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부인 The Collection Ⅱ
벤자민 라콩브 글.그림, 김영미 옮김 / 보림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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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자신의 전부를 거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에게 사랑은 남녀간의 애정을 넘어선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과 사랑할 때는 진지해야 한다. 한 쪽이 생명을 걸고 자신의 모두를 던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 같을 수 없다는데 생의 비애가 있다. 자신의 전부를 건 사랑은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을 태생적으로 배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비부인은 그런 사랑의 결말이 어떤지를 처연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잠시 잠깐의 유흥같은 사랑과 전 존재를 건 사랑이 결코 혼합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나비부인은, 그랬기에 한 세기를 넘어 장르의 탈바꿈과 재탄생을 통해 지금까지 사랑받을 수 있었다. 

 

인생이란 무대는 본질적으로 비극에 가깝다. 그토록 바라고 기다리던 행복은 찰나처럼 스치듯 지나가고, 생의 어두움과 슬픔은 길고도 짙다. 그러나 순간처럼 짧은 행복이라도 행복의 잔향은 고통보다 강하다. 그런 순간을 포착해 생이 가진 어쩔 수 없는 슬픔을 아름답고도 처절하게 그려낸 나비부인을, 이번에 벤자민 라콩브라는 프랑스의 젊은 그림 작가를 통해 만나게 되었다. 서양인의 눈에 비친 일본과 일본인의 모습이 감각적이고도 몽환적으로 표현돼 있다. 

 

이 그림책은 크기와 구성에서부터 압도적이다. 책을 펼치면 10미터에 달하며 앞면과 뒷면의 그림이 다르다. 앞면이 나비부인의 정황을 드러냈다면 뒷면은 나비부인의 내면을 압축해 드러내고 있다. 서술방식 또한 독특하다. 나비부인의 남편인 핑거튼 중위의 회한 가득한 독백으로 시작해 독백으로 끝난다. 글과 그림이 한 군데로 모여져 있어, 희곡 대본과 화집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독특한 그림과 구성은 책을 펴자마자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당시의 상황과 100여년 전의 일본이 금새 읽혀진다.

 

 

 

집안의 몰락으로 게이샤가 된 어린 소녀와 잠시의 유락으로 결혼을 선택한 미군 중위가 만났다. 그의 바람은 분명하다. 일본에서의 지루한 시간을 즐기고 싶은 마음 뿐이니까. 그러나 소녀는 다르다. 그녀에게 결혼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자 자신의 전부를 주는 것이었으니까. 중위는 다시 돌아오겠다는 책임지지 못할 약속을 하고 가고, 소녀는 중위의 아들을 낳아 기르며 3년을 기다린다. 마침내 중위가 돌아오지만 옆에는 미국인 부인이 있고 자신의 아들을 데려가 키우겠다는 말을 타인을 통해 전한다. 나비부인은 자신의 아버지와 같이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결한다.

 

비극은 무자비하고 서러운 삶을 동반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인간의 아름다움 또한 드러낸다. 삶이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고통을 감내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고결함을 생명을 걸고 나타내는 행위는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어린 나이에 소녀에서 게이샤가 되고, 부인에서 홀로 엄마가 된 나비부인의 심경이 그림 속에 있다. 슬프고도 애닲픈 그녀의 심정은 그래서 더 아름답게 드러난다. 각각의 그림과 글은 몰입을 요구했고, 몰입을 통해 하나의 이미지를 그려내게 한다. 부인이라기엔 너무 어린 소녀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덮는다. 나비가 펄럭이며 다가온다. 그곁에 이번엔 행복한 웃음을 한 부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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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지 않은 손님 - 이란 땅별그림책 11
파리데 파잠 글, 주디 파만파마얀 그림, 신양섭 옮김 / 보림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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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만한 할머니가 합죽한 얼굴을 하신 채, 누군가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찍힌 사진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할머니의 행복한 얼굴을 보자니 내 마음마저 파랗게 물드는 것 같았다. 그리 여유있어 보이는 차림새도 아니셨건만, 할머니의 얼굴은 세상의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소박한 행복을 드러내고 계셨다. 할머니의 얼굴은 보는 사람을 잠시나마 세상의 시름에서 벗어나게 했고, 행복이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님을 무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온갖 자질구레한 일을 하느라 평생 손에 물 마를 일이 없으셨을 할머니들. 자신보다 가족을 위해 사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 사셨을 할머니들. 작은 몸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 가족을 거두며 사셨을까? 할머니들의 사랑이 컸기에 할머니의 품은 늘 따뜻했다. 집이 가족을 부르는 게 아니라 할머니의 사랑이 가족을 뭉치게 했다. 할머니의 사랑은 가족에게만 향하지 않고 집 밖의 길손에게도,  미물이라 불리는 생명체에게도 흘러 내려갔다. 그래서일까, 할머니가 계신 곳에는 사람들이 모였다.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비슷한가 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이란 할머니도 우리네 할머니와 매우 닮았다. 만일 차도르만 쓰지 않았다면 통통한 체형의 잘 웃는 우리나라 할머니로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는 마음씨 곱고 친절한 덕에 동네 아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런 할머니네 집에 어느 춥고 거세게 비 오던 저녁, 작은 참새 한 마리가 할머니네 문을 두드린다. 비를 맞아 흠뻑 젖은 참새는 애처로운 눈으로 할머니를 쳐다보며 잠시 문 열어주기를 간청한다. 할머니의 허락이 떨어지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연이어 닭, 까마귀, 고양이, 개, 당나귀, 소까지 줄줄이 문을 두드린다.

 

  

한두번은 어쩔 수 없다지만 계속 되면 싫다고 할 법도 하련만 ,할머니는 이들의 부탁을 다 들어준다. 대신 편히 자되 내일 아침 각자의 일을 찾아가라는 부탁을 한다. 피곤한 할머니가 늦잠을 자고 일어나보니 모든 동물들이 일을 하고 있다. 당나귀는 주전자에 물을 끓여 놓았고, 고양이는 찻물을 내렸으며, 개는 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있었고, 까마귀는 들판에서 땔감을 주워 왔다. 또 소는 지붕 위의 흙을 다지고 있었고, 닭은 옆에서 돕고 있었다.

 

 

기쁜 마음에 할머니는 맛있는 빵을 사와 나눠 먹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지만 이제 그만 헤어질 생각에 동물들은 슬퍼한다. 집이 비좁은 탓에 할머니는 작은 동물은 머문다 치더라도 소는 떠날 수 밖에 없다 말하는데, 소는 자신이 곡식을 거둘 수 있다며 남게 되기를 청한다. 소에 이어 다른 동물들도 자신들이 할머니를 도울 수 있음을 피력하자, 할머니는 다 같이 살자며 모두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각자의 방을 만들자 권유한다. 그후로 모두는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단다.

 

 

이 책에서는 동물들을 모두 손님이라 표현한다. 하지만 아무도 초대받지 않았기에 불청객이었고, 실은 할머니를 불편케 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흔쾌히 받아들였고, 마음 편히 잘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리고는 다음날 동물들을 위해 결단도 내렸다. 단지 동물들을 가엾게 여겨 도왔지만 그들을 돕고 나니 오히려 동물들이 큰 힘이 되었다. 집안엔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고 동물들의 도움으로 더 여유있는 삶을 살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홀로 살았던 할머니가 외롭지 않아 좋다. 할머니의 얼굴은 사진 속의 할머니처럼 행복해 보인다.  그래서 보는 나도 지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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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보림 창작 그림책
서진선 글.그림 / 보림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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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역사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삶을 생각해 볼 때가 있다. 어찌 할 수 없는 역사의 힘 앞에 무력하게 당하는 사람들을 떠올릴 때면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잠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런대 하물며 직접 겪는 사람들의 아픔이 어느 정도일런지, 나로선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런 슬픔 가운데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 게 가족간의 이별일 것이다. 같은 하늘 아래 있으면서도 부모와 자식이, 그리고 부부가 만나지 못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비극이다. '엄마에게'는 그런 슬픈 가족사를 전하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렸던 장기려 선생의 아들 장가용이다. 어린 아이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이산의 아픔은 전쟁의 참상만큼이나 처절하다. 갑자기 일어나게 된 전쟁 탓에 잠시만 떨어져 있자는 그 말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는 아들과의 영원한 이별이, 남편과 아내에게는 살아서 다시 못 보게 될 줄은, 어린 아들에게는 50년이 지나서야 엄마를 만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어쩌면 누구도 몰랐기에 잠시의 이산을 택했을 것이다. 알았다면 그 어떤 고통을 겪더라도 결코 택하지 않았을 테니까.

 

 

전쟁으로 어린 화자와 아빠는 둘이서만 피난을 가게 된다. 원래는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피난을 가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 만큼 가다 아빠의 옷보따리를 가지고 왔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한겨울에 옷없이 견디게 될 아빠가 안타까워 아이는 옷을 가져다주고 오겠다 한다. 집에 들어서자 할머니는 아빠와 잠시 피난가 있으라며 아빠의 병원 버스에 둘을 태운다. 한참을 가다 엄마와 동생들을 보게 되지만 태우게 되면 피난민들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 될까봐 태우지 못하고 가게 된다. 이 잠깐의 순간이 마지막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부산에 다다르자 아빠는 천막 병원을 만들어 환자들을 돌보고, 아이는 엄마를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엄마가 만들어주셨던 만둣국과 엄마가 좋아하셨던 노래 봉선화를 떠올릴 때마다 아이는 말할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다. 나중 세월이 흘러 엄마에게 소포가 온다. 피난을 가다 동생들이 얼어 죽을 것 같아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며, 엄마는 사진과 봉선화 씨앗 그리고 엄마가 부른 봉선화 노래를 테이프에 담아 보내셨다. 그날 아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죽여 우셨다. 아빠는 북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평생을 홀로 사셨고, 1995년 그토록 그리워하던 엄마와의 만남을 하늘에서 기약하며 세상을 뜨셨다.

 

가슴이 먹먹했다. 부모와 자식이 그토록 서로를 그리워하며 떨어져 살아야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기막힌 일이다. 이에는 미치지도 못하는 아주 잠시지만, 내게도 이 비슷한 경험이 있다. 딸이 어릴 때 두 번 잃어버린 적이 있다. 몇 분도 안되는 사이 없어진 아이를 찾느라 동네를 헤집고 돌아다녔던 그 시간 동안 난 잠시 죽었었다. 아니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갖가지 감정들이 일어났고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에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불과 한두 시간 남짓이었지만 내가 살아온 생애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아이와 엄마에겐 다시 만나기까지 5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아이는 잘 커서 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다는 국립대 의대를 나와 의사가 되었고 2,000년에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엄마도 만났다. 엄마는 삼십대의 고운 아낙에서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있었고, 아이 또한 육십이 훌쩍 넘은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엄마와 만난 시간은 다 합쳐도 네 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 아이는 아니 장기용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가슴으로는 많이 울었다고 했다. 이젠 그조차 이 세상에 없다. 이미 돌아가신지 6년이나 되었으니까. 역사에 의해 희생된 이 가족의 아픔을 누가 위로해줄 수 있을까. 그러나 이 가족의 아픔을 개인사가 아닌 우리의 역사로 끌어안을때 아이는 천상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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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늘보가 사는 숲에서 The Collection Ⅱ
아누크 부아로베르.루이 리고 글.그림, 이정주 옮김 / 보림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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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친구와 함께 어떤 동네를 가게 되었다. 희한하게도 친근한 마음이 들었던 동네였는데, 그날 방문 이후로 그 마음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 동네엔 작은 공원은 고사하고 흔하디 흔한 가로수조차 없었다. 주택지와 공용시설이 함께 있는데다 좁은 길에 가로수마저 찾아 볼 수 없던지라 정말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나무가 단지 산소만 공급해주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나무가 있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인 안정과 그로 말미암은 평안함이 생긴다는 것을.

 

내가 자랄 땐 지금처럼 나무가 그리 많지 않았다. 산을 떠올릴 때 헐벗었다는 말 외에 다른 말을 떠올리기가 어려웠다. 그래선지 일상에서 울창한 숲이란 말을 실감할 수 있는 기회도 드물었다. 그런데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나무를 심은 결과 이제 우리 국토의 64%가 산림이 되었단다. OECD 국가 중에선 네 번째의 산림 국가가 되었고. 놀랍고도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이와 역행되는 일들이 거리낌없이 자행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한때 지구의 허파라 불릴 정도로 전 지구에 산소를 생성해 주던 아마존 열대림. 그 열대림이 무차별 훼손돼 이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한 번 파괴된 열대림은 다시 복구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는데, 눈 앞에 보이는 경제적 이득만을 목표로 다국적 기업과 나라들이 움직여 아마존 열대림이 사라지고 없다니 기막힌 일이다. 열대림의 파괴는 생태계를 무너뜨리게 되고 결국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작은 나무늘보를 주인공으로 그에 대한 대안을 조심스레 제시한다.

 

 

 

모든 것이 평화롭고 생명이 넘치던 숲에 어느날 시끄러운 기계소리가 들린다. 기계소리가 커지면서 나무들은 하나둘씩 잘려 나가고 사람도, 동물도 도망치듯 숲을 떠난다. 무서운 속도로 나무가 베어지자 끝까지 남았던 한 그루의 나무와 나무늘보도 마침내 사라지게 되고, 그들마저 없어지자 숲에는 죽음의 정적만이 감돈다. 아무도 없다. 그 때 한 사람이 나타나 나무를 심기 시작한다. 절망의 땅에 나무가 심겨지면서 생명이 싹트더니 생명체가 하나둘씩 돌아오게 된다. 나무늘보가 돌아오고 숲이 다시 창해 졌을 때 그곳은 생명이 넘치는 환상적인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나무를 베니 생명체가 사라졌고, 나무를 심으니 생명체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인간이 자연에 욕심을 냈더니 자연이 망가졌고, 인간이 사랑으로 접근하자 자연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분명한 건 훼손도, 보호도 모두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결정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이 결정이 오늘뿐 아니라 우리의 미래, 나아가 후손들의 삶에도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는 걸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책은 진지하게 묻고 있다. 바른 답과 작은 실천만이 이 책을 만든 근본적인 이유가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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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이야기 The Collection Ⅱ
아누크 부아로베르.루이 리고 글.그림, 이정주 옮김 / 보림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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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여러 색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지켜보며 감탄하는 것 외에는 그 무엇도 필요치 않았으니까. 제주의 출렁이는 검푸른 바다를 보며 바닷 바람을 맞았을 때,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깊은 위로를 느꼈다. 그러나 필리핀의 보라카이에서 만난 바다는 제주의 바다와 영 달랐다. 하늘색이라고 해야 할까, 옥색이라고 해야 할까, 그도 아니면 무색이라고 해야 할까. 내 짧은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깨끗하고 투명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찰랑대는 앞 바다의 가벼운 움직임 속에 뛰어들었을 때, 나는 그만 자연의 신비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면 하늘에서 보는 바다는 어떤가. 비행기의 조그마한 창문으로 내려다보는 바다는, 그렇게 높은 곳에서 보는데도 하늘과 바다가 본래 하나였던 것처럼, 주의해 보지 않으면 구분도 되지 않는 특별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한번 보기만 해도 바다는 일상의 자질구레한 염려와 쓸데 없는 욕심을 사라지게 했다. 그런데 그 바다가 요즘 병이 들었다. 남북한을 합쳐 6배나 되는 쓰레기 섬이 이미 하와이 북단에 자리하고 있고, 일본과 하와이 사이에도 커다란 쓰레기 섬이 있다 한다. 앞으로도 많으면 많아졌지 줄어들지 않을 것 같은 이럼 현상은, 그러나 기실 바다 오염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을 '바다이야기'는 무겁지 않게 전한다. 팝업 북이 가지고 있는 각별한 입체감은 아이들을 바다에 있는 듯한 느낌으로 인도한다. 배 주위를 날라다니는 갈매기와 선상에서 바다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아이들, 고기를 잡으려는 작은 배 위의 아저씨와 요트를 타는 사람들은 바다에서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그러나 그림을 젖히면 바다 밑의 실상은 사못 어둡기만 하다. 우리가 버린 온갖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바다는 여전하다. 지구 표면의 70%가 바다라는 사실은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마침내 배는 북극까지 나아간다. 한데 빙산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빙산이 자꾸 사라지면 동물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몇 마리 되지 않는 동물이 측은해 보인다. 계속 항해하다 배는 거센 폭풍우를 만나게 된다. 잔잔한 바다가 돌변하는 건 순식간이다. 그때 바다의 흉포함 앞에 떨지 않고 뭔가를 놓지 않고 있는 작은 고기잡이배의 어부가 보인다. 이런 상황에선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포기해도 괜찮을텐데, 어부의 생각은 다른가 보다. 바다 밑 그물엔 잡힌 고기가 가득하다. 드디어 배는 한 섬에 정박한다. 태초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섬이다. 알록달록한 물고기와 산호초가 바다를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다. 이 모습이 바로 우리가 그리던 바다지 싶다.

 

 

바다가 아플 때 우리는 건강할 수 없다. 모든 생태계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미 바다가 요동치고 있음을 우리는 지상 낙원이라 불리는 몰디브를 통해 보고 있다. 해수면의 상승으로 가라앉기 시작한 이 아름다운 섬이, 향후 50년 내에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건 무섭고도 슬픈 일이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에게 닥친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 책은 그런 바다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면서 나긋나긋하게 말한다. 이렇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바다가 우리가 꿈꾸던 바다가 아니겠냐고. 그런 바다를 꿈꾸지 않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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