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국경 북쪽의 여진족과 바다 건너의 일본을 견제할 때 명의 지원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여진족과 일본을 상대하는 조선의 대외 관계‘는 명나라와의 봉신 관계보다 상당히복잡했다. 15세기 내내 조선은 여진족 그리고 명나라의 영향이 닿지 않는 다른 부족들을 다루는 데 명나라와 경쟁을 벌였다. 영락제水樂帝(재위1402~1424)가 접경지대를 모두 명나라에 편입하여 관리하려고 하자, 조선은 이에 경계심을 표했다. 태종은 조정에서 이렇게 발언했다. "우리 황제(옮긴이 영락제)가 본래 큰 것을 좋아하고 공功을 기뻐하니, 만일 우리나라가 조금이라도 사대의 예를 잃는다면, 황제는 반드시 군사를 일으켜 죄를물을 것이다. 나는 생각하기를 한편으로는 지극 정성至誠으로 섬기고, 한편으로는 성城을 튼튼히 하고 군량을 저축하는 것이 오늘날의 급무라고여긴다. 55) 영락제가 서쪽으로 해양 팽창을 하고, 베트남을 명나라의 한지방으로 복속시키려고 하자 조선은 명나라가 조선에도 이와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조선은 북쪽 국경 너머를 향한 개입을 멈추지 않았다. 조선 지도자들은 명 제국과 조선 사이의 만주를 일종의 완충 지대로 만드는 일이 조선의 안보를 전반적으로 확보할 수있는 길이라 생각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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