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 끝에서 덜 익은 계란 노른자가 노란 피처럼 똑똑 떨어진다.-18쪽
오가는 손님들 속에 소리없이 녹아들 것처럼 소박한 할머니였다.-43쪽
태풍은 좀처럼 지나가지 않았다.나는 침대 속에서 바다 속이란 착각이 들 만큼 깊은 어둠을 바라보았다.-84쪽
아버진 갑자기 구름 위의 사람이 되었다.-16쪽
행복은 걸어서 다가오지 않아요.걸어서 다가가는 거예요.-362쪽
가인화저황천설 佳人花底簧千舌
-아름다운 여인이 꽃밭 아래서 천가지 목소리로 생황을 부나.
운사준전감일쌍 韻士樽前柑一雙
-시 짓는 점잖은 선비가 술상 앞에 귤 한쌍을 올려놓았나?
역란금사양류애 歷亂金梭楊柳崖
-어지럽다. 금빛 북이 수양버들가지 늘어진 강기슭에 오르락내리락 하니
야연화우직춘강 惹烟和雨織春江
-뽀얗게 보슬비가 내려 봄강에 비단을 짜는 것이냐.
김홍도,<마상청앵도>, 간송미술관
밀레, 봄 1868~77, 루브르박물관
객관적으로 짧은 그러나 주관적으로는 지루하게 긴 우리의 생에서 그래도 진주빛 광채를 지닌 기간이 있다면 그것은 유년기리라. 유년기 그것은 누구에게나 실락원이다.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라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다'라고 어떤 시인은 말했다. 어린 시절은 의외의 놀라움, 신비와 호기심, 감동에 넘친 지루하지 않은 한 페이지이다.
-中 전혜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순신은 웃지 않았다. 그 대신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당당한 발걸음으로 파도가 닿는 곳까지 걸어간다. 그리고 밀려오는 파도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까지 걸어간다. 그리고 밀려오는 파도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서서, 두 팔을 수평보다 약간 높게 들어 올려 일단 멈춘 다음, 다음 순간, 약간 무릎을 굽히더니 마치 날갯짓이라도 하는 것처럼 두 팔을 모래사장을 향해 뿌렸다. 발 아래의 모래를 날려 보낼 듯한 힘찬 움직임이었다. 다시 날개를 어깨까지 들어 올린다. 그러나 날개를 접지 않고, 박순신은 날개를 펼친 채 발레 댄서처럼 한 바퀴 빙글 돌았다. 날개 끝이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완벽한 원을 그렸다. 그 원의 궤적이 사라지기도 전에 박순신은 무릎을 펴고 가볍게 발끝으로 서서 턱을 들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날개를 더욱 높이 들어 올린다. 이 얼마나 부드러운 움직임인가. 그렇게 박순신은 잠시 동안 나의 상상력이 넘어선 곳에서 움직이면서 자유자재로 날갯짓을 했다. 저녁노을에 비친 날개의 움직임은 너무도 아름답고 힘차서, 박순신이 날아가 버리지는 않을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매의 춤이란 겁니다." 내 곁에 앉은 미나가타가 박순신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몽골 씨름에서 이긴 사람만이 저 춤을 출 수 있다고 합니다. 박순신류로 바꾼 거긴 하지만." 미나가타는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진정한 승자는 매가 되어 하늘을 날아올라, 한없는 자유로 다가간다,라는 것이 순신의 십팔번 대사예요." 박순신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날개를 접듯이 천천히 팔을 내린다. 박순신은 우리 쪽으로 돌아서서 눈을 감으며 숨을 골랐다. 가슴이 가볍게 위아래로 움직인다.-162-1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