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7 - 일본 1 : 일본인 편 먼나라 이웃나라 7
이원복 지음 / 김영사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십여 년 전 일본에서 살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다. 일본에 체류하는 몇 개월 동안 현지 선교사님이신 학교 선배 댁에 머물렀다. 당시 선배 언니는 일본 유학생 출신이면서도 지역 정서를 익히려고 시부모님 댁에 살고 있었다. 그곳은 일본의 곡창지인 아키타 근방의 시골이었는데, 선배의 시댁이 있던 곳은 일본 특유의 아담함과 예스러움을 지니고 있었다. 그 동네의 작은 거리를 걸을 때마다 우리나라의 고도 경주가 떠올랐다. 시간이 날 때면 그 길을 따라 산책도 하고 작은 골목길을 따라 걸으며, 우리와는 또 다른 일본의 정서를 맛보고 있었다.

 

선배 언니의 시어머님은 늘 웃는 얼굴로 나를 대해주셨다. 학교 선생님 출신인 할머니는 요리도 잘 하시고 꽃꽃이도 잘하셨다. 할머니는 항상 부지런히 무언가를 하셨다. 집 안에 있는 작은 텃밭의 나무도 가꾸고, 심은 채소도 잘 건사하셨다. 시간이 남으면 간간이 내게 일본식 가정 요리도 가르쳐 주셨다. 당시 할아버지께서 몸이 편찮으셨는데 할머니는 언제나 씩씩하게, 때로는 호탕하게 웃으며 사람들을 배려해주셨다.

 

할아버지는 예전에 공군 교관이셨다고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할아버지의 임무는 가미가제 특공대로 나가는 젊은 비행사에게 출격 전날 술을 따라주며, 살아서 돌아오라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다시 올 수 없는 사람을 그렇게 보내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고 하셨다. 말로만 듣던 가미가제를 나는 그곳에서 실감했고, 한일간의 역사와 세계사가 이 조그만 시골에서 아직까지 마침표를 찍지 못한채 진행형으로 걸음 걷고 있음을 절감했다.

  

내가 체류하던 때는 늦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던 시기였다. 일본에서는 여름에 큰 축제를 벌인다. 그 중 하나가 하나비라는 불꽃 축제다. 한 여름, 가족이나 연인들이 강둑에 모여 앉아 손을 잡고 지켜보는 하나비는 일본에서 매우 큰 사랑을 받는 축제다. 해가 지기 전 유카타를 입고 좋은 자리를 맡으려는 사람들로 강가는 장사진을 이루고, 나도 할머니가 입혀주시는 유카타를 입고 선배 언니와 함께 그 축제에 참여했다. 근 2시간 동안 불꽃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렇게 긴 시간을 하는 불꽃놀이는 처음보았다. 선배 언니는 그 지역의 사업장마다 얼마씩 각출해서 하나비의 경비를 댄다고 알려주었다. 하나비가 얼마나 큰 지역 행사인지 유추할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일본에서의 시간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나는 일본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개인이 아닌 우리가 되면 그렇지 못하다. 툭하면 들고 나오는 독도 문제라던지, 아직도 미완인 강제징용과 정신대 문제등은 불쾌하고도 불편한 감정을 유발한다. 세계 어느 나라 중 국가적 감정과 개인적 감정을 이토록 충돌하게 만드는 나라는 일본외에는 없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우리가 감정만으로 살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고, 오늘의 적도 내일엔 친구가 될 수 있는 세상에 우리가 살기 때문이다.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 일본이 어떤 나라이고, 어떤 의미가 있으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 우리 나름의 시각을 가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일본에 대한 개설서로서 충분하고도 믿을만한 안내자 역할을 한다. 거시와 미시의 적절한 조화와 객관적 감정의 유지, 그러면서도 자세하게 소개하는 이원복 교수의 안내는 독자에게 일본이란 나라의 그림을 꽤 명확히 그리게 한다. 일본을 제대로 이해할 때 우리는 세계의 이웃 중 하나인 일본을 우리의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가깝고도 먼나라, 겉으론 웃지만 속으론 미워하는 나라에서 일본이 이웃으로 자리매김할 때 우리의 보이지 않는 지계는 넓어질 것이고, 마음은 광활한 세계를 달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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