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민원제도의 문제점
- 왜 전화번호를 모두 공개할까?


정부 홈페이지에서 일반 대중에게 공무원의 이름과 직급, 전화번호까지 모두 공개할 필요가 있을까. 민원에 원활하게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한 사람의 악성 민원인만 앙심을 품어도 전화 폭탄에 공무원은 다른 일을 못 할 지경에 이른다. 일종의 행정력 낭비이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악성 민원에 대응하기 위해 대표번호나 이메일만 공개하기도 한다. 원활한 민원에 대한 대응과 행정력 낭비 사이에서 우리나라 행정기관들도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야 할 때이다(행정안전부는 2024년 5월 「악성민원 방지 및 민원공무원 보호 강화대책」을 통해 홈페이지상 공무원의 성명, 직위 공개를 기관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권고했다). -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노한동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yEnLKw88fhvFkTt39

공무원이 아닌 한 사람의 민원인 입장에서 생각해 봐도, 현재의 구조에선 개인이 민원을 제기하는 형식으로 만족스러운 답변을 얻기는 매우 어렵다. 아무리 합리적인 민원을 국민신문고에 제기해도 민원에 지친 실무자의 형식적인 답변만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사회에서 뭘 좀 안다는 사람들은 민원이 생기면 연줄이 닿는 대로 언론, 의원실, 권력기관, 전관(前官)에 줄을 대고 해당 관공서의 높으신 나리들에게 압력을 넣는다.

높으신 나리들에게 들어온 민원은 어느새 실무자가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탈바꿈한다 -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노한동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o9MTzW4wnuUFMyLX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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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의 인센티브
- 국민은 멀고, 상급자는 가깝다


관료는 ‘정책 대상’의 입장이나 처지, 감정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감하다. 정책 대상이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그들의 요구는 관료의 의사 결정에서 먼 배경음처럼 흐릿하게 취급된다. 반면 관료는 자신이 조직 내부에서 어떻게 평가받는지에 대해선 대단히 예민하다. 그래서 모든 관료들은 명시적인 지시 없이도 조직의 상급자가 자신에게 기대하는 바를 최대한 달성하려고 노력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책 대상의 평가가 아무리 좋지 않아도 관료에게는 사실상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에 반해 근 30년간 한 조직에 근무하며 사실상 계급이 역전되기 어려운 관료제에서 조직과 상급자의 평가는 관료 개인의 평판, 승진, 유학 등 일생의 모든 걸 좌우한다 -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노한동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fjfZ1GGJBDCPDceX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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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 바쁜 이유
- 온콜
- 국민을 향한 연출



언론 대응 역시 다를 게 없다. 기사의 내용이 타당하면 차분히 숙고하여 반영하면 될 일이고, 터무니없는 거짓을 담고 있다면 반론 사항을 담아 정정 보도를 요청하면 된다. 댓글 하나 달리지 않는 인터넷 기사에 즉각 대응해야 한다며 퇴근 시간 이후에도 대응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요구하는 공직사회의 오래된 습관은, 그저 간부들이 장관을 향해 언론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연출을 하고 싶어서 아니겠는가.

공무원은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며 공직사회의 일이란 그저 관습에 따르거나 기관장을 빛내기 위한 거대한 비효율의 반복일 뿐이라는 학습된 무기력을 체득한다. 주말과 밤낮없이 일하는 자신의 노력이 궁극적으로 국민의 삶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걸 공무원 스스로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노한동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owXH24b9fqfp8mq36

온콜에 시달리는 모든 공무원은 기본적으로 소극 행정을 지향하게 된다. 근무 시간 내내 열심히 일해도 위에서 시키는 거대한 비효율과 관습을 감내하기 벅차기에, 스스로 일을 벌여가며 무언가 해보겠다고 나설 시간과 의지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노한동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ukzG4wowg618kv4R8


공직사회를 포장하는 것은 ‘나라를 위한 일’이라는 이상(理想)이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된 의미의 공익은 흐려진 채 무수한 비효율적 관습이 일상화된 ‘이상(異常)한 세계’가 펼쳐져 있을 뿐이다 -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노한동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ezCPepVDEKqjfWrd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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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의 업무는 통과의례?


‘일과’와 ‘말과’? 이해를 돕기 위해 공무원 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하자. 1개의 중앙부처엔 보통 몇 개의 실(室)이 있고, 다시 그 안엔 몇 개의 국(局)이 있다. 그리고 1개의 국은 3~4개의 과(課)로 이루어지는데, 그중에서 조직도 순으로 가장 먼저 오는 과를 ‘일과’, 가장 마지막에 오는 과를 ‘말과’라고 한다.

일과는 인사, 조직, 예산 등 국의 업무를 총괄하며 국장을 근거리에서 보좌하기에 보통 승진도 잘되고 성과급도 많이 받는다. 하지만 말과에 가까워질수록 대체로 승진 고과도 잘 받지 못하고 성과급도 낮게 받는다. 하다못해 을지훈련처럼 잡다한 일은 말과에서 많이 차출하고, 해외 출장처럼 좋은 일은 일과를 더 챙겨주는 식이다. -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노한동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ESuWJ9GyAwwNF4Xc6

소속된 과를 기준으로 성과를 평가하는 시스템에 대해 공직사회 내에선 대체로 별 문제의식이 없다. 보통 일과의 경우 각종 자료의 취합을 위해 대기하는 시간이 길고 국장을 보좌하기 때문에 훨씬 더 고생한다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무원 개인은 소속된 과와 보직을 기준으로 성과를 평가하는 시스템에 맞춰 자신의 근무 행태를 최적화한다. 일과보다 말과에서 열심히 일하는 건 손해라고 생각하며, 말과에서의 업무는 일과로 넘어가기 위한 통과의례 정도로 생각하는 식이다. -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노한동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5g3AyYbiTyPSAwo4A

자리에서의 성과를 묻지 않고, 어떤 보직에 있었느냐로 승진 고과를 평가하는 시스템으로는 공무원을 안정적인 수비수로 키워낼 수 있어도 날카로운 공격수로 길러낼 수는 없다. -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노한동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KCYE5SHQyhqBfNSo9

초임 때는 사업 부서에서 일하다가 중고참이 되면 일과로 자리를 옮기고, 더 시간이 지나면 기획조정실 등에서 부처의 전체 업무를 총괄하는 보직을 받는 식이다. 어차피 해당 보직에서 어떤 성과를 보였는지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보직 경로를 충실히 밟기만 해도 승진은 알아서 뒤따라온다.

이러한 구조 아래에서 공무원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두지 않는다. 순환보직에 따라 한 자리에서 머무는 기간은 길어봐야 2년이니, 그저 문제 해결을 최대한 미루거나 해결하는 척만 하다가 보직을 옮긴다. -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노한동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in5NNxHKCJWxXemS7


사실 윗사람의 심기 보좌와 취합은 몹시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저 자신의 시간과 몸을 갈아 넣으면 그만인 일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이 현장과 소통하며, 사회의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려는 태도와 능력을 갖추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공직사회의 인사원칙은 전자를 우대함으로써 스스로 무능을 조장한다. 이러한 유인구조 아래에선 공직에 아무리 똑똑한 사람들을 뽑는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바보가 된다 -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노한동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VoDionTQtSkFQ2j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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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식에 대한 고찰
- 수긍이 간다


정부 보고서는 가독성에 목숨을 건 문서다. 보고서의 본문은 보통 한 장이며, 복잡한 통계나 보조 자료는 붙임으로 처리한다. 글자 크기는 15포인트로 일반적인 책자보다 상당히 큰 편이고, 개조식(個條式, 번호나 도형 등을 붙여 항목을 나누고 주요 단어 중심으로 기술하는 방식)으로 작성되어 있어 형식적으로 읽기가 매우 수월하다. 네모, 동그라미, 작대기, 별표 등의 활용은 본문 안에서도 중요한 내용과 중요하지 않은 내용 간의 위상을 한눈에 드러내 주는 역할을 하며, 하나의 문단이 두 줄을 넘지 않기 때문에 대충 봐도 문단 하나가 한눈에 들어온다. -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노한동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f5NWBQ7S6LtqupFEA

현실을 의도적으로 평탄화하는 정부 보고서 작성법에 능해질수록, 정책의 실무를 직접 담당하는 사무관조차 문제를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려는 습성을 갖게 된다. 복잡한 문제를 다양한 맥락으로 이해하고 설명하기에는 부적절한 정부 보고서의 형식상의 한계 때문에 문제를 깊이 탐구하기보다는 보고하기 쉬운 틀에 맞는 적당한 통계와 자료를 짜깁기하는 데 몰두한다. -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노한동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G2sp6mcpLAaYF6n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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