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 서로 기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동 에세이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1
송정림 지음, 김진희 그림 / 나무생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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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뉴욕의 한 지하철역에서 있었던 불행한 사건을 기억한다. 철로에 떨어진 사람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전동차에 치어 사망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유독 충격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사망한 남성이 한인 교포였다는 점과, 자신에게 돌진하는 기차를 바라보는 철로 위의 그를 근방에 있던 사진기자가 찍었다는 사실이었다. 생과 사를 가르는 22초의 시간 동안 그 사진 안에는 어느 누구의 손길도 보이지 않았다. 죽기 직전의 남자의 모습은 신문기자로서는 특종감이었을지 모르지만, 타인의 죽음이라고 그토록 무심하게 대하는 사진기자와 역 안의 사람들의 마음은 사막보다 더 건조하고 황무지보다 더 황량하게 느껴졌다.

 

그 후 때때로 그 사건을 우리의 현실에 대입해 보곤 했다. 그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하고 말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달라붙어 도와주었을 것이다. 그도 아니라면 웬 열혈청년이나 학생이 나타나 홍길동처럼 철로에 뛰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확신하는 근거는 위급한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이 외면하지 않았던 것을 내 눈으로 보았고, 나 또한 그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 확신하고픈 근거로 삼고 싶은 것은 전동차 출입문과 홈 사이에 발이 낀 노인을 위해 많은 사람이 달라붙어 전동차를 미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위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돕기 위해 마음 먹는 걸 보는 것은, 어떤 보약을 먹는 것보다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 그래서 이런 마음들을 담은 책은 읽기만 해도 청량제 같은 능력을 발휘한다. 송정림의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는 이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총 86편의 글 속엔 그녀가 학교 선생님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과 방송 작가를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지인을 통해 듣거나 다른 매체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내용도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들이지만, 중간중간 들어있는 크고 작은 삽화들이 그렇게 예쁘고 가슴에 와닿을 수 없었다.

 

『지인이 형을 잃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형을 갑자기 잃어버린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형을 갑작스런 사고로 잃고 난 후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위경련처럼 수시로 급습하는 슬픔 때문에 한번은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차를 세웠습니다. 달려가다가 갑자기 차를 멈추는 바람에 뒤에서 달려오던 차가 급정거를 했습니다. 하마터면 크게 접촉사고가 날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뒤차를 운전하던 남자가 격분해서 차에서 내렸습니다. 화가 난 남자는 차창을 두드렸습니다. 그는 눈물 가득한 얼굴로 차창을 열었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울음이 나와 차마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당황한 시선으로 그를 보던 뒤차 운전자가 말했습니다. "저……무슨 일이 있으세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힘내세요." 화를 내러 왔던 남자는 오히려 손수건을 건넸습니다. 그러고는 조용히 자신의 차로 돌아가 그의 차를 가만히 비켜갔습니다." 』pp 196~197

 

처음부터 형제가 없던 사람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깊은 상실감. 그 상실감을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누군가가 위로해주고 간다. 이외에 때를 놓쳐 육친과 마지막 인사조차 못하게 된 또다른 아픈 이야기도 있다. '할 말이 있다며 한번 다녀가라' 하신 친정아버지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여의치 않아 기회만 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어 영원히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작가의 뼈아픈 이야기는 가슴을 울린다.

 

또한 대구지하철 참사로 엄마를 잃은 소녀의 글은 가슴을 아리게 한다. 수학여행을 가는데도 평소와 같이 용돈을 준 엄마가 미워, 소녀는 속상한 마음에 엄마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결국 그 전화는 엄마의 마지막 전화가 되고 말았고, 엄마에게서 온 문자 두 통은 영원한 이별의 문자가 되고 말았다. "용돈 넉넉히 못 줘서 미안해. 쇼핑센터 들렀다가 집으로 가는 중이야. 신발하고 가방 샀어." "미안하다. 가방이랑 신발 못 전하겠어. 돈까스도 해주려고 했는데, 미안! 내 딸아, 사랑한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이 계속 머리를 맴돈다.

 

위로가 되고 힘을 되찾게 만드는 글들이 이 책엔 많지만, 삶의 진실을 담고 있기에 가볍게 읽거나 급하게 읽을 수 없다. 때로 서투르고 못나 보여 그런 자신이 싫고, 이러저러한 환경에 놓아둔 부모가 싫고, 삶마저 싫지만 그것이 삶임을 이 책은 전한다. 그리고는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사람과의 관계에서 찾게한다. 나아가 타인은 미처 만나지 못한 가족이라는 말로 우리의 생각 또한 확장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고,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데 방점을 찍는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한다.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꽃보다 더 고울 수는 없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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