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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황태자비 납치사건 - 개정판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4년 1월
평점 :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한 역사적 상황과 무관할 수 없고
역사적 책임에서 면제될 수 없다. 역사적 존재로서의 자각은 삶의 외연을 넓히고 경계를 확장하지만, 반면 커다란 부담이 되기도 한다.
한 개인으로 존립하기도 어려운
세상에서 역사의 짐마저 얹는다는 건 힘에 부치는 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구구한 변명을 대며 외면했을 때 초래되는 상황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거나 겪었다. 도피가 답이 될
수 없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역사는 많은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역사 속의 함의를 지금
이 자리에서 찾아내지 않으면, 미련한 인간들의 한탄에 불과하게 된다. 오늘이었던 과거와 오늘이 될 미래는, 현재라는 프리즘을 통과해야만 각기
의미를 갖는다. 작가 김진명은 지금
이 자리의 소중함을 역사라는 무대를 빌어 이제껏 이야기 해왔다. 그가 그려낸 무수한 이야기들은 급변하는 세계 속의 역사공동체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며,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피토하듯 그려낸 그의 선연한 붉은 자국이다.
'신황태자비 납치사건'은 그런 김진명의 역사 인식을 통해,
급변하는 이 시대 동북아 정세와 우리의 현주소를 입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황태자비 납치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일본 우익의 실체는 두려우리만큼
크고 조직적이며 치밀하다. 센카쿠 열도라 불리는 댜오위다오 영토 분쟁과 우리와의 독도영유권 분쟁사를 살펴보면, 일본이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움직이는지 알 수 있다. 의도적으로 감행하고는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시치미를
떼며, 국제 정세의 추이를 관망한 후 또다시 움직이는 일본 우익의 모습은 우리가 얼마나 정신 차려야 할지를 실감나게 전한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한일, 한중간의 영토분쟁이지만 김진명이
실제 말하려는 것은 우리마저 잊고 지내는 민비시해라는 역사적 상흔이다. 일국의 왕비가 잔혹하게 죽임을 당했고, 그 장소에서 벗어나고자 부하를
죽이고 도망친 지휘관 임석호의 모습은, 슬프고
부끄러운 우리의 과거를 대표한다. 그럼에도 역사 앞의 죄인인 임석호의 후손을 굳이 주인공으로 세운 것은, 우리의 부끄러움을 씻고 다시
새롭게 서기 위함이다. 잘못된 역사는 청산되어야 하며, 이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데서 온다는 것을 적시코자 함이리라.
이 뿐 아니다. 김진명은 다른 나라의 아픈 역사 또한
끌어안아 이야기에 편입한다. 난징대학살에서 살아남은 한 노인의 가족사를 통해, 역사가
한 인간과 후대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리고 고통스럽게 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일본의 잔혹하고도 비열한 과거사에 머물지
않고, 의식있는 일본인들을 통해 황태자비 납치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은 자못 진취적이다. 또한 황태자비의 입을 빌려 그들의 잘못된 과거사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은 후, 폐쇄적인 민족주의에 머물지 않고 보편성으로까지 이야기를
확대해 마무리한다.
김진명은 언제나 독자들이 이야기 속에서 함께
하고, 역사적 존재로 개입하기를 촉구해 왔다.
역사적 현장으로 초대한 다음 스스로 느끼고 자발적으로
동참할 수 있도록 한결같이 독려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으면 시원했고, 한편 주체할 수 없는 열기로 서성이거나 쉬이 잠을 이루지 못 했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감정이 가슴을 흔들었고, 때로 그 감정은 묵직하고도 강렬한 부담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부담은 마침내 역사 앞에
선 존재로서의 자각의 자리까지 우리를
이끌었다.
역사에 만약이란 가정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만약이란 말을 역사에 넣을 수만 있어도, 야만의
역사가 되풀이 되거나 인간이 짐승보다 못한 일은 없었을런지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김진명은 집요하리만큼 역사적 문제와 인물들을 붙잡고 소설을
써왔다. 역사에 그가 담은 가정은 합당한 추론의 공간을 만들어 냈고, 마침내 의미있는 역사를 창조해냈다.
그가 그려내는 소설 속엔 지난 시간의 내가 있었고, 그들이
있었으며, 마침내 한덩어리가 된 우리가 있었다. 그리하여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누구도 역사의 방관자로 남을 수 없었다.
누구도...결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