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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지 않은 손님 - 이란 ㅣ 땅별그림책 11
파리데 파잠 글, 주디 파만파마얀 그림, 신양섭 옮김 / 보림 / 2014년 6월
평점 :
자그만한 할머니가 합죽한
얼굴을 하신 채, 누군가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찍힌 사진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할머니의 행복한 얼굴을 보자니 내 마음마저
파랗게 물드는 것 같았다. 그리 여유있어 보이는 차림새도 아니셨건만, 할머니의 얼굴은 세상의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소박한 행복을 드러내고
계셨다. 할머니의 얼굴은 보는 사람을 잠시나마 세상의 시름에서 벗어나게 했고, 행복이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님을 무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온갖 자질구레한 일을
하느라 평생 손에 물 마를 일이 없으셨을 할머니들. 자신보다 가족을 위해 사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 사셨을 할머니들. 작은 몸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 가족을 거두며 사셨을까? 할머니들의 사랑이 컸기에 할머니의 품은 늘 따뜻했다. 집이 가족을 부르는 게 아니라 할머니의 사랑이 가족을 뭉치게 했다. 할머니의 사랑은 가족에게만 향하지 않고 집 밖의 길손에게도, 미물이라 불리는
생명체에게도 흘러 내려갔다. 그래서일까, 할머니가 계신 곳에는 사람들이 모였다.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비슷한가 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이란 할머니도 우리네 할머니와 매우 닮았다. 만일 차도르만
쓰지 않았다면 통통한 체형의 잘 웃는 우리나라 할머니로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는 마음씨 곱고 친절한 덕에 동네 아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런 할머니네 집에 어느 춥고 거세게 비 오던 저녁, 작은 참새 한 마리가 할머니네 문을 두드린다. 비를 맞아 흠뻑 젖은 참새는
애처로운 눈으로 할머니를 쳐다보며 잠시 문 열어주기를 간청한다. 할머니의 허락이 떨어지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연이어 닭, 까마귀, 고양이, 개, 당나귀, 소까지 줄줄이 문을 두드린다.
한두번은 어쩔 수
없다지만 계속 되면 싫다고 할 법도 하련만 ,할머니는 이들의 부탁을 다 들어준다. 대신 편히
자되 내일 아침 각자의 일을 찾아가라는 부탁을 한다. 피곤한 할머니가 늦잠을 자고 일어나보니 모든 동물들이 일을 하고 있다. 당나귀는 주전자에
물을 끓여 놓았고, 고양이는 찻물을 내렸으며, 개는 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있었고, 까마귀는 들판에서 땔감을 주워 왔다. 또 소는 지붕 위의 흙을
다지고 있었고, 닭은 옆에서 돕고 있었다.
기쁜 마음에 할머니는
맛있는 빵을 사와 나눠 먹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지만 이제 그만 헤어질 생각에 동물들은 슬퍼한다. 집이 비좁은 탓에 할머니는 작은 동물은 머문다 치더라도 소는 떠날 수 밖에 없다 말하는데, 소는 자신이 곡식을 거둘 수 있다며
남게 되기를 청한다. 소에 이어 다른 동물들도 자신들이 할머니를 도울 수 있음을 피력하자,
할머니는 다 같이 살자며 모두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각자의 방을 만들자 권유한다. 그후로 모두는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단다.
이 책에서는 동물들을 모두
손님이라 표현한다. 하지만 아무도 초대받지 않았기에 불청객이었고, 실은 할머니를 불편케 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흔쾌히 받아들였고,
마음 편히 잘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리고는 다음날 동물들을 위해 결단도 내렸다. 단지 동물들을 가엾게 여겨 도왔지만 그들을 돕고 나니
오히려 동물들이 큰 힘이 되었다. 집안엔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고 동물들의 도움으로 더 여유있는 삶을 살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홀로 살았던 할머니가 외롭지 않아 좋다. 할머니의 얼굴은 사진 속의 할머니처럼 행복해
보인다. 그래서 보는 나도 지금 행복하다.