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내안에 있는가, 내가 책안에 있는가

 

 

코로, 책 읽는 여자, 1869

내가 책을 통해 겪었던 여러 행복과 불행들을 만일 책이 아니라 실제로 겪었더라면, 그것이 제아무리 강력하다 할지라도 책에서처럼 그렇게 짜릿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왜냐면 인생의 면면들은 너무나도 더디게 진행되어 제대로 분간해내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책 속의 무대가 절반은 행태를 갖춘 채 내 앞에 펼쳐지는 때가 있었는데...

 나는 콩브레 정원의 열기 속에서 연이어 두 해 여름이나 깊은 산 계곡에서 급류가 흐르는 장관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럴때면 시간은 몹시도 빨리 지나 방금 울렸던 종소리가 지금 또다시 울리고 있는 착각이 들 때도 있었다....

심지어, 시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한시간을 건너뛰어 두번이나 더 울리는 것은 아닌가 싶은 때도 있었는데, 실상 그때 나는 종소리를 한 차례 듣지 못했던 것이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 나에게는 있지 않았던 셈이다. 마치 깊은 잠과도 같은 독서의 마력은 내 귀를 멀게하여, 종소리를 못 듣게 한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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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미켈란젤로의 고통에 대해서

- 시스티나 천정화 제작 당시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천정화, 1508~12

 

" 내 붓은 늘 머리 위에 있고, 그림물감은 바닥에 떨어져내려 호사스러운 모양을 만들어낸다!.

 내 다리는 허리를 가로질러 엉덩이에서 겨우 균형을 이룬다. 발 밑은 눈에 들어오지 않아 조심조심 발자국을 띄울 따름이다.

 내 얼굴 가죽은 옥죄어진 상태로 뒤로 꺾여지고, 내 뒤로 젖혀진 몸은 시리아인의 활 같다!"

 

갤러리 페이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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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드림~ 2005-09-24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어디선가 미켈란젤로가 이 천정화를 그릴 당시에 고생이 많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누워서 그리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잘 읽구 갑니다.^^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 - 이 시대 가장 매혹적인 단독자들과의 인터뷰
김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내가 만나고 싶었던 사람도 있었고, 처음 알게된 사람도 있었고, 또 이 사람은 별로 알고 싶지 않은데 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을 안다는 게 과연 무엇인지. 내가 아니었지만 난 김경이란  창을 통해서 김훈이고 싸이고 그외 그들을 만나버린 것이다. 역시나 사람과의 관계에선 失보단 得이 많은 것 같다. 

 그들과 김경의 대화를 읽고 있자니 그들의 인생에서 한가지 공통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 모두 자신의 철학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었던 그들에게서 나는 그들의 이름과 일에게서 막연한 질투와 부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의 평범하지 않은 재능과 기회에 대한. 하지만 그들의 말을 읽으면 읽을 수록 세상엔 원래부터 그런건 없었단 것을 깊이 느낀다. 그들의 철학이, 고집이, 용기가 그들을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해 주었음을 느끼고 또 느끼게 된다.

 사람은 그 비교대상에 따라 위대할 수도, 아님 그와 반대로 하찮을 수도 있다. 사람과 사람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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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실제인지, 허구인지 헷갈리는 진짜같은 이야기 앞에서 난 한가지 부러움과 마주하고 있다. 바로 '자신만의 신'이다. 자신의 지난 삶을 기억하고 있는 시점에서부터 지금 현재까지 나만의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든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관점에서 '신'의 의미가 모두 같을 순 없지만, 지극히 객관적인 자신만의 '신' 즉 '삼미 슈퍼스타즈'가 자신의 머리 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그것은 바로  '신'의 축복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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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세트 - 상.하권
열린책들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무려 900페이지 넘는, 아주 긴 소설이다. 욕심에.... 단숨에 읽어버리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였으나 그 끝을 확인하는데 꼬박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려 버렸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윌리엄 수도사가 (영화 탓에 숀 코너리가 연상되는데는 어쩔 수 없다)가 제자 아드소와 함께 베네딕트회 수도원의 수도사 연쇄살인 사건을 해결해 나가며... 결국 책 말미에 범인의 정체는 윌리엄 수도사에 의해 밝혀진다....

 겉으로는 분명 추리소설이지만 이 줄거리만으로 9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을 다 채울 순 없음은 읽어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살인 사건의 내용은 중세의 기독교사를 서술함에 있어서 독자의 지루함과 그 복잡함에서 독자의 머리를 식혀 줄 요량인 듯 중간 중간 간혹 나오기 때문에 작가에게 감사함까지 느낄 정도이다. 마치 이 소설의 기본은 '이야기'가 아니라 '종교사'라는 느낌 마저 드니 '거 참 공부 한번 잘 했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과연 나뿐일까.

일단 모든 것을 제처두고서라도 이런 방대하고, 정확한 중세의 종교사를 '이런거 쯤이야'하는 식으로 소설 속 인물들의 입을 통해 아무렇지도 않게 풀어내는 작가의 '강의'에, 작가의 지적소유량에 존경을 표한다. 역자 이윤기님 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작가의 철학적, 역사적, 종교적 지식은 실로 대단하다. 역자 마저도 그랬는데 '미지의 독자'인 나는 말할 것도 없음이니라...

하권의 겉딱지를 덮으며 작가의 추리작가로써의 역량은 그저그렇다고 유치한 폄하를 시도할 순 있지만 소설 속의 '종교사'는 웬만한 종교, 철학 서적보단 낫다고 감히 확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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