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관계를 중심으로 사회주의를 정식화하는 길드 사회주의의 이러한 논법은 다른 사회주의 조류들과 뚜렷이 구별되는 길드 사회주의자들만의 특징이다.
당대의 다른 많은 사회주의자들, 특히 독일이나 러시아의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주로 역사 발전 법칙이나 계급투쟁을 논거 삼아 자본주의를 비판했다. 이들에게 민주주의란 부르주아계급의 지배를 유지하는 수단이거나 사회 변화를 위해 활용할 제도적 통로일 따름이었다. 어찌 보면 민주주의를 정치 영역의 작동 원칙으로 제한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관의 거울상이었다고 하겠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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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감독관의 제일 아래 등급인 현장감독이 그와 함께 일할 노동자의 특정 기관에 의해 직접 선출되어야 한다는 것은 산업민주주의에서 필수적인 원칙이다. 왜냐하면 지도자가 이런 방식으로 선출되지 않는다면 협동 정신이 샘솟지 않을 테고 조직전체에서 민주주의의 주동력이 사라진 것이기 때문이다. 공장 안에서는 유관 개별 노동자에 의한 직접선거가 아마도 거의 모든 지도자 선출에서 최선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조직단위가 공장보다 상위일 경우에는 나는 더 이상 노동자 전체에 의한 직접선거가 최선 혹은 가장 민주적인 경로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전체를 대의하는 대의원들에 의한 선거가 더 훌륭하고 민주적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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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에도 부당 거래나 폭리 추구가 없지는 않았지만 길드 조합원이나 길드가 이런 일을 저지르거나 묵인할 경우에 이는 산업 질서의 토대로 당연시되던도덕적 원칙을 위반하는 행위라 여겨졌다. 반면 오늘날은 도덕적 원칙이 산업 영역에서 거의 불청객 취급을 당하며, 다 - P57

양한 형태의 부당 거래와 폭리 추구가 최고의 상업적 명민함을 증명하는 사례로 여겨진다. 중세에도 산업 범죄자는 있었지만 그들은 자기 행동이 죄라고 의식했다. 상업 윤리와 공동체 윤리가 일체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상업 윤리에는 그만의 규약이 있으며, 그 조항 중 대부분은 공동체 윤리에 대한명백한 부정이다. 중세에는 산업 시스템을 움직이는 동기가자유로운 공동체 봉사였다. 오늘날 그러한 동기 역할을 하는것은 탐욕과 공포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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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유대인
슐로모 산드 지음, 김승완 옮김, 배철현 감수 / 사월의책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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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족적 민족주의와 시민권 민족주의 발전의 향배는 지배계급의 다양성 수준, 지식인의 출신 성분에 의존한다.

근대 이전에 피를 친족관계의척도로 삼았던 이들은 오히려 귀족 계급이었다. 오직 귀족들의 핏줄에만 선조의 값진 씨앗으로부터 물려받은 푸른 피 (blue blood, 귀족 혈통)가흐른다고 했다. 옛 농경 세계에서는 생물학적 결정론이야말로 인간 분류의 기준으로, 지배계급이 가진 가장 중요한 상징적 자산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법적 토대가 되어 토지와 영토에 대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지배권의 하부구조 역할을 했다. 

알렉시스 토크빌이 자기 시대에 대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중세시대의 계급 상승은 오직 교회 내에서만 가능했다고 한다. 교회는 계급의 배타적 근거를 혈통에서 찾지 않는 유일한 조직이었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근대 평등주의의 원천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P125

 서유럽에서 인정하는 것처럼 영토 내 출생 여부에 따라 민족 자격을 부여하는 속지주의 (jussoli)는 동유럽 국가들에서는 전혀 채택되지 않았다.
- P126

 장차 이탈리아가될 지역 전역에서 국가기구에 참여한 최초의 지식인들 역시 전통 귀족층 출신 아니던가? 이탈리아 정체성이 공고화되는 과정에서 종족주의가 비교적 억제된 데 대해서는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우선은 교황권의 무게가 대단했다는 것, 그리고 이 교황권으로부터 가톨릭 보편주의가 모든 계층에 스며들었고, 이로부터 이탈리아 관료체제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어쩌면 고대 로마 공화국 및제국의 정치적 신화가 이 색다른 시민적 정체성의 면역력을 높여주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이탈리아 북부와 남부 사이의 뚜렷한 차이점들이 수상쩍은 종족적 민족주의를 미리 막아주었는지도 모른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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