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멋있었던 여자들

** 동영상이 많아 페이지가 느려질 수도 있습니다.

1. 몇 년 전부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제서야 한다. 지금 아니면 또 언제할까 싶다. 하고 싶은 얘기란 바로 '생생한 이미지 혹은 동영상'에 대한 것이다. 소제목을 붙이자면 <생생한 동영상에 대한 소고>쯤이려나? 언젠가 유튜브에서 90년대 걸그룹인 '핑클'과 '원더걸스'의 뮤직 비디오를 봤던 적이 있었다. 두 걸그룹 모두 같은 노래를 가지고 뮤직 비디오를 만들었다. 그러니까 원더걸스가 핑클의 노래를 리메이크 한 것이다. 당시에 봤던 뮤직 비디오 안에 담긴 노래는 <NOW>이다. 찾아보니 핑클의 now가 2000년 원더걸스의 now가 2009년에 나왔다. 특히나 인상깊은 것은 원더걸스 뮤직비디오에서는 플레이스테이션이 최신 기종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는 점...

** 핑클의 NOW 뮤직 비디오...


** 원더걸스의 NOW


2. 엄청난 초고화질의 동영상을 수 십년이 흐른 후에 당사자가 영상을 본다면 무슨 느낌일까? 그것뿐만이 아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 혹은 부모님의 생전에 찍은 고화질 영상을 접하면 어떤 감상에 젖어 들까 하는 것도 꽤 흥미로운 생각이다. 물론 영상 자체가 없는 것 보다는 낫겠지만, 상당한 감정의 요동이 있을 법 하다. 재밌는 것은 내가 죽은 후, 나의 고화질 영상을 손자의 손자가 본다면? 그 손자의 손자는 어떤 소감이 들까? 그 정도의 후손이라면 아마 뭉클한 감정 보다는 재미 있겠다고 느끼겠지. 흥미로울 수 있고.

3. 추억이 깃든 사진이라 하면 왠지 흑백이거나 색이 바랜 사진 속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런데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제 추억이 담긴 이미지는 과거의 녹슨 시간을 담지 않는다. 이 말은 우리가 지금까지 느꼈던 추억이라는 것이 사실은 우리가 희미하게나마 기억했던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말 그대로 낡은 기술로 인해 생생히 담지 못한 것을 당연하듯이 봐 왔던 것 때문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해보니 뭔가 억울하다. 할머니의 사진이 할아버지의 사진이 흑백이고 빛 바랜 칼라 사진인 이유가 시간이 흘러서가 아니라 기술이 발달되지 못해서라니. 갑자기 손해 본 느낌이 들고 부모님의 젊은 시절, 나의 어린 시절을 도둑 맞은 느낌이다. 젊음에 대한 시기 때문일까? 아직도 젊은데...

4. 어느날(정확히 언제인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70년대의 사진 한 장을 보았다. 어디서 봤는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에서 본 것은 확실한데. 그 사진은 춤추는 무대를 찍은 사진이었다. 참, 한국에서 찍은 사진이다. 예전 말로 아마 캬바레라 부르는 곳일 테다. 늘씬한 여성이 요즘 보기에도 세련된 옷을 입고 쭉 뻗은 다리를 뽐내며 춤을 추고 있는데 주위 남자들은 여성과는 다르게 확실히 고전미가 넘쳐 흘렀다. 이 사진을 찍은 해가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었는데 당시 사진 치고는 너무나 선명했다. 당시 사진 치고는이란 말은 틀렸다. 지금 찍은 사진도 이렇게 생생한 사진은 드물 것이다. 물론 흑백이긴 했지만 생동감 하나는 끝장이었다. 순간 이 여성들과 남성들의 인생이 궁금해지는 거다. 너무나 선명해서 지금은 할머니 할아버지 심지어 고인이 되었을 법한 분들로 도저히 여길 수 없었다. 나의 뇌는 요즘 사람들로 인식을 했으면 했지 도저히 지금 시간대에 할머니 할아버지로 인식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았다. 뭐 가당치 않았다고 표현할 일인가만은 그래도 너무나 활발한 스텝을 밟고 있는 분들이 지금쯤은 관절이 약해져 있을 거라는 오버스런 생각을 하니 시간이 너무나 무서워지는거다. 이것이 2~3년 전 일이다.

5. 내가 좋아하는 CM송이 몇 있는데, 이 노래를 들으면 시공감각이 무너진다. 그러니까 아득히 지워져 있던 기억들이 물밀듯이 밀려 올라온다고나 할까? 아마 다들 그런 노래 한 두곡쯤 있을거다. 아 참...이 CM송은 오란씨 CM송이다. 작년인가 올해인가 새로 나온 버전도 있더라. 예전 노래와 지금 노래를 들어보면 역시 예전 노래는 시간으로 인한 노쇠가 역력하다. 듣는 순간 옛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창법이 구식이라 그러기 보다는 역시나 기술이 지금과 비교해 낡아서 이겠지. 노래에 잡음이 어우러져 더 그런듯.
(오란씨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에 자세히 실려 있습니다.)




5. CM송 하니 또 다른 노래가 생각난다. 앞서 언급했던 송원섭님의 블로그 말미에 영상이 업로드 되어 있긴 하지만 어쨌든 기억하고픈 추억속의 CM송으로 오란씨에 버금가는 코카콜라 CM송이 있다. 오란씨와는 다르게 굉장히 도시적인 노래이며 몸은 들뜨게 한다. 이 블로그를 쓰게 된 이유도 이 노래 때문인데, 엊그제 종종 들르는 'umberto'님의 블로그에서 보았다. 포스팅 제목은 '코카콜라 선전으로 보는 일본의 좋았던 시절'이다. 이 곳도 들러 글을 한 번 읽어보시길.... (내 블로그에도 역시나 노래를 올려본다...)

내가 앞에서 계속 주절거렸던 것이 바로 이 80년대 일본 코카콜라 광고 때문이다. 우리의 추억은, 기억은 단지 오래전의 기억 때문에 옛것인 것이 아니라 덜 익은 기술(물론 지금에 보기에 그렇다는 것, 그래서 상대적인 이유이기도 하지만) 때문에 자연스럽게 뇌리에 그렇게 박힌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래 일본 영상에 관한 글은 역시나 위에 언급한 'umberto'님의 블로그에 잘 나와있다. 일본 CF의 깨끗한 영상에 조금은 놀랐다.


6. 나는 라디오를 잘 듣지 않는다. 학창 시절에는 종종 들었는데 라디오를 듣고 있으면 DJ의 말들이 좀 거추장스럽다. 조용하게 흘러나오는 음악만 무의식 중에 듣고 싶은데, DJ들이 주절주절 거리는 것이 때로는 너무나 소음같이 들린다. 그래서 심야시간대에 조용조용 소리를 내는 DJ들의 프로그램을 듣는데 요즘엔 6시에 하는 이루마가 진행하는 라디오를 종종 듣는다. 사실 예약 녹음하면서 (예약 녹음 성공하면) 듣는다. 안들으면 또 그만인데 예약 녹음의 맛을 알았다. 이루마의 라디오 프로그램 듣기 전에는 라디오는 듣고 싶은데 심야에는 또 듣기 힘들고 또 조용조용한 DJ의 말투며 노래들을 듣고 싶은데 그런 것을 들을 방도가 없었다. 그렇다. 없었다였다. 그러니 얼마전부터 있다이다. 그것은 예전 라디오를 듣는 것이다. 그것도 심야 시간의 라디오를. 그래서 몇 년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정은임 아나운서의 프로를 들었다. 정은임의 영화음악을 들으면 또 기분이 오묘한 것이 90년대 것을 듣고 있노라면 특히 요즘같은 11월의 프로그램을 듣고 있노라면 시청자 사연이 또 시공감각적으로 나를 혼란에 빠뜨리는데, 예를 들면 이거다. 올 해 수능을 보는 친구 누구 누구야 일 년동안 학교에서 재밌게 잘 지냈고 이제 수능 치르면 각자의 길을 찾아서 떠나는구나. 수능 마무리 잘하고 대학가든 가지 않든(못가든) 친하게 지내자...뭐, 이런 사연이 종종 올라오는 거다. 그런데 이 시청자들은 90년대 학생들이니까 지금은 아마도 아이가 있는 어엿한 가정을 꾸린 어른이라는 거다. 이게 또 나의 시공감각적인 혼란을 일으킨다. 뭉클하기도 하고,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가 하는 생각도 들고. 또 예전에 극장가서 봤던, 혹은 비디오로 봤던 그런 영화들, 그래서 지금은 나의 기억속에서 상당히 지워져 버린 영화들이 신간 영화로 소개되곤 하는데 이게 또 오묘하다. 그래서 좀 듣다가 우선 놓아두고 이루마 것을 듣고 있는 것이다. 암튼 정은임의 영화음악을 듣다보면 중간 중간에 광고가 역시나 많이 나오는데 무슨 놈의 책 선전을 해대는지, 하여튼 그렇다. 90년대의 광고, 특히 라디오 광고도 꽤 촌티난다. 라디오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암튼 엊그제 수능을 치룬 듯 한데, 갑자기 정은임 아나운서가 읽어주는 당시 사연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루마의 라디오는 듣기 편하다. 클래식과 old pop을 포함하여 조용조용한 노래를 마치 심야 시간대처럼 틀어준다. 그래서 듣기 좋다.  그런데 이루마의 라디오에서도 수능 이야기와 요즘 한창 시끄러운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방금 누가 금메달 땄습니다 하며...) 이게 또 십 년 후에는 또 다른 시공감각적인 뭉클함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7. 언젠가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를 읽었다. 이 책은 2차 세계대전에 패해 당시 (구 소련) 수용소에 끌려갔던 독일계 루마니아 사람이 수용소에 있었던 일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정확히 기억은 안남...), 그 회고하는 와중의 기억들이 모두 물질로 감정 이입이 되는 거다. 그래서 기억과 감정이라는 것이 궁금해서 그린비에서 출간한 '황수영'의 <물질과 기억, 시간의 지층을 탐험하는 이미지와 기억의 미학>이라는 책을 구매해서 좀 읽다 말았다. 베르그손이 쓴 <물질과 기억>에 대한 해석서쯤 된다. 사긴 샀는데 3분의 1 읽고 우선 옆에 치워 놓았다. 읽다 말다 하다보니 읽은 것도 아니고 읽지 않은 것도 아닌 상태가 되어 앞 쪽만 여러번 읽었다. 그런다고 또 기억하냐 하면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이 <물질과 기억>에 대한 해석서는 나의 기억력만 탓하고 마는 그런 책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기억 하면 이 책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물질이란 말이 나와도 이 책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런...

8. 얼마전에 또 과거의 공간이 궁금해 중고로 나온 '서현'의 <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라>라는 책을 구매하여 절반 쯤 읽고 나머지는 한 번 쭉 훑어 봤는데 남들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 그렇게 공감가지는 않았다. 이 책은 90년대의 우리의 도시, 거리에 대한 감상을 쓴 것인데 이 책이 나온 해가 1999년이다. 그래서 조금은 세기말적인 비판이 많이 나온다. 도시를 거리를 시멘트로만 발라놨다느니 하는 그런 비평이 상당하다. 과거의 공간에 대해 낭만적으로 읽으려고 샀는데 읽어가면서 우리의 공간에 대해 상당히 회의주의자가 되어 버렸다. 뭐.. 다 읽지는 않았으니 또 내가 틀릴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 잘난 정책들 때문에 우리의 행복했던 공간의 기억은 알고보면 못된 정책들의 찌꺼기로 남아 버렸다. 물어내...내 기억들....

9. 이것저것 붙여 넣고 이어 쓰다 보니 굉장히 난잡한 글이 되어버렸는데 아무튼 추억은 소중하다. 그런데 나는 초고화질의 내 자신의 동영상을 수십년이 지나 보는것에 대해 상당한 겁이 날 듯 하다. 만져질 듯 하면서도 아득히 먼 과거의 이미지들, 그것을 과연 추억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우리가 그렇듯이 이런 감정은 하루 아침에 몰려 오진 않을 거다. 천천히 나이 먹어가면서 고화질 영상들을 조금씩 자주 접하게 되면서 무뎌질 법도 하다. 그러니 또 겁낼 일도 아닐 듯... 그냥 그렇다는 ....


PS.
1. 귀찮아서 오타나 의미 불분명한 것들 수정은 나중에, 혹은 하지 않을수도
2. 나에게 생각 꺼리 재료를 제공해 주신 '송원섭'님과 '움베르토'님에게 감사의 배꼽 인사를... (..)
3. 글이 어수선해서 트랙백 하지 않음을 더불어 양해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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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0-11-25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blog.aladin.co.kr/maripkahn/733531
유튜브 연결을 할 줄 모라서.
저는 그룹사운드 (여성분은 리드 싱어로 나오는) 오란씨 CF가 인상 깊어 찾아보았는데, 없더라구요.

쿼크 2010-11-25 23:41   좋아요 0 | URL
유튜브 동영상은 해당 동영상 페이지에 가셔서 '소스코드'를 복사하여 알라딘 페이퍼의 'HTML 편집'으로 들어가셔서 그쪽에 붙여넣기 하면 됩니다. 오란씨CM을 그룹사운드가 불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전 코카콜라 CF에서 '체리필터'의 '느껴봐'라는 곡을 사용한 적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트랙백 할께요~~

마립간 2010-11-26 12:06   좋아요 0 | URL
그룹사운드가 오란씨CM 노래를 부른 것이 아니구요, 그룹 사운드가 노래부르는 컨셉으로 CF를 만든 것이 있습니다.
동영상 집어 넣기에 관한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