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박노해 사진에세이 1
박노해 지음, 안선재(안토니 수사) 옮김 / 느린걸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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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날카로운 꽃받침에 감싸인 목화솜을 하나하나
골라 따내는 소녀들의 손에는 핏방울이 붉은데
그 손으로 따낸 목화솜은 눈이 부시게 희어서
면 옷을 입고 쓰는 나는 불현듯 심장을 찔린다.

이 대목을 읽다가 순간 부끄럽고 죄스런 마음이 든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은 누군가의 피와 땀, 혹은 그것을 넘어서는 고통과 슬픔이 배어있다.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어린 소녀들의 모습은 그리 멀지않은 과거의 대한민국을 떠올리게 했다.
전국의 시골에서 상경한 어린 여공들. 방직 공장에서 가발 공장에서 그리고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숱한 생활 전선에서 배움의 기회를 포기하고 잠을 포기하며 자신의 꿈 대신 자신보다 더 어린 동생의 꿈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냈던 소녀들. 그녀들은 이제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었지만 자신들의 꿈만은 아직 소녀 적 그때에 머무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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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사진에세이 3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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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으면 길이 찾아온다.
길을 걸으면 길이 시작된다.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니

서두에서부터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길을 잃으면 멘붕에 빠져 허둥댄다. 도심 한복판에서 길을 잃어도 그럴진대 인생에서 길을 잃는다면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러나 목적지에 이르는 길이 꼭 하나만 있으리라는 법은 없으니.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그 길을 처음 걷는 자가 될 수도 있다. 맞아, 사람이 길의 것이 아니고 길이 걷는 자의 것이니! 그 길에서 보고 듣는 것이 무엇이 될진 알 수 없지만 조금 더디 가게 되면 더 많은 것을 보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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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박노해 사진에세이 1
박노해 지음, 안선재(안토니 수사) 옮김 / 느린걸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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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아침에 눈을 뜨면 햇살에 눈부신 세상이 있고
나에게 또 하루가 주어졌다는 게 얼마나 큰 경이인지.
햇살을 담은 차를 마시며 서로의 웃는 얼굴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얼마전까지만해도 '소확행'이라는 말이 들불 번지듯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코로나19로 일상의 제한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지금처럼 소확행의 소중함이 절실해 본 적이 또 있었나 싶다. 차 한잔을 마주하고 함께 일상의 희노애락을 나누던 친구들은 랜선, 전화로만 소식을 전하고, 몇년째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가족도 생겼다.
날마다 새로 주어진 하루의 일상을 함께 나누고픈 이들과 나눌 수가 없게 된 지금에야 그 축복의 크기를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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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
석영중 지음 / 열린책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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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명장면 200

석영중 (지음) | 열린책들 (펴냄)

한 해 한 해가 더해져 나이가 들어 이십대, 삼십대, 사십대 이제 오십대의 문턱에 가까이 왔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만 때로는 본 만큼 알기도 한다. 세상사 이치도 그러하지만 고전문학을 읽을때 그러함을 종종 느끼곤 한다. 같은 책을 읽고서도 이십대의 나와 삼십대의 나, 사십대의 내가 느끼는 감상은 포인트도 깊이도 다르다. 아마도 켜켜이 쌓인 경험의 두께와 무게만큼 책 속 등장인물들의 삶에 이입되는 크기도 커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리고 부끄럽게도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불혹의 나이를 넘기고서야 처음 만났다. 어려울거란 선입견과 주제의 무거움에 쉽게 다가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시작으로 가난한 사람들, 백야, 여러 단편들을 정독하며 도스토옙스키의 정신세계와 철학, 그의 인생까지 들여다보게 되었다. 좋은 작품을 읽게 되면 그 책을 인생책으로 마음에 담기도 하지만 그 작가에 대해서까지 알아보고자 하는 일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도스토옙스키를 '도끼옹'이라 친근하게 부르며 존경심을 담아 지금까지 사랑해오고 있다. 이런 애정이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을 맞아 <도스토옙스키 명장면 200>과 같은 책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레프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 문학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도스토옙스키. 그의 작품 속에서 빛나는 명문장, 명장면이 내가 꼽은 것과 다른 사람들이 꼽은 것은 과연 다를까, 같을까?

저자인 석영중 님이 머리말에 밝혀두신대로 맥락에서 뚝 떼어 낸 대사와 장면을 설명하거나 해설하면 소설을 읽을 때의 감동은 잘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들 인생에 대입해서 읽어보면 그 깊이만은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줄거리에 집중하며 읽었던 소설 읽기와는 달리 문장 하나하나에 돋보기를 대고 보는 것처럼 말이다. 무심하게 읽고 넘겼던 문장들에 생각지도 못했던 의미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 독서였다. '아! 이래서 읽고 토론하는 거구나'하는 또 한 번의 깨달음. 코로나19로 오프라인 토론이 여의치 않기에 이런 독서가 더 의미있게 다가왔다.

불안, 고립, 권태, 권력, 고통, 모순, 읽고 쓰기, 아름다움, 삶, 사랑, 용서, 기쁨 12개의 주제로 나누어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지만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삶이라는 큰 틀안에서 그의 철학과 내면을 얘기해주고 있다. 가장 공감이 많이 되는 부분은 불안에 관한 파트였다. 공감되거나 깨달음을 주는 부분에 인덱스를 붙이다가 웃음이 났다. 매 페이지마다 붙여야할 지경이니!

솔직히 말하자면 인덱스를 붙인 부분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속 인용된 문장들보다 저자인 석영중 님의 해석과 해설, 생각들이 더 많았다. 덕분에 어려웠던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한 작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 연구가 철학자를 연상시킬만큼의 성장으로 이어지신 듯하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이 어렵다고 호소 아닌 호소를 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 분들이 읽으면 좋을 <도스토옙스키 명장면 200>. 이제는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 더이상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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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박노해 사진에세이 1
박노해 지음, 안선재(안토니 수사) 옮김 / 느린걸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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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진 발걸음은 무겁고 느리지만
이 삶의 무게에 사랑이 있고 희망이 있다면
기꺼이 그것을 감내할 힘이 생겨나느니.

사진 한 장에 담긴 함축적인 의미는 언어로 쓰인 시에 못지 않다. 삶이 스며든 사연은 더욱이 짐작하기 어렵다.
이런 나의 부족함을 마치 미리 알고나 있었다는 듯이 사진 옆 페이지의 시라고 해도 좋을 글귀들은 아름답게 씌여져 이해를 돕는다. 생각이 아름다운 사람은 글도 아름답다.
같은 모습을 보고도 누군가는 짊어진 짐의 무게를 보고 누군가는 사랑의 크기를 본다. 먼 길을 걸어 물을 길어 오는 저 사람들의 돌아오는 길은 각자가 짊어진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솟아나는 힘의 크기도 다르리라. 가족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행하는 것들은 희생이란 이름 보단 사랑이란 이름이 더 적절하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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