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씨앗을 심는 사람들
폴 플라이쉬만 지음, 김희정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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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공터에 어린 소녀가 강낭콩 몇 알을 심었다. 시큼한 냄새와 우글거리는 파리떼, 각종 쓰레기로 넘쳐나는 그 곳은 웃던 얼굴마저 찌푸리게 만드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공터를 혐오스럽게 여겼고 그 곳 때문에 자신들이 더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그 곳에서 희망이 피어날거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강낭콩을 몰래 심은 어린 소녀도, 멀리서 지켜보던 할머니도, 그 누구도 몰랐다.

 

 

소녀가 사는 곳은 미국 클리블랜드의 빈민가다. 그 곳엔 피부색도, 민족도, 언어도 다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서로를 경계하고 꺼렸으며 이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다. 그들이 만든 심정적 거리는 그들의 모국만큼이나 이웃간에 거리를 냈다. 그곳의 삭막함은 건조하고 습했으며, 어둡고 눅눅했다. 사람들은 우울했고 불안과 두려움을 달고 살았다.

 

그곳에 어린 소녀가 씨앗을 심었다. 씨앗을 심은 이유는 단순했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세상을 떠난 농사꾼 아버지의 흔적을 맛보기 위해서였다. 소녀는 그렇게 소박하고도 애틋한 마음으로 씨앗을 심었다. 씨앗은 소녀의 마음을 안다는 듯 쑥쑥 자랐다. 씨앗은 소녀 뿐 아니라 이웃들의 마음에도 불을 지폈다.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 둘 공터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씨앗을 심었고, 심은 동기는 사연만큼이나 제각기 달랐다.

 

이민자들은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마음 한 구석이 늘 추웠고, 언제나 사람을 그리워했다. 그러나 그들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고 열릴 수도 없었다. 그런 그들이 씨앗을 심으며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입이 벌어지자 마음이 열렸고, 손짓으로도 충분한 대화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로지 땅에 심은 씨앗 덕이었다. 지저분한 공터는 이제 사람들을 모으는 곳이 됐고, 그들의 온전한 쉼터로 변해갔다. 사람들은 처음으로 웃었고 초라했던 늙은이에서 자연의 지혜를 터득했던 어른으로 제자리를 찾아갔다.

 

이 책은 사연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당한 무게로 덤덤하게 들려준다. 베트남계 유복녀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루마니아계 할머니의 이야기, 아들을 총기사고로 잃은 아버지의 이야기, 과테말라에서 온 소년의 이야기, 멕시코 출신의 고등학생 미혼모 이야기, 인도에서 온 남자의 이야기, 간병인의 이야기등 총 13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교류없이 살던 사람들이 흙을 매개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나타나는 변화가 무척이나 흥미롭다. 극적인 장치도, 대단한 서사도 없지만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서 마치 실제 있었던 이야기 같다.

 

 

고달픈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는 맛이 꽤 좋다. 문을 열고 살며시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조용한 용기가 멋지다. 한걸음씩 발을 떼며 범위를 넓히더니 그들은 마침내 가장 낮은 곳에서 희망의 노래를 들려준다. 서로간의 편견이 깨어지는 곳에선 어느새 소통의 속삭임마저 들려온다. 어쩌면 삶이란, 작은 선물을 깊숙이 숨겨놓고 우리를 기다리는 짖궂은 친구인지도 모르겠다. 그 짖궂음을 조금만 견디면 생각치도 못했던 친구가 다가오는 행운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조금만 용기를 내어 장벽을 걷어낸다면 말이다.

 

 

사진출처: 나는 시시한 사람이다. '예쁜 화원' http://www.cyworld.com/heebee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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