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마법서 중국 아동문학 100년 대표선 6
장자화 지음, 전수정 옮김 / 보림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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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이 어마어마하게 넓은 것 같아도 지표면의 30%가 채 안 된다지요. 실제 지구 표면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곳은 바다랍니다. 그런데 바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그리 높지 않아요. 경제적 가치 때문인지 예전에 비하면 변화가 있긴 하지만 아직도 육지에 비할 바는 못되지요. 왜 그럴까요? 바다가 무섭고 위험한 곳이라는 인식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 안에 깊이 내재돼 있어 그런 건 아닐까요? 어쩌면 목숨을 지키려는 우리들의 무의식적 행위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인지 아직도 바다와 관련된 소설은 그리 많질 않네요. 제가 알고 있는 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허먼 멜빌의 '백경', 그리고 쥘 베른의 '해저 2만리'와 '15소년 표류기' 정도입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인 우리나라에서도 해양 소설은 찾기 쉽잖습니다. 하지만 바다가 험상궂은 얼굴만 하고 있는 건 아니지요. 고운 체에 받친 것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백사장과 산호초 가득한 파랗고 아름다운 바다의 모습은 여기가 낙원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환상적이기만 합니다. 그래서 이런 바다의 다양한 모습들을 그린 동화책을 만난다는 건 여간한 축복이 아니지요. 게다가 현실과 환상의 이음새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독특한 동화를 만난다는 건 말할 나위 없구요.

 

장자화의 '바다 마법서'는 정말 마법 같은 책입니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이 읽는 순간부터 마음을 끌어당기니까요. 소재도 참 특별합니다. 또한 막연하게 그려지는 머릿 속의 바다가 아니라 역동하는 바다, 뭔가 비밀을 숨긴듯한 바다가 그려져요. 게다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싶을 만큼 특이한 이야기들이 실타래의 실 풀리듯 자연스레 줄줄 풀려나오구요. 무엇보다 접근 방식이 남다릅니다. 그래서 색다른 맛이 나네요. 일반적인 동화가 취하는 도식으로 접근하지 않아 신선한 느낌이 들구요. 

 

이 책엔 8편의 동화가 들어 있어요. 그 중 맨 앞에 '돌고래 그림자'와 '유리 고래'가 소개돼 있네요. '돌고래 그림자'는 사람들에게 포획되어 처참하게 죽어간 돌고래들을 위로하려는 작가의 마음이 간절히 드러난 동화입니다. 수시안이라는 중학생 소녀를 통해 작가는 비록 그림자일망정 돌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냅니다. '유리 고래'도 비슷한 이야기인데 앞의 이야기보다는 좀 어렵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이야기에 신화까지 연결하는 장치가 꽤 매혹적으로 느껴지네요. 해양학자를 주인공으로 한 이 이야기는, 동화가 과연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이어지는 '바다 상상화'는 자신의 그림 속에 들어가 나오지 않게 된 화가의 이야기구요, '환초 요정'은 산호초를 지키기 위한 요정들의 이야기입니다.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늘 우리 인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다섯번 째 이야기인 '바다로 보낸 편지'는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작가는 인어공주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만의 색깔로 마무리를 짓네요.

 

그 밖의 '떠 있는 배'와 '밀림의 신기한 배', 그리고 '바다 마법사'는 남자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바다에 떠 있어야 할 배가 백화점에, 밀림에 떠 있다는 상상 자체가 놀랍습니다. 현실과 가상, 실제와 상상이 리드미컬하게 이어져 읽는 맛이 매우 좋네요. 이 책의 맨 마지막 작품이자 표제작인 '바다 마법사'는 친 형제는 아니지만 친 형제보다 더 끈끈한 소년들의 우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김용의 소설을 축약해 보는 듯한 느낌이 드네요.

 

장자화는 멀게만 느껴졌던 바다를 우리 곁으로 가까이 불러들입니다. 그리고는 바다의 파괴력에만 집중했던 우리의 관심을 그곳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 그리고 생명에 주목하게 하지요. 동화 속에 담긴 이야기는 깊이있고 묵중했지만 어둡지 않았어요. 이는 그가 주제를 녹여내기 위해 적잖은 시간을 고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단순히 아이들의 수준에 맞추지 않고, 오히려 아이들의 생각과 의식을 끌어올리려는 작가의 문학관이 아름답게 조화된 책이었습니다. 단순히 좋기만 한 것이 아닌 멋지고 격있는 동화를 오랜만에 읽었다는 기쁨에, 이 밤이 무척 행복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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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이 좋아요 3D 전통문화 그림책 솔거나라
유애로 글.그림 / 보림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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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 중에서도 유독 좋아하는 책 몇 권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유애로의 '갯벌이 좋아요'이다.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갯벌의 소중함을 가벼우면서도 재미있게 전하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아름다우면서도 풍부한 색감의 그림이 따뜻하고도 신비로운 느낌을 주어서이다.

 

 

책을 펼 때면 디즈니의 만화 영화인 인어공주의 'Under the sea'가 떠오른다. 경쾌하면서도 즐거운 느낌을 주는, 정말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게 하는 책이다. 평면의 동화책이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면 바닷 속 어딘가에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입체감이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간간히 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생각만 잠깐 했지 꿈도 꾸지 못했는데, 이번에 이 책이 3D로 나왔단다. 반가운 일이다.

 

 

3D 그림책을 볼 때면 언제나 신기하게 느끼는 것이, 이렇게 단순해 보이는 안경을 끼는 것만으로도 입체감이 생긴다는 거다. 물론 책을 펴면 달리 인쇄되었다는 것을 알긴 하지만 말이다. 3D 안경을 끼고 꽃발게와 함께 여행을 가본다.

 

저 멀리 바다 끝의 흰 구름을 잡고 싶은 꽃발게는, 자신을 비웃는 친구들을 뒤로 하고 길을 떠난다. 그러나 생각만큼 모험은 쉽질 않고, 처음 보는 것 투성이라 꽃발게는 실수 연발이다. 그러나 어설픈 가운데서도 꽃발게는 물러서지 않고 모험을 계속하고, 바닷 속 여러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유애로는 이 모험을 통해 서로 도와가며 사는 공생의 의미를 자연스레 전달한다. 부족함이 있어도 서로 도와가면 부족함을 메울 수 있고,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다는 공생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뿐 아니다. 자신을 보호하고 위장하는 생물들도 소개하고, 다른 생물을 잡아먹으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천적도 소개하면서 용감한 것이 무엇인지를 꽃발게를 통해 전한다. 비록 흰 구름을 잡지 못했지만 꽃발게는 멀리 여행도 와보고,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친구를 돕기도 하며, 갯벌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꽃발게의 좌충우돌 모험이 귀엽고 기특하다. 바닷속 모험과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을 통해 꽃발게가 성장했던 것처럼 우리 친구들도 그렇게 성장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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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 서로 기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동 에세이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1
송정림 지음, 김진희 그림 / 나무생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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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뉴욕의 한 지하철역에서 있었던 불행한 사건을 기억한다. 철로에 떨어진 사람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전동차에 치어 사망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유독 충격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사망한 남성이 한인 교포였다는 점과, 자신에게 돌진하는 기차를 바라보는 철로 위의 그를 근방에 있던 사진기자가 찍었다는 사실이었다. 생과 사를 가르는 22초의 시간 동안 그 사진 안에는 어느 누구의 손길도 보이지 않았다. 죽기 직전의 남자의 모습은 신문기자로서는 특종감이었을지 모르지만, 타인의 죽음이라고 그토록 무심하게 대하는 사진기자와 역 안의 사람들의 마음은 사막보다 더 건조하고 황무지보다 더 황량하게 느껴졌다.

 

그 후 때때로 그 사건을 우리의 현실에 대입해 보곤 했다. 그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하고 말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달라붙어 도와주었을 것이다. 그도 아니라면 웬 열혈청년이나 학생이 나타나 홍길동처럼 철로에 뛰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확신하는 근거는 위급한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이 외면하지 않았던 것을 내 눈으로 보았고, 나 또한 그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 확신하고픈 근거로 삼고 싶은 것은 전동차 출입문과 홈 사이에 발이 낀 노인을 위해 많은 사람이 달라붙어 전동차를 미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위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돕기 위해 마음 먹는 걸 보는 것은, 어떤 보약을 먹는 것보다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 그래서 이런 마음들을 담은 책은 읽기만 해도 청량제 같은 능력을 발휘한다. 송정림의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는 이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총 86편의 글 속엔 그녀가 학교 선생님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과 방송 작가를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지인을 통해 듣거나 다른 매체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내용도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들이지만, 중간중간 들어있는 크고 작은 삽화들이 그렇게 예쁘고 가슴에 와닿을 수 없었다.

 

『지인이 형을 잃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형을 갑자기 잃어버린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형을 갑작스런 사고로 잃고 난 후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위경련처럼 수시로 급습하는 슬픔 때문에 한번은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차를 세웠습니다. 달려가다가 갑자기 차를 멈추는 바람에 뒤에서 달려오던 차가 급정거를 했습니다. 하마터면 크게 접촉사고가 날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뒤차를 운전하던 남자가 격분해서 차에서 내렸습니다. 화가 난 남자는 차창을 두드렸습니다. 그는 눈물 가득한 얼굴로 차창을 열었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울음이 나와 차마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당황한 시선으로 그를 보던 뒤차 운전자가 말했습니다. "저……무슨 일이 있으세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힘내세요." 화를 내러 왔던 남자는 오히려 손수건을 건넸습니다. 그러고는 조용히 자신의 차로 돌아가 그의 차를 가만히 비켜갔습니다." 』pp 196~197

 

처음부터 형제가 없던 사람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깊은 상실감. 그 상실감을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누군가가 위로해주고 간다. 이외에 때를 놓쳐 육친과 마지막 인사조차 못하게 된 또다른 아픈 이야기도 있다. '할 말이 있다며 한번 다녀가라' 하신 친정아버지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여의치 않아 기회만 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어 영원히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작가의 뼈아픈 이야기는 가슴을 울린다.

 

또한 대구지하철 참사로 엄마를 잃은 소녀의 글은 가슴을 아리게 한다. 수학여행을 가는데도 평소와 같이 용돈을 준 엄마가 미워, 소녀는 속상한 마음에 엄마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결국 그 전화는 엄마의 마지막 전화가 되고 말았고, 엄마에게서 온 문자 두 통은 영원한 이별의 문자가 되고 말았다. "용돈 넉넉히 못 줘서 미안해. 쇼핑센터 들렀다가 집으로 가는 중이야. 신발하고 가방 샀어." "미안하다. 가방이랑 신발 못 전하겠어. 돈까스도 해주려고 했는데, 미안! 내 딸아, 사랑한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이 계속 머리를 맴돈다.

 

위로가 되고 힘을 되찾게 만드는 글들이 이 책엔 많지만, 삶의 진실을 담고 있기에 가볍게 읽거나 급하게 읽을 수 없다. 때로 서투르고 못나 보여 그런 자신이 싫고, 이러저러한 환경에 놓아둔 부모가 싫고, 삶마저 싫지만 그것이 삶임을 이 책은 전한다. 그리고는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사람과의 관계에서 찾게한다. 나아가 타인은 미처 만나지 못한 가족이라는 말로 우리의 생각 또한 확장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고,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데 방점을 찍는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한다.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꽃보다 더 고울 수는 없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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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일기 1 :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이오덕 일기 1
이오덕 지음 / 양철북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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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이 세상을 뜨신 지도 어느덧 10년이 됩니다. 선생의 부음을 신문으로 보면서 연세를 한번 더 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일흔아홉. 조금 더 사시지 하는 마음에 안타까움과 비감에 젖었던 당시가 떠오르는군요. 그런데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세월이 빠른건지 아니면 아니면 제가 무심했는지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제가 선생을 알게 된 것은 아이들 글쓰기 지도에 관한 책을 찾으려고 서점에 들렀을 때였어요. 그전까지는 선생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거든요. 생전 정직한 글쓰기, 살아있는 글쓰기를 강조하셨던 선생의 글은 꽤 강한 인상으로 남았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선생의 신념은 거의 종교와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그래서 저는 선생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장 출신이라는 것 외에는 딱히 아는 것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이 책은 선생이 교단에 계시던 1962년부터 2003년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의 일기 5권 중, 맨 앞 부분인 1권입니다. 총 3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는 일선 교사의 눈으로 바라본 당시 산골 학교와 농촌의 실태, 학교 행정에 관한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어요. 선생의 고통스런 심정이 고스란히 들어있기에 읽기가 버거울 정도였지요. 1944년부터 교사 생활을 하셨으니 이십년 쯤이면 넘길 것은 넘기고 맞출 것은 맞출 수 있는 요령과 무덤덤함에 익숙해지기도 하셨으련만, 선생은 그렇게 되지 못하셨나봅니다.

 

1962년 9월 19일 수요일

 

첫째 시간 출석도 부르기 전에 돈을 내놓는 아이가 있다. 대구종합운동장 확장 기금이다. 아직 10여 명이 안 가져와서 이걸 그냥 두면 다음 또 다른 돈을 모을 때도 안 가져오겠다 싶어 어제 독촉했던 것인데, 오늘 한 사람 가져온 것이다. 못 낸 아이들을 불러냈다. 야단을 쳤다. 돈 2원이 없어서 못 가져온 아이 손들어라 하니까 대여섯 명이 든다. 거짓말이라고 또 야단쳤다. 훌찌럭훌찌럭 우는 아이가 있다……돈 독촉을 하고 나니 공부를 가르칠 기분이 안 났다.

 

1967년 3월 23일

 

여기서는 사흘이 멀게 술판이 벌어진다. 내 머리는 지금 너무나 어지럽다. 학교 돈을 걷어 먹으려고 눈이 뒤집힌 교장, 술, 아이들이 수라 장판이 되어도 방치해 두는 교사, 기성회비를 안 낸다고, 아니, 안 낼 것이라고 미리 예방 삼아 혹독한 체벌을 주는 '모범 교사'……내가 살고 있는 곳이 바로 지옥이다.

 

아이들 밥도 제대로 못 먹이는 가정의 돈을 걷고, 돈이 덜 걷히면 아이들을 무섭게 혼내는 동료 교사들과 학교 책임자들을 보면서 선생은 무척 힘들어하셨더군요. 1957년 이미 중학교의 교감이 되었는데도 한 달만에 사표를 내고, 그후 1965년 초등학교 교감이 되었는데도 교사 강등 청원서를 내 선생은 다시 평교사가 됩니다. 불의와 부조리를 못견뎌할 뿐 아니라, 아이들 곁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해보려는 선생의 칼칼하고 외곬수적인 기질이 드러나는 순간들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선생도 행복한 일기를 쓸 때가 있는데 아이들과 같이 있을 때, 혹은 자연의 위로를 받을 때, 아이들 속에서 좋은 글을 발견할 때가 그렇더군요.

 

1964년 6월 6일 토요일

 

돌아오면서 엿을 사 주고, 나도 먹었다. 아이들 속에서 하루를 보낸 오늘은 너무 즐거운 날이었다.

 

1969년 12월 15일 월요일 맑음

 

밤새 눈이 와서 온 산천이 하얗다. 난로를 따뜻하게 피워 놓고 아이들과 마주 앉으면 이런 날은 교과서 따위를 공부하기가 싫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박 씨의 시를 읽어주니 아이들도 좋아하는 듯했다. 아이들을 얕보지 말 것이다. 이런 산골의 저학년 어린애들도 얼마든지 시를 이해하고 쓰는 것이다.

 

이렇게라도 가슴 따뜻한 시간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겠죠? 선생의 분노와 아픔이 절절히 들어있는 1부를 넘으면, 1971년부터 1973년까지의 시간을 만나게 됩니다. 이 기간에 선생은 교감이 되지요. 여러 행정적 부조리 및 교사들의 비교육적 자세와 안일함은 여전히 선생을 힘들게 하지만, 조금씩 좋은 만남도 생깁니다. 읽는 이로서 얼마나 기쁘고 다행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1973년 1월, 선생은 당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된 권정생 선생을 만나러 갑니다. 두 분의 만남과 교류가 제게는 마치 TV에서만 보던 연예인을 직접 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네요.

 

 

그 만남 이래 두 분은 마음이 통했던 듯 싶습니다. 그해 9월 8일의 일기 중「 강아지 똥」에 대한 선생의 '참 놀랄 만큼 좋았다. 대화 같은 것을 좀 손대면 거의 완벽한 작품으로 보인다'는 언급은 마치 역사적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일기를 읽다보면 권정생 선생은 선생에게 여러 모로 의지한 듯 하고, 선생 또한 좋은 작가를 세상에 선보이기 위해 발품을 많이 파신 듯합니다. 이 밖에도 이 시기의 일기에서는 아동문학가인 이원수 선생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의 이름이 오르내립니다.

 

3부 1974년부터 77년까지의 일기는, 선생이 교장이 되면서 겪게 되는 일들과 아동문학 분야의 전문가로서 선생의 반경이 얼마나 넓어지는지를 생생히 보여줍니다. 활동을 하다보니 때로는 구설에 오르기도 하고, 시비가 붙어 사과문도 게재하게 되면서 선생은 평론가로서의 자신의 자세를 점검하게 됩니다. 이 뿐 아닙니다. 75년 말에는 염무웅 선생에게 빌려준 책이 문제가 되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이틀간 조사를 받는 곤욕도 치르게 되지요. 이런 다사다난한 일 가운데 77년 11월 29일의 일기를 마지막으로 1권은 마무리 됩니다.

 

이 책을 읽기 전 이오덕 선생을 저는, 바른 글쓰기에 대한 나름의 투철한 교육관을 가진 분으로만 이해했지요. 그런데 일기 속의 선생은 많은 규제와 제약 속에 제대로 된 교육이 무엇인가를 놓고 고뇌하고 갈등하는 힘없는 개인에 불과하더군요. 때로 선생의 민낯은 처절하리만큼 애처롭고 측은하기까지 했습니다. 선생의 고뇌로 첨절됐다 해도 과언이 아닌 1권이었죠. 그럼에도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교육관을 지켜온 끝에 선생은 정직한 글쓰기라는 글쓰기의 한 축을 세우게 됩니다. 그 주춧돌이 세워지는 광경을 저는 본 것이구요. 읽는 동안 어쩔 수 없는 감정 이입으로 조금 힘들었지만 그보다 몇 배의 기쁨을 되돌려 받았으니 저는 지금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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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마중 보림 창작 그림책
김동성 그림, 이태준 글 / 보림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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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책을 읽으며 가장 가슴에 남는 작가와 그림 작가를 들라 한다면, 저는 주저없이 이태준과 김동성을 들겠습니다. 일제 강점기 하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구슬프고 애달픈 정서와 섬세하고 따뜻한 마음이 담긴 이태준만의 서정성은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을 정도라 여기니까요. 우리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그의 위치와는 무관하게 달밤이나 가마귀, 복덕방이 담긴 단편집을 읽으며 제가 느낀 감정이 그랬습니다.

 

그러면 김동성은 또 어떤가요? 저는 그를 '메아리'라는 책으로 만났습니다. 그 시대 정서를 반영하며 동화의 내용과도 기막히게 어우러진 수묵담채화를 보면서, 그의 나이 몇이기에 이리도 잘 구현해냈나 하는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그후 그의 이름이 들어간 책을 만나면 지나치다가도 되돌아와 훑어보는 습관마저 생겼습니다. 이렇게 멋진 작가들이 시공간을 초월해 만났지만, 저는 이 책이 재출간돼서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읽을 책은 많고 시간이 없었다면 변명일까요?

 

책을 보자마자 폈습니다. 김동성의 그림이 너무 좋았어요. 계속 읽어나가려는데 어린 딸이 책을 채갑니다. 그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책장을 덮으며 엄마가 안왔다고 마음 아파하네요. 아이는 연이어 말하더군요. 책 속 아이의 마음이 어린 딸에게 고스란히 전달된 모양입니다. 저도 책을 폈습니다. 글은 얼마 되지 않았어요. 책을 다 읽은 후 세어보니 총 15문장에 불과하더군요. 그런데 그 글 속에 담긴 아이의 마음이 무척이나 간절한 거예요. 그 아이의 마음을 김동성의 그림이 받아 여백 가득히 채우더군요.

 

 

이야기는 정말 간단합니다. 추운 겨울, 거친 광목의 옷을 입은 어린 아이가 정류장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거예요. 고맙게도 이내 전차가 도착합니다. 그런데 엄마가 보이지 않는 거예요. 아이는 차장에게 묻습니다. "우리 엄마 안 오?" 그러자 차장의 퉁명스럽기 짝이 없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 전차는 두 대나 그렇게 지나갑니다. 마침내 세번 째 전차가 왔어요. 엄마는 또 보이지 않네요. 아이는 똑같은 질문을 합니다. 고맙게도 이번 차장은 친절하게 대답해 주네요. 그러나 그 대답은 아이에게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엄마가 오지 않았거든요. 그후 아이는 입을 열지 않습니다. 단지 그 자리에 코가 빨갛게 되도록 가만히 서있기만 합니다.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간절한 마음과, 마치 그 아이인 것처럼 다가오게 만드는 그림이 특별한 동화 한 편을 만들었습니다. 어린 자식을 두고 돈 벌러 나갔음직한 엄마의 가슴 아픈 사연과 그런 엄마를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어 정류장을 찾아간 아이의 마음이, 어떤 부연 없이도 있는 그대로 전달됩니다. 몸도 마음도 추웠던 그 시절 그 때의 모습이 처연하게 다가오는군요. 그런데 희안하게도 왠지 모를 위로를 받는 기분입니다. 아이를 위로해줘야 할 사람은 분명 우리인데, 저 조그만 아이에게서 소중한 선물을 받은 느낌인건 왜일까요? 코를 빨갛게 만드는 겨울 추위 속에서도 엄마에 대한 사랑만으로 그 자리를 지켰던 아이는 커서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되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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