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 - 성석제 장편소설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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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입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의 상처는 하나같이 깊었고, 결코 딱지가 앉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상처가 서서히 봉합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더 지나자 이제 그들이 모인 곳은 잔칫집처럼 보였다. 이 놀라운 기적의 현장을 나는 보았다. 봉래산 어디에 있는 기이한 마을을 말이다.

 

성석제가 돌아왔다. 보무도 당당에, 일필휘지로. 그가 벌이는 잔치에 나는 숟가락을 슬쩍 얹었다. 자고로 잔치에는 먹을 게 많아야 한다. 이 잔치엔 풍성한 웃음과 아픔의 미학이 듬뿍 담겨있다. 웃어도 눈물이 배어있고, 울어도 기쁨이 솟는다. 나도 그들과 같이 어울려 본다. 앗싸라 비야. 정 주면 내 집이고 마음 나누면 가족이지, 별게 있나. 이 풍진 세상에!

 

봉래산에 별별 사람들이 다 모였다. 봉두난발에 먹을 수 있는 거면 다 먹어치우는 여산이 우리의 주인공이다. 열혈남아에 순정마초인 그는 스님을 아자씨라 부르며, 스님 앞에서 곧죽어도 육식을 한다. 법보다는 불법과 친하며, 공무원을 스리슬쩍 속이면서도 필요한 만큼만 법을 어기는 사나이 중의 사나이가 여산이다. 그런 여산과 찌릿찌릿한 눈길을 주고 받는 여자가 이령이다. 그녀는 무지막지한 남편 밑에서 차마 겪을 수 없는 고초를 겪고 인생의 마지막 길에서 여산과 만났다. 딸을 지키지 못한 어미의 아픔과 가혹한 운명을 딛고 이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목이 터져라 이태리 칸소네를 부르는 노인네 영필. 부잣집 적장자로 태어나 고생이라곤 모르고 살다, 하루 아침에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교통사고로 부모가 세상을 뜨고 그 충격으로 할아버지도 세상을 뜨니, 할 줄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그가 할 일이라곤 군대에 가는 것 밖에 없었다. 믿어야 할 사람을 믿었어야 했는데 교활한 친척을 믿어 그때부터 그의 인생은 내리막길이었고, 친척들에게 몇 푼 받아 운명의 회한을 풀다 인생이 거덜나고 말았다. 이제 그에겐 남은 것이라곤 늙은 몸과 오직 하나 뿐인 그대인 소희 밖에 없다.

 

처녀로 부잣집의 재취로 들어가 이용만 당하고 돈 한 푼 건지지 못하고 쫓겨난 소희. 나이 든 그녀가 갈 곳이라곤 어디에도 없었다. 교장이었던 죽은 남편은 그녀의 젊음만 이용한 채 한 푼의 유산도 남겨주지 않았다. 저당잡혔던 인생에 대한 분노를 그녀는 방화로 풀고 나온다. 이제 그녀는 여산에게 어무이라 불리며 이 곳에서 산다. 아울러 영필이의 관심과 사랑도 한 몸에 받으며.

 

하늘에서 내려 온 듯 빼어나게 예쁜 자연미녀 새미와 그녀의 불쌍한 동생 준호. 새미는 어릴 때 부터 의붓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고, 이를 알게 된 동생과 함께 의붓아버지를 응징한 후 집을 나온다. 이 아이들에게 이 곳은 집이자 가정이며 천국이다.

 

운명의 그 날, 생리대를 사러가던 새미가 전국구 조폭의 눈에 띄고 만다. 세미는 자신을 범하려던  세동의 중요 부위를 훑는 사고를 친다. 이 곳을 아지트로 삼으려 했던 그들이 가만히 있을리 없다. 이제 마을 사람들과 조폭간에 전쟁이 벌어진다. 조폭은 그들의 자존심을, 마을 사람들은 생존을 걸고 사투를 벌인다.  

 

그들의 싸움에서 마을 사람들이 밀려야 정상인데 결과는 다르게 나온다. 혈연은 아니지만 마음으로 뭉친 가족과 말로만 가족인 조폭과의 싸움은, 물량으로 승패를 겨룰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서로 처참하게 터지고 깨지고 피를 흘리지만 결국 봉래산의 주민의 승리로 돌아가고 만다.

 

이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타인을 신뢰하고 서로를 위하는 것이야말로 기적이었다. 기적은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 만이 아니다. 내 상처로 상대를 이해하고, 그 상처로 상대를 살리는 것이다. 그래서 기적인 것이다.

 

신뢰의 붕괴란  아픔을 딛고 서로에게 가족이 되는 멋진 산수화를 성석제는 보여주었다. 그는 해학이란 이름의 잔치로 그들의 상처를 씻어주었고, 멋진 가족도 만들어주었다. 잔치에 숟가락을 슬쩍 얹은 나도 그들의 가족이 되고 싶다. 이 세상에 가족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비록 그들의 상처가 깊다 해도 그들은 상처를 훈장으로 만든 사람들이다. 내가 그들의 가족이 되고 싶은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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