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난 위위야 중국 아동문학 100년 대표선 12
거빙 지음, 김명희 옮김 / 보림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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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밝고 아름다운 면만을 동화에 담아야 한다고 여기는 건 아니면서도, 동화가 어두운 면을 비출 때 나도 모르게 조심스런 마음이 들곤 한다. 동화에 대한 편견이 있음을 느낄 때가 바로 그런 때다. 몇 년 전 '착해서 미치겠는 것만 동화인 줄 아니?' 라며 책 속의 인물을 통해 일갈한 작가 김려령의 말은, 동화를 마치 아름다운 이야기 모음집처럼 여기고 싶은 우리들의 어쭙잖은 환상이나 기대를 지적하는 것일 테다. 아이들이 속한 세계가 결코 무균실이 아님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이를 간과한다. 아이들도 생의 어려움에서 예외일 순 없는데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많은 것을 비춘다. 위위라는 유전자 변형의 쌍둥이 인간쥐를 등장시켜 실제 인간 세계와 다르지 않은 상황 속에 밀어넣고는, 위위와 다양한 인간쥐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미치광이 과학자에 의해 쌍동이 동생 펑펑의 비교 실험대상으로 쓰이다 실험실의 폭발로 동생과도 헤어져 지하 인간쥐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 위위는, 그 곳에서 많은 일들을 겪는다. 노회한 왕과 그 자리를 노리는 금강장사와의 싸움, 자신처럼 미치광이 과학자에 의해 실험용으로 쓰이다 도망나온 슈퍼쥐들의 힘겨운 삶, 잇속에 따라 자리를 옮기는 백성쥐들의 행태는 더도 덜도 아닌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삶의 비속함 속에서도 친구 부스러미와 검식사인 스승 은젓가락을 통해 위위는 살아갈 힘을 얻는다. 부스러미를 통해 우정을 느꼈고, 은젓가락을 통해서는 엄하지만 깊은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인간쥐들의 비열함과 왕의 치졸함으로 은젓가락이 애지중지했던 밀랍인형들이 부서지자 은젓가락은 그곳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위위에게도 떠나라 말한다. 위위는 새로운 여행을 통해 널빤지라는 초긍정적인 친구를 만나게 된다. 위위의 여행은 계속 되고 그런 가운데서도 위위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음을 다해 다른 살아있는 생명들을 대한다. 위위의 선한 마음은 천적이랄 수 있는 담비의 마음마저도 움직이게 되고, 마침내 그토록 기다렸던 펑펑과도 만나게 된다.

큰 어려움이 반복되고 온갖 힘든 일들이 있었지만 위위는 그 속에서도 선한 마음을 놓지 않고 이웃들을 돌봐주었다. 자기 한 몸 추스리기도 힘든 어린 쥐가 삶의 추한 격랑에 휩쓸리지 않고 마음을 다해 이웃을 도와주자 주변도 변화되었다. 위위가 가는 곳에는 따스한 기운이 넘쳤고, 펑펑이 그토록 찾아다녔던 도화원의 모형을 위위는 자신의 행동을 통해 삶에서 구현해 냈다. 펑펑보다 못한 지능으로 마치 실패작처럼 취급됐지만, 다른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도화원이 바로 이곳에 있음을 위위는 알게 했다.

어릴 적 읽었던 이야기중 지나가는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은 춥고 강한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빛이라는 걸 기억한다. 작가 거빙은 작고 보잘 것 없는 인간쥐 위위를 통해 주변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뭔가 대단한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를 생각하고 위하는 따스한 마음만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전한다. 동생쥐를 위해 존재했던 부수적인 존재에서 도화원의 모형을 보여준 위위의 여행을 따라가면 저도 모르게 위로와 힘을 얻게 된다. 아름다운 얘기를 해서 아름다운 동화가 아니라 시궁창보다 더한 환경 속에서도 헤치고 나갈 수 있는 힘을 주는 동화가 진짜 아름다운 동화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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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질간질 아기 그림책 나비잠
최재숙 글, 한병호 그림 / 보림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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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방송에서, 아빠에게 바라는 바를 인터뷰하는 초등학교 고학년 남자 아이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아이들의 성격이나 모습은 제각각이었지만 아이들의 말은 마치 입이라도 맞춘 것처럼 같았다. 아빠가 함께 놀아줬으면 좋겠다는 거다. 초등 고학년이나 됐는데도 '놀러 가자'가 아닌 '놀아줬으면 좋겠다'는 말에 가슴이 찡해지고 말았다. 그렇게 소박한 바람을 말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인터뷰를 보면서 아이들이 생각하는 좋은 아빠와, 아빠가 생각하는 좋은 아빠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봐도 아빠와 남동생들과 같이 놀았던 시간들만이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동생들과 나이 차가 얼마 나지 않아 별로 배려해주는 누나도 아니었건만, 아빠와 남동생들이 야구한다며 볼을 주고 받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또 아빠가 우리들에게 비행기 태워준다며 놀아주셨을 때 자꾸 더 태워달라며 보챘던 기억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싱그러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비록 힘은 드셨어도 놀아달라는 아이들을 보며 아빠도 그 때가 가장 행복하지 않으셨을까 싶다.

 

 

지나고 보니 아이가 부모를 찾는 시절이 길지 않은데, 내일의 행복을 위해서라며 오늘을 유예하는 삶을 사는 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그런 아빠들에게 행복해지는 법과 좋은 아빠되는 법을 동시에 가르쳐주고 있다. 아이가 아직 어리면 더 좋고, 컸어도 충분히 응용 가능하다. 특별한 도구도, 장소도 필요치 않다. 오직 필요한 것은 아이와 재미있게 놀겠다는 아빠의 마음뿐이다. 책 속 유준이의 얼굴을 보면 아빠와 같이 노는 것이 아이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 있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아빠가 놀아줄 때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이 된다. 아이가 행복한 것은 단순히 아빠가 놀아줘서만은 아니다. 함께 하는 이 시간을 통해 아빠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며, 아빠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장난감을 가지고 혼자서 노는 아이의 처연한 얼굴을 떠올려본다면, 아빠가 곁에서 놀아주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유추할 수 있다. 아이에게 아빠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이렇게 아이가 행복해하니 아빠의 얼굴도 행복해 보인다. 행복해지는 게 이렇게 쉬운데 우리는 너무 멀리서 행복을 찾았던 건 아닐까 싶다.

 

 

'우주에는 성전이 하나뿐인데 그것은 인간의 몸이다. 인간의 몸에 손을 댈 때에 우리는 하늘을 만진다.' 라는 토마스 칼라일의 글이 떠오른다. 아이를 안아주는 것이 아이의 정서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하는 글이다. 아빠가 놀아주면 좋겠다는, 그래서 아빠를 느끼고 싶다는 아이들의 말이 얼마나 간절한 바람인지를 더 늦기 전에 알아야 할 것 같다. 이렇게 단순한 바람을 가진 아이들에게 아빠가 시간을 내준다면, 아이는 일상의 시간을 잊지 못할 시간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아빠 또한 세상의 누구도 부럽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아이와 함께 할 때 부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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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황태자비 납치사건 - 개정판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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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한 역사적 상황과 무관할 수 없고 역사적 책임에서 면제될 수 없다. 역사적 존재로서의 자각은 삶의 외연을 넓히고 경계를 확장하지만, 반면 커다란 부담이 되기도 한다. 한 개인으로 존립하기도 어려운 세상에서 역사의 짐마저 얹는다는 건 힘에 부치는 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구구한 변명을 대며 외면했을 때 초래되는 상황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거나 겪었다. 도피가 답이 될 수 없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역사는 많은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역사 속의 함의를 지금 이 자리에서 찾아내지 않으면, 미련한 인간들의 한탄에 불과하게 된다. 오늘이었던 과거와 오늘이 될 미래는, 현재라는 프리즘을 통과해야만 각기 의미를 갖는다. 작가 김진명은 지금 이 자리의 소중함을 역사라는 무대를 빌어 이제껏 이야기 해왔다. 그가 그려낸 무수한 이야기들은 급변하는 세계 속의 역사공동체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며,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피토하듯 그려낸 그의 선연한 붉은 자국이다.

 

'신황태자비 납치사건'은 그런 김진명의 역사 인식을 통해, 급변하는 이 시대 동북아 정세와 우리의 현주소를 입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황태자비 납치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일본 우익의 실체는 두려우리만큼 크고 조직적이며 치밀하다. 센카쿠 열도라 불리는 댜오위다오 영토 분쟁과 우리와의 독도영유권 분쟁사를 살펴보면, 일본이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움직이는지 알 수 있다. 의도적으로 감행하고는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시치미를 떼며, 국제 정세의 추이를 관망한 후 또다시 움직이는 일본 우익의 모습은 우리가 얼마나 정신 차려야 할지를 실감나게 전한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한일, 한중간의 영토분쟁이지만 김진명이 실제 말하려는 것은 우리마저 잊고 지내는 민비시해라는 역사적 상흔이다. 일국의 왕비가 잔혹하게 죽임을 당했고, 그 장소에서 벗어나고자 부하를 죽이고 도망친 지휘관 임석호의 모습은, 슬프고 부끄러운 우리의 과거를 대표한다. 그럼에도 역사 앞의 죄인인 임석호의 후손을 굳이 주인공으로 세운 것은, 우리의 부끄러움을 씻고 다시 새롭게 서기 위함이다. 잘못된 역사는 청산되어야 하며, 이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데서 온다는 것을 적시코자 함이리라.

 

이 뿐 아니다. 김진명은 다른 나라의 아픈 역사 또한 끌어안아 이야기에 편입한다. 난징대학살에서 살아남은 한 노인의 가족사를 통해, 역사가 한 인간과 후대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리고 고통스럽게 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일본의 잔혹하고도 비열한 과거사에 머물지 않고, 의식있는 일본인들을 통해 황태자비 납치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은 자못 진취적이다. 또한 황태자비의 입을 빌려 그들의 잘못된 과거사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은 후, 폐쇄적인 민족주의에 머물지 않고 보편성으로까지 이야기를 확대해 마무리한다.

 

김진명은 언제나 독자들이 이야기 속에서 함께 하고, 역사적 존재로 개입하기를 촉구해 왔다. 역사적 현장으로 초대한 다음 스스로 느끼고 자발적으로 동참할 수 있도록 한결같이 독려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으면 시원했고, 한편 주체할 수 없는 열기로 서성이거나 쉬이 잠을 이루지 못 했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감정이 가슴을 흔들었고, 때로 그 감정은 묵직하고도 강렬한 부담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부담은 마침내 역사 앞에 선 존재로서의 자각의 자리까지 우리를 이끌었다.

 

역사에 만약이란 가정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만약이란 말을 역사에 넣을 수만 있어도, 야만의 역사가 되풀이 되거나 인간이 짐승보다 못한 일은 없었을런지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김진명은 집요하리만큼 역사적 문제와 인물들을 붙잡고 소설을 써왔다. 역사에 그가 담은 가정은 합당한 추론의 공간을 만들어 냈고, 마침내 의미있는 역사를 창조해냈다. 그가 그려내는 소설 속엔 지난 시간의 내가 있었고, 그들이 있었으며, 마침내 한덩어리가 된 우리가 있었다. 그리하여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누구도 역사의 방관자로 남을 수 없었다. 누구도...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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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수인가? - Why Jesus Why 시리즈 1
조정민 지음 / 두란노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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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정식으로 다니기 시작한지 어느새 26년이 되었다. 초반 다니다 말다 한적도 있었고, 내적 갈등-흔히 말하는 시험-으로 다닐까 말까 고민한 적도 있었으며, 사람들에게 질려서 교회란 곳이 뭘하는 곳인가 회의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당시 교회와 작별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도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삭이고 다녔다는 거다. 믿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속이 깊었던 것도 아니며, 더더욱 교회가 좋아서 다녔던 것도 아닌데 왠지 힘든 마음을 부모님께 말하면 다니지 말라 하실까봐 입을 다물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붙잡아주셨다는 것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성인이 되어 교회에 등록하고 다니기 시작했을 때,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게 예수가 내 죄를 위해 이천 년 전에 죽었다는 목사님의 설교였다. 지금도 아니고, 이천 년 전에 내가 알지도 못하는 예수가 나를 위해 죽었다는 이야기는 하도 어이가 없어 거부감조차 들지 않았다. 당연히 믿어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하니까, 내색하지 않고 들어주었다. 그런데 황당한 이야기로만 느껴졌던 예수가 정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어디에도 말할 데가 없어 얼마나 두렵고 떨리고 놀라웠는지 모른다. 집안에서 처음 믿은 사람이 나였고, 이런 경험이 있을 수 있다는 것조차 몰랐기 때문에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 건지, 과연 입을 열어도 되는건지, 자칫 말했다가 이상한 사람 취급 당하면 어쩌나 싶어 말도 못한채 전전긍긍했었다. 몇 년이 지나서야 이런 걸 영적 체험이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예수에 대한 저자 조정민 목사의 체험기이자 고백록이 'WHY JEJUS'이다. 잘 알려지다시피 조목사는 언론인 출신으로, 마흔일곱에 교회에 첫 발을 디딘 후 오십이 넘어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늦깎이 목회자다. 온누리교회 목사와 기독교방송 CGN TV 대표이사를 거쳐, 작년 중순경 청담동에 '예수안에서 형제 자매요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중의적인 뜻을 담은 베이직교회를 개척했다. 그는 이 책을 어중간한 신자나 비신자, 교회와 기독교인이라면 몸서리를 치는 사람들, 교회를 다니지만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닌 반 신자들을 위해 썼다고 한다. 시원시원한데다 때론 통렬하며 도발적이기까지 해 가독성이 좋다. 비신자가 읽었을 때 다 동의할 순 없어도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의미를 설명하고 배열하는 데 주의하고 배려한 흔적이 엿보인다.

 

 

조목사는 이 책의 키워드를 12 가지로 나눠, 왜 예수여야 하는지를 소개한다. 그는 첫째로 예수가 종교가 아닌 그 이상임을 설명한다. 그리곤 하나님 나라의 특성을 노 마일리지라는 이해하기 쉬운 개념으로 풀어낸다. 이어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에게 나타나야 하는 내적 변화인 자유와 기쁨에대해 설명하고 덧붙여 우리가 가야할 길인 사랑의 길을 소개한다. 그리곤 우리의 본질적 문제인 죄에 대해 언급한다. 자기 사랑이 죄고, 남을 판단하는 것이 죄의 뿌리며, 우리 모두가 결국은 용서받은 죄인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통해 교회 내에서의 판단과 구분이 얼마나 허망한 짓인가를 드러낸다. 연이어 은혜로 사는 삶을 설명하고는, 일상에서 우리에게 닥치는 고난의 문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를 언급한다. 나아가 거듭나는 것이 무엇이며, 예수님을 따르는 자서로 어떻게 세상을 섬길 것인지를 설명한다. 그리곤 기독교 신앙의 가장 놀라운 비밀인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가 크리스천으로서 어떻게 살아야하며,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교회를 오래 다녔다 하면서도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예수에 대해 무심한 신자들을 적잖이 보게 된다. 입으로는 예수를 찾지만, 실상은 세상이 던져주는 부스러기에만 관심 있는 자신의 모습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랑 공동체여야할 교회가 끼리끼리만 어울리는 공동체가 되어 우리만 좋은 교회가 되는 일들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음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교회의 머리를 예수라 하면서 예수에 대한 설교보다는 세상에서의 성공과 미담, 문화로 대체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안다. 세속화되고 혼합되어버린 우리의 모습을 깨달았다면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교회의 교회됨은 예수를 제대로 알고 따라가는데 있다. 알아도 알아도 모자라는 게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가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예수를 소개하고 소통하는 일에 애정을 기울인 조목사의 이 책이야말로 가장 믿을만한 예수 소개서가 아닐까 싶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소통할 수 있는 창구로, 교회를 떠난 신자들에게 위로의 통로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조목사의 글은 신자들에게는 자성을, 비신자들에게는 예수를 가장 좋은 친구로 소개하는데 부족함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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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시간여행 51 - 나이팅게일의 이집트 여행 마법의 시간여행 51
메리 폽 어즈번 지음, 살 머도카 그림, 노은정 옮김 / 비룡소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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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말처럼 아주 쉽게 나는 아이에게 상력을 가지라고 했다. 그래놓고는 상상력이 없게 느껴질라 치면 답답해 하곤 했다. 그러던 차 도대체 상상력이 뭔지를 알고 싶어 사전을 찾아봤더니 함부로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는 보는 힘'이 상상력이 가진 뜻이었다. 실제로 경험한 것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데, 하물며 겪어보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한 것을 안다는 게 과연 쉬운 일일까? 아이니까 떠오르는 것들을 무작위로 연결하는 게 쉬울 거라는 내 짧은 생각이 부끄워졌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아이의 상상력을 키울 수 있을까?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쉽고도 부담 없는 방법의 하나로 시간여행을 다루는 책을 읽으면 좋지 싶었다. 사실 시간 여행만큼 흥미진진한 소재가 어디 있으랴. 생각만으로도 들뜨게 하는 마력이 있지 않는가. 여러 책을 찾다 만나게 된 책 중의 하나가 '마법의 시간여행-나이팅게일의 이집트 여행편'이다. 벌써 51편이나 나왔다는데 아이와 나는 이제서야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잭과 애니 남매가 시간 여행을 하며 위대한 인물들의 위대함의 비결을 배워오는 것인데, 이번에 만날 사람은 나이팅게일이란다.

 

하지만 잭과 애니가 만난 나이팅게일은 우리가 알고 있는 훌륭한 간호사가 아닌, 자신의 진로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중인 아가씨 플로렌스다. 부모의 반대와 주변 사람들의 편견으로 마음이 힘든 플로렌스는 지금 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을 쓸 여유가 없다. 스물 아홉 당시의 나이팅게일은 이집트에 와서 병원 시설을 견학하고 있었는데, 잭과 애니는 그때의 나이팅게일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잭과 애니는 나이팅게일과 이야기 하고 싶지만 나이팅게일은 곁을 주지 않는다. 그런 나이팅게일을 따라가다 잠시 맡게 된 개코원숭이 코쿠가 쟈칼 떼에 놀라 절벽으로 올라가면서 일이 벌어졌다. 코쿠를 구하기 위해 잭과 애니는 마법의 안개를 마시고 암벽을 올라가지만 내려오다 잭은 어깨와 팔을, 애니는 다리를 다치게 된다. 타고온 당나귀도 사라지고 난감하던 차, 나이팅게일이 찾아와 잭과 애니를 구조한 후 배로 데려와 돌봐준다. 나이팅게일은 최선을 다해 돌봐주고 자신의 속 마음을 잭과 애니에게 전한다. 나이팅게일의 위대함의 비결이 삶의 의미와 목적이었음을 잭과 애니는 깨닫는다.

 

잭과 애니의 시간여행이 무사히 끝났다. 잭과 애니는 이 여행으로 위대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깨닫고 그 길을 향해 꾸준히 가는 것임을 배우게 된다. 그런데 잭과 애니만이 아니라 나도 커다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이팅게일의 업적에만 주목했지 그녀가 자신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갈등했던 시간들을 놓치고 있었다. 마치 훌륭한 사람은 저절로 되는 양 생각했던 치기어린 내 생각을 이 책을 점검하게 되었다.

 

과거의 인물을 현재로 불러오고 또 현재에서 과거를 만나는 시간여행이야말로,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연스레 자극하는데 최고이지 싶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만남을 통해 위인들도 자신들과 똑같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었음을 깨닫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또한 그들의 위대함이 생각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인간이 하늘을 나는 상상을 통해 비행기가 발명됐고, 말보다 더 빨리 달리는 상상이 기차와 자동차를 만들었다. 마법의 시간여행의 다음편은 어떤 인물과의 만남이 될지 나도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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