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름다움은 근원적 슬픔을 안고 있다. 고고하고도 높아 쉽사리 곁을 주지 않으며 眞의 병칭이기에 설 곳을 찾기조차 힘들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을 타고난 사람은 숙명적인 고독을 겪어야 한다. 그 아픔이 어떠하든 아름다움을 소유한 대가는 치러야만 했다.

 

허난설헌이 그러했다. 그녀의 기상은 드높았고 감정은 섬세했으며 기량은 출중했다. 글을 지으면 시가 되었고 시 안에는 세상에 없는 것들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그 속에서 뛰놀았고 세상 모든 시름을 잊었다. 그러니 인고의 세월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아름다움에 예술적 능력까지 겸했으니 그녀의 아픔은 천형에 가까워야 했다.

 

당해야 했다. 피할 수는 없었다. 내 아픔이 있어야 타인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기에 그 시간들은 통과의례에 가까왔다. 그러나 아무리 지상계에 내려온 신선을 자처한들 목숨이 붙어있는 한 그녀는 지상의 여인이었다. 지상의 법칙을 어길 수 없었으며 지상의 규례를 벗어날 수 없었다. 족쇄일망정 져야 했고 멍에일망정 매야 했다.

 

그런 삶이 기다리고 있다고는 차마 믿을 수도, 예측할 수도 없었다. 초희. 어여쁜 아이였다. 아버지 허엽과 오라비 허봉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고, 남녀의 유별함을 알게 됐을 때는 최순치라는 남자의 애끊는 사랑도 받았다. 부족함이 없었다. 차라리 부족함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과한 사랑은 결국 그녀에게 치명적인 독이 되고 말았다.

 

그녀의 재능만큼 그녀의 의식도 시대를 뛰어넘었으면 좋았으련만 그러질 못했다. 그녀의 지식만큼 삶의 지혜가 뛰따랐으면 좋았으련만 그녀의 처세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섬세하지 말고 예리했어야 했다. 감지력이 뛰어나지 말고 조종력이 뛰어났어야 했다. 울타리를 넘어서야 했다. 몸은 갇혀있어도 의식은 그래야했다. 그러나 무리였다. 그런 의식을 감당하기엔 너무 고왔고 여렸다. 타고나길 그랬다. 어쩔수 없었다. 피끓는 모정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자식인 소헌과 제헌을 시어미 송씨의 횡포로부터 보호해주지 못해 가슴에 묻어야 했다. 뻔히 알고도 남편 김성립의 사랑을 쟁취하지 못했다.

 

그녀는 세상살이에 젬병이었다. 똑똑한 바보였다. 현실을 지워내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었다. 가장 낮은 자리의 인간이 되어 그 시간들을 감내하는 것이었다. 그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녀의 슬픔은 오직 글로만 표현돼야 했다. 그녀의 시엔 아버지와 오라비를 떠나보낸 아픔과 자식 잃은 어미의 애끓음이 가득했다. 세월이 흘러도 녹아지지 않는 마음 속의 얼음은 이제 서늘한 덩어리로 그녀의 가슴을 하염없이 찌르고 있었다.

 

 

이제는 되었다. 그 이상의 아픔은 필요치 않았다. 모든 것을 놓아도 되는 시간이 되었다. 이제 그녀는 날라가면 되었다. 그녀가 지상의 삶을 마무리해야만 그녀의 시가 새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 그녀의 시는 그녀 대신 사람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녀의 시는 피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만난 그녀는 이러했다. 시대의 그물에 갇힌 탁월한 여인이었고, 시 하나를 붙잡고 주어진 생을 마감한 여인이었다. 좋은 남편만 만났어도 그런 삶을 살지 않았을텐데...... 그러나 그 또한 그녀의 인생이었다. 불행한 인생이 시의 질료가 되어야 했다. 시인의 숙명을 타고났기에 어쩔 수 없었다. 생과의 불화, 그리고 시대와의 불화는 피할 수 없는 길이었다.

 

허난설헌의 시는 이같은 가시밭길 속에서 탄생했다. 이제 그녀의 시는 시간을 뛰어넘어 불행한 여인이자 어미였던 그녀의 스물 일곱 해를 자유로이 노래하고 있다. 오늘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미 영롱한 노래가 되어 이곳을 비추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명가게 1 강풀 미스터리 심리썰렁물 5
강풀 지음 / 재미주의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말로만 듣다 처음 보게 된 강풀의 만화다. '순정만화' 시리즈 작가로만 알던 터라 내심 싱그러운 무언가를 기대했었나보다. 물론 표지를 보고 말랑말랑한 내용일 거란 생각은 이미 접었지만, 모호한데다 으스스하기까지 해서 여름에 볼 걸 잘못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 여름에 봤다면 더위를 물리치고도 남았을텐데, 비오는 날 저녁에 보자니 좀 서늘하다.

 

 

                          

 

                  

 

   

 

 

이 책엔 하나같이 이상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손바닥에 손톱이 있는 여자와 귀에서 쉴새 없이 흙이 나오는 남자, 땀을 비오듯이 흘리는 남자와 골목길에 갇혀 끝없이 노래를 부르는 학생등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말하거나 시도한다. 딱히 중요하다거나 의미있어 보이지 않는 행동거지지만 누군가를 향한 그들의 메시지는 계속해서 반복된다. 이 기묘한 공간엔 그들 못지 않게 특이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있다. 손님이 많지 않을 것 않은 조명가게의 아저씨나, 수시로 전구가 나가 자주 찾는 여학생이나, 홀로 사는 아가씨까지. 그러나 이들도 다른 사람이 보기에 이상하기는 다 매한가지다. 

 

 

이들의 공통점은 본의건, 본의가 아니건 간에 경계선상에 서있는 사람들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지만 한 부류의 사람들은 산 자가 아니며, 다른 한 부류의 사람들은 살아있으나 죽음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이 만화에서는 뚜렷하지 않다. 이는 작가의 의도적인 배치로 보여지며, 산 자와 죽은 자는 현재라는 시간 안에서 소통 아닌 소통을 한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이 불투명하고도 불확실함이야말로 이 만화의 본령을 넌지시 비춘다.

  

 

이 만화는 3권짜리다. 그러니까 아직은 도입부라는 말이다. 따라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 드러나 있지 않다. 현재까지는 희미하고 흐릿하며 밑 그림만 간신히 그려진 상황이다. 그러나 이 명확하지 않음을 통해 작가는 독자의 자발적 참여를 요구한다. 이 안으로 더 깊이 들어와서 함께 찾아가자고 돌려말하는 것이다.

  

 

1권을 끝냈다. 아직은 개념을 잡기 어렵다. 3권까지 가면 어떤 퍼즐이 맞춰질 것 같다. 느릿하고 느슨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작가는 단단히 결심하고 오래 전부터 준비하고 펴낸 책이란다. '이제야 모든 게, 모든 의문이 풀렸어'라는 뒷 표지의 독자 평은 2권에 대한 내 호기심을 마구 불러일으킨다. 어찌할 것인가? 나는 지금 고민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아빠가 좋은 10가지 이유 꼬마 그림책방 33
최재숙 글, 김영수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1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 때 나는 엄마께 이런 말씀을 자주 들었다. '콩순아, 세상에 많은 아빠가 있지만 니네 아빠같은 사람은 없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아빠에게 잘해야 한다.' 엄마는 당부하듯 그런 말씀을 하셨다. 정말 우리 아버지는 자식 밖에 몰랐고, 그 중에서도 맏딸인 나를 가장 예뻐하셨다. 앞서 태어난 첫 아이가 태어난지 삼일만에 세상을 뜬 것이 아버지에게는 큰 충격이셨던 듯하다. 엄마 또한 젖 한 번 물리지 못하고 아이를 잃어서였는지, 그 후 젖이 나오질 않아 우리 삼 남매는 분유를 먹고 커야 했다. 당시만 해도 분유 구하기가 쉽지 않아 아버지는 우리가 살았던 울산에서 부산까지 수시로 다녀오셨다 한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지극정성이셨고, 우리들에게 한 번도 언성을 높인 적이 없으셨다. 우리에게 공부를 하라고 재촉하신 적도, 자신의 욕심을 위해 우리를 밀지도 않으셨다. 그래서 나는 다른 아버지도 다 그런 줄 알았다. 둘러보니 그렇지 않은 아버지가 많은 것 같았다. 간혹 아버지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 봤다. 아버지가 없는 삶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세월이 흘러 나도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았다. 아무리봐도 우리 부모님이 내게 하신 만큼 잘 하고 있지 않았다. 부모님께 받은 사랑과 내가 아이에게 주는 사랑을 비교해보면 기울어도 너무 기울었다. 남편 또한 우리 아버지와 비교하면 상대가 되질 않았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부터 좋은 데 있으면 다 데리고 다니셨고 좋은 옷도, 맛있는 음식도 우리와 함께 하셨다. 나는 우리 애 아빠가 아이에게 주는 덤덤한 사랑이 성에 차지 않았고, 내가 딸이라면 저런 아빠는 별로 일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 딸은 우리 아버지의 딸이 아니라 자기 아빠의 딸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아이는 제 아빠의 그런 사랑이 충분했던 거였다. 내가 받았던 사랑과 다른 사랑의 유형을 보면서 나는 새로운 걸 깨닫게 됐다. 사랑이란 비교 불가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식이 해달라는 대로 다해주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우리 아빠가 좋은 10가지 이유'는 아이의 관점에서 아빠가 좋은 이유를 소개하고 있다. 대단한 이유도 없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아빠는 방귀도 잘 뀌고, 장난감을 고쳐준다고 해놓고서는 망가뜨리기도하는 어설픈 아빠다. 놀아주기도 잘 하지만 때론 자기 혼자만 즐겁게 노는 반칙대장이며,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만 골라먹는 철없는 아빠이기도 하다. 그래도 아이는 아빠가 좋다. 우리 아빠니까.

 

이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았다. 대학교 때부터 아버지라고 불렀기 때문에 내게 아빠라는 단어는 좀 어색하다. 이제 나는 아빠라 부를 사람이 세상에 없지만 우리 아버지, 아니 우리 아빠는 내 가슴 속에 살아있다. 아름다운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풍당당 - 성석제 장편소설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상처입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의 상처는 하나같이 깊었고, 결코 딱지가 앉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상처가 서서히 봉합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더 지나자 이제 그들이 모인 곳은 잔칫집처럼 보였다. 이 놀라운 기적의 현장을 나는 보았다. 봉래산 어디에 있는 기이한 마을을 말이다.

 

성석제가 돌아왔다. 보무도 당당에, 일필휘지로. 그가 벌이는 잔치에 나는 숟가락을 슬쩍 얹었다. 자고로 잔치에는 먹을 게 많아야 한다. 이 잔치엔 풍성한 웃음과 아픔의 미학이 듬뿍 담겨있다. 웃어도 눈물이 배어있고, 울어도 기쁨이 솟는다. 나도 그들과 같이 어울려 본다. 앗싸라 비야. 정 주면 내 집이고 마음 나누면 가족이지, 별게 있나. 이 풍진 세상에!

 

봉래산에 별별 사람들이 다 모였다. 봉두난발에 먹을 수 있는 거면 다 먹어치우는 여산이 우리의 주인공이다. 열혈남아에 순정마초인 그는 스님을 아자씨라 부르며, 스님 앞에서 곧죽어도 육식을 한다. 법보다는 불법과 친하며, 공무원을 스리슬쩍 속이면서도 필요한 만큼만 법을 어기는 사나이 중의 사나이가 여산이다. 그런 여산과 찌릿찌릿한 눈길을 주고 받는 여자가 이령이다. 그녀는 무지막지한 남편 밑에서 차마 겪을 수 없는 고초를 겪고 인생의 마지막 길에서 여산과 만났다. 딸을 지키지 못한 어미의 아픔과 가혹한 운명을 딛고 이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목이 터져라 이태리 칸소네를 부르는 노인네 영필. 부잣집 적장자로 태어나 고생이라곤 모르고 살다, 하루 아침에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교통사고로 부모가 세상을 뜨고 그 충격으로 할아버지도 세상을 뜨니, 할 줄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그가 할 일이라곤 군대에 가는 것 밖에 없었다. 믿어야 할 사람을 믿었어야 했는데 교활한 친척을 믿어 그때부터 그의 인생은 내리막길이었고, 친척들에게 몇 푼 받아 운명의 회한을 풀다 인생이 거덜나고 말았다. 이제 그에겐 남은 것이라곤 늙은 몸과 오직 하나 뿐인 그대인 소희 밖에 없다.

 

처녀로 부잣집의 재취로 들어가 이용만 당하고 돈 한 푼 건지지 못하고 쫓겨난 소희. 나이 든 그녀가 갈 곳이라곤 어디에도 없었다. 교장이었던 죽은 남편은 그녀의 젊음만 이용한 채 한 푼의 유산도 남겨주지 않았다. 저당잡혔던 인생에 대한 분노를 그녀는 방화로 풀고 나온다. 이제 그녀는 여산에게 어무이라 불리며 이 곳에서 산다. 아울러 영필이의 관심과 사랑도 한 몸에 받으며.

 

하늘에서 내려 온 듯 빼어나게 예쁜 자연미녀 새미와 그녀의 불쌍한 동생 준호. 새미는 어릴 때 부터 의붓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고, 이를 알게 된 동생과 함께 의붓아버지를 응징한 후 집을 나온다. 이 아이들에게 이 곳은 집이자 가정이며 천국이다.

 

운명의 그 날, 생리대를 사러가던 새미가 전국구 조폭의 눈에 띄고 만다. 세미는 자신을 범하려던  세동의 중요 부위를 훑는 사고를 친다. 이 곳을 아지트로 삼으려 했던 그들이 가만히 있을리 없다. 이제 마을 사람들과 조폭간에 전쟁이 벌어진다. 조폭은 그들의 자존심을, 마을 사람들은 생존을 걸고 사투를 벌인다.  

 

그들의 싸움에서 마을 사람들이 밀려야 정상인데 결과는 다르게 나온다. 혈연은 아니지만 마음으로 뭉친 가족과 말로만 가족인 조폭과의 싸움은, 물량으로 승패를 겨룰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서로 처참하게 터지고 깨지고 피를 흘리지만 결국 봉래산의 주민의 승리로 돌아가고 만다.

 

이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타인을 신뢰하고 서로를 위하는 것이야말로 기적이었다. 기적은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 만이 아니다. 내 상처로 상대를 이해하고, 그 상처로 상대를 살리는 것이다. 그래서 기적인 것이다.

 

신뢰의 붕괴란  아픔을 딛고 서로에게 가족이 되는 멋진 산수화를 성석제는 보여주었다. 그는 해학이란 이름의 잔치로 그들의 상처를 씻어주었고, 멋진 가족도 만들어주었다. 잔치에 숟가락을 슬쩍 얹은 나도 그들의 가족이 되고 싶다. 이 세상에 가족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비록 그들의 상처가 깊다 해도 그들은 상처를 훈장으로 만든 사람들이다. 내가 그들의 가족이 되고 싶은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년의 왕국
김경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편집/구성 구매하기

 

프랑스의 시인 마리 로랑생은 자신의 시 '잊혀진 여인'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을 잊혀진 여인이라 규정했다. 잊혀지는 아픔이 얼마나 큰지 그녀는 죽음보다 더하다고 표현했다. 존재의 사멸 만큼 세상에서 아픈 것이 있을까 싶은데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천년의 왕국'은 네덜란드인으로 태어나 한국인으로 생을 마감한 한 이방인의 처연한 삶을 그린 소설이다. 역사에 단 몇 줄로만 기억되었던 남자, 박연. 네덜란드 이름으로는 벨테브레. 선장이란 직함을 얻자마자 그의 배는 난파되었고, 36명의 선원들 가운데 요리사 에보켄과 어린 선원 데니슨만 살아남았다. 17세기 초엽, 설명할 길 없는 운명의 힘에 이끌려 그는 지금 제주도에 고립무원의 처지로 있다. 차라리 무인도였다면 오히려 희망을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휘몰아치는 운명의 소용돌이 앞에 그는 속수무책이다. 고국을 떠나올 때 그의 아내의 배는 불러있었다.

 

희안하게 생긴 자들이 제주도에 있다는 소식이 왕에게 전달되었다. 왕은 그들을 보기 원했고 목에 쇠사슬을 매단채 그들은 짐승처럼 끌려간다. 왕은 그들을 애처롭게 보지만 고국으로의 귀환은 불가함을 전한다. 이제 살아서는 길이 없다. 고국으로 돌아가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데니슨은 마음의 병을 얻어 입을 열지 않고, 에보켄은 모든 스트레스를 입으로 풀거나 오입질로 풀려고 작정한 듯하다.

 

이 곳 조선의 왕은 타타르를 향해 과도하리 만큼 촉각을 세우고 있다. 자신의 아버지가 타타르에게 당한 굴욕을 잊을 수도 없거니와 자신 또한 타타르에 볼모로 잡혀있었기에 왕의 증오심은 대단하다. 왕의 마음속엔 자나깨나 타타르를 징벌하려는 생각 뿐이다. 그런 왕의 호의 속에 도성에 거하고 있지만 이 곳은 자신들이 있을 곳이 아니었다. 자신들은 이 곳 사람이 아니니까.

 

타타르에서 사신이 올 때 마다 그들은 숨어 있어야 했다. 드러나봐야 긁어 부스럼밖에 되지 않았다. 하루는 데니슨이 보이지 않는다. 데니슨은 귀환하는 타타르의 사신에게 뛰어들어가 자신의 처지를 고하고 이 일로 조정은 발칵 뒤집힌다. 모두의 목숨이 위험해졌다. 왕은 이들을 감싸고 싶지만 마땅한 명분이 없다. 결국 데니슨에게 죽을 때까지 검투를 하라는 형벌이 내려지고 데니슨의 싸움을 보던 벨테브레는 그만 기절하고 만다. 비록 목숨은 건졌지만 데니슨은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을 맞이한다. 이제 벨테브레와 에보켄만 남았다.

 

작가 김경욱은 여기서 세 부류의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현실을 부정하다 못해 결국 생까지 부정하고만 데니슨적 양상과 무한 긍정의 힘으로 이방에서의 삶을 씩씩하게 살아내는 에보켄적 양상, 그리고 귀향을 원하지만 이 곳에 있을 수밖에 없음을 아프게 받아들이는 화자인 나의 방식이다. 그들은 비록 셋에 불과했지만 각기 다른 삶의 유형을 대변하고 있다. 김경욱은 어떤 것이 바람직하다며 그 어떤 것을 주창하고 있지 않다. 단지 그는 잊혀진 자의 고통을 소개할 뿐이다.

 

조선 사람이 아무리 잘해준다 한들 이 곳은 타국이었고, 그들은 이교도였다. 그들의 정감있는 언행이 자신들의 마음을 움직인다해도 잠간이었다. 누구도 그들의 빈 마음을 채울 수는 없었다. 세월이 흘렀다. 에보켄은 원래부터 이곳 사람이었던듯 사람들도 잘 사귀고 말도 잘한다. 그의 넉살과 적응력은 탁월하기만하다. 게다가 '자줏빛 구름'이라 불리는 영매와 살림까지 차린다. 홀로 남은 벨테브레는 대포 만드는 일에 전념한다. 그는 이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타타르가 전쟁을 일으켰다. 무서운 속도로 도성을 진입한 그들은 국왕이 피신한 강화도를 포위한다. 이 전쟁에 그들이 주요 임무를 맡았다. 그들의 싸움이었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을. 누구를 위해 싸워야 하며 누구를 위해 죽어야 하는지 그들은 답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 이 국왕의 싸움에서 에보켄이 죽는다. 바다로 나오기 전 그는 대륙을 휩쓸고 다녔던 유명한 마녀 사냥꾼이었다.

 

그의 마녀 사냥에 수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사람들은 자신의 어머니와 쌍동이 여동생도 마녀 사냥에 희생됐다고 알려준다. 그는 고아였다. 그런데 후일 쌍동이 여동생을 마녀로 규정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 얘기를 들은 즉시 그는 바다로 나온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기 위해서 배를 탔다. 타인을 위해 죽음을 맞이하게 됨으로써 이제 그의 고된 삶이 비로소 멈추게 된다. 멀고 먼 이방 땅에서 맞는 죽음은 그에게는 안식이었다.

 

지금 나는 소설의 처음으로 돌아가 벨테브레가 박연이 되어 제주도에서 네덜란드인 하멜을 만나는 장면을 읽고 있다. 이제 그는 파란 눈의 조선인이 되었고 왕의 사자로 그 곳에 있다. 26년의 시차를 두고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하멜을 대하고 있다. 둘 다 입이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다. 벨테브레, 그토록 원했지만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뱃 속에 있던 아이도, 햇살처럼 눈부셨던 아내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하멜은 달랐다. 마침내 탈출에 성공했고 고국으로 돌아가 이 곳에서의 일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벨테브레는 이곳에서도, 그곳에서도 단 몇 줄의 글로만 남았다. 잊혀진 자의 아픔을 그처럼 생생하게 삶으로 살아낸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아픔이 꼭 그만의 아픔만은 아니었다. 몸을 가진 모든 자의 아픔을 더 극적으로 보여주었을 뿐이었다. 그 뿐 아니라 우리도 결국 잊혀지고 말 것이다. 심지어는 자신에게 조차도 말이다. 잊혀짐이라는 인간의 숙명을 김경욱은 박연을 통해 보여주었고, 우리는 그를 통해 나를 보았다. 우리는 모두 잊혀진다. 그래서 세상은 슬픈 자들만 남아있다.

 

사진 출처: 나는 시시한 사람이다 http://www.cyworld.com/heebee7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