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의 아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63
최상희 지음 / 비룡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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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한다. 여기서 사람들이란 어른을 지칭하지 결코 청소년을 가리키지 않았다. 그런데 청소년들이 자살이란 슬픈 선택을 하고 있었다. 사고사를 밀어내고 자살이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된지는 꽤 되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를 묻는 것은 어쩌면 때늦은 질문일지 모른다. 이제는 '어떻게'를 물어야 할 때가 되었다. 청소년들이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은 무엇을 한 것일까? 죽음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어린 아이의 비통하고 애절한 심정을 왜 우리는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그에 대한 어른들의 미안함과, 너무도 큰 아픔을 안고 스러져간 어린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최상희가 '명탐정의 아들'이란 책을 들고 나왔다.

 

최상희는 작년 '그냥 컬링'으로 제 5회 비룡소 블루픽션상을 수상한 작가이다. '그냥 컬링'으로 그녀는 '완득이'의 김려령과는 또다른 재기발랄함과 속도감 있는 문체로 청소년들의 심리를 잘 표현해내, 청소년 문학의 새로운 주자로 부상하였다. 그런 그녀가 이번에 묵중한 주제의 글로 우리를 찾아왔다. 주제가 무거워서 걱정이 되었다. 너무 아픈 이야기를 슬프게 끌고가면 보기 힘들지 않을까하는 노파심에서 였다. 고맙게도 최상희는 무겁게 끌고 가지 않았다. 청소년 특유의 시건방과 유치함을 근간으로, 자식보다 철이 덜든 아빠를 등장시켜 경쾌하고 찰지게 이야기를 끌어갔다. 최상희는 청소년뿐 아니라 부모층까지 안배해 이야기의 스펙트럼을 넓게 만들었다. 그래야 그녀가 진정 원하는 자살의 종식을 향한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었다. 이 책에 대한 그녀의 기대가 느껴졌다.

 

'명탐정의 아들'의 주인공은 중학교 2학년생인 고기왕이다. 엄마는 NGO의 직원으로 파견 근무차 아프리카에 나가있고, 엄마가 없는 새를 틈타 아빠는 다 쓰러져가는 목조건물에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이라는 카페를 열었다. 덤으로 한구석에 '명탐정 고명달 사무소'까지 차렸다. 그러나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카페엔 개미 한마리 얼씬 거리지 않고, 탐정 사무소에도 한동안 파리만 날렸다. 기다림에 지칠 즈음 고양이를 찾아달라는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 의뢰비로 간신히 월세내고 부식비까지 댈 수 있었다. 집안 일엔 관심도 없는 아빠 대신 고기왕은 주부의 역할까지 맡는다. 주부습진에 잔소리까지 늘은 자신을 보고 고기왕은 인생의 서러움을 뼈저리게 느낀다. 이제 중학생인데 말이다.

 

그런 사무소에 오래간만에 큰 의뢰가 들어왔다. 지난 번에 고양이를 찾아달라며 왔던 오윤희 누나가 동생 소유의 온리럭키라는 크리스털 키를 찾아달라며 방문한 것이다. 행운의 열쇠가 언제부터 안보여 동새에게 물었더니 동생인 유리가 친구에게 주었다며 화를 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빼앗긴 것 같다며 윤희 누나는 걱정스런 표정을 보인다. 고기왕에겐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낸 몽키라는 친구가 있다. 기왕은 몽키에게 명탐정의 조수라는 타이틀과 활동비 얼마를 쥐어주며 정보원의 임무를 맡긴다. 횡재다 싶었는지 몽키의 흥분 게이지는 급상승하고,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미친 듯 뛰어다닌다. 그러던 어느날 유리가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렸다는 소식을 듣는다.

 

유리의 죽음에 기왕은 자꾸만 마음이 쓰인다. 유리는 학년 초부터 지속적인 왕따를 당했고 가족에게 한 번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한다. 기왕은 유리가 죽기 직전의 짝이었던 유가련, 학기 초의 친구 연초롱, 비밀의 친구 한송이, 그리고 초등학교 친구였던 지혜를 만난다. 기왕은 유리를 생각하다 반에서 빵셔틀을 당하고 있는 윤성이를 떠올린다. 한 번의 실수로, 때론 아무런 이유 없이 왕따가 되는 아이들은 빠져나갈 길이 없는 수렁에서 허덕이고, 아이들은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변명을 대며 친구를 외면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대상이 되지 않은 것에만 안심하지 고통을 당하는 친구의 심정은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유리의 죽음을 조사하면서 기왕은 자신이 초등학교 6학년 때 당했던 경험을 떠올린다. 당시 기왕은 시험 점수를 조작했다는 죄를 뒤집어 쓰고 담임으로부터 무지막지한 매를 맞는다. 게다가 아이들로부터는 왕따까지 당했다. 자신이 그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헤쳐나왔는지를 기왕은 떨면서 상기한다. 그 때 기왕에겐 별 볼일 없는 아이였지만 몽키라는 친구가 있었고, 자신을 지지하는 아빠가 있었다. 그래서 기왕은 죽을듯한 아픔으로부터 견딜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유리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다면, 자살까지 가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최상희가 이 책을 지은 이유이다. 최상희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더 이상 이런 일이 있으면 안되겠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죽어가야 할 슬픈 운명을 지닌 아이들을, 그녀는 이런 식이라도 구출해내고 싶었던 것이다. 단 한 명이라도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 아이들이 그토록 서러운 마무리를 짓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덧붙여 최상희는 왜 아이들이 자신의 부모에게 고통을 말하지 않는지를 기왕의 아빠를 통해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철없고 한심하며 때론 무책임해 보이는 아빠였지만, 기왕의 아빠는 기왕을 비난하는 담임에게 자신의 아들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보였다. 그래서 기왕은 졸업때 까지 담임의 냉대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터 학교 안에서 왕따가 시작됐으며, 아이들이 자살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왜 그런 일을 쉬쉬하며 숨겼는지도 잘 모르겠다. 왜 있는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들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더 이상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 이것만은 확실히 알 것 같다. 지금껏 충분히 외면해 왔다. 그러니 이제는 아이들의 고통을 직시해야 한다. 너무 비인간적이고 잔인해서 돌리고 싶은 고개도 돌리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꽃보다 예쁘고, 싱그러운 잎파리보다 더 싱그러운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그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 어쩌면 이미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

 

 

사진 출처: 나는 시시한 사람이다 '예쁜 화원' http://www.cyworld.com/heebee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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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7 - 일본 1 : 일본인 편 먼나라 이웃나라 7
이원복 지음 / 김영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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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 일본에서 살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다. 일본에 체류하는 몇 개월 동안 현지 선교사님이신 학교 선배 댁에 머물렀다. 당시 선배 언니는 일본 유학생 출신이면서도 지역 정서를 익히려고 시부모님 댁에 살고 있었다. 그곳은 일본의 곡창지인 아키타 근방의 시골이었는데, 선배의 시댁이 있던 곳은 일본 특유의 아담함과 예스러움을 지니고 있었다. 그 동네의 작은 거리를 걸을 때마다 우리나라의 고도 경주가 떠올랐다. 시간이 날 때면 그 길을 따라 산책도 하고 작은 골목길을 따라 걸으며, 우리와는 또 다른 일본의 정서를 맛보고 있었다.

 

선배 언니의 시어머님은 늘 웃는 얼굴로 나를 대해주셨다. 학교 선생님 출신인 할머니는 요리도 잘 하시고 꽃꽃이도 잘하셨다. 할머니는 항상 부지런히 무언가를 하셨다. 집 안에 있는 작은 텃밭의 나무도 가꾸고, 심은 채소도 잘 건사하셨다. 시간이 남으면 간간이 내게 일본식 가정 요리도 가르쳐 주셨다. 당시 할아버지께서 몸이 편찮으셨는데 할머니는 언제나 씩씩하게, 때로는 호탕하게 웃으며 사람들을 배려해주셨다.

 

할아버지는 예전에 공군 교관이셨다고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할아버지의 임무는 가미가제 특공대로 나가는 젊은 비행사에게 출격 전날 술을 따라주며, 살아서 돌아오라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다시 올 수 없는 사람을 그렇게 보내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고 하셨다. 말로만 듣던 가미가제를 나는 그곳에서 실감했고, 한일간의 역사와 세계사가 이 조그만 시골에서 아직까지 마침표를 찍지 못한채 진행형으로 걸음 걷고 있음을 절감했다.

  

내가 체류하던 때는 늦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던 시기였다. 일본에서는 여름에 큰 축제를 벌인다. 그 중 하나가 하나비라는 불꽃 축제다. 한 여름, 가족이나 연인들이 강둑에 모여 앉아 손을 잡고 지켜보는 하나비는 일본에서 매우 큰 사랑을 받는 축제다. 해가 지기 전 유카타를 입고 좋은 자리를 맡으려는 사람들로 강가는 장사진을 이루고, 나도 할머니가 입혀주시는 유카타를 입고 선배 언니와 함께 그 축제에 참여했다. 근 2시간 동안 불꽃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렇게 긴 시간을 하는 불꽃놀이는 처음보았다. 선배 언니는 그 지역의 사업장마다 얼마씩 각출해서 하나비의 경비를 댄다고 알려주었다. 하나비가 얼마나 큰 지역 행사인지 유추할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일본에서의 시간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나는 일본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개인이 아닌 우리가 되면 그렇지 못하다. 툭하면 들고 나오는 독도 문제라던지, 아직도 미완인 강제징용과 정신대 문제등은 불쾌하고도 불편한 감정을 유발한다. 세계 어느 나라 중 국가적 감정과 개인적 감정을 이토록 충돌하게 만드는 나라는 일본외에는 없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우리가 감정만으로 살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고, 오늘의 적도 내일엔 친구가 될 수 있는 세상에 우리가 살기 때문이다.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 일본이 어떤 나라이고, 어떤 의미가 있으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 우리 나름의 시각을 가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일본에 대한 개설서로서 충분하고도 믿을만한 안내자 역할을 한다. 거시와 미시의 적절한 조화와 객관적 감정의 유지, 그러면서도 자세하게 소개하는 이원복 교수의 안내는 독자에게 일본이란 나라의 그림을 꽤 명확히 그리게 한다. 일본을 제대로 이해할 때 우리는 세계의 이웃 중 하나인 일본을 우리의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가깝고도 먼나라, 겉으론 웃지만 속으론 미워하는 나라에서 일본이 이웃으로 자리매김할 때 우리의 보이지 않는 지계는 넓어질 것이고, 마음은 광활한 세계를 달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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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 - 곽세라 힐링노블
곽세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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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두면 오히려 잘 보이는 것들이 있다. 삶도 그런 것 같다. 나를 객체화 시키지 않으면 결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내 실체는 여간해선 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내가 만들었거나 원하는 이미지 사이에 파묻혀 있든가, 아니면 내 지난 시간이 만들어낸 흔적과 미래 사이에 숨어버린다. 그래서 내 실체를 본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그러나 삶을 제대로 살아내기 위해선 그런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포장된 이미지나,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닐 일에 휘둘릴 일이 적어진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는 작업은 힐링의 전제다. 그런 치유를 표방하는 소설이 있어 읽어 보았다. 현대와 같이 메마른 시대에 힐링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 힐링 노블에 나를 읽혀보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작가가 전하는 감성의 결을 소화하기엔 시간이 좀 필요했다. 그래서 뜨문뜨문 읽었다. 읽다보니 한결 편해졌다. 작가와 마음을 맞추는데 시간은 치뤄야 할 대가인듯 싶었다.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엔 표제작과 '천사의 가루'라는 2편의 장편이 들어있다.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은 츠키라는 극단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츠키에는 일반 극단과는 다른 암묵적 질서와 유대가 있다. 그 유대의 밑바닥엔 몇몇만 알고 있는 비밀이 존재하는데, 그 비밀의 대열에 주인공 류도 합류하게 되었다. 보라색이 감도는 특이한 머리의 소유자인 류는 용재와 요시히로처럼 뮤토가 된다. 뮤토는 다른 사람의 인생에 들어가 그들이 원하는 상황을 연출해주는 사람으로, 극단주인 미나 선생의 보이지 않는 개입과 지휘 아래 맡은 일을 연극처럼 수행한다. 그러나 환상의 힘을 빌려 지난 아픔을 오늘의 자리에서 메우려는 것은, 신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이었다. 자신들의 염원을 풀었지만 의뢰인 누구도 행복해지지 못했고, 뮤토들 또한 그 일이 야기한 아픔으로 결국 모두 그만두게 된다.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엔 극단의 이야기만 있지는 않다. 미장원을 하는 류 엄마의 이야기와, 이름이 카레인 남자 이야기,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사는 리에의 이야기, 공무원인 네코마마의 이야기도 들어있다. 그들은 모두 만만치 않은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한결 같이 희망적이다. 치유에 대한 어떤 언급도 이 책에 없지만 힐링 노블이라 불릴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의 온갖 소용돌이와 내면의 바닥들이 속속 드러나지만 누구도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비난하지 않았기에 인물들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생의 긴 여정에 어쩔수 없이 겪어야 할 통과의례이기 때문이리라.

 

 

가루'는 도회적 정서와 현대의 사랑을 곽세라 특유의 언어와 양식으로 표현한다. 가볍고 화려해서 일상으로는 감당이 안되는 사랑이지만, 그 사랑이 무시되어선 안되는 사연을 곽세라는 들려준다. 라라와 요요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사랑을 나누는 사이다. 요요는 일본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중년의 휴머니스트 의사이고, 라라는 투명하고 예뻐서 지상의 여자란 느낌을 주지 않는 20대의 꽃같은 여자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요요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속수무책이 돼버린다. 요요가 올 거라 믿고 있는 라라는 공항 대합실을 떠나지 못하고 몇 달을 매일같이 나간다. 맺지 못한 사랑은 주위 사람을 흔들고 그녀의 안녕을 위해 누군가 흑기사를 자처한다. 이제 공항에 더 이상 라라는 나타나지 않지만, 그녀는 결국 자신의 부재를 통해 요요 곁으로 떠나는 여행을 시작한다.

 

나는 그간 힐링의 의미를 해결이나 종결로만 생각했었던 것 같다. 삶이 지속되는한 문제는 생길 테고 원치 않는 아픔 또한 발생할텐데, 나는 왜 그런 단순한 이분법을 꿈꾸었을까? 생의 문제에 마침표를 찍는다는 건 삶이 종결됐을 때에야 가능하다는 것을 망각하고 싶었나 보다. 그런 나와는 달리 곽세라는 녹녹치 않은 우리네 인생을 환타지란 이름으로 말랑하게 만들지 않았다. 또한 기를 쓰고 바꾼다거나 뒤집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단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온 몸으로 녹여내는 것으로써 힐링을 이뤄냈다. 꿈을 꾸되 삶의 끈을 놓지 않는 그 장치가 내겐 환상처럼 느껴졌다.

 

 

 

사진출처: 나는 시시한 사람이다. '예쁜 화원' http://www.cyworld.com/heebee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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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씨앗을 심는 사람들
폴 플라이쉬만 지음, 김희정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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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공터에 어린 소녀가 강낭콩 몇 알을 심었다. 시큼한 냄새와 우글거리는 파리떼, 각종 쓰레기로 넘쳐나는 그 곳은 웃던 얼굴마저 찌푸리게 만드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공터를 혐오스럽게 여겼고 그 곳 때문에 자신들이 더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그 곳에서 희망이 피어날거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강낭콩을 몰래 심은 어린 소녀도, 멀리서 지켜보던 할머니도, 그 누구도 몰랐다.

 

 

소녀가 사는 곳은 미국 클리블랜드의 빈민가다. 그 곳엔 피부색도, 민족도, 언어도 다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서로를 경계하고 꺼렸으며 이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다. 그들이 만든 심정적 거리는 그들의 모국만큼이나 이웃간에 거리를 냈다. 그곳의 삭막함은 건조하고 습했으며, 어둡고 눅눅했다. 사람들은 우울했고 불안과 두려움을 달고 살았다.

 

그곳에 어린 소녀가 씨앗을 심었다. 씨앗을 심은 이유는 단순했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세상을 떠난 농사꾼 아버지의 흔적을 맛보기 위해서였다. 소녀는 그렇게 소박하고도 애틋한 마음으로 씨앗을 심었다. 씨앗은 소녀의 마음을 안다는 듯 쑥쑥 자랐다. 씨앗은 소녀 뿐 아니라 이웃들의 마음에도 불을 지폈다.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 둘 공터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씨앗을 심었고, 심은 동기는 사연만큼이나 제각기 달랐다.

 

이민자들은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마음 한 구석이 늘 추웠고, 언제나 사람을 그리워했다. 그러나 그들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고 열릴 수도 없었다. 그런 그들이 씨앗을 심으며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입이 벌어지자 마음이 열렸고, 손짓으로도 충분한 대화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로지 땅에 심은 씨앗 덕이었다. 지저분한 공터는 이제 사람들을 모으는 곳이 됐고, 그들의 온전한 쉼터로 변해갔다. 사람들은 처음으로 웃었고 초라했던 늙은이에서 자연의 지혜를 터득했던 어른으로 제자리를 찾아갔다.

 

이 책은 사연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당한 무게로 덤덤하게 들려준다. 베트남계 유복녀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루마니아계 할머니의 이야기, 아들을 총기사고로 잃은 아버지의 이야기, 과테말라에서 온 소년의 이야기, 멕시코 출신의 고등학생 미혼모 이야기, 인도에서 온 남자의 이야기, 간병인의 이야기등 총 13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교류없이 살던 사람들이 흙을 매개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나타나는 변화가 무척이나 흥미롭다. 극적인 장치도, 대단한 서사도 없지만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서 마치 실제 있었던 이야기 같다.

 

 

고달픈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는 맛이 꽤 좋다. 문을 열고 살며시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조용한 용기가 멋지다. 한걸음씩 발을 떼며 범위를 넓히더니 그들은 마침내 가장 낮은 곳에서 희망의 노래를 들려준다. 서로간의 편견이 깨어지는 곳에선 어느새 소통의 속삭임마저 들려온다. 어쩌면 삶이란, 작은 선물을 깊숙이 숨겨놓고 우리를 기다리는 짖궂은 친구인지도 모르겠다. 그 짖궂음을 조금만 견디면 생각치도 못했던 친구가 다가오는 행운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조금만 용기를 내어 장벽을 걷어낸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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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K, 교회를 나가다 - 한국 개신교의 성공과 실패, 그 욕망의 사회학
김진호 지음 / 현암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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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고도 불편한 책을 읽었다. 근현대 한국사와 맞물린 한국 교회사의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될 수 없었다. 그 아픔의 근간은 내가 크리스천이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한국 개신교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이 책은 읽는 내내 아픔과 부끄러움의 상반된 감정을 가져다 주었다. 기독교가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유를 격한 감정을 비추며 야유나 조롱의 방식으로 다루었다면 이렇게까지 마음이 무겁진 않았을 것이다. 또한 저자가 타 종교의 신자나 무종교주의자였다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신학자이면서 목사였다. 나는 준엄한 심판대에 선 자의 심정으로 이 책을 읽어내려갔다.

 

 

 

언젠가부터 한국 교회는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했다.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믿건, 믿지 않건간에 말이다. 그래서 그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라면 이러이러한 행동과 사고를 할 것이라는 최소한도의 기대치가 있었다. 게다가 나라의 대통령이 두 분이나 교회 장로였다. 그러나 좀 다르려나 하는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위정자 뿐 아니라 사회 각계에 크리스천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행태나, 열심히 교회를 다닌다는 교인들의 삶의 양식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회의 병폐는 교회에서도 볼 수 있었고, 세상의 마인드와 가치관은 교회에서도 통용되고 있었다

 

이런 시급하고도 중대한 문제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을 김진호가 시도했다. 김진호는 개신교가 근대 한국 사회의 형성에 중차대한 역할을 했다며, 개신교를 묻는 일은 한국 사회를 묻는 일과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와 개신교가 서로 어떻게 맞물리며 형성되었는지, 그 얽힘의 과정과 방식에 대한 해석을 김진호는 찬찬히 들려주고 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나뉜다. 1부는 한국 개신교의 지난 역사를, 2부는 작금의 상황을, 3부는 한국 개신교의 미래에 대해 언급한다.

 

김진호는 한국 개신교의 특징으로 '배타성과 성공지상주의, 극우반공과 친미성'을 들고 있다. 이런 특징이 나타나게 된 원인은 개신교가 어떻게 들어왔는지를 추적하면 금세 알 수 있다. 19세기 말 우리나라에 파송된 선교사는 90%가 미국인이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이고 근본주의적 신앙을 가졌다는 북장로회 소속이었다. 선교사들은 수많은 교육기관을 세우고 운영했으며, 자신들이 속한 교단의 교리를 신자들에게 확고히 주입시켰다. 한편 선교사들이 머무는 교회는 한국인들이 일본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한 피신처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즉 교회가 일종의 치외법권적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 1907년에 있었던 평양의 대부흥운동은 조선 기독교의 원체험이 되었고, 배타주의적 신앙관을 제도화할 수 있는 직접적인 계기를 선교사들에게 제공했다.

 

일제 식민지 기간 동안 신사참배로 인해 좌절감과 수치심을 맛보야 했던 기독교인에게 공산주의는 아픔과 증오를 떠넘길 수 있는 안전한 대상이 되었다. 이북에서 월남한 목사들과 신자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영락교회는 극우반공의 산실 역할을 하며 한국 교회를 이끌었다. 그러나 불안전한 정국으로 인한 혼란에 채 적응도 못한 사람들에게 한국전쟁이 다가왔고, 전쟁의 상처는 너무도 깊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황폐화 되었고, 살아남은 자의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다. 하지만 심적 고통 못지않게 먹지 못하는 고통도 컸다. 교회는 이런 빈민들에게 위로를 주었고, 사람들은 신앙을 통해 심신의 안정을 되찾아갔다.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고 경제 개발이 되면서 교회는 도시 빈민을 교회 안으로 깊숙이 들이게 된다. 1970년대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는 이들을 수용하면서 교세를 확장하게 되고, 미국의 대형 교회인 수정교회의 로버트 슐러 목사의 번영신학을 받아들이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다. 당시 대형교회와 한국 정세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의 출현은 한국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대형 교회에도 나타났다. 그 후 오랜 시간을 대형 교회는 권위주의적인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목사 1인에게 권력이 집중돼 있었고, 1990년대 민주화운동의 주역인 시민들이 교회로 대거 유입됐음에도 이들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다. 대형 교회는 시대의 변화를 이끌거나 개혁하려는 의지를 보이기보다는 교인들의 시선을 외부로 돌리는 데만 신경을 썼다. 해외단기 선교 프로그램의 도입과 미국에서 들여온 번영신학의 정착화, 나아가 자신들의 힘을 정치세력화하는 길에만 관심을 둔채 안주하는데 급급한 실정이었다.

 

신자유주의의 물결로 인한 물신주의의 팽배 및 전지구적인 자연 재앙으로, 사람들은 스스로도 감당못할 두려움 속에 빠져 다시 신을 찾고 있다. 이제 신의 귀환은 필수적이고도 중대한 요소가 되었다. 그런데 기독교의 신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지 못하는 부자의 신으로 전도돼 버렸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있고,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한국 교회는 웰빙교회로 전환되어 웰빙신앙문화까지도 형성하고 있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貧者는 교회에서도 설 자리가 없게 돼 버렸다. 오늘날 교회는 세상과 비슷한 궤도를 달리고 있고, 존립 이유가 무엇인지를 질문받는 시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이 아프고 부끄러웠던 것은 한국 교회가 받는 지탄 때문만은 아니었다. 더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만큼 추락한 교회의 위상 때문만도 아니었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눈을 감고 외면하는 듯한 한국 교회의 둔감함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오게 된 자리의 의미를 성찰과 반성의 자리로 인식하지 않고 속히 탈피해야만 하는 자리로 한국 교회가 받아들이는 점 때문이었다. 번영신학이란 이름의 외피를 입은 성공지상주의와, 소비사회에서의 여유를 호혜 형식으로 지출하는 작금의 기독교적 삶이 조만간 어떤 모양의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나는 염려스럽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에 미래는 없는가? 김진호는 현재 자신이 행하고 있는 교회적 양식과 삶의 방식을 통해 대안을 조심스럽게 제시한다. 작은 교회만이 할 수 있는 개별적 만남과 교제의 장을 통해 진짜 기독교적 삶을 몸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소망을 전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회개라는 진지한 자기 반성이 아직 한국 교회내에 없었기 때문에 그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한계와 나약함, 그리고 지독하리만큼 뿌리 깊은 이기적 속성을 도려내는 교회적 방법인 회개, 즉 신앙안에서의 개혁적 태도야말로 출발점이자 궁극적 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신자의 아픔이 세상과 화해하며 소통할 수 있는 다리임을 깨닫게 한, 보이지 않는 신의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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