 루즈>가 2001년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물랭 루주 무용수 몇몇이 이 영화 속에 등장했다. 영화는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물랭 루주라는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다. 긴 밤이 지나갔다. 이제 무용수는 유명인의 자리를 되찾았고, 홀을 가득 메운 관객 앞에서 하룻밤에 두 차례씩 공연을 하게 되었다. -p. 123,125 중에서  

 기발한 일본 여행 속으로!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기 전에는 해적판 만화를 보면서 왠지 주변의 눈치를 봐야 했고, 드라마와 영화는 접하기도 쉽지 않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세월이 흘러 일본 영화를 극장에서 마주하고 오다기리 죠니, 우에노 쥬리니 일본 배우들의 이름을 거리낌 없이 말하노라면 새삼 격세지감을 느끼곤 한다. 이런 말 자체가 너무 뻔할만큼 일본 문화가 일상적이 된 지 오래인데다 일본의 만화, 드라마, 영화에 열광적인 이들도 많은 요즘이지만.  

이번엔 그들을 위한 도쿄 여행책이 나왔다. <노플랜 사차원 유럽 여행>,<도쿄나비> 에서 유쾌한 수다를 선보였던 정박사, 아니 정숙영의 <도쿄 만담>이 그 주인공이다. 얼마전 국내에서도 제작, 방영됐던 <꽃보다 남자>의 일본 드라마에 나왔던 배경이며 <홍차왕자>, <노다메 칸타빌레>, <춤추는 대수사선> 등 책이나 영상으로 접했던 장소 21곳을 실제로 찾은 기록을 담았다.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를 순례하듯 방문하는 일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굉장한 열의가 담긴 여행담을 읽다 보면 한 번쯤 가봐도 좋겠단 생각이 들 것 같다. 좋아하는 작품의 실제 배경을 쫓는 즐거움과 함께 새로운 작품을 소개받는 기쁨까지,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개인적으로는 <사랑 후에 오는 것들>에서 최홍이 돌고 돌았던 이노카시라공원과 <죠제 ,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죠제와 츠네오가 찾았던 바다가 가고 싶어졌고, 죠제네가 찾았던 동물원은 직접 찾아서 언젠가 한 번 가보자고 마음 먹게 되었다.

일러스트, 만화, 사진으로 정리한 일본 철도 여행기가 책으로 나왔다. <드로잉 일본 철도 여행>은 JR 패스(Japan Rail Pass) 21일권을 들고 한달 여간 일본 열도를 누빈 지은이의 일정을 쫓는다. 유후인처럼 널리 알려진 온천 지역 외에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하루키의 여행법>에서 추천한 나카무라 우동이 있는 가가와현, 다자이 오사무의 생가가 있는 가나이역과 같이 일본 문화와 연관된 장소를 확인할 수 있다. 400쪽을 살짝 넘는 페이지 수가 킥킥 대며 웃다 보면 금새 넘어간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열차의 구조와 에키벤(열차 도시락), 각 지역의 명물을 아기자기한 그림으로 보여준다. (하단의 본문 이미지 참조)   

일본 철도 여행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면 <낭만의 일본 기차 여행>을 참고로 보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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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ihye333 2009-06-09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좋아하는데 이런책들이 유용할것 같네여~~

알라딘가정/여행/좋은부모MD조현정 2009-06-11 09:32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여행을 좋아하는데 자주 가지 못해서 책으로 위안을 삼아요.
여행책도 많이 보시고 저보다 여행도 많이 하시길 바랄게요. ^^

시끌북스 2009-08-13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가 있는 여행책은 참으로 흥미로와요~ 글도 글이지만 왠지 그곳에 있다는 느낌을 주는 만화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